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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은어/ 권달웅
은하수 추천 0 조회 59 17.08.11 09:2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은어/ 권달웅

 

나 여기 떠나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다면

청량산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맑은 물 되리

어머니 쪽진 비녀만한 은어가 되리

나 여기 떠나 자라난 곳으로 돌아간다면

달밤에 올 고운 안동포 짜는 어머니 바디소리 만나리

저 아득한 바다로 항해하는 수만 척의 배처럼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거슬러 올라가

가슴에 품었던 반짝이는 물 만나리

꿈처럼 이슬 머금고 핀 들꽃 만나리

나 여기 떠나 저 투명한 낙동강으로 돌아간다면

원앙이 새끼쳐나가는 저 먼 비나리 지나

명경처럼 맑은 명호천까지 거슬러 올라가

강바닥 속 은모래처럼 환히 비치는 유년의 내 얼굴 들여다보리

은어처럼 내 몸에서 나는 수박향기 맡으리

 

- 시집 염소 똥은 고요하다(동학사, 2015)

......................................................

 

 권달웅 시인은 1944년 경북 봉화 출생으로 유년시절 낙동강 기슭 산골에서 성장했다. 안동과 인접한 곳이라 어머니는 낮엔 밭 매고 밤엔 안동포를 짰다. 시인의 먼 기억 속 어머니는 쪽진 비녀가 말해주듯 늘 단아한 모습이었다. 올 고운 안동포를 짜는 바디소리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돌아가고 싶은 회귀성을 부추긴다. 낙동강 상류의 맑은 ‘명호천’에서 반짝이며 유영하는 ‘은어’를 떠올릴 때면 이미 마음은 그 순수한 유년시절로 가닿아 있다.


 銀魚는 1급수에서만 사는 민물고기이며 봉화가 대표적인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섬진강 곡성 부근 정도에서 조금 잡힌다. 은어는 부화 직후 바다로 내려가 살다 다음해 5월경부터 자기가 태어난 하천으로 거슬러 올라와 9월 산란을 하고 죽는 회귀성 어류다. 생김새는 도루묵과 비슷하며 주로 이끼를 먹고 자라는 탓에 살에서 수박향(또는 오이향)이 난다. 민물고기의 양귀비라 불리는 은어는 맛이 좋아 영어로는 ‘sweet fish’라고 한다.


 그런데 은어와 연어를 같은 어종으로 알고 있거나 헷갈려 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 것 같다. 두 어종은 우선 겉모양부터 다르다. 크기는 말할 것도 없고 강으로 돌아온 연어는 은빛비늘이 서서히 무지개 색으로 변해 확연한 혼인색을 띄는 데 비해 은어는 등에 한 줄기 검은 줄이 있는 것 말고는 얼핏 온몸이 은빛에 가까운 회백색이고 비늘도 없다. 그리고 연어는 붉은 살 생선이고 은어는 흰 살 생선이란 차이가 있다.


 하지만 둘 다 고상하고 우아한 이름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인지 은어나 연어를 소재로 한 시가 적지 않다. 5년 전 이맘 때 작고한 김철진 시인의 시 ‘은어’가 생각난다. 그 역시 봉화가 고향으로 은어에 빗대어 자신의 귀향에 대한 연유와 당위를 노래했다. 어려서 대처로 나가 도시의 부박한 삶 속을 정신없이 떠돌다가 기어이 수박 내 향긋한 향수가 병이 되어 끙끙 앓다가 귀향한 내력을 짧지만 투명하고 절절하게 담았다.


 그 결단과 과정이 은어의 강을 거슬러 가는 오름처럼 힘겹기도 했을 것이나 시인은 그리웠던 고향 ‘청량산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맑은 물’로 다시 돌아갔다. 그러나 지금은 그 옛적 은어가 뛰놀던 물은 아니다. 산업화로 인한 인간의 집요한 공격으로 그 많던 자연산 은어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광산, 공장에서 흘러나온 폐수가 물을 더럽혔고 폭약과 배터리에 의한 충격으로 은어들은 비명횡사했다. 물론 봉화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창원 진동면과 함안군 대산면 송도나루터의 이름난 은어회집은 오래전 장어나 메기탕집으로 전업했고, 섬진강 상류 남원 온천의 명물 은어, 영덕의 오십천 은어, 울진의 왕피천 은어, 밀양의 차강 은어, 성주 고령의 대가천 은어들이 모두 사라졌다. 매년 봉화 내성천 일원에서 열리는 ‘은어축제’가 지난 주 마무리되었다. 양식 은어를 풀어놓고도 올해 70만 명이상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성황을 이루었다. 수박향 가득한 은어를 넣어 지은 밥에 달래 간장으로 쓱쓱 비벼 먹었던 예전의 그 맛은 어디에서 다시 맛보리.



권순진


백창우 - 나무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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