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초록 맑은 숨결이여! 문향 그윽한 정자와 원림 찾아, 화려한 순례
2025년 7월 <앙코르! 고을학교 열두번의 특강⑤ 담양고을>
온세상이 초록초록, 맑은 대자연 속 정자와 원림의 숨결 속으로! 7월의 <앙코르! 고을학교 열두번의 특강> 그 다섯 번째는 전남 <담양고을>입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롱꽃 정원, 명옥헌의 배롱나무 수십 그루에 활짝 꽃이 피었다.Ⓒ담양군
최연 교장선생님(고을답사전문가)은 얘기합니다.
담양(潭陽)고을은 예부터 기름진 평야와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존, 전승해 온 유서 깊은 고장입니다. 대쪽과 같이 올곧은 선비 정신을 이어받은 조선 시대 사림들은 불합리하고 모순된 정치 현실을 비판하고, 자신들의 큰 뜻을 이룰 수 없음을 한탄하며 낙남(落南)하여, 무등산 정기 어린 담양 일원에 누(樓)와 정자(亭子)를 짓고 빼어난 자연경관을 벗으로 삼아 시문을 지어 노래하였습니다. 이들은 수신과 후진 양성에 힘쓰다가 나라의 부름을 받아서는 충성하고, 국난이 있을 때는 분연히 일어나 구국에도 앞장섰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부락인 ‘마을’들이 모여 ‘고을’을 이루며 살아왔습니다. 2013년 10월 개교한 고을학교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고을을 찾아 나섭니다. 고을마다 지닌 역사적 향기를 음미하며 그곳에서 대대로 뿌리박고 살아온 삶들을 만나보려 합니다. 찾는 고을마다 인문역사지리의 새로운 유람이 되길 기대합니다.
<앙코르! 고을학교 열두번의 특강 ⑤담양고을>은 2025년 7월 27일(일요일) 열리며 오전 7시 서울을 출발합니다. 정시 출발하니 출발시각 꼭 지켜주세요. 오전 6시 50분까지 서울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6번출구의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 앞에서 <고을학교> 버스(온누리여행사)에 탑승바랍니다. 아침식사로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여는 모임에 이어,
이날의 답사 코스는 서울-담양IC-수북면(관어정)-봉산면(면앙정)-대덕면(연계정/미암박물관)-창평면(삼지천담장마을/명옥헌원림)-점심식사겸뒤풀이(국밥거리)-고서면(송강정)-남면(식영정/환벽당/취가정/한국가사문학관/소쇄원/독수정원림)-서울의 순입니다.
▲<담양고을> 답사 안내도Ⓒ고을학교
*코로나19와 독감 등 감염병 예방을 위해 참가회원님은 항상 차내·실내 마스크 착용, 손소독, 거리두기를 잘 챙겨주시기를 권합니다.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담양고을> 답사지 설명을 듣습니다.
담양의 정자와 원림 주인들은 서로 친척관계로 맺어있습니다.
연계정의 유희춘과 소쇄원의 양산보는 모두 하서 김인후와 사돈이고 면앙정 송순은 양산보와 외종사촌입니다. 또 취가정 김덕령과 풍암정 김덕보는 환벽당 김윤제의 증손자이고 식영정 김성원은 김윤제가 당숙이며 임억령이 장인입니다. 또한 정철은 김윤제의 외손주 사위이고 김성원이 처외재 당숙입니다.
담양지역에는 이서의 낙지가,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정식의 축산별곡, 남극엽의 향음주례가, 충효가, 유도관의 경술가, 사미인곡, 남석하의 백발가, 초당춘수곡, 사친곡, 원유가, 정해정의 석촌별곡, 민농가 그리고 작자 미상의 효자가 등 18편의 가사가 전승되고 있습니다.
▲천득염 교수(전남대) 교수는 말했다. “소쇄원은 한국 민간정원의 원형을 간직한 곳.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경외와 순응, 도가적 삶을 산 조선 시대 선비들의 은둔과 사유, 만남과 교류의 장으로서 경관의 아름다움이 탁월하게 드러난 유산이다.”Ⓒ담양군
관어정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향약도 시행하였습니다.
관어정(觀魚亭)은 조선 숙종 때 함양 박씨가문의 박문서가 축조한 ‘박지(朴池)’라는 저수지 가운데 인공 흙섬을 조성해 그 위에 지어진 ‘물 위의 정자’입니다. 그는 이 저수지에 연꽃도 가꾸고 농업용수로도 사용하다가 장단 부사로 임명되어 떠나면서 마을에 박지를 기증했습니다.
박지는 농사에 필요한 물을 대주는 역할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힘든 농사를 짓다가 잠시 땀을 식히는 곳이었고, 아이들에게는 여름철 헤엄치는 물놀이터이자 겨울철 꽁꽁 언 얼음 위에 썰매를 지치는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857년(철종 8) 담양 부사 황종림이 고을 사람들의 양로와 교육을 목적으로 남쪽에는 남희정, 북쪽에는 관어대를 사직단이 있던 곳에 건립했습니다. 두 정자는 학문을 닦고 연구하며, 향약을 시행하는 장소로 이용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담양천 물이 정자 밑에까지 흘러들어와 난간에 걸터앉아 낚시도 하고 물속에서 노니는 고기들의 모습을 보고 즐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 신사로 대신했던 비운의 장소였다가 훗날 다시 마을 주민들의 품으로 돌아와 마을의 쉼터로 되찾았습니다.
정자 앞에는 ‘풍취라대(風吹羅帶, 도포를 매는 비단 띠가 바람이 불면 날린다)’라는 비석이 있는데, 풍수지리상 고귀한 사람이 관복을 입고 비단 허리띠를 바람에 나부끼는 형상이기 때문에 자손 중 높은 벼슬에 오를 인물이 나온다는 명당자리를 뜻한다고 합니다. 나산마을이라는 이름도 풍취라대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관어는 ‘은둔한 선비의 즐거움’을 뜻합니다.
<장자> 외편 제17편에 ‘물고기의 즐거움’이라 하여 호수 위 돌다리에서 물고기를 바라보는 장자와 혜자의 대화가 나옵니다. 장자가 “물고기가 나와서 한가로이 놀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물고기의 즐거움이 아닌가”라고 하자 혜자는 “자네가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는가?”라고 되물었으며 다시 장자는 “자네는 내가 아닌데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지 어찌 알 수가 있는가”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장자와 같이 다른 이의 입장이 되어서 공감하려는 마음을 갖는다면, 타인은 물론이며 물고기의 마음도 알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불가에서는 ‘물고기를 본다’라는 것은 물고기가 잠을 잘 때도 눈을 감지 않고 깨어 있는 듯 잔다고 해서, 정진하는 수도자가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찰마다 처마 끝 풍경에 물고기 모양을 매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비들의 ‘관어’는 세상 권력에 대한 추종을 거부하고 물고기를 보며 관조하듯 ‘자유롭게’ 살겠다는 뜻이 강하다고 합니다. 물고기가 물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듯이 자신들도 자연에서 은거하며 살겠으니, 벼슬로 자신을 얽어매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렇듯 관어는 ‘은둔한 선비의 즐거움’을 뜻합니다. 물 밖으로 나올 생각 없이 물속을 유유하게 헤엄치며 자유로운 물고기를 바라보며,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아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을 배우고 아울러 하늘에 솔개가 날고 물속에는 고기가 뛰어노는 ‘연비어약(鳶飛魚躍)’이라는 자연의 이치를 알고, 달관의 경지에서 도를 깨닫는 평안을 바라며 정자의 현판에 ‘관어’를 썼던 것입니다.
굽어보면 땅이요 우러르면 하늘이라(俛有地 仰有天)
면앙정(俛仰亭)은 송순이 41세가 되던 1533년(중종 28)에 김안로 일파가 세력을 잡자 공직에서 물러나 이곳 고향에서 정자를 짓고, 세상을 굽어보고 우러러 하늘을 쳐다본다는 뜻으로 면앙이라 이름을 붙이고 자신의 호로도 삼았습니다.
기대승의 <면앙정기>에 의하면, 면앙정 터는 갑신년(1524)에 얻었고, 정자를 짓기 시작한 것은 계사년(1533)이었으며 그 후 임자년(1552)에 이르러 중건하였다고 합니다. 송순이 77세에 우참찬을 끝으로 공직을 마치고 낙향해 91세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유유자적했던 정자입니다. 그러나 1597년(선조 30) 임진왜란으로 파괴되고 지금의 정자는 후손들이 1654년(효종 5)에 중건한 것입니다.
건물은 동남향하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한가운데에 한 칸 넓이의 방이 꾸며져 있습니다. 기둥은 방주를 사용하였으며 주두가 생략되고, 처마도 부연이 없는 간소한 건물입니다. 주위에는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밤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으며, 주된 전망은 후면에 해당하는 서북쪽으로 평야 너머로 옹암산, 금성산, 용천산, 추월산 등이 이어져 있고 서남쪽에는 맑은 냇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송순은 천지 우주의 한가운데에서 호연한 흥취를 느끼며 바람과 달과 산천과 함께 이곳 면앙정에서 살았는데 그 마음을 담아 <면앙정 삼선가>를 남겼습니다.
俛有地 仰有天 굽어보면 땅이요 우러르면 하늘이라
亭其中 興浩然 정자 안에는 호연한 기상이 일어나네
招風月 揖山川 풍월을 불러들이고 산천은 끌어당겨
扶藜杖 送百年 명아주 지팡이 짚고서 백 년을 보내리라
면앙정에는 강호제현의 시문이 즐비하게 걸려 있습니다.
면앙정에 올라가 보면 조그마한 누정에 퇴계 이황, 하서 김인후, 양곡 소세양, 오음 윤두수, 제봉 고경명, 석천 임억령, 고봉 기대승, 백호 임제, 소쇄옹 양산보, 기암 정홍명, 동악 이안눌 등 명현들의 주옥같은 시문들이 즐비하게 걸려있습니다. 문집에는 이들 제영을 <면앙정 제영>, <면앙정 잡록>이라고 하여 50편에 가까운 시문을 망라하여 수록하였습니다.
송순(宋恂)의 자는 수초, 호는 기촌, 면앙정으로 1493년(성종 24) 담양군 봉산에서 출생하였습니다. 1519년(중종 14) 별시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이후 1547년(명종 2) 봉문사로 북경에 다녀왔으며 이후 개성부 유수를 거쳐 1550년 이조판서에 제수되었습니다.
1569년(선조 2년) 대사헌, 한성부판윤이 되었으며, 의정부 우참찬 겸 춘추관사를 지내다 사임하였습니다. 만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에 내려와 면앙정을 짓고 퇴계 이황을 비롯하여 강호제현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양성하여 문인들이 신평 선생이라 불렀습니다. 문하는 김인후, 임형수, 노진, 박순, 기대승, 고경명, 정철, 임제 등이 있습니다. 저서로 <면앙집>, <기촌집>을 남겼습니다.
정치적 갈등의 한가운데에서 부침을 거듭했던 후배 송강 정철은 면앙정이 소인배 권력자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크게 넘어지지 않고 행복한 일생을 마쳤다고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은 짧은 제문을 올렸습니다.
“아! 풍진세상 험한 길을 다하기 어려우니 다한 사람은 대단합니다. 넘어지지 않은 사람도 드뭅니다. 벼슬살이 60년에 큰길을 따라가면서 끝내 넘어지지 않은 이를 상공에게서 봅니다. 그러니 오늘의 이 아픔은 나만의 것이 아니겠지요. 아, 슬프다.” (嗚呼 風埃險塗之難盡 盡之者尙矣 其不躓者亦鮮矣 立朝六十年 遵大路而終不大躓者 於相公見之 然則今日之慟 非爲私也 嗚呼哀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