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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은 율곡과 함께 조선 유학의 최고봉에 오른 인물이다.
우리는 흔히 그를 조선 최고의 유학자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제자난 자녀교육방법에서 커다란 획을 그은 교육자이기도하다.
그는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시켰을까?
첫째, 요즘 말로 인맥네트워크를 구축해주는 교육방법을 구사하였다.
공부는 혼자하는 것보다는 한 수 위의 실력을 가진 사람과 인맥을 쌓다보면 실력이 오른다는 것을 깨닯은 것이다. 학문이 높고 똑똑한 제자가 있으면 자식이나 손자가 먼 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도 즉각 불러들여 소개를 해주었다. 그리고 공부를 위해 숙식을 함깨 할 것을 권하는데, 장소는 종요한 절을 이용하도록 했다.
둘째, 자식들의 학문을 권장하는 데 매우 적극적이었다.
'하처불가독 하시불가학(何處不可讀 何時不可學-어떤 곳에서든지 독서는 멈추지 말고, 항상 배워야 한다)'이란 말을 항상 자식들에게 주지시키고 학문을 게을리 할 경우 요즘 부모들 이상으로 나무랐다.
셋째, 겸손함과 세심한 배려있는 행동을 실천하여 자식들이 본받게 했다.
학문을 발전시키기에 앞서 먼저 사람이 되라고 했다. 그리고 학문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존경했다. 나이를 불문하고 상대를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 그리고 내 후손뿐만 아니라 형의 외손자까지 가르칠 정도로 치족은 물론 문중의 자녀들까지 가르침으로서 집안 큰 어른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펴낸 퇴계학파의 학맥도에 따르면 퇴계 당대에 310명을 비롯하여 오늘날까지 715명에 달하는 학자들이 퇴계학파(영남학파)를 형성하면서 그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한다.
넷째, '학문은 생활의 실천'이라는 퇴계의 가르침을 후손들에게 이어지게 했다.
배운 것은 실천하고 겉과 속이 다르지 않게 하는 것이 학문이라고 말했다. 바로 집안엣 가정교육을 중시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한 예로 34살에 벼슬길에 나간 아들에게 학문이 부족하다며 다시 '소학' 읽기를 권했다고 한다. 바로 기본이 없는 상태에서 다음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 준 것이다. 요즘 대입시험에 목표를 둔 부모들과는 전혀 상반되는 가정교육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가풍에 의해 후손 중에서 이육사가 태어났다.
이육사의 탄생
이윳사는 퇴계의 14대 후손이다. 그는 이미 어렸을 때, 논어, 맹자, 예기, 춘추 등의 사서를 배웠고 신학문은 중등과정까지 마쳤다. 22세때 중국으로 건너가 중산대학에 다니게 되었는 데, 이때부터 무려 감옥을 17차례나 드나들며 저항시인으로 항일운동을 펼쳤다. 안동출신의 독립운동가들의 계보를 추적해 보면 대부분 퇴계의 제자인 서애 유성룡과 학봉 김서이이로 이어진다고 한다. 바로 '배운 것을 실천한다'는 퇴계의 정신이 이어진 것이다.
<참고> 다음은 이육사가 고문을 받으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는 시이다.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1936년)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꼭 한 개의 별을 십이성좌(十二星座) 그 숱한 별들 어찌나 노래하겠니
꼭 한 개의 별! 아침 날 때 보고 저녁 들 때도 보는 별 우리들과 아-주 친하고 그중 빛나는 별을 노래하자. 아름다운 미래를 꾸며볼 동방의 큰 별을 가지자.
한 개의 별을 가지는 건 한 개의 지구를 갖는 것 아롱진 설움밖에 잃을 것도 없는 낡은 이 땅에서 한 개의 지구를 차지할 노는 날의 기쁜 노래를 목 안에 핏대를 올려가며 마음껏 불러보자.
처녀의 눈동자를 느끼며 돌아가는 군수야업(軍需夜業)의 젊은 동무들 푸른 샘을 그리는 고달픈 사막의 행상대도 마음을 축여라. 화전(火田)에 돌을 줍는 백성들도 옥야천리(沃野千里)를 차지하자.
다 같이 제 멋에 알맞은 풍양(豊穰)한 지구의 주재자(主宰者)로 임자없는 한 개의 별을 가질 노래를 부르자.
한 개의 별 한 개의 지구 단단히 다져진 그 땅 우에 모든 생산의 씨를 우리의 손으로 휘뿌려보자. 영속처럼 찬란한 열매를 거두는 찬연엔 예의에 끌림없는 반취(半醉)의 노래라도 불러보자.
영리한 사람들을 다스리는 신이란 항상 거룩하시니 새 별을 찾아가는 이민들의 그 틀엔 안 끼어 갈 테니 새로운 지구에단 죄없는 노래를 진주처럼 흩이자.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다만 한 개의 별일망정 한 개 또 한 개 십이성좌 모든 별을 노래하자.
퇴계는 지식 자체에 목적을 두지 않았다. 그가 중요시한 것은 생활과 실천이었다. 또, 결코 자신을 드러내거나 남에게 자신을 알리려 하지 않았다.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그는 스스로 학식과 덕을 쌓는데 열중했다. 제자들에게도 군자가 추구하는 학문이란 깊은 산골 풀숲엥 있는 난초와 같아서 알리지 않더라도 종일 향내가 나 저절로 남에게 알려지게 된다는 가르침을 폈다.
퇴계의 16대 종손 이근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가면 퇴계종택이 있다.
현재의 퇴계종택은 1896년 의병진압부대가 지른 불로 인해 1400여권의 책과 함께 불탔으며, 1907년 의병활동을 지원했다고 해서 일본군에 의해 또 다시 불탔다. 지금의 건물은 1929년 복원한 것이다.
이 집을 지키고 있는 이는 퇴계16대 종손으로 이곳 도산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한 이근필이다. 그는 사범학교를 나왔으나 고향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부득이 초등학교로 자원근무를 한다. 퇴계 종손들은 어릴때부터 특별 대접을 받으며 자란다. 서너살까지 어머니와 한방에서 자라지만 서너살이 지나면 할아버지 방으로 옮겨야 한다. 조상의 이야기를 할아버지에게 들으며 종손으로서의 행동거지와 마음가짐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이근태도 그러한 것 때문에 고향의 학교에서 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지금 그는 퇴계의 사상을 알리고자 도산서원에서교사들에게 수련회를 개최하고 2004년부터는 '칭찬 잘 하는 아이를 만들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명문가에서 배운다> '공부에 뜻이 있는 아이끼리' 네트워크를 만들어라
퇴계는 학문이 깊고 똑똑한 제자를 아들과 손자, 다른 제자들레게 소개해 주고 함께 공부하게 했다. 똑똑한 아이나 공부에 뜻이 있는 아이끼리 더불어 공부하면 아이들은 더 경쟁심을 발휘해 학업에 열중하게 되고, 한결 뛰어난 효과를 거둘수 있기 때문이다.
유태인들은 13세가 되면 성인식을 하는 데 이것을 축하해 주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은 부조금을 낸다. 그런데 그 액수가 만만치 않아 아이가 자라서 사회에 진출할 때 쯤은 큰 액수로 불어나 있다. 그러니 아이는 사회에 우리돈으로 1억 안팎의 돈을 가지고 출발을 한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유대인 청년들의 고민은 당장 먹고 사는게 문제가 아니라 이 돈을 불리기 위해 무엇을 하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젊어서 창업에 나서거나 금융업으로 성공을 하게 되는 것이다.
퇴계의 네트워크나 유대인들의 네트워크는 바로 아이들이 성공하는 지름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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