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 봄날은 간다 ① ◼린 ◼최백호✕장사익 ◼이동원 ◼강신일 ◼정서주
- 봄날은 간다 ② ◼KARDI(김예지)
◉봄날이 가고 있습니다.
5월이 하순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연분홍 치마도 새파란 풀잎도 봄과 함께 흘러갑니다.
‘봄날은 간다’,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이 가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올해도, 내년에도, 이맘때면 듣고 지나가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가는 봄은 어쩌지 못하고 떠나보내야 합니다.
그래야 여름이 옵니다.
그래서 떠나가는 봄이 찬란한 꼬리를 접는 저편에서 여름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열흘 남짓 남은 5월의 낮 최고기운이 30도 근처로 올라가며 여름연습을 할 모양입니다.
계절은 칼로 물 베기입니다.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속에서 봄과 여름을 구분 지으며 새 계절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5월 말과 6월 초는 봄꽃과 여름꽃들이
함께 어울려 이쪽저쪽 계절을 곁눈질할 때입니다.
봄꽃이 지거나 지고 있는 한편에서 여름꽃들이 속속 등장합니다.
고광나무꽃과 은방울꽃, 조팝나무꽃, 이팝나무꽃, 아카시아, 찔레꽃 등 이미 떠나갔거나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는 봄꽃들입니다.
떠나갈 한 무리의 이들 봄의 흰 꽃들을 대신해 여름 흰 꽃 샤스타데이지가 꽃잎을 활짝 열었습니다.
◉금계국 천인국, 원추리, 비비추, 옥잠화, 까치수염 등 여름꽃들이 꽃망울을 매달아 가고 있습니다;
성질 급한 엉겅퀴와 지칭개는 붉은색과 보랏빛의 꽃을 매달고 여름이 오고 있다고 미리 알려주고 있습니다.
들판을 가득 채운 망초와 개미취도 여름이 시작되면 꽃잎을 내밀 준비를 마쳤습니다.
돌담 사이를 가득 채운 한련화 역시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는 봄꽃을 대신할 여름꽃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지만 사람들은 가는 봄을 여전히 아쉽고 허전하게 여기나 봅니다.
하지만 자연의 순리에 따라 흘러가는 봄날입니다.
잠시 되돌아보면 벌써 추억이 된 올해 봄날이 보입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날들이었다면 그것으로 크게 아쉬울 건 없습니다.
◉연분홍 치마 끝자락에서 가는 봄날을 불러와 지나간 봄날을 둘러봅니다.
국민가요처럼 우리 정서속에 들어와 있는 ‘봄날은 간다.’입니다.
손로원이 그려낸 가는 봄의 노래는 시인들이 가장 좋은 언어로 쓴 노랫말로 꼽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만들어진 지 71년이 됐지만 봄마다 불려 오는 노래가 됐습니다.
지나간 수많은 봄날에 올해 봄날을 보태서 생각해 보게 만드는 가슴 찡해지는 노래입니다.
◉봄의 꽃들을 영상으로 담은 린의 노래부터 만나봅니다.
요즘 한창 보이는 노란색의 아이리스 붓꽃과 제비꽃, 양지꽃, 할미꽃, 유채꽃, 연꽃이 이어지면서 가는 봄날을 아쉬워합니다.
할미꽃과 제비꽃 양지꽃은 이미 졌지만 자주색과 짙은 황금색의 아이리스는 보초를 서듯 집주변을 둘러싸고
지금 가는 봄을 배웅하고 있는 아쉬운 봄꽃입니다.
감성 보컬 린입니다.
트롯으로 장르를 넓혀 올해 새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녀의 ‘봄날은 간다’입니다.
https://youtu.be/KDB5i3aLqAU
◉‘기인 작사가’, ‘방랑의 예술가’가 불리는 손로원이 이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노랫말로 남긴 ‘봄날은 간다’는 봄마다 불려 나와 대한민국의 가장 많은 대중가수가 불렀던 노래로 남겨졌습니다.
◉한국전쟁의 채 끝나지 않은 1953년 부산역 대 화제 때 손로원은 영주동 판잣집 단칸방에 고이 간직했던
어머니의 사진을 잃었습니다.
연분홍 치마저고리를 입은 어머니의 사진이었습니다.
아들이 장가가면 시집올 때 입고 온 연분홍
치마저고리를 입는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해 온 어머니였습니다.
아들이 방랑하는 동안 철원에서 농사지으며 살았던 어머니는 아들 결혼식때 연분홍색 치마저고리도 입어보지 못한 채
해방되던 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이 간직해 온 사진마저 화재로 잃은 손로원은 불효를 자책하며 참담한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이듬해 봄의 끝자락에서 걸어 오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쓴 사모곡(思母曲)이 바로 ‘봄날은 간다’입니다.
여기에 작곡가 박시춘이 곡을 붙여 백설희가 불렀습니다.
가는 봄에 어머니의 처녀 시절을 그려 넣었지만 어머니의 얘기로만 들리지는 않습니다.
어머니일 수도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있게 폭을 넓혀 놓았습니다.
과거 정다웠던 사람은 누구나 노래의 선율 위에 올려놓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노래가 오래 사랑받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부산에서 재수하던 시절 최백호는 어머니를 병으로 떠나보냈습니다.
남편 잃고 교사로 일하며 살아온 어머니였습니다.
10월에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최백호가 만든 노래가 바로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입니다.
그의 데뷔곡이자 그를 세상에 알린 노래입니다.
최백호는 기장 출신이지만 통학으로 부산을 오간 부산 사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철원에서 자랐지만 부산 사나이가 된 손로원의 ‘봄날은 간다’가 그에게 남다르게 다가섰을 것입니다.
◉찔레꽃을 보고 서럽다고 울었던 장사익에게도 찔레꽃이 지면서 멀어지는 ‘봄날은 간다’가
예사로운 노래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봄의 변화와 인생의 순환을 담은 노래가 자신 삶과 닮아 있어서 더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장사익이 부르는 ‘봄날은 간다’는 그만의 색깔로 그려진 노래가 됐습니다.
◉일흔네 살의 최백호와 일흔다섯 살의 장사익은 가는 봄을 수없이 지켜본 노가객(老歌客)입니다.
이제 볼 수 있는 봄날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최백호는 지나간 세월이 너무 좋았다며 나이 먹는 일이 신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장사익 역시 노년의 자기 인생을 아름답고 멋있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맞이할 봄날이 줄어드는 것을 안타까워하기보다는 사는 동안 맞을 봄날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2년 전 ‘봄날은 간다’로 만났습니다.
오래 레전드 무대로 남을 두 노가객이 떠나보내는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https://youtu.be/uTFsVXsgvf8?si=cQC2BckktRCDEf9e
◉‘향수’와 ‘가을 편지’로 이 시대 음유시인으로 불리던 가수 이동원은 3년 전 70번째 봄을 보낸 뒤
봄의 하늘, 창천(蒼天)의 별이 됐습니다.
아쉽게도 일찍 떠났지만 그가 부른 ‘봄날은 간다’는 보통의 커버 곡과 차이 납니다,
매혹적인 색다른 봄날을 보여줍니다.
포크 블루스곡으로 편곡한 그의 커버곡은 새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그에게 보내는 추모의 마음을 담아 들어보는 이동원의 ‘봄날은 간다’입니다.
https://youtu.be/AQ_YLrcLTAM?si=0oMOWr6vNZdDfkK6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우는
보통 사람의 정서가 담긴 ‘봄날은 간다’는
막걸리 한잔 걸치면 보통 사람이 흥얼거리는 노래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수가 아닌 연극 무대 출신 배우의 노래로 들어보는 ‘봄날은 간다’입니다.
이름보다는 얼굴이 더 익은 배우 강신일입니다.
대학로 연극의 전설 ‘칠수와 만수’의 만수가 바로 그입니다.
영화 ‘공공의 적’에서 욕쟁이 반장을 맡는 등 주로 경찰 간부역으로 익숙해진 배우입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강신일은 한때 간암으로 투병하다 건강을 회복해서 지금 열심히 활동하는 게 보기 좋습니다.
그가 부르는 ‘봄날은 간다’는 가수가 부르는 이 노래와 또 다른 울림과 감동을 전해줍니다.
3절을 중간대사로 가져가면서 배우 특유의 특성을 살려 멋지게 꾸며냈습니다.
보통 사람 같은 배우의 노래로 들어봅니다.
https://youtu.be/eDfknApPgw0?si=u_yEZscdr01j_tgc
◉정서주는 올해 3월 ‘미스트롯 시즌 3’에서 우승한 열다섯 살, 고등학교 1학년 학생입니다.
쟁쟁한 출연자들을 누르고 최종 우승했으니 나이에 상관없이 뛰어난 가수 제목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어린 소녀가 오랜 세월 한국인의 정서가 차곡차곡 쌓여온 노래 ‘봄날은 간다’를 어떤 마음으로 부르는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인의 정서가 가득한 대중가요도 젊은이들에게 남겨질 유산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어린 정서주가 부르는 ‘봄날은 간다’를 더욱 귀담아듣게 됩니다.
https://youtu.be/HSdvSrqkOYQ?si=7pfmVebaa7iM3nvg
◉2001년에 만들어진 영화 ‘봄날은 간다’ 속에도 백설희가 부른 같은 제목의 노래가 등장합니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헤어진 사랑에 아파하는 남자주인공 손주에게 말합니다.
‘힘들지?
버스하고 여자는 떠나면 찾는 게 아니란다’
그 말에 손주는 그걸 이제 말해주면 어떡하냐며 투정을 부립니다.
그 할머니가 연분홍색 치마를 입고 화면속을 걸어갑니다.
떠나가는 할머니를 대사 없이 시각화한 장면입니다.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제목이 붙여졌고 김윤아가 부른 ost에도 같은 제목이 붙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 노래가 흐르면서 엔딩 자막이 올라갑니다.
뜨거운 사랑 뒤 이별 속에서 찬란한 봄날이 갔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남자에게 여자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고 또 다른 봄이 찾아올 것이 거의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김윤아의 ‘봄날이 간다’를 슈퍼밴드 출신 KARDI의 커버곡으로 들어봅니다.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픈 사랑이 김예지의 특색있는 보컬 덕분에 오랜 잔상으로 남습니다.
https://youtu.be/cAEnCxMoHMM?si=O9ZzX6scvvS60cw7
◉’봄날은 간다‘의 손로원은 무려 3천여 곡의 대중가요 노랫말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한국 대중가요사에서는 그를 반야월과 함께 작사가 양대 산맥으로 꼽고 있습니다.
’귀국선‘.
비 내리는 호남선’ 등도 그가 남긴 노랫말입니다.
하지만 남겨진 그에 대한 자료나 평가가 별로 없습니다.
노랫말로 역사를 남긴 작사가에 대한 무심함이 느껴집니다.
◉시인과 작사가로도 데뷔했던 그는 일제강점기 때 절필하고 그림을 그리며 방랑 생활을 했던 화가이기도 했습니다.
‘봄날은 간다’의 노랫말이 마치 봄의 풍경화를 그리듯 펼쳐진 이면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합니다.
일생을 욕심부리지 않고 방랑의 예술가로 살다가 1973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손로원입니다.
그의 인생 최고 봄날은 언제였을까?
불멸의 노래 가사를 그려내던 바로 그때가 아니었을까요?
(배석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