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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준호(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글·사진_ 박영진)
프랑스 국가 최고훈장인‘레지옹 도뇌르(Legion d'honneur)’수훈
-새로운 일 저지르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 시대 문화연금술사-
최근 온 나라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확산에 따른 전염병 블랙홀에 빠져들면서 2월에 거둔 국내 순수예술 분야에서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가장 명예로운 훈장 수상과 또한 대중예술 분야에서 우리 영화가 미국 아카데미 최고 영예인 오스카 작품상을 비롯하여 4개 부문을 수상하는 문화적 쾌거를 오래 상찬하고 즐길 수 없는 우울한 사회적 분위기가 몹시 안타깝다.
문화강국을 꿈 꾼 백범 김 구 선생 말씀대로“오직 한 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을 자랑할 수 있었으며, “문화의 힘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준(주기 때문이다)”두 문화예술인 이름이 공교롭게도 동명(同名)이다. 한 명은 30년 이상 국내와 유럽 문화현장을 누비고 있는 연극인, 공연예술기획자, 동시에 국가 예술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행정가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전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원장을 역임한 최준호(61세·서울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와 다른 한 명은 세계적인 영화제가 속속 인정한 영화‘기생충’의 봉준호 영화감독이다. 바야흐로 문화계가‘준호’전성시대다.
가장 창의적인 문화현장에서 한국 문화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 도전의 마당을 마련하고, 또한 성취하는 이들은 모두 문화혁신가요, 모험가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2월 13일 오후, 시간을 분으로 나눠 쓰며, 한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종횡무진 활약 하고 있는 최준호 교수를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 캠퍼스 자신의 연구실에서 어렵게 마주하였다. 이 날도 인터뷰를 위해 시내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도시 심의위원회 회의를 마치자마자 학교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점심식사도 거르고, 인터뷰 후에도 바로 다음 회의가 기다리고 있어 긴 인터뷰를 할 수 없음에 먼저 양해를 구한다.
“평소 업무 등으로 많이 바쁘기도 하지만 기타 언론에도 자주 나서는 성격이 못 되다 보니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네요. 이번 수상 소식과 관련하여 앞서 우리 대학 측에서 보도자료를 언론에 내는 바람에 소문이 먼저 나서 이번에는 인터뷰를 안 할 수가 없겠구나 생각하고 있었죠.”라며, 말문을 연 최준호 교수가 처음 만난 후배에게 정성스럽게 손수 커피를 내려 주는 가운데 그의 반가운 마음이 따뜻한 커피 잔에 대신 닿는다.
사실 그는 본업인 한예종 연극원 교수(1996년~) 외에도 2020년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법정위원회인 문화도시심의위원회 위원장과 국제문화교류진흥위원회 위원, 한국거리예술협회 이사, 한예종 지주회사 이사 및 학교기업 K'Arts Edu대표이사, 서울시 중, 고교 ‘협력종합예술활동’사업 책임교수, 의정부음악극축제 예술감독, 제주 K'Arts ICT융합창업센터장, 문체부 실감형 콘텐츠 진흥위원회 위원 등으로 관여하는 기관 및 직접 책임자로 챙겨야 할 개별사업이 10여 개가 넘는다. 최 교수가 앞서 제안을 했거나, 자신 앞에 펼쳐진 새로운 일들 즉, 국가 예술정책을 만드는 일들에 묻혀 그가 동분서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금도 매주 서울과 제주도를 왕래하며, 일주일에 이틀 정도 제주도에서 머물며 ICT융합창업센터장 업무를 무리 없이 수행하고 있다.
인터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지난 4일, 프랑스대사관에서 개최된 ‘레지옹 도뇌르’훈장 수상 소감을 먼저 묻었다.
최 교수의 이번 수상은 개인적인 기쁨을 떠나 국민들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프랑스 대사관 측은 1886년 프랑스와 수교한 이래 “양국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한 지 130주년이 되는 해(2016년)를 기념하고자 마련된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의 성공을 위해 예술 총감독으로서 활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양국의 다양한 문화 예술 작품을 선보이며, 한국-프랑스 간 협력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며 서훈 이유를 밝힌 바 있다.
그는 한불 상호교류의 해의 예술 총감독을 맡아 240여개의 예술작품과 양국 400개 이상의 행사를 기획·총괄했다.
“프랑스가 수여할 수 있는 최고 권위의 명예로운 훈장입니다. 국적 불문하고 프랑스 국가에 기여한 공적이 국가적으로 인정될 때 주는 상이니만큼 수상자도 비할 데 없이 영예롭게 생각합니다. 저는 문화예술 분야를 망라하여 예술가를 위해서도 일을 하고 또한 문화기관들끼리 맺어주며, 각종 축제 관계자들끼리 연결시키는 등 영화, 음악, 무용, 문학 등 다양한 예술 종류를 통해 전반적인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프랑스에 알림으로써 오늘날 프랑스의 많은 국민들이 한국의 문화예술에 대해서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은 프랑스를 위해서 일한 것 보다 우리나라를 위해 일한 게 대부분인데, 먼저 프랑스에서 인정을 해 준 셈입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평창 동계올림픽 축하사절로 내한 시, 앞서 훈장을 수여할 예정이었으나 몇 차례 일정 등이 어긋나는 바람에 이번에 프랑스대사관에서 대통령을 대신하여 수여하게 되었다는 귀띔이다.
‘레지옹 도뇌르’훈장은 공식적으로 문화국가를 자처하는 프랑스 정부가 정치·경제·문화·학술·체육 등 각 분야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을 선정해 서훈하는 최고 권위의 훈장으로서 프랑스에서 가장 명예로운 훈장으로 꼽힌다. 프랑스 대통령이 통상 직접 수여한다.
한국에서는 지휘자 정명훈, 이건희 회장, 영화감독 이창동, 미술가 이우환, 영화감독 임권택,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 국내 주요 인사들이 수상한 바 있다. 더구나 최 교수가 2005년 프랑스 학술공로훈장 기사장을, 2007년 예술가에게 최고의 영예로 불리는 프랑스 문화예술훈장인 오피시에장을 받았으며, 이번에 한국인 중 공연예술분야에서 또 문화예술기획자로서‘레지옹 도뇌르’기사장 훈장을 받는 첫 주인공이 되었다.
최준호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프랑스 통으로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주요 문화예술 교류에는 그가 늘 뒤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균관대 불문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원 졸업 후, 프랑스 파리 3대학교(소르본느 누벨)연극학 박사학위 유학시절이던 1993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한국영화제 및 한국종합예술제 준비작업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95년 파리에서 개최된 ‘한국 문학의 해’, 98년 아비뇽연극제의 ‘한국의 해’, 2002년 파리 가을축제 한국 주빈국, 2006년 한불 수교 120주년 기념행사 등의 숨은 주역이다. 무엇보다 95년 한국 문학의 해가 계기가 되어 5년 후 국내에 한국문학번역원이 발족됨으로써 우리 문학의 세계화에 토대를 마련하게 된 것도 최 동문의 보이지 않는 노력의 소산이다.
특히 민간신분의 예술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개방형 공모를 통해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원장(2007년-2011년)으로 임명되어 재임기간 동안 한국의 문화예술 및 예술가들이 해외 문화현장에서 정상적으로 진입하고 한국 문화가 확산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매개자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이때 2011년 유럽에서는 최초로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의 1만 4천명 수용 초대형 파리 공연을 추진해 유럽에 우리 공연예술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인하고 한류 열풍을 일으키는 데 상당히 큰 역할을 했다.
최준호 교수는 벌써 10년 전 일이 되었지만, 당시 원장 재임시절을“거의 미친놈처럼 일했다”고 회상한다. 문화원을 소개하는 1년 단위의 작은 소책자에 한국을 알리는 프로그램이 무려 100 여 개가 수록될 만큼 굉장히 많은 일을 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우리 전통예술이 가지고 있는 ‘맛’과 ‘멋’이라는 것이 너무 내부에만 갇혀 있었던 탓에 유럽 사람들이 막상 마주할 때에는 굉장히 새로운 현대예술로 봅니다. 그들의 눈에 보기에 잘 만들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좋은 관객들을 만날 수 있게끔 기회를 자주 만들어 왔습니다.”
25년 넘게 유럽을 오가며, 지금도 매년 두 세 차례 이상 프랑스 등 유럽을 방문한다는 최 교수는“우리가 문화적, 역사적으로 서로 공유할 것이 있고, 세계의 사회 가치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맞는 게 있으면 그들하고 문화교류를 축으로 친구로서, 같이 지구촌을 사는 동지로서 오래오래 갈 수 있는 거잖아요. 제 본업인 연극 이외에도 이들 국가들과 문화 교류 저변을 다져오는 일들에 깊은 관심을 갖고, 우리 예술 공연 인재들이 해외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등이 제가 줄곧 해오고 있는 일입니다.”
대학시절, “사람들이 모여서 공감하고, 서로 생각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 공연 예술이다.”라는 신념에 문화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80년대 척박한 문화토양에서 혁명(?)하는 심정으로 처음 문화운동에 뛰어든 이래,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예술인으로 우뚝 서기까지 최준호 교수가 지향하는 예술론이 궁금했다.
“지금 우리 삶의 가치가 돈과 권력에 너무 쏠려있고,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들을 배척하는 집단적 이기주의가 횡행하며,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위로 향한 경쟁으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받아 피해의식을 느끼거나 열등감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 사회가 이렇게 존재해야 하는가? 왜 우리가 같이 사는가? 라는 현실적 물음에 깊은 회의감이 들곤 합니다. 이럴 때야 말로 우리 개개인이 가깝게 책, 음악, 영화, 연극, 오페라 등 각자 서로 다른 예술과의 만남을 통해 사람과 사회를 새롭게 발견하고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다른 태도와 관점을 가지게 되는 것이 바로‘예술의 힘’이고, ‘문화의 힘’입니다. 문화예술은 삶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이 일상에서 문화로 넉넉해지고, 행복해지고 건강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국민이 문화의 힘을 키우는 활동에 팔짱을 끼고 있을 수가 없다고 한다. 최준호 교수가 지금 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도시 심의사업과 실감형 콘텐츠 진흥사업, 제주 K'Arts ICT융합창업센터 등이 바로 문화의 힘을 키우는 사업이라고 명토를 박는다.
“문화 예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기업들을 만들어서 국민들에게 조금 가까이 가고, 지금은 멀티시대라고 하는데 우리 사회적 환경이 문화예술에 전념해 그 것 가지고는 잘 살 수 없는 상황이니만큼 예술 종사자들도 경제적으로 조금 아주 어려운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고, 또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또 다른 방향에서 발휘하면서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는 부분, 다시 말해 문화 창작 활동 여건을 개선하는 것 등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문화는 다 연결이 되고 쌓이는 것이며, 전체가 다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는 최준호 교수.
“고교시절, 입시에 붙잡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던 그 시절, 옛 경희궁 교정은 정서적으로 안정감과 위안을 주기에 천혜의 환경이었으며, 우리에게 꿈을 키울 수 있는 정말 좋은 공간이었다”고, 회고하는 그는 ‘책임지키자’는 교훈이 평생 자신에게 자유로울 수 없는 가르침임을 새삼 깨닫고 있다고 한다.
최준호 교수는 대학교 후배인 길혜연 여사와의 슬하에 서우, 재우 두 아들을 두고 있다. 80년대 초 독일에서‘팔꿈치 사회’라는 말이 올해의 낱말로 꼽힌 적이 있다. ‘옆 사람을 팔꿈치로 밀치며 앞서가야만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자본주의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그나마 문화는 경쟁으로 기울어진 우리를 인간으로 바로 세울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새로운 일을 저지르는 것을 좋아”하는 최준호 고수. ‘행운은 준비된 정신’에게만 찾아온다는 말을 그에게서 확인하며, 길지 않은 1시간 여의 인터뷰를 아쉬운 듯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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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최준호 봉준호 하니까 김준호도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