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배우수업일지_5회차_2023.2.20.
1. 발성 훈련
<기미독립선언서>를 10가지 다른 방식으로 소리 내어 읽었다. 벽에 자연스럽게 등을 붙이고, 머리를 들고, 턱은 잡아당긴다. 소리는, 목을 사용하지 말고, 아래로 보낸다는 생각으로 낸다. 한 번 읽는 데 거의 4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정말 제대로 하면 땀이 날 것이라 하셨는데, 힘이 빠졌고, 허기졌다. 그렇게 연습을 하면할수록 발성도 발음도 확연하게 달라질 것이라 하셨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큰 공간을 품은 깊은 소리 같이 들린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진동과 울림이 크다. 마이크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소리를 높이시는 것도 아닌데, 전체를 대상으로 설명하실 때, 개인 피드백을 주실 때, 언제나 선생님의 목소리는 동일하게 참 잘 들린다. 목소리가 트였다는 게 이런 건가 싶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선생님의 목소리가 잘 들리고, 잘 전달되는 이유가 비단 성량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다른 key는 말의 속도, 어구 사이의 간격과 관련이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목으로 소리를 내지 말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하셨다. 목 위로 올리는 소리가 아닌, 배 아래쪽으로 내리는 소리. 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목을 사용해서 소리를 낸다는 건 알지만, 목을 사용하지 않고 소리를 낸다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건지 나는 모른다. 나는 목이 금세 쉰다. 직업상 말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목을 너무 혹사해서 야기되는 여러 문제 상황과 자주 직면해야 했던 나에게 올바른 발성법은 늘 중요한 화두였다. 사적인 대화를 나눌 때조차 목을 누르면서 소리를 내는 습관 때문에 목이 경직되고 아파서 대화를 계속 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작년에 걸린 코로나는 다른 곳이 아닌 내 후두에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심한 공격을 퍼부었고, 당연히 후유증조차 후두에 남기고 갔다. 그 후론 평소에도 목 상태가 안 좋고, 목이 쉽게 피로해져서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다. 가장 당황스런 상황은, 말하는 중간에 목이 순간적으로 막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경우이다.
아니나 다를까, 독립선언문 낭독 중, 다섯 번째 방식으로 발성을 시도하는데 목이 갑자기 막히는 상황 발생,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만약 다음 주 독백 발표 때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갑자기 걱정이 되면서 위축되었다. 발성에 관한 문제. 해결책이 절실하게 필요한 문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훈련의 대상이라는 것조차 무시해왔다는 사실이 참 안타까웠다. 그렇기에 올바른 발성이란, 내가 평생 가도 넘지 못할 장애물로 남게 되는 건 아닐지. 순간 밀려든 절망감의 크기란...
2. 특명이다! Unlearn, unlearn, and unlearn!
계속 되는 독백 연습과 훈련. 난 이 시간이 정말 좋다. 한 명 한 명이 무대에 나와 펼치는 단막극을 1열에서 직관하는 듯한 호사를 누린다. 선생님께서 연기 도중 던지시는 질문, 배우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갖는 멈춤의 순간, 선생님의 맞춤 피드백, 이에 대한 배우의 반응, 그렇게 발생하는 적용과 변화. 놀라운 진화. 이러한 일련의 과정 자체가 마치 한 편의 연극처럼 펼쳐진다.
선생님께서 오늘의 훈련 과정 중 반복적으로 내리신 특명: “이제까지 연기에 대해 배웠던 것, 알고 있다고 생각해 온 모든 것을 버리라!” “무대 위에서 배우는 이렇게 해야 한다”에서 ‘이렇게’에 해당하는 모든 것, 습관처럼 나오는 무대용 행동과 어투를 모두 잊으라고 하셨다. 이 명령은 한 마디로 (의미상 이에 상응하는 한국어 단어가 없어 1:1 직역이 다소 불가능한 단어인) “unlearn!”
‘unlearn’은 잊다 (forget) 없애다 (delete), 비우다 (empty) 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내가 이전에 의도적, 의지적으로 배워서 (learn) 이미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체화되어 있는 것이 있다. ‘unlearn’은 나를, 그것들을 배우기 이전 상태의 나로 되돌리는 행위를 가리킨다. 여기에서 문제는, 이전 상태 나로의 복귀라는 것이 결코 만만치가 않다는 데 있다. 예컨데, 여든까지 가는 세 살 적 버릇을 없애거나 뜯어고치는 데 기울여야 할 의지와 노력 그리고 인내를 필요로 한다.
참가자 모두들 연기에 진심이며, 열심이다. 선생님께서 늘 격려하고 칭찬하시는 부분이다. 그만큼 우리들에게는 그간 연기에 대해 배워서 알고 있는 것, 익숙해진 것, 특정한 동작과 어투, 발성법 등이 체화되어 있을 것이다. ‘연기는 이러이러해야 한다’에 대한 나름의 생각도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이들 모두가 우리가 unlearn 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씀하시는 거다. 우리는 unlearn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여기에 모였다.
3. 김진근 마스터의 오늘의 특명 (혹은 어록)
* 극적인 동작, 극적인 말투를 사용해 연기하지 마라. 뭔가 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불편하고 어색해지는 것이다.
* 코스쨔가 되려하지 말고, 코스쨔가 처한 극 중 상황으로 들어가서 코스쨔가 내가 되는 것이다. 대본에 얽매이지 않고, 그 상황에 빠지는 것, 그 상황 안에 머무는 것이 더 중요하다.
* 모든 상황을 연기에 활용하라.
- 배우가 독백을 연기하기 전에 “되게 떨리는데요”라고 말했을 때, 선생님께서는 예기치 않게 벌어지는 모든 상황과 감정조차 연기에 활용하라며 하신 말씀. 예를 들어, 객석에서 웃음소리가 났다면, 순발력을 발휘해 그 상황을 연기에 활용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 대사가 급하다, 왜 급할까? 그 이유를 찾아보라.
* 장애물을 설정하고 그 장애물에 집중하라. 이 인물이 왜 순간에 이 말을 하는가를 생각하며 말하라. 대사가 빨라지는 것을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 이미 외운 대사이다. 익숙하기 때문에 습관처럼 말할 수 있다. 매번 새롭게 인식하면서 천천히 말하라. 그렇지 않으면, 반응으로써가 아닌 말과 행동이 급하게 나온다. 상대방보다 먼저 가는 대사와 행동은 인위적으로 보여 어색하다. 부자연스럽다.
* 인물 분석을 위한 다섯 가지 질문을 계속 되내어라. 나는 왜 이 말을 할까? 나의 대상은 누구인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의 장애물은 무엇인가? 어떻게 이 장애물을 극복할 것이며, 이 장애물을 극복하는 것에 얼마나 나는 얼마나 간절한가? 한 대사 한 대사가 내 것이 되도록 하려면 계속 질문하고, 계속 답해야 한다.
* 뭔가를 해야겠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라. 상대방을 보고, 감각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감각이 왔을 때 느낌을 믿고 반응하라.
- 한 참가자가 “대본이 생각이 안 나요”라는 말에 선생님께서는 “대사를 생각하며 하니까 안 나온다”고 하시며 대사는 반응이어야 한다고 하셨다.
* 낭독극 vs. 연기
“그건 낭독극이지 연기가 아니다.” 목소리나 톤으로 하는 연기는 낭독극이다. 연기는 낭독극이 아니다. 그래서 드라이리딩 훈련이 중요하고, 필요하다.
* Dry Reading (드라이 리딩)
- 드라이 리딩은 감정을 최대한 빼고, 본질에 닿고자 하는 훈련이다. 대본을 손으로 펼쳐들고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동작을 하지 않기 위해서다. 대사를 할 때는, 말 할 문장을 확인하고, 대본에서 눈을 떼고 상대방의 눈을 보고 천천히 말한다.
- 오로지 눈으로만 이야기 하라. 불필요한 안면 근육을 사용하면서 표정을 지으려고 하지 말고, 얼굴을 편하게 하고, 진실함과 절실함만을 가지고 하라.
- 감정 없이 말을 툭툭 던져라. 드라이 리딩 시 감정을 넣으면 overact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지난 주 나의 경우다. 라넵스까야의 상황에 채 들어가지도 전에, 내 설움에 막혀서 급기야 먹혀버렸다.)
-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를 버리고, ‘왜 이 말을 하는가’에 집중해야 한다.
- 대사가 생각나지 않으면 다시 대본으로 돌아가서 대사를 확인하고 다시 본질에 집중한다.
- 대사를 말할 때 대사로 분위기를 만들려고 하지마라. (대사로 분위기를 만든다는 말씀이 뭔지 또 잘 모르겠다. 또 여쭤보기로 한다.)
* 그냥 외운 독백 vs. 싸워서 얻은 독백
“끝없는 인내심의 싸움”이라고 하신 드라이 리딩 훈련을 통해, 인물과 상황에 대한 계속되는 질문과 대답을 통해 얻은 내 것이 된 독백이어야 한다. 그냥 외운 독백과 싸워서 얻은 독백의 차이를 알게 될 것이다.
* "해보자구요, 다 할 수 있는 거니까."
- 네! 해보겠습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우리 모두 할 수 있다. 잘 할 수 있다.
첫댓글 unlearn, unlearn, unleaen!! 발성은 저도 어느 순간 온 몸이 아닌 목만 쓰고 있다는 게 캐치가 돼서 역시 하루 아침에 완성될 영역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치만 해보자고요! 할 수 있는 거니까요!!!
네 ~~ 발성은 제 인생 최대 숙제 중 하나입니다. 소통의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어 더 그런 것 같아요. 늘 응원과 격려 고마워요. 당당한 메드벤체코 오늘도 기대할게요.
정말 상세하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호 배우님 연기 보면서 느낀 점이 많았는데 여기에 다 쓰지 못 했습니다. 꼬스쨔 역 뿐만아니라, 즉흥극 앱 개발팀원 역 연기에 대해서도요. (개인 일지에 남아 있어요.) 곧 만나면 이야기 나누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