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류사에서 그 예가 없는 수기를 쓰기 시작하기에 앞서서
사람들의 주변에 흔히 있는 이야기를 두 가지 제시하려고 한다.
기가르트 ㅡ 이것이 첫번째 이야기에 나오는 사나이의 이름인데, 기가르트는 17**년의 어느 날,
암스테르담의 시장안에서 몹시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그는 시장에서 일하는 중개인이었는데, 시장은 눈코 뜰 사이없이 바쁜 것이니,
시끄러운 광경쯤은 그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시장 안에서 큰 소리로 외치며 손짓으로 장터 특유의 신호를 보내어 다른 중개인들과 장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중개인들이 삥 둘러 서 있었는데,
그와 바로 정면에 위치하고 있는 중개인이 올린 손짓에 그도 손짓으로 응답하려고 했을 바로 그 때였다.
상대방 중개인의 손은 물론 시장 전체의 소음도 그의 귀에 들리지 않게 되어 버렸다.
그의 놀라움은 어떠 했겠는가.
그러나 그 놀라움조차도 이윽고 그가 본 광경에 비한다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시장 전체가 사라져 버린 그의 시야에는 다음과 같은 광경이 비쳤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 그렇습죠, 그것은 새빨간 색깔이었습니다.
그것이 내 눈앞에 가득히 퍼져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 새빨간 놈이 . . . . . "
그는 분통이 터져 못견디겠다는 듯,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면서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기가르트는 새빨간 저쪽에 바다와 같은 것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윽고 그 바다에는 지금 막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으려고 하는 난파선의 모습이 보이고,
그 배에는 몇 만 명이나 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버둥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 이상하기 짝이 없는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몇 만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얼굴이 없는 듯하여,
나는 그들이 어떤 얼굴이었는지 조금도 기억에 없습니다.
다만 우리 집 자식놈, 아직 일곱살 짜리입니다만, 이 놈의 얼굴만은 뚜렷이 보였죠.
그리고 그 얼굴은 슬픈 듯이 나를 바라보면서, 구원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 . . ."
기가르트의 장남이 바닷물에 익사한 것은 그가 시장에서 이 환영 ㅡㅡㅡ을 본 것과 꼭 같은 시간이었다.
그러면 또 하나의 이야기를 하기로 하자,
이 이야기는 영국의 한 농촌에서 한 10년 쯤 전에 있었던 사건이다.
아직도 새파란 한 젊은이가 죽었다.
부모는 물론 마을 사람들도 아직도 젊은 나이로 저승에 간 것을 불쌍히 여겼다.
그 젊은이의 시체는 이틀 후에 마을 묘지에 묻혔다.
그런데 그로부터 3일이 지난 후 그 젊은이의 어머니는 남편과 마을 사람들에게 놀라운 사실을 미친듯이
외치는 것이었다.
" 내 아들은 살아 있다. 지금 내 아들은 되살아나려고 하고 있다.
빨리 무덤을 파서 구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남편이나 마을 사람들도 아들의 죽음을 슬퍼한 나머지 어머니가 미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어머니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위로해 주기 위하여 무덤을 파기로 했다.
그러나 무덤을 파헤쳤을 때, 사람들은 너무나도 놀라 몸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무덤 그 밑바닥에서 본 것은 그 어머니가 말한대로 지금 막 되살아나고 있는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그 젊은이의 모습에는 살아있는 인간의 의식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죽음의 수렁 어둠속에서 그가 차차 소생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그 젊은이의 얼굴에 감도는
희미한 생기만으로 분명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가장 기이하게 생각하는 것은 틀림없이 다음과 같은 점일 것이다.
ㅡㅡ 그 부인은 어떻게 해서 자기 아들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까. ㅡㅡㅡ
지금 내가 기록한 두 가지 이야기는 흔히 있는 예이므로 사람들도 이런 종류의 이야기의 한 둘 쯤은
자기 자신이 틀림없이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이 갖고 있는 참다운 뜻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알고 있는 한 아직 인류의 역사상 한 사람도 없다고 나는 잘라 말할 수 있다.
지금 내가 든 예는 어느 것이나 인간이 죽은 후에 가는 세계와 이 세상이라고 하는 두 세계가 접촉하는
경계선 위에서 일어난 사건이란 것이다.
나는 이러한 사건들이 갖는 참다운 뜻을 설명함과 동시에 내가 어떻게 해서
영(靈)의 세계, 사후(死後)의 세계에 자유롭게 촐입해 왔는가 라고 하는 사람들의 의문에 답하기로 하겠다.
기가르트가 어떻게 해서 새빨간 바다의 난파선에 매어 달려서 그의 구조를 애원하는 아들의 모습을 갑자기
보게 되었을까?
영국의 한 촌락에 사는 어머니는 어떤 방법으로 죽음의 수렁에서 아들이 소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이 의문에 대답하기 전에 조금 길을 돌아가기로 하겠다.
아직 영계(靈界),
죽은 후의 세계의 일에 대해서 어두운 사람들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영계에서는 영들이 상념(想念)의 교류라고 하는 것을 자유자재로 행하고 있다.
상념의 교류라고 하는 것은, 어떤 영(靈)이 다른 영(靈)에 대해서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일,
느끼고 있는 것 등을 알리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두 영(靈)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또 벽이나 칸막이가 있건 없건 간에, 그런 것에는 아무런 장애도 받지 않고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다만 이것은 물론 영(靈)과 영(靈)끼리가 아니면 안된다.
영(靈)과 육체를 갖고 있는 사람과의 사이에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드문 일이지만 영(靈)이나 영계의 존재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죽음의 통지를 받은 기가르트나 영국의 한 마을의 어머니의 경우는 무엇일까?
이 의문에 대해서는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리라.
" 기가르트나 영국의 한 마을의 어머니의 경우,
그리고 또 사람들이 죽음의 통지를 받을 경우는 모두 다 그 죽어가고 있는 사자(死者)의 영(靈)이
상대방 인간에게 상념의 교류에 의해서 알려 주는 것이다." 라고,
여기에서 사람들에게는 큰 의문이 남게 된다.
그것은 영(靈)끼리의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상념의 교류가 어떻게 해서 영(靈)과 인간 사이에서
행해질 수 있단 말인가?
라고 하는 것이리라.
이 의문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 기가르트나 영국의 부인은 사실은 죽어 있었던 것이다.
죽어서 잠시 영(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 . . "
기가르트도 영국의 부인도 사실을 말하자면 육체를 갖고 있는 인간이 아니라,
잠시 죽어서 영(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기가르트가 난파선에 매달린 아들의 모습을 보았거나,
부인이 아들이 되살아나는 것을 안 순간에는 이 두 사람은 모두 다 죽어서 영(靈)이 되어 있었기에,
같은 영(靈)인 아들의 영(靈)으로부터의 연락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아들의 영(靈)은 가장 친숙한 영(靈)인 기가르트나 어머니의 육체에 살고 있는 영(靈)에 대해서
상념의 교류를 원하여,
기가르트나 부인은 그 순간 영혼의 세계에 들어 감으로써,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순간적인 죽음을 경험했던 것이다.
나는 좀 더 다른 것을 기술하고 나서 나의
' 죽음의 기술'과 ' 죽는 기술' 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ㅡㅡㅡ 어쩐지 등 뒤에 사람의 기척을 느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나를 지켜보는 눈이 있는 것 같아서
뒤를 돌아 보았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그 부분의 공간에 평소에 보던 공간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는 것같이 느껴져서 잠시
그 공간을 눈여겨 바라보았다. ㅡㅡㅡ
이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
이 경험은 너무나도 희미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주의나 공포감을 불러 일으키는 일은 없으나,
이것은, 당신의 배후에 영계나, 영(靈)이,
즉 죽은 후의 세계가 암흑처럼 흔적도 없이 다가서는 모습을 엿보이는 순간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느낀 그 순간에 당신도 기가르트나 앞에서 말한 부인과 같이
순간적으로 죽어서 영계의 문 안을 잠시 엿 본 것이다.
영계(靈界)가 이 지상의 하늘위를 날아다니는 새의 그림자처럼 한 순간 잠깐 드리우는 그림자는
너무나도 엷다,
그러나 그림자가 아무리 엷다 하더라도, 그곳에 하늘을 나는 새가 실재하고 있듯이,
영계(靈界)는 이 세상의 배후에 빈틈없이 붙어서 실재하고 있는 것이다.
영계와 현세(現世)는 도저히 떼어 낼 수 없이 되어 있는 동전의 앞뒤와 같은 것이다.
나는 자신의 육체를 자기 의지로서 죽음의 상태에 이르게 함으로써,
영(靈)의 세계로 들어가 영계의 영(靈)들에 관한 일들을 알았다.
마치 기가르트나 영국의 한 부인이 겪은 한 순간처럼,
나는 이 일을 지금은
' 죽음의 기술'
' 죽는 기술' 이라고만 말해 두겠다.
나의 ' 죽음의 기술, '죽은 상태' 가 어떤 것인가는
이 수기를 읽어 나가면 모든 사람들에게도 차차 알 수 있게 되리라고 믿는다.
임마누엘 스웨덴 보르그 저
"나는 영계를 보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