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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경 법문
우 또다나 사야도 법문
우 담마간다 스님 통역
천안 호두마을 집중수행
2011년 4월 23일~28일
붓도 소 바가와- 보다-야 담망 데세띠
땅 바가완땅 아항 완다-미 삽바다-
소 바가와- : 우리들의 진정한 의지처이신 그 거룩하신 세존께서는
붓도 : 사성제의 바른 법을 스스로 분명히 깨달으시고
보다-야 : 다른 많은 중생들도 마찬가지로 사성제의 바른 법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담망: 사성제의 바른 법을
데세띠 : 연민심을 앞세워 지혜로 설하셨습니다.
땅 바가완땅 : 분명히 현존하시는 그 거룩하신 세존께
아항 : 저는
삽바다- : 밤낮으로 항상
완다-미: 지극 정성 두 손 모아 경의를 다하여 예경 드립니다.
이마-야 담마-누 담마빠띠빳띠야- 붓당 뿌제-미
이마-야 담마-누 담마빠띠빳띠야- 담망 뿌제-미
이마-야 담마-누 담마빠띠빳띠야- 상강 뿌제-미
(이마-야 담마-누 담마빠띠빳띠야- )
네 가지 도, 네 가지 과, 열반이라고 하는 이러한 출세간 법 아홉 가지에 따른 실천으로, (붓당) 거룩하신 부처님께 (뿌제미) 예경합니다.
네 가지 도, 네 가지 과, 열반이라고 하는 이러한 출세간 법 아홉 가지에 따른 실천으로, (담망) 네 가지 도, 네 가지 과, 열반, 교학이라고 하는 이러한 열 가지 가르침에 (뿌제미) 예경합니다.
네 가지 도, 네 가지 과, 열반이라고 하는 이러한 출세간 법 아홉 가지에 따른 실천으로, (상강)도의 위치에 있는 네 분, 과의 위치에 있는 네 분이라고 하는 여덟 분의 성자이신 승가와 지금 계시는 일반 승가 여러분에게, (뿌제미) 예경합니다.
이당 메 뿐냥 막가팔라냐-낫사 빳짜요 호뚜
메 : 저의
이당 뿐냥 : 오늘 베푼 보시의 선업, 잘 지킨 지계의 선업, 많이 실천한 수행의 선업, 법문을 들은 청법의 선업이,
막가팔라냐-낫사 : 제가 바라는 도의 지혜, 과의 지혜의,
빳짜요 : 그러한 지혜를 얻고 그러한 지혜에 이르는데 도움을 주는 바탕과 원인이,
호뚜 : 되기를.
이당 노 뿐냐 바-강 삽바삿따-낭 데마
이당 노 뿐냐 바-강 : 이렇게 오늘 행하고 들은 선업의 공덕 몫을,
삽바삿따-낭 : 법문을 같이 듣고 같이 수행을 하는 선한 이들을 포함해서, 부모님과 도움을 주신 이들을 비롯하여 삼십 일천의 모든 중생들에게,
데마 : 회향합니다, 회향합니다, 회향합니다.
회향을 받아 행복하기를! 모든 위험이 사라지기를!
모든 걱정이 이 사라지기를! 모든 고통이 사라지기를!
몸과 마음 행복하게 열반에 이르게 하는 거룩한 실천을 열심히 노력하고 많이 수행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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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법문의 배경 … 9
2. 질문: 어떻게 보아야 모든 번뇌가 사라집니까? … 12
3. 멀리 떠남 세 가지 … 13
4. 37조도품 … 14
5. 위빠사나 수행으로 번뇌 제거 … 15
6. 세 가지 사량확산 … 17
7. 갈애의 특성 … 18
8. 사견의 특성 … 20
9. 사량확산의 뿌리 … 21
10. 작용하는 도의 요소 다섯 가지 … 23
11. 법문 듣는 이익 … 26
12. 잘못된 마음기울임 … 27
13. 위빠사나의 대상 … 28
14. ‘나는 어떠하다’는 자만(아스미 마나) … 30
15. 사견이 없는 수다원 … 31
16. 갈애는 집성제 … 33
17. 108 갈애 … 34
18. 사념처 수행 … 36
19. 경행의 이익 … 38
20. 밤낮으로 항상 알아차려라 … 41
21. 자만의 특성 … 44
22. 거미처럼 관찰하라 … 49
23. 자만의 세 가지 종류 … 51
24. 증상만 … 53
25. 네 가지 성취수단 … 55
26. 자만을 제거하는 방법 … 58
27. 사리뿟따 존자의 겸손 … 60
28. 화를 내지 말아야 할 세 가지 종류의 사람 … 64
29. 지계 … 65
30. 번뇌는 내부에서 제거하라 … 68
31. 아라한은 바다와 같다 … 71
첨부
1. 신속경 - 한글 … 77
2. 신속경 - 빨리어 … 81
3. 신속경 - 영어 … 84
1. 법문의 배경
20110423
이번 집중수행 중에는 “신속경”에 대해 법문하겠습니다. 우선 이 경이 어떤 연유로 설해졌는지 그 배경을 간략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한때 부처님께서 까삘라왓투 근처의 대림정사에 계셨습니다. 수행해서 아라한과를 증득한 500명의 석가족 왕자들이 부처님께 자신들이 증득한 것을 말씀 드리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때 1만 우주에서 수많은 천신들과 범천들이 모여서 큰 모임이 만들어 졌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천신들과 범천들이 근기가 무르익었는지를 아는 지혜, 그들의 성향을 아는 지혜, 즉 이 두 가지를 합쳐서 불안(佛眼)으로 살펴보시고, 제도될 수 있는 천신과 제도될 수 없는 천신 두 가지로 나누셨고, 나아가서 제도가 될 수 있는 천신들을 다시 탐욕 기질, 성냄 기질, 어리석음 기질, 생각이 많은 기질, 믿음이 많은 기질, 지혜가 많은 기질의 여섯 가지로 나누셨습니다.
탐욕 기질인 천신에게는 “올바른 유행 경”, 성냄 기질인 천신에게는 “투쟁과 논쟁 경”, 어리석음 기질인 천신에게는 “큰 전열 경”, 생각이 많은 기질에는 “작은 전열 경”, 믿음 기질인 천신에게는 바로 이 “신속경”, 지혜 기질인 천신에게는 “죽기 전에 경”을 설해야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천신들은 질문을 통한 설법에 의해서만 도의 지혜와 과의 지혜와 열반을 얻는다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그러나 질문을 딱 맞게 할 천신이 없었기 때문에 신통력으로 자신과 똑같은 화신 부처님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화신 부처님이 질문하게 했고 현존하신 부처님께서는 그 질문에 대답하셨습니다. 천신들은 다른 우주에서 온 부처님이 질문하는 걸로 알고, 기쁜 마음으로 법문을 듣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신들이 성자가 되었습니다. 각각의 법문 끝에 아라한이 된 천신은 1조명이었고 기타 낮은 단계의 성자가 된 천신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경의 빨리어 이름은 뚜와따까(Tuvaṭaka) 숫따인데 ‘뚜와(Tuva)’는 ‘빨리, 신속히(quickly)’라는 뜻이므로 ‘윤회에서 신속히 벗어나게 하는 경’입니다. 이 경을 듣고 믿음 기질인 천신들은 더욱 강한 믿음이 생겨서 신속하게 아라한이 되었다고 합니다.
2. 질문: 어떻게 보아야 모든 번뇌가 사라집니까?
질문: 태양의 후예이신 대선인께 질문 드립니다. 비구가 한거와 적정(寂靜)을 어떻게 알고 보아야 모든 번뇌가 사라집니까?
3. 멀리 떠남 세 가지
첫 번째 질문인 한거(멀리 떠남)에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몸의 한거는 홀로 지내는 것인데 수행에 도움이 됩니다.
마음의 한거는 번뇌와 섞이지 않고 깨끗한 마음만 생기는 상태입니다. 선정의 마음, 도의 마음, 과의 마음,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관찰하는 마음만 생기는 상태입니다.
재생 근거의 한거는 번뇌, 오온, 업(의 형성)이 사라진 열반을 의미합니다.
4. 37조도품
두 번째 질문은 산띠 빠다 즉 “적정(寂靜. 산띠)을 어떻게 알고 보아야 모든 번뇌가 사라집니까?”입니다. 다시 말하면 적정의 원인이 되는 37조도품을 어떻게 알고 보아야 모든 번뇌가 사라지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37조도품은 출세간의 보배입니다. 세간의 보배를 추구하면 그 끝은 사악처입니다. 출세간의 보배를 계속 추구하면 도와 과와 열반에 이르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되는가? 사념처(혹은 팔정도) 수행을 하면 나머지 서른세 가지를 모두 실천하는 것이 됩니다. 산띠 빠다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가장 거룩한 열반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수행은 아무나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수행하지 않는 사람은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5. 위빠사나 수행으로 번뇌 제거
대답 1 : 사량확산의 뿌리와 ‘나’라는 자만을, 숙고와 위빠사나 지혜와, 도와 과와 열반을 통해서 적절하게 알고서, 모두 제거해야 합니다.
자신의 존재상속에 조건이 형성되면 생길 수 있는 모든 갈애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항상 사띠를 실천해야 합니다.
“만따”라고 대답했는데, 이는 최상의 지혜인 도의 지혜로 재생의 근거를 제거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고 봐야 합니다. 또한 “우빠룬데”라고 대답했는데, 이는 자기 안에서 생기는 자신의 번뇌를 제거하고 재생의 근거를 제거하는 것을 직접 표현한 것입니다. “사또 식케”는 사띠해서 적정 성취의 원인인 사념처 등의 실천을 표현한 것입니다.
질문에 대해서 “한거에는 몸의 한거, 마음의 한거, 재생 근거의 한거가 있습니다. 37조도품(혹은 사념처)을 실천하면 모든 번뇌가 사라집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법문의 대상이 믿음 기질이 강한 천신들이기 때문에, 부처님은 사량확산(빠빤짜)의 뿌리와 자만을 통찰지로 제거해야 한다고 우회적으로 어렵게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천신들은 “아, 이렇게 심오한 법문을 해 주시다니!”라고 생각하고, 더욱 강한 믿음이 생겨서 열반을 쉽게 증득했습니다. 사량확산을 신속히 제거하도록 하는 경이므로 “신속경”입니다.
사량확산의 뿌리와 ‘나’라고 생각해서 뽐내는 자만(아스미 마나)을 숙고와 위빠사나 수행과 성스러운 도의 지혜로 적절하게 다 알고, 모두 제거하고 가로막아야만 번뇌를 제거하게 됩니다.
6. 세 가지 사량확산
사량확산에는 갈애(딴하) 사견(유신견) 자만 세 가지가 있습니다. 갈애는 원하고 갈구하는 것입니다. 갈애는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사견은 ‘나’라는 실체, 자아,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자만은 ‘나’라고 생각하고 뽐내고 잘난 척하는 것입니다.
‘나는 남자다. 나는 여자다. 나는 왕이다. 나는 스님이다.’라는 것은 자만과 관련된 것입니다. ‘나는 …을 잘 한다. 나는 부자다.’라는 생각도 자만으로서의 나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7. 갈애의 특성
갈애는 아직 못 얻은 것의 획득을 갈망하는 것이고, 하나를 얻었으면 둘을, 둘을 얻었으면 셋을, 이와 같이 한없이 계속 갈구합니다. ‘이만 하면 됐다.’가 없습니다. 얻었으면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얻으려고 합니다.
앗타살리니에 갈애를 설명할 때 원숭이 잡는 고무풀의 비유를 듭니다. 원숭이의 발이 붙어서 안 떨어지고, 손이 붙고, 입이 붙고, 배까지 붙어서 꼼짝 못하고 사냥꾼에게 잡히는 것은 갈애 때문입니다. 범부는 색성향미촉법을 추구하여 거기에 달라붙어서 결국은 죽음의 왕에게 잡혀 죽습니다. 갈애 때문에 6가지 대상을 잡으려고 아침부터 바쁩니다. 과거생으로부터 계속 갈애 때문에 고통 받고, 미래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갈애를 제거하는가 하면, 지금 가장 분명한 정신과 물질을 관찰해서 부분적으로 제거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바로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위빠사나 수행으로 제거합니다.
정신과 물질은 어디에서 생깁니까? 육문에서 생깁니다.
20110424
갈애는 몸의 한거를 싫어합니다. 술 마시기, 영화 보기, 친구 만나기는 좋아하지만 숲속에서 혼자 지내는 것은 싫어합니다. 아나함이나 아라한 같은 성자들은 몸의 한거를 좋아합니다. 마음의 한거 나아가서는 열반을 대상으로 하는 재생연결의 한거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중수행에 참가하고 있는 여러분들은 어느 정도 성자들의 한거와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앙굿따라 니까야에 안이비설신의를 바다에 비유합니다. 눈이 이제 그만 보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갈구가 끝이 없습니다. 미얀마에 “위장은 바다와 같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계속 들어가니까요.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망상이 끝없이 일어납니다. 마음의 대상인 법에 대한 갈애도 끝이 없습니다. 망상이 계속 생깁니다.
8. 사견의 특성
물질과 정신이 ‘나’라고 생각하는 유신견이 사견의 대표입니다. 중생, 영혼, 자아라는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견입니다. 자신의 사견을 남에게 주장하고 이해하고 동의하기를 바라는 성품 즉 확장하는 성품이 있습니다. 그래서 빨리어 ‘빠빤짜’를 사량확산이라고 번역합니다.
그러나 정견으로 바른 가르침을 펴는 것은 사량확산이 아닙니다. 여기서의 사량확산은 자만이 뒤에 나오므로 갈애와 사견만 포함합니다.
9. 사량확산의 뿌리
사량확산의 뿌리 즉 생기게 하는 원인은 무명(아윗자), 잘못된 마음기울임(아요니소 마나시까라), ‘나’라는 자만(아스미 마나), (악행을) 부끄러워하지 않음(아히리까), (악행을) 두려워하지 않음(아놋땁빠), 들뜸(웃닷짜) 모두 여섯 가지입니다.
무명 때문에 갈애와 ‘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견(유신견)이 생깁니다. 자아가 있어서 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몸에게 아프지 말라고 하면 아프지 말아야 할 것이고, 늙지 말라고 하면 늙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무아입니다.
여러분은 병 없으십니까? 아마도 한 가지 병은 있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병에 걸린 적이 없는 분 계세요? 그렇더라도 병 한 가지는 가지고 계십니다. 바로 배고픔이라는 병입니다. 배고파서 밥을 먹지만 얼마 지나면 또 배고픕니다. 영원히 치료되지 않는 병입니다. 암 등의 병은 치료될 수도 있지만, 이 배고픔이라는 병은 치료되지 않습니다. 가장 큰 병은 배고픔 병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명이 가리기 때문에 무아인 것을 자아가 있다고 잘못 압니다. 관찰하는 위빠사나 수행을 하지 않아서 자아가 있다고 아는 것이 무명입니다. 그로 인하여 갈애와 자만이라는 사량확산이 진행됩니다.
사량확산의 뿌리인 무명을 알고 봐서 제거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는가 하면 무명의 반대인 지혜로 제거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유일한 길이라고 하신 위빠사나 즉 물질과 정신이 생길 때마다 관찰하면 무명이 생기지 않습니다. 사띠로 관찰하면 사라집니다. 사띠는 대표로 말한 것이고 정진과 삼매와 지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10. 작용하는 도의 요소 다섯 가지
팔정도로 설명하면 작용하는 도의 요소 다섯 가지인 정견, 정사유, 정정진, 정념, 정정이 알아차릴 때마다 같이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① 부름 꺼짐을 알아차리려고 애쓰는 요소가 있죠? 이것이 정정진(바른 노력)이고 ② 정념(바른 사띠)은 대상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붙들어주고 밀착시켜줍니다. ③ 그랬을 때 마음이 그 대상에 순간순간 잘 머무는 것이 정정(바른 삼매), ④ 마하시 방법에서는 명칭 붙이는데, 이렇게 하면 마음이 대상으로 가게 됩니다. 이것이 정사유(바른 생각)입니다. ⑤ 그렇게 되면 동시에 바른 지혜(정견)가 생깁니다. 그 대상의 바른 성품을 알고, 알고, 앎으로써, 한 번 관찰할 때마다 팔정도의 다섯 가지 요소가 모두 포함됩니다. 관찰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배’라고 생각할 것인데, 관찰하기 때문에 움직임일 뿐이고, 팽창할 뿐이고, 생멸할 뿐인 무상하고 고통이고 무아라는 정견이 생깁니다.
이렇게 배의 부름 꺼짐을 풍대일 뿐이고, 영원한 것이 아니고, 생멸할 뿐이라고 숙고하지 않고, 스스로의 지혜로 무상한 법이구나,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고통일 뿐이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무아인 것이라고 알게 됩니다. 이것이 사량확산의 뿌리인 무명 그리고 갈애를 위빠사나 수행으로 제거하는 모습입니다. 단 이것은 그 순간만, 일부만 갈애를 제거합니다.
청정도론은, 처음에 생기는 위빠사나 지혜는 그 힘의 역량만큼만 세간적인 번뇌를 제거한다고 말합니다. 사악처에 가게 하는 거친 형태의 탐욕, 성냄, 유신견, 계금취견을 이길 정도의 지혜가 없으면 수다원이 되지 못하고 열반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것을 이길 정도로 위빠사나 지혜가 강해져야 됩니다.
그러나 한 번 관찰할 때마다 사악처에 떨어지게 할 정도로 강한 번뇌의 힘이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번뇌의 힘은 약해지고 지혜의 힘이 강해지면, 수다원이 되고, 나아가서 아라한이 되면 모든 번뇌가 뿌리째 뽑힐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렇게 위빠사나 수행해서 어느 세월에 도의 지혜, 열반을 성취하겠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연결되어 있다고 알아야 합니다. 위빠사나 지혜가 성숙되고 성숙되어서 완벽하게 구족되면 도의 지혜가 생기기 때문에, 이것을 단일화의 방법이라고 합니다. 위빠사나 지혜가 생기지 않고는 도의 지혜가 갑자기 생기지 않습니다. 위빠사나 지혜의 연장선상에 도의 지혜가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부름 꺼짐 하나를 관찰하는 것이 모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번뇌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은 마치 나무를 비벼서 불이 생기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앞의 사띠와 뒤의 사띠, 앞의 삼매와 뒤의 삼매, 앞의 지혜와 뒤의 지혜가 계속해서 연결되어 힘을 실어줘야만 번뇌의 힘이 약해집니다.
무명과 함께 갈애라는 뿌리를 완전히 뽑는 것은 아라한 도의 지혜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11. 법문 듣는 이익
20110425
법문을 들으면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공덕이 있습니다.
① 못 들은 법문을 새로 들으면 새로운 것을 알게 됩니다.
② 이미 들은 것을 다시 들으면 의미를 더욱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③ 의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④ 견해를 바르게 해 줍니다.
⑤ 마음을 깨끗하게 해 줍니다. 즉 믿음이 생깁니다.
수다원이 되는 조건 중의 하나가 법문을 듣는 것이기도 합니다. 수다원은 불법을 들을 때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집중해서 듣기 때문에 졸거나 망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법문을 듣다가 졸거나 망상하면 “아, 내가 틀림없는 범부구나.”라고 아십시오.
12. 잘못된 마음기울임
사량확산의 뿌리에는 잘못된 마음기울임(아요니소 마나시까라)도 있습니다. 물질과 정신을 무상하고 고통이고 무아이며 깨끗하지 못한 것이라고 바르게 알지(요니소 마나시까라) 못하고, 영원하고 행복이고 자아라는 불변의 실체가 있으며, 깨끗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마음 기울임입니다. 이것이 사량확산의 뿌리입니다.
물질과 정신을 사실대로 바르게 알도록 알아차리는 것, 그것들이 생기는 순간에 관찰하는 것이, 사량확산만이 아니라 그 뿌리까지 뽑는 방법입니다.
13. 위빠사나의 대상
위빠사나는 과거에 생겼던 물질과 정신을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생겼던 것을 돌이켜 생각하면 고유한 성질 나아가서 무상 고 무아라는 보편적(공통) 성질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것에 대해서는 이미 ‘내가 보았다. 내가 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과거를 대상으로 해서는 아무런 이익이 없습니다. 마치 사진 찍어 놓은 것을 보면 ‘이것이 나다.’라고 알듯이, 무상 고 무아를 관찰하려고 하면, 저절로 ‘영원하다, 행복하다, 나다’라는 생각이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고유 성질을 모르고 공통 성질을 모르며, 따라서 번뇌를 제거하는 이득이 없기 때문에 과거를 관찰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위빠사나 관찰할 때 시간을 벗어난 것을 관찰해서도 안 됩니다. 미래의 것도 아직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즉시 관찰할 수 없으므로, 미래를 관찰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존재상속에서 일어난 것을 관찰해서도 안 됩니다. ‘물질과 정신’ 혹은 ‘무상 고 무아’라고 수없이 입으로 말하면서 관찰해도 안 됩니다. 이런 것들은 마음이 만들어낸 개념(관념, 빤냣띠)일 뿐이기 때문에 아무런 이익이 없습니다.
지금 현재 생기고 있는 법 중에서 가장 분명한 것이 위빠사나의 관찰대상입니다. 그래야 사량확산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습니다.
14. ‘나는 어떠하다’는 자만(아스미 마나)
이 신속경에서는 사량확산에 자만도 포함되지만 천신들에게는 자만이 중요하기 때문에 따로 떼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는 수승하다. 나는 …을 잘 한다. 나는 거룩하다. 나는 복이 많다. 나는 업이 좋다.’라고 하는 것은 ‘나는 어떠하다’는 자만에서 생깁니다. 이것을 위빠사나로 관찰해서 잘 알고 보아야 합니다.
15. 사견이 없는 수다원
물질과 정신일 뿐인 것을 ‘나, 남자, 여자, 중생’이라고 생각하면 사견(유신견)이 생깁니다. 사견도 갈애와 마찬가지로 6가지 원인에서 생깁니다. 볼 때 관찰해서 사실대로 분명히 알면, 갈애가 제거되듯이 사견도 제거됩니다. 이것은 순간적 제거이지만 수다원도의 지혜가 생기면 사견이 뿌리째 뽑힙니다.
사견은 ‘나, 남자, 자아, 중생’이라는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의사소통을 위한 ‘나’도 있습니다. 아라한이신 부처님도 ‘나는 이렇게 설한다.’라고 말씀하셨지만, 거기에는 갈애나 사견이나 자만으로서의 ‘나’는 없습니다.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에게는 사견으로서의 ‘나’는 없지만, 미세한 갈애와 미세한 자만은 있습니다. 범부에게는 갈애 사견 자만으로서의 ‘나’가 있고, 적어도 사견으로서의 ‘나’는 반드시 있습니다. 마치 불이 나면 멀리서는 불이 안 보여도 연기는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범부에게는 ‘나’라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하시 사야도께서 질문과 대답을 기억하기 쉽게 게송으로 만드셨습니다.
질문: 멀리 떠남 적정(寂靜)법 어찌 보아 적멸해?
대답: 사량확산 뿌리를 알고보아 적멸해.
‘나는… ’이란 자만을 알고보아 적멸해.
16. 갈애는 집성제
갈애는 사성제 중의 집성제입니다. 남녀 사이의 갈애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처음 만났을 때 ‘저 사람 참 괜찮다.’라는 생각이 갈애가 처음으로 생기는 모습입니다. 그것이 ‘오빠, 동생’ 사이로 바뀌었다가 취착하게 되면 ‘여보, 당신’ 사이로 변합니다. 왜 이렇게 될까요? 처음 마음에 드는 모습을 봤을 때 ‘본다, 본다.’로, 그 아름다운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들린다, 들린다.’로 알아차리지 않아서 갈애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관찰하지 않아서 집성제가 생기면 고성제는 반드시 생깁니다. 갈애라는 원인이 생기면 그 결과인 괴로움은 반드시 생깁니다.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존재상속에 조건이 형성되면 생길 수 있는 모든 갈애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항상 사띠를 실천해야 합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17. 108 갈애
갈애에는 108 갈애가 있습니다. 감각욕망 갈애, 존재 갈애, 비존재 갈애 3가지에, 색성향미촉법 6을 곱하고, 과거 현재 미래 3을 곱하고, 나의 존재연속과 남의 존재연속 2를 곱하면 108이 됩니다. 번뇌를 많이 헤아리면 1500가지입니다.
갈애가 어디에서 생깁니까? 안이비설신의 6문에서 생깁니다. 불을 끄려면 불이 난 곳을 알고 거기에 가서 꺼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갈애가 어디서 생기는지 알아야 갈애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갈애는 언제 생깁니까? 조건이 생기면 언제든지 생깁니다. 갈애는 도의 지혜로 제거되기 전까지는 조건이 형성되면 즉시 생깁니다. 미리 어디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형성되면 즉시 생깁니다. 색성향미촉법을 만나면 언제든지 생깁니다.
범부에게 생길 수 없는 번뇌는 없습니다. 좋아하는 것 때문에 부모를 죽이는 일까지 할 수 있습니다. 아자따삿뚜는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살해하는 순간은 성냄으로 죽이지만, 왕이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무명과 왕위를 누리고자 하는 갈애, 두 가지를 바탕으로 한 성냄 때문에 죽였습니다.
닭고기를 먹고 싶어서 죽일 때에는 갈애를 바탕으로 한 성냄으로 살생하는 것입니다. 살생을 시킨 사람과 실제로 살생을 한 사람 모두 지옥에서 태어나게 됩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죽인 것이 아닌, 이미 죽어 있는 생선은 먹어도 살생이 아닙니다.
고성제는 알아야 할 법이고, 집성제인 갈애는 제거되어야 할 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성제인 팔정도를 잘 실천하셔서, 멸성제인 열반을 경험하여 수다원 나아가서는 모든 번뇌를 제거한 아라한이 되시기 바랍니다.
18. 사념처 수행
20110426
번뇌를 관찰해서 제거하는 방법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몸의 현상이 나타나면 몸을 관찰하는 사띠를 확립하는 수행[身念處]을 해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둘째 느낌이 나타나면 느낌을 관찰하는 사띠를 확립하는 수행[受念處]을 해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셋째 마음의 현상이 나타나면 마음을 관찰하는 사띠를 확립하는 수행[心念處]을 해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넷째 법(마음의 대상)이 나타나면 법을 관찰하는 사띠를 확립하는 수행[法念處]을 해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경에는 사띠하라고만 했지만 주석서에서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몸의 현상이 분명하게 나타나면 몸을, 느낌이 분명하면 느낌을, 마음의 현상이 분명하게 나타나면 마음을, 그 세 가지를 제외한 마음의 대상(성품)이 나타날 때마다 그것을 분명히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띠의 대상이 네 가지이기 때문에 네 가지 사띠의 확립[四念處]이라고 합니다.
마하시 사야도께서 이를 게송으로 만드셨습니다.
몸의 현상 생길 때 바로 알아야
마음 현상 생길 때 바로 알아야
고락(苦樂)덤덤 느낌들 생길 때 알아야
성품법들 드러날 때 분명 알아야
19. 경행의 이익
몸 관찰 중의 하나인 경행을 하면 다섯 가지 이익이 있습니다.(앙굿따라 니까야)
① 여행을 오래 할 수 있습니다.
② 정진이 향상됩니다. 움직일 때 넘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등 몸의 노력이 포함되어 있고, 그렇게 움직일 때마다 알아차려야 하기 때문에 마음의 노력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③ 병에 잘 걸리지 않게 됩니다.
④ 소화가 잘 됩니다.
⑤ 경행에서 생긴 삼매는 오래 지속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갈 때 가는 것을 안다.’는 법을 우습게 알고, “수행하지 않는 보통 사람이나 축생들도 자기가 가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하기도 합니다. 아는 것은 같지만 수행자처럼 가려고 하는 의도를 가진 마음이 생겨서, 그 마음에 의해 가는 동작이 쌍을 이루며 함께 생기는 것을 모릅니다. 발을 들어서, 앞으로 나아가고, 발을 딛는 마음이 단계별로 생기고, 그에 따른 동작이 단계별로 생기는 것을 직접 알지 못합니다. 가는 행위의 일부는 알지만 집중해서 알지 못하고 다른 생각을 하면서 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어서 시장에 갈 때 ‘어디 가서 어떤 물건들을 사고, 어디 가서 커피 마시고, 어디 가서 국수를 먹어야지.’ 하면서 가는 것이 보통 사람입니다.
누가 갑니까? 뭐가 갑니까? 지혜가 성숙해서 갈 때마다 잘 관찰하면, 가려는 마음 때문에 생긴 풍대가 온 몸에 퍼져서 단계별로 몸이 나아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계별로 생기는 마음에 의해 생기는 움직임이 가는 것이지 ‘나’가 가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사람은 집에서 떠날 때의 ‘나’와 똑 같은 ‘나’가 지금 물건을 사고 있다고 압니다. 불변의 실체인 ‘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나다. 중생이다,’라는 사견을 떨쳐버리지 못한 상태입니다.
누가 가는가? 마음과 물질만 생멸하는 것이지 어떤 실체가 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나 지배자나 소유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 가는가? 수행자는 가려는 의도를 관찰할 수 있고, 중간에 뻣뻣함, 이동함 등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과 물질이 단계별로 생멸하는 것일 뿐이다.
12연기도 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관찰을 통해서 수행자의 지혜만큼 연기법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의 현상으로 좋아하거나 화내거나 바라거나 졸릴 때, 마음에 나타난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 마음 관찰(심념처)입니다.
좋거나 나쁘거나 무덤덤한 느낌이 분명하게 나타날 때, 그 느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 느낌 관찰(수념처)입니다.
마지막이 마음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인 법인데, 이는 광범위합니다. 물질이다, 마음이다, 느낌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여러 가지 법들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을 법이라고 보면 됩니다. 좋아함이나 성냄 그 자체를 법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봄이나 들림은 여러 가지 물질과 정신이 결합해서 일어나는데 이를 법(성품)을 관찰한다고 보면 됩니다. 소리 관찰할 때 ‘소리, 소리’로 관찰하면 안 되고, 귀에다 마음을 두고 ‘들림, 들림’으로 관찰해야 합니다. ‘저 새가 배고파서 우나, 짝을 찾아 우나?’하면 생각으로 넘어간 것이니 ‘생각, 생각’ 혹은 ‘망상, 망상’으로 관찰하십시오.
20. 밤낮으로 항상 알아차려라
지금까지 알아차려야 한다고 했는데 얼마나 알아차려야 할까요? 경은 “밤낮으로 항상 알아차려야(사다 사또)”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주석서에 의하면 앞의 사띠와 뒤의 사띠, 앞의 삼매와 뒤의 삼매, 앞의 지혜와 뒤의 지혜가 끊어지지 않게 계속 알아차려야 합니다. 오전 내내, 오후 내내, 밤새도록 내내, 초하루부터 그믐까지 내내, 일 년 내내, 어린 시절에 이 법을 만났으면 어린 시절 내내, 중년에 이 법을 만났으면 중년 내내, 노년에 이 법을 만났으면 노년 내내 관찰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년에 하면 된다고 했으니, 80세에 허리가 구부러져 지팡이 짚고 와서 눈도 어둡고 귀도 잘 안 들리고, 업의 힘도 다 상실된 상태에서 수행하고 싶다고 하면, 집에 가서 편히 쉬시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나이 들면 아무리 가르쳐도 지혜가 잘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 항상 관찰하는가? 아라한이 될 때까지 그리고 아라한이 된 다음에도 알아차려야 합니다. 너무 힘들면 수다원까지, 그것도 힘들면 상카라 평온의 지혜까지, 그것도 힘들면 생멸의 지혜까지, 그것도 힘들면 정신과 물질을 구별하는 지혜가 생길 때까지 관찰하십시오. 이 지혜도 안 생기면 수행하지 않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항상 관찰하라고 했지만 처음에는 계속 관찰하기 어렵기 때문에, 마하시 방법에서는 기본 대상으로 배의 부름 꺼짐을 관찰하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다른 분명한 대상이 나타나면 그것을 관찰하여 그것이 사라지면 다시 배의 부름 꺼짐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관찰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관찰해야 하는지 몰라서 “무엇을 관찰하지?”라고 찾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배를 관찰하다가 다른 것이 나타나면 그것을 관찰하다가 다시 배로 돌아오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먼저 여러분의 내부에서 생기는 물질적 현상 정신적 현상을 관찰해서 삼매가 성숙되면, 보거나 들리는 외부 현상도 저절로 잘 관찰할 수 있게 됩니다.
관찰하지 않아서 보거나 듣는 대상에 대해서 사실대로 바르게 알지 못하면 갈애 등이 생기는데, 그런 것들이 생기지 않도록 보거나 들을 때마다, 분명하게 알아차려서 무상 고 무아를 알도록 항상 알아차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하시 스님은 이를 게송으로 만드셨습니다.
안의 갈애 제거토록 항상 관찰 실천해
21. 자만의 특성
보통사람은 자기에게 자만이 생겼지만 자기에게 자만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설명하기도 힘듭니다. 자기가 자만이 많으면서 다른 사람을 자만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자만이 많은 사람에게 자만이 많은 사람이 오기 마련입니다. 탐욕스런 사람끼리, 화 잘 내는 사람끼리, 말 많은 사람끼리 만나기 마련입니다. 유유상종이지요.
자기의 공덕 혹은 자기 스승의 공덕이 있다고 해서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스님인 경우에 높은 가문이나 높은 신분이나 부자였다가 출가했다든지, 보시를 많이 받는다는 이유로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경전을 잘 안다든지 법사시험에 합격한 것, 박사 학위 받은 것, 설법을 잘 하는 것, 선정이나 지혜를 얻었다고 해서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처럼 집중수행을 하는 경우 ‘나는 계를 잘 지키는데 저 사람은 계를 안 지켜.’라고 하면서 자만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위빠사나 하는 사람들에게 자만이 많습니다. ‘우리는 제일 거룩한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데, 저 사람들은 사찰에 다니면서 절이나 주력을 해.’라고 우쭐거려서는 안 됩니다.
마하시 센터의 경우 45일 혹은 90일 수행을 해서 어느 정도 관찰을 잘 하게 된 사람을 모아서 “지혜의 단계 법문”을 합니다. 그러면 그 법문을 들은 사람은 ‘나는 지혜의 단계 법문을 들었는데 저 사람은 아직 안 들었다.’는 자만이 생기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 삼장을 잘 아는 사람을 ‘삼장을 잘 아는 비구’라고 칭송하셨지만 ‘법에 잘 머무는 이’라고 칭송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법에 잘 머무는 이’는 위빠사나 수행을 잘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경전을 잘 가르치면 ‘경전을 잘 가르치는 이’라고 하지 ‘법에 잘 머무는 이’라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독송을 잘 하면 ‘독송을 잘 하는 비구’라고 하지 ‘법에 잘 머무는 이’라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경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을 ‘생각을 많이 하는 이’라고 하지 ‘법에 잘 머무는 이’라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수행법에 따라 수행을 잘 하는 사람을 ‘법에 잘 머무는 이’라고는 합니다. 집중수행하고 있는 여러분은 ‘법에 잘 머무는 이’입니다. 그러나 자만하지 마십시오. 집중수행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면 즉시 ‘법에 잘 머물지 않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간적인 측면에서는 잘 생긴 것, 부자인 것, 머리가 좋은 것, 지위가 높아서 자만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자만을 제거하는가? 첫째는 위빠사나 수행을 잘 하는 것이고 둘째는 숙고하는 것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는 어떻게 자만을 제거하는가 하면, 지금 계속 관찰하고 있으면 자만이 생길 기회를 주지 않음으로써 자만이 제거됩니다. 또한 처음 자만이 생길 때 그 마음을 관찰하면 자만이 더 이상 커지 전에 제거됩니다.
숙고는 이렇게 합니다. “지금 내가 구족한 이러한 덕목은 과거생의 선업 공덕과 현생에서 내가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지만, 이런 덕목들이 항상 구족 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다. 또한 늙거나 건강하지 못하게 되면 이런 덕목들은 전혀 의지가 안 된다. 다음 생이나 그 다음 생에서도 반드시 이 덕목들이 구족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자만이 많은 사람을 부처님이 비난하셨고 다른 사람들도 비난했다. 자만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공손하지 않게 행동하거나 말하면 언젠가는 큰 괴로움을 당할 것이다. 다음 생에서는 비천한 가문에서 태어날 것이다. 지금 잘난 척하지만 실제로는 내 몸에 있는 것은 머리카락 손발톱 등의 32가지 혐오스런 것들의 모임이며,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생멸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바르게 생각해서 자만을 제거해야 합니다.
실제로 미세한 자만은 아라한이 되어야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제거하기가 아주 어려운 것입니다.
두 번째 대답 게송의 마지막 구절에서 왜 자만을 제거해야 하냐하면 부처님께서 자만을 모든 번뇌들이 사라진 고귀한 법이라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어떤 사람은 생멸의 지혜가 생기면 자만이 생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계만 지킨 다음에, 어떤 사람은 아비담마 공부를 조금한 사람은 이제 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관찰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경전을 가르치는 사람은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고, 두타행을 하는 사람들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위빠사나 수행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 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이 미세한 자만입니다. 여러분도 일주일이 됐으니 수행 끝났다고 생각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라한이 되기까지는 수행을 그만 두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열반을 원하십니까? 정말 원하신다면 물질과 정신을 싫어하고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열반은 부름과 꺼짐의 끝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름과 꺼짐이 끝날 때까지 관찰을 계속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아직 부름 꺼짐이 끝나지 않았죠?
22. 거미처럼 관찰하라
거미처럼 관찰하셔야 합니다. 거미는 거미줄을 쳐놓고 거미줄 한 가운데 있다가, 먹이가 걸리면 가서 거미줄로 감아놓았다가 배고프면 가서 먹고 가운데로 돌아왔다가 다시 배고프면 가서 먹곤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름 꺼짐을 관찰하고 있다가 아픔이나 망상이 나타나면 그것을 관찰해서 사라지면, 다시 부름 꺼짐으로 돌아와서 관찰을 계속하십시오. 그렇게 계속 관찰하면 저절로 미세해져서 나중에는 미세한 앎만 남게 됩니다. 그러다가 아는 것이 아주 빨라집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활주로에서 출발하여 점점 빠르게 달리다가 이륙 직전에는 속도가 아주 빨라지면서 휙 하고 비행기가 이륙하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부름 꺼짐을 계속 관찰하다가 미세한 대상과 미세한 앎이 모두 사라진 상태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것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열반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23. 자만의 세 가지 종류
20110427
자만의 세 가지 종류를 세 번째 답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
대답 3. 어떤 것 때문에 우월하다든가 열등하다든가 동등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 가지 형태로 영향을 받더라도 자기를 내세우는 허구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실제로 우월하기 때문에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동등하기 때문에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 자만”이고, 실제로는 우월하지 않은데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동등하지 않은데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비사실 자만”입니다. 저열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열 자만”입니다.
범부만이 아니라 수다원에게도 ‘나는 수다원이다.’라는 미세한 “사실 자만”이 있습니다. 이는 사다함 아나함에게도 있으며 아라한이 되어야 없어집니다.
저열 자만은 나는 저 사람보다 낮다고 생각하고 함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신참 비구인 경우에 ‘나는 신참 비구이기 때문에 고참 비구들처렴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없어. 내 마음대로 행동해도 돼.’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수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수행자들을 보고 ‘우리는 저 수행자들처럼 애써 수행할 필요 없어.’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낮춰서 마음대로 하려는 것이 저열 자만입니다. 학생인 경우에 ‘나는 학생이니까 저 교수처럼 열심히 공부 안 해도 돼.’라고 생각하는 것도 저열 자만입니다. 덕목이 낮은 것을 취해서 스스로 선업을 실천하지 않으려는 것이 저열 자만입니다.
우월하다든지 동등하다든지 저열하다고 생각하는 자만이 생기면, 숙고나 관찰해서 제거해야 합니다.
24. 증상만
경에는 안 나와 있지만 주석서에 증상만[增上 自慢]에 대해서 나와 있습니다. 자기가 어떤 법을 얻지 못했으면서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자기가 증득하지 못한 것을 모르고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증득하지 못한 것을 알면서 증득했다고 하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출세간법에 대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범부에게는 증상만이 생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비유하자면 거지 부모에게서 태어난 거지에게는 ‘나는 언젠가 왕이 되겠다.’라는 생각이 꿈에도 생기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수다원에게는 내가 사다함이라는 증상만이 생기지 않고, 아나함에게도 내가 아라한이라는 증상만이 생기지 않습니다.
사마타나 위빠사나 수행을 많이 해서 몇 년 동안 번뇌가 생기지 않는 사람은 ‘나는 수다원이다.’ 혹은 ‘나는 아라한이다.’라는, 자신이 정말로 증득했다고 생각하는 증상만이 생깁니다. 경전 지식이 없는 수행자가 상카라에 대한 평온의 지혜에 도달해서 3시간씩 번뇌가 안 생기는 경우에 증상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예화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스리랑카에 법랍 60년이고 사마타 수행도 많이 한 큰스님이 계셨는데, 그 제자들 중에는 아라한이 된 사람도 많았습니다. 아라한인 제자가 신통으로 큰스님을 보니 수다원도 아닌 범부였습니다. 그 제자가 스승을 도와드리기 위해서 찾아가서 “스님, 아라한 된지 몇 년 되셨습니까?”라고 묻자 “음, 한 삼십년 됐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제자는 스승에게 신통력으로 큰 코끼리를 만들어서 스승을 향해 돌진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코끼리가 스승을 향해 달려오니 스승에게 두려움이 생겨서 도망치려고 벌떡 일어나자, 제자가 가사를 잡고 “스님, 아라한에게 두려움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두려움을 비롯해서 다른 번뇌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스승은 ‘내가 아직 범부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제자에게 ‘나에게 수행의 의지처가 되어 주시게.’라고 해서 가르침을 받아서 그날로 아라한이 되었다고 합니다.
25. 네 가지 성취수단
네 가지 성취수단에는 열의, 정진, 마음, 검증이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중의 한 가지가 강하면 나머지 3가지가 저절로 따라오기 때문에, 세간적인 것이든 출세간적인 것이든 잘 이룰 수 있게 때문에, 네 가지 성취수단 혹은 마음대로 구족하게 하기 때문에 사여의족(四如意足)이라고 합니다.
사여의족 중에서 열의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거지의 아들에게 증상만이 없다는 것과는 반대로, 왕의 맏아들 특히 태자가 된 맏아들은 ‘내가 언젠가는 왕이 될 것이다.’라는 강한 열의가 있습니다. 열의의 힘이 강하면 되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수 없는 윤회를 하면서 지금까지 왜 아라한이 못 되셨습니까? 아나함, 사다함, 수다원이 되지 못하셨습니까? 수다원이 되고자 하는 열의(혹은 정진, 마음, 검증)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대로 실천하면 성자가 될 수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따끈따끈하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가섭불의 가르침이 거의 다 소멸된 시기에, 담마뚠다 왕이 부처님 법을 듣고 싶어 했는데 게송 하나도 듣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왕은 “내가 그 거룩한 부처님 가르침의 한 구절을 듣기 전에는 왕으로서의 부귀영화를 누리지 않겠다.”고 말하고 온 천지를 게송을 들으려고 돌아다녔습니다. 즉 부처님의 법을 듣겠다는 강렬한 열의의 힘으로 왕의 부귀영화를 버렸습니다.
정진을 예로 들면, “이 정도로 노력하면 법을 얻는다.”는 말을 들으면 정진의 힘이 강한 사람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합니다. 미얀마에 “흰 개 숲에 못 들어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흰 개는 숲속에 호랑이, 표범이 있을까봐 겁나서 안 들어갑니다. 요새는 정진이 강한 사람이 적은 것 같습니다. 집중수행처에서는 4시간만 잔다고 하면, ‘나는 건강 때문에 안 되겠는데.’라고 생각하고 시작하지도 않고 물러납니다. 1시간 좌선, 1시간 경행, 묵언해야 한다고 하면, ‘나는 말 안 하면 답답해서 못할 것 같아.’라고 생각하고 물러납니다. 정진이 약한 사람은 법을 얻지 못합니다.
세 번째는 마음인데, 항상 마음이 내가 원하는 곳에 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삼매(집중)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풀무질하는 금세공인은 항상 마음이 풀무질하는 데 가 있습니다. 밥 먹을 때도 풀무질 생각만 합니다. 무얼 하든지 항상 삼매의 대상에 가 있어야 합니다. 이는 관찰할 때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지 않을 때를 말합니다.
네 번째는 경전 상의 용어로는 검증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지혜를 말합니다. 지혜가 예리한 분들은 이러이러하게 관찰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즉시 바르게 이해해서 잘 실천하기 때문에 어떤 것이든지 성취할 수가 있습니다.
거지의 아들과 마찬가지인 수행자는 열의도 없고, 정진도 안 하고, 마음도 기울이지 않고, 지혜도 없기 때문에, 출세간법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이는 “나는 마음대로 살아갈 거야. 불선업을 행할 거야.”라는 저열 자만입니다
26. 자만을 제거하는 방법
자만도 실제로는 ‘나’라고 생각하는 사견에서 생기기 때문에, 세 번째 대답 게송 두 번째 구절에서 유신견(사견)을 제거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신견은 분명하게 존재하는 정신과 물질을 ‘나’라고 잘못 생각하는 사견인데, 볼 때는 “보는 것은 나다, 내가 본다.”라고 생각하고, 들을 때는 “듣는 것은 나다, 내가 듣는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볼 때 생기는 유신견을 어떻게 제거하는가 하면, 볼 때 “봄, 봄”이라고 관찰을 계속해서 위빠사나 지혜가 많이 성숙되면, “볼 때 보는 눈과 보이는 형상은 아는 성품이라고는 전혀 없는 물질일 뿐이고, 눈과 형상을 조건으로 해서 생기는 안식인 단지 아는 마음은 정신일 뿐이구나. 물질과 정신밖에 없지 여기에 ‘나’라는 것은 없구나.”라고 여러분 스스로의 지혜로 알 수 있기 때문에, 볼 때 “봄”이라고 알아차려서 유신견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 지혜가 더욱 향상되면 보이는 대상이 나타났을 때 “봄”하고 관찰하면, 보이는 대상과 관찰하는 마음이 즉시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무상한 것이라고 사실대로 바르게 알고, 더욱 더 나아가면 무상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고, 나라는 것이 없다고 무상 고 무아도 사실대로 바르게 알기 때문에 유신견에의 집착이 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들릴 때 냄새 맡을 때 맛볼 때 닿을 때 생각할 때마다 “들림 냄새 맡음 맛봄 닿음 생각함”이라고 관찰하면, 관찰하지 않으면 생길 나라고 생각하는 유신견이나 그에 집착이 관찰할 때마다 부분적으로 사라집니다.
사견으로 집착하는 것뿐만 아니라 비교까지 해서 “내가 저 사람보다 나아. 내가 더 좋아. 내가 더 잘 봐. 내가 더 잘 알아.”라고 생각하는 자만도 관찰에 의해서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빠사나 수행으로는 부분적으로만 제거하는 것이고, 수다원이 되어야 유신견이 남김없이 제거됩니다. 그러나 자만은 사악처에 떨어지게 할 정도의 거친 것만 제거되고, 아라한이 되어야 완전히 제거됩니다. “사실 자만” 등의 모든 자만이 다 없어지는 것은 아라한도의 지혜가 생겨야 합니다.
27. 사리뿟따 존자의 겸손
사리뿟따 존자의 자만이 없는 모습을 일화로 설명 드리겠습니다. 한 때 사리뿟따 존자께서 부처님의 허락을 받고 유행을 떠났는데 많은 제자들이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는 소수의 비구들만 남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제자들이 떠난 것을 보고 질투가 생긴 한 비구가 부처님께 “부처님, 사리뿟따 존자가 일부러 툭 치고는 용서도 구하지 않고 떠났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내용을 이미 알고 계시지만 사실을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부처님께서는 사람을 보내 사리뿟따 존자를 불러 오라고 해서 사실인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처님, 몸 관찰 수행이 확립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청정범행을 실천하는 동료와 부딪치고 용서를 구하지 않고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의미는 ‘저는 몸 관찰이 잘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부딪치고 용서를 구하지 않고 떠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존자는 계속 말했습니다.
“비유하자면 땅은 깨끗한 것이나 대변 소변 침 고름 등의 더러운 것을 버리더라도, 전혀 불평하거나 혐오하거나 지겨워하거나 넌더리치지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저는 제 마음을 대지와 같이 두고 살아갑니다.” 이는 땅과 같이 무엇이든 잘 참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치 물이나 불이나 바람이 더러운 것이나 깨끗한 것이나 모두 불평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떠내려 보내거나 태우거나 날려 보내는 것과 같이, 저는 물이나 불이나 바람과 같이 제 마음을 두고 살아갑니다.”
“걸레는 깨끗한 것이나 더러운 것을 닦을 때 불평하거나 혐오하지 않는 것과 같이, 제 마음을 더러운 것을 닦는 걸레 같이 제 마음을 두고 살아갑니다.”
“불가촉천민의 아이들이 동냥그릇을 들고 다 헤진 옷을 입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동냥하러 마을에 들어갈 때, 스스로 하심하는 마음으로 들어가듯이, 저는 불가촉천민의 아이들과 같이 하심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부자인 브라만 계급이었습니다. 마하시 사야도께서는 특히 이 대목에서, 사리뿟따 존자가 자신을 겸손하게 불가촉천민과 같이 마음을 두고 있다고 한 것은 아주 존경할만하니, 이것을 본받아서 수행자들도 스스로의 마음을 낮추어서, 부드럽게 말하고 조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서 존자는 계속 말했습니다.
“뿔이 잘린 황소가 누구도 해치지 않고 유순하고 말을 잘 듣는 것처럼, 제 마음을 뿔이 잘린 황소와 같이 제 마음을 둡니다.”
“목욕하고 향수를 바르고 깨끗한 옷을 입고 잘 단장한 사람이, 목에 뱀의 시체를 걸면 그 시체를 아주 혐오하는 것처럼, 저는 제 몸을 아주 혐오하면서 살아갑니다.”
“구멍이 많이 뚫려 있어서 계속 기름이 새는 항아리를 그 주인이 좋아하지 않듯이, 제 몸을 잘 관찰하기 때문에 저는 제 몸을 애착하지 않습니다.” 몸 자체를 혐오하는데 어떻게 나에 대해서 자만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불경한 행동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실제로는 존자의 가사가 흩날릴 때 그 비구의 가사에 닿은 것을 핑계로, 몸이 부딪친 다음에 용서를 구하지 않았고 갔다고 존자를 모함한 것이었습니다.
존자가 허물이 없다고 사자후를 했을 때 그 비구는 마음속에 잘못했다는 후회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부처님은 나는 용서하니 존자에게 가서 용서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존자에게 가서 용서를 구하니 존자는 “혹시라도 내가 모르게 행한 잘못이 있으면 나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허물이 있는 사람이 용서해 달라고 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허물이 있어서 용서를 구하는 것은 선한 이들이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용서를 빌지 않겠다고 하는 것도 일종의 자만인데 아주 저열한 사람이 하는 행동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에게 법이 있는 지 없는 지는, 다른 사람이나 법이나 덕이 높은 사람에 대한 존중 혹은 겸손이, 그 사람에게 있는지 없는 지를 통해서도 가늠할 수 있다고 합니다. 존중이나 겸손이 있으면 수행할 때에도 소리 안 나게 하고, 얘기도 안 하고, 경행할 때에도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게 할 것입니다. 법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욱더 다른 수행자 혹은 법이나 덕이 높은 사람을 존중하고, 자기 자신을 낮춘다고 합니다.
28. 화를 내지 말아야 할 세 가지 종류의 사람
미친 사람, 어린아이, 스님에게는 화를 내지 말아야 합니다. 미친 사람은 제 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어린아이는 잘 모르기 때문에 화내면 안 됩니다. 스님은 계를 구족하지 않거나 바르지 않은 수행법을 가르치더라도 스님에게 화내면 불선업이 됩니다. 왜냐하면 첫째 가정생활을 버리고 출가한 공덕 때문에, 둘째 언젠가는 계를 잘 지키고 수행을 잘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셋째 잘못은 그 스님의 것이지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29. 지계
20110428
지계에 대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삼학(실천)이라고 하는 지계의 실천, 삼매의 실천, 지혜의 실천이 있습니다. 이것에는 단계가 있는 것이어서 청정한 계가 있어야 삼매가 있고, 청정한 삼매가 있어야 위빠사나 지혜, 도의 지혜, 과의 지혜라는 지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보시하기 전, 수행하기 전에 계를 잘 지켜야 하는 것이 불교의 전통입니다. 보시 받는 사람이 계가 청정하지 않더라도 보시하는 사람이 계가 청정하면 그 보시가 깨끗해집니다. 물론 보시 받는 분도 계가 청정하다면 그 복덕은 더 클 것입니다.
재산의 손실을 감수하고 계를 잘 지키는 것만으로도 다음 생에 왕 등의 남을 다스리는 지위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신체의 일부가 무너지더라도 계를 잘 지키면 욕계 천상에 태어나는 이익이 있습니다. 목숨을 잃어도 계를 지키면 열반을 증득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앙굿따라 니까야에 계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지옥과 축생계가 기다리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계를 지키면 사악처를 벗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부처님이나 스님 앞에서 삼귀의하고 계를 수지하는 것이 바르게 계를 지키는 것입니다. 집에서 부처님을 향해서 계를 수지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원래 오계를 잘 지키고 심지어는 담배도 안 피우는데, 굳이 절에 와서 계를 수지할 필요 있습니까?”라고 하는데, 이는 진정으로 계를 잘 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지하지 않고 계를 지키는 것은 소가 지키는 계와 똑같습니다. 소는 살생도 안 하고 도둑질도 안 하고 거짓말도 안 하고 술도 마시지 않습니다.
정식으로 수지하지 않고 계를 지키면 계를 어길 기회가 왔을 때 계를 어기기 쉽기 때문입니다. 수지해 놓으면 그럴 때에 “내가 계를 지키겠다고 다짐했는데 어떻게 계를 어기겠는가?”라고 자기의 몸과 말을 잘 다스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직 성자가 아니기 때문에 친구가 좋은 술집을 알아 놨는데 같이 가자고 하면, 아침에 술 마시지 않겠다고 계를 수지했지만 친구와의 의리 때문에 “이걸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고 ‘갈까 말까, 할까 말까’ 망설이게 됩니다. 반대로 수다원 이상의 성자는 계를 범하려는 의도조차 생기지 않으므로 오계가 자동적으로 완벽하게 지켜집니다. 여러분은 ‘자동적’을 좋아합니까, ‘할까 말까’를 좋아합니까? 자동적으로 계를 지키도록 수다원도와 과를 증득하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재가불자의 계는 어기기도 쉽지만 다시 청정하게 하기도 쉽습니다. 어겼을 때 다시 “오계를 잘 지키겠습니다.”라고 수지하는 순간 계가 청정해 집니다. 수행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청정해 진다는 이야기입니다.
30. 번뇌는 내부에서 제거하라
신속경의 대답 게송 네 번째, 전체 게송으로서는 다섯 번째 게송은 번뇌는 밖이 아닌 자기 내부에서 제거한다는 내용입니다.
대답 4. 내부를 관찰해서 번뇌들을 제거해야지 외부에서 찾아서는 안 됩니다. 내부의 번뇌들이 제거된 이에게 집착할 자아는 없습니다.
밖에서 괴로움의 소멸을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느님이나 창조주나 어떤 신이 구원해 줄 것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부처님께서 출현하셔서 그런 신을 통해서는 사성제를 바르게 알 수 없고, 자기 내부를 관찰하는 수행을 해야만 괴로움이 소멸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과 다른 신을 믿는 것은 어떻게 다르냐는 의문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은 내가 너희들을 구원해 주겠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나는 길을 가리키는 사람일 뿐이다. 계정혜라는 가르침을 내가 잘 설해 놓았다. 그것을 실천하는 노력을 해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것은 그런 거룩한 가르침을 가르쳐 주신 스승님께 의지한다는 뜻이지, 창조주로써 구원해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집중수행을 하면서 일주일 동안 계와 삼매(찰나삼매)를 실천을 하셨으며, 일부 지혜가 많이 성숙하신 분들은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는 지혜 등의 지혜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르침에 잘 귀의하는 것이고, 스님의 법문을 잘 듣고 그대로 실천하신 분들은 승가에 잘 귀의하신 것입니다.
번뇌의 소멸은 자신의 내부에서 구해야 합니다. 법은 가까이 있지만 얻기는 쉽지 않습니다. 법은 가깝지만 멉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면 열반을 얻지만 관찰하지 않기 때문에 멉니다. 멀지만 가까운 것이 있습니다. 묘지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죠? 내일 죽을 수도 있습니다. 매일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이 묘지입니다. 가고는 있지만 먼 것이 열반이고, 안 가도 가까이 다가오는 것은 묘지입니다.
경전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열반은 내부에 있습니다. 내부의 물질과 정신을 관찰해서 열반을 증득하기 때문에 내부에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아비담마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물질과 정신이 완전히 다 소멸된 성품이기 때문에 열반은 외부법입니다.
네 번째 대답 게송은 “다른 데서 찾지 말고, 안에서 내부의 물질 정신을 관찰해서 번뇌들을 제거하도록 노력해라. 다른 것(사념처 외의 것)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신의 내부에서 찾아야 할까요? 몸, 느낌, 마음, 법 중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대상을 알아차려서 번뇌들을 제거하면 됩니다. 달리 얘기하면 육문에서 나타나는 대상 혹은 물질적인 현상, 정신적인 현상을 잘 관찰해서 제거해야 합니다.
31. 아라한은 바다와 같다
마지막인 다섯 번째 대답 게송에서, 관찰을 잘 해서 모든 번뇌가 사라진 아라한의 모습은 모든 동요가 사라진 것이 마치 바다와 같다고 설하셨습니다.
대답 5. 바다의 한가운데가 고요하듯 번뇌가 사라진 이도 고요합니다. 비구는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갈애 등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큰 바다는 윗부분, 가운데 부분, 아래 부분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아래 부분은 큰 물고기 때문에 계속 움직이고, 윗부분은 바람 때문에 계속 움직이지만, 한 가운데는 아주 고요합니다. 또 달리 설명하면 해변은 계속 파도 때문에 동요가 심하지만 바다의 한 가운데는 고요합니다. 바다의 한 가운데는 동요가 없이 아주 고요한 것과 같이, 아라한인 비구는 번뇌로 이야기하면 10가지, 사량확산으로 이야기하면 3가지가 동요가 없이 아주 고요합니다.
동요한다는 것은 갈애 등의 번뇌를 이야기합니다. 바다에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일렁이는 것처럼, 여섯 가지 대상에 대해서 갈애 등의 번뇌가 일어나는 것처럼 마음이 동요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와 같이 아라한이 되기 위해서는 동요를 위빠사나 관찰로 잘 다스려서 고요하도록 해야 합니다. 방법은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볼 때 봄, 봄이라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단지 그 성품들의 딱딱함 팽팽함 부드러움 등의 고유 특성만 알게 됩니다. 삼매의 힘이 강해지면 위빠사나 지혜가 생겨서 물질과 정신뿐이라고 알게 되고, 더욱 더 열심히 관찰하고 관찰하기를 계속하면, 사라지기 때문에 무상한 것이며, 괴로운 것이며,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그 자신의 성품대로 되는 무아인 것이라고 알게 됩니다. 즉 무상 고 무아인 공통 특성을 사실대로 바르게 알게 됩니다.
이렇게 지혜가 차례차례 성숙하고, 성숙하고, 성숙해서 나중에는 모든 물질과 정신이 소멸한 도의 지혜와 과의 지혜가 생깁니다. 이런 방법대로 위빠사나 지혜가 성숙되고 도의 지혜가 계속 향상되어 아라한도의 지혜가 생겼을 때 여러분 내부의 존재연속에 잠재되어 있는 모든 번뇌가 소멸되어 버립니다. 이런 아라한에게는 육문에서 아무리 좋고 나쁜 대상이 나타나더라도 동요가 없이 고요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관찰하지 못하면 탐욕 성냄 어리석음 사견 자만이 늘어나기만 합니다. 이런 것들이 늘어나면 도과에 이를 수 없고 좋고 나쁜 대상을 만나면 마음이 동요할 것입니다. 동요하지 않게 하려면 항상 사띠를 실천(사다 사또 식케)해야 한다고 부처님께서 대답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실천하면 10가지 번뇌가 사라져서 아라한이 될 것입니다. 10가지 번뇌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 자만 사견 의심 해태 들뜸 부끄러워하지 않음 두려워하지 않음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10가지 번뇌가 다 없어졌습니까, 남아 있습니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다섯 개의 대답 게송까지 설명이 끝났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많이 있지만 이번 집중수행에서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첨부
1. 신속경 - 한글 … 77
2. 신속경 - 빨리어 … 81
3. 신속경 - 영어 … 84
첨부 1. 신속경 - 한글
신속경
1. [질문] “태양의 후예이신 대선인께 질문 드립니다. 비구가 한거와 떠남과 적정을 어떻게 알고 보아야 모든 번뇌가 사라집니까?”
2. [세존] “사량확산의 뿌리와 ‘나’라는 자만을, 숙고와 위빠사나 지혜와, 도와 과와 열반을 통해서 적절하게 알고서, 모두 제거해야 합니다.
자신의 존재상속에 조건이 형성되면 생길 수 있는 모든 갈애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항상 사띠를 실천해야 합니다.
3. 안으로 뿐만 아니라 밖으로 어떠한 현상이든 잘 알 수 있더라도, 그러나 그것을 고집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사람에게 그것은 소멸이라 불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4. 어떤 것 때문에 우월하다든가 열등하다든가 동등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 가지 형태로 영향을 받더라도 자기를 내세우는 허구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5. 내부를 관찰해서 번뇌들을 제거해야지 외부에서 찾아서는 안 됩니다. 내부의 번뇌들이 제거된 이에게 집착할 자아는 없습니다.
6. 바다의 한가운데가 고요하듯 번뇌가 사라진 이도 고요합니다. 비구는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갈애 등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7. [질문] “눈을 갖춘 님이여, 몸소 체험하신 재난을 극복할 수 있는 가르침을 설하셨습니다. 그대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른 길을 일러주시고, 계율의 규정들이나 삼매에 대하여도 말씀해 주십시오.”
8. [세존] “눈으로 탐내지 말아야 하고, 저속한 이야기에서 귀를 멀리 해야 하고, 맛에 탐착하지 말아야 하고, 또한 세상에 있는 어떤 것이라도 내 것이라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9. 괴로운 일을 만나 고통을 겪을지라도, 비구는 어떠한 경우이든 비탄에 빠져서는 안 되고, 존재에 탐착해서도 안 되고, 두려운 것을 만났을 때도 전율해서는 안 됩니다.
10. 음식이나 음료나 먹을 만한 것이나 옷을 얻더라도 쌓아두어서는 안 되며, 그것들을 얻을 수 없다 해서 두려워해서도 안 됩니다.
11. 선정에 드는 자는 방황해서는 안 되며, 나쁜 일을 삼가고 방일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조용히 앉을 자리와 누울 자리가 마련된 곳에서 비구는 지내야 합니다.
12. 잠을 많이 자서는 안 됩니다. 부지런하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나태와 환상과 웃음과 유희와 성적교섭과 거기에 필요한 장식물들도 함께 버려야 합니다.
13. 주술적인 주문이나 해몽이나 또한 징조나 점성술에 종사해서는 안 됩니다. 나의 제자는 새나 짐승의 소리로 점을 치거나 임신을 시키는 술수나 의술을 행해서도 안 됩니다.
14. 비구는 비난을 받더라도 두려워 말고, 칭찬을 받더라도 우쭐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탐욕과 더불어 인색함과 성냄과 중상을 제거해야 합니다.
15. 비구는 사고파는 일을 하지 말고, 어떠한 경우에도 비난받을 만한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마을의 일에 휩쓸려서도 안 되며, 이익을 동기로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16. 또한 비구는 허풍을 떨어서는 안 되며, 동기를 숨기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뻔뻔스런 행위를 배워서도 안 되며, 불화를 가져올 이야기를 해서도 안 됩니다.
17. 거짓 속에서 방황하지 말아야 하고, 알면서 부정한 일들을 저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생활과 지혜와 계행과 맹세를 자랑하여 다른 사람을 멸시해서도 안 됩니다.
18. 수행자들이나 일반 사람들한테서 많은 비난의 말을 듣고 괴롭더라도, 거친 말로 대꾸해서는 안 됩니다. 참사람들은 보복을 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9. 비구는 이러한 가르침을 잘 알아 잘 분석하며, 항상 사띠를 확립하고 배워야 합니다.
소멸이 평안임을 알고, 고따마의 가르침에 방일하지 말아야 합니다.
20. 그는 참으로 패한 일이 없는 승리자로서 전해들은 것이 아니고 스스로 깨우친 진리를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세존의 가르침에 방일하지 말고, 항상 사띠를 확립하여 그 가르침을 따라 배워야 합니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신속경이 끝났다. -
첨부 2. 신속경 - 빨리어
Tuvaṭakasuttaṁ
1. "pucchāmi taṁ ādiccabandhu, vivekaṁ santi- padañca mahesi; kathaṁ disvā nibbāti bhikkhu, anupādiyāno lokasmiṁ kiñci".
2. "mūlaṁ papañcasaṅkhāya, (iti bhagavā) mantā asmīti sabbamuparundhe; yā kāci taṇhā ajjhattaṁ, tāsaṁ vinayā sadā sato sikkhe.
3. "yaṁ kiñci dhammamabhijaññā, ajjhattaṁ athavāpi bahiddhā; na tena thāmaṁ kubbetha, na hi sā nibbuti sataṁ vuttā.
4. "seyyo na tena maññeyya, nīceyyo athavāpi sarikkho; phuṭṭho anekarūpehi, nātumānaṁ vikappayaṁ tiṭṭhe.
5. "ajjhattamevupasame, na aññato bhikkhu santimeseyya; ajjhattaṁ upasantassa, natthi attā kuto nirattā vā.
6. "majjhe yathā samuddassa, ūmi no jāyatī ṭhito hoti; evaṁ ṭhito anejassa, ussadaṁ bhikkhu na kareyya kuhiñci".
7. "akittayī vivaṭacakkhu, sakkhidhammaṁ parissayavinayaṁ; paṭipadaṁ vadehi bhaddante, pātimokkhaṁ athavāpi samādhiṁ".
8. "cakkhūhi neva lolassa, gāmakathāya āvaraye sotaṁ; rase ca nānugijjheyya, na ca mamāyetha kiñci lokasmiṁ.
9. "phassena yadā phuṭṭhassa, paridevaṁ bhikkhu na kareyya kuhiñcñcci; bhavañca nābhijappeyya, bheravesu ca na sampavedheyya.
10. "annānamatho pānānaṁ, khādanīyānaṁ athopi vatthānaṁ; laddhā na sannidhiṁ kayirā, na ca parittase tāni alabhamāno.
11. "jhāyī na pādalolassa, virame kukkuccā nappamajjeyya; athāsanesu sayanesu, appasaddesu bhikkhu vihareyya.
12. "niddaṁ na bahulīkareyya, jāgariyaṁ bhajeyya ātāpī; tandiṁ māyaṁ hassaṁ khiḍḍaṁ, methunaṁ vippajahe savibhūsaṁ.
13. "āthabbaṇaṁ supinaṁ lakkhaṇaṁ, no vidahe athopi nakkhattaṁ; virutañca gabbhakaraṇaṁ, tikicchaṁ māmako na seveyya.
14. "nindāya nappavedheyya, na uṇṇameyya pasaṁsito bhikkhu; lobhaṁ saha macchariyena, kodhaṁ pesuṇiyañca panudeyya.
15. "kayavikkaye na tiṭṭheyya, upavādaṁ bhikkhu na kareyya kuhiñci; gāme ca nābhisajjeyya, lābhakamyā janaṁ na lapayeyya.
16. "na ca katthitā siyā bhikkhu, na ca vācaṁ payuttaṁ bhāseyya; pāgabbhiyaṁ na sikkheyya, kathaṁ viggāhikaṁ na kathayeyya.
17. "mosavajje na nīyetha, sampajāno saṭhāni na kayirā; atha jīvitena paññāya, sīlabbatena nāññamatimaññe.
18. "sutvā rusito bahuṁ vācaṁ, samaṇānaṁ vā puthujanānaṁ; pharusena ne na paṭivajjā, na hi santo paṭisenikaronti.
19. "etañca dhammamaññāya, vicinaṁ bhikkhu sadā sato sikkhe; santīti nibbutiṁ ñatvā, sāsane gotamassa na pamajjeyya.
20. "abhibhū hi so anabhibhūto, sakkhi dhammam anītihamadassī; tasmā hi tassa bhagavato sāsane, appamatto sadā namassamanusikkhe"ti.
tuvaṭakasuttaṁ cuddasamaṁ niṭṭhitaṁ;
첨부 3. 신속경 – 영어
Tuvataka Sutta: Quickly
1. “I ask the kinsman of the Sun, the great seer, about seclusion & the state of peace. Seeing in what way is a monk unbound, clinging to nothing in the world?”
2. "He should put an entire stop to the root of objectification-classifications: ‘I am the thinker.’ He should train, always mindful, to subdue any craving inside him.
3. Whatever truth he may know, within or without, he shouldn't get entrenched in connection with it, for that isn't called Unbinding by the good.
4. He shouldn't, because of it, think himself better, lower, or equal. Touched by contact in various ways, he shouldn't keep conjuring self.
5. Stilled right within, a monk shouldn't seek peace from another from anything else. For one stilled right within, there's nothing embraced, so how rejected?
6. As in the middle of the sea it is still, with no waves upwelling, so the monk — unperturbed, still —should not swell himself anywhere."
7. "He whose eyes are open has described the Dhamma he's witnessed, subduing danger. Now tell us, sir, the practice: the code of discipline & concentration."
8. "One shouldn't be careless with his eyes, should close his ears to village-talk, shouldn't hunger for flavors, or view anything in the world as mine. 9. When touched by contac the shouldn't lament, shouldn't covet anywhere any states of becoming, or tremble at terrors.
10. When gaining food & drink, staples & cloth, he should not make a hoard. Nor should he be upset when receiving no gains.
11. Absorbed, not foot-loose, he should refrain from restlessness, shouldn't be heedless, should live in a noise-less abode.
12. Not making much of sleep, ardent, given to wakefulness, he should abandon sloth, deception, laughter, sports, fornication, & all that goes with it; 13. should not practice charms, interpret physical marks, dreams, the stars, animal cries; should not be devoted to practicing medicine or inducing fertility.
14. A monk shouldn't tremble at blame or grow haughty with praise; 15. should thrust aside selfishness, greed, divisive speech, anger; shouldn't buy or sell or revile anyone anywhere; shouldn't linger in villages, or flatter people in hopes of gains.
16. A monk shouldn't boast or speak with ulterior motive, shouldn't train in insolence or speak quarrelsome words; 17. shouldn't engage in deception or knowingly cheat; shouldn't despise others for their life, discernment, precepts, or practices.
18. Provoked with many words from contemplatives or ordinary people, he shouldn't respond harshly, for those who retaliate aren't calm.
19. Knowing this teaching, a monk inquiring should always train in it mindfully.
Knowing Unbinding as peace,he shouldn't be heedless of Gotama's message — 20. for he, the Conqueror unconquered, witnessed the Dhamma, not by hearsay, but directly, himself.
So, heedful, you should always train in line with that Blessed One's message," the Blessed One s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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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탁(향원) 편집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화공기술사. 삼성 엔지니어링(주)의 프로젝트 매니저를 거쳐 한국가스안전공사 연구소장 역임. 수덕사 부설 무불선학대학원 수료.
인터넷 사이트 : http://cafe.daum.net/satisamadhi
편저 :
"빠알리어-한국어-영어 색인" (도서출판 대윤, 2021)
역서 :
"큰 스승의 가르침" (아신 자띨라 사야도 법문, 행복한 숲, 2005)
"부처의 길, 팔정도" (구나라타나 스님 지음, 아름드리미디어, 2014)
"부처님의 제자들2" (경서원, 010-3245-7121, 2011)
"마하시 스님의 칠청정을 통한 지혜의 향상" (경서원, 010-3245-7121, 2009)
"위빠사나 수행과 24조건" [니나 반 고르콤 지음, 보리수선원 (02-517-2841), 2015, ridibook.com에서 전자책 구입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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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경 법문
장소 : 천안 호두마을 집중수행
날자 : 2011년 4월 23일-28일
법 문 : 우 또다나 사야도(Ven. Sodhana)
통 역 : 비구 일창 담마간다
한국마하시선원
주소 :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178-18
전화 : 031-474-2841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mahasi
출판된 책
『마하사띠빳타나숫따 대역』, 마하시 사야도 지음, 비구 일창 담마간다 옮김, 도서출판 불방일, 2016.
『법회의식집』, 한국 마하시 선원, 2014.
『수행독송집』, 한국 마하시 선원, 2014.
『위빳사나 백문백답』, 비구 일창 담마간다 번역, 이솔출판, 2014.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1, 2』, 비구 일창 담마간다 번역, 이솔출판, 2013.
『부처님을 만나다』, 일창 스님, 이솔출판, 2012.
『빳타나와 다라나 빠릿따』, 한국 마하시 선원, 2010.
2016년 6월 25일
첫댓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디. 참으로 긴경을 올려주셨군요.
_()_ 사두사두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