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본래 매우 온순한 성격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아내의 성격에 변화가 발생한 싯점은 첫아이 돌이 지난 후 둘째 임신이 됐었는데, 갑자기 자궁에 혹이 발견돼 자궁적출을 하게 되었고 그 후유증이 우울증으로 연결된듯 싶다.
당시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미자립 개척교회였기 때문에 사모라는 당장의 직무가 우울증이라는 증상을 표현할 수 없었기에 아마도 환경에 의해 그럭저럭 지내온게 아닌가 싶다. 다만 교회일과 상관없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자신의 고집을 내세운다던지 전에없던 증상들이 나타남을 보면서 어떻든 아내의 성격에 변화가 발생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마음이 약한 아내는 처가집 일에 언제나 적극적이었다. 더군다나 30이 넘도록 결혼을 안하다보니 경제활동으로 모아진 돈은 언제나 처가의 이런일 저런일에 푼돈으로 쓰여졌다고 하였다. 당연히 결혼때 아내는 수중에 모은 돈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대전시내에 방한칸 보증금이 전부였다. 마음아프게도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의 부친은 결혼 1년전에 갑작스런 별세를 하였기에 아내에게는 아무런 찬정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처남이 셋 있었는데 모두 단명하였다. 뇌전증을 앓던 둘째 처남이 우리와 함께 지내다시피 했었는데, 어렵게 모은 돈으로 빌라를 분양받았지만 교통사고로 죽는 바람에 그 집에 살아보지도 못했다. 우리가 해외로 나가면서 아내가 맡았던 주택관리를 바로밑 처제에게 맡겼는데, 이 때부터 두자매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둘째처남이 얼마나 고생하며 그 집을 샀는지를 잘아는 아내와 달리 처제는 따로 떨어져 살았고 친정일에 관심없이 오랫동안 살다보니 애착이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막내처남이 넷째누나에게 돈을 빌렸다고 하는데, 막내처남 역시 급작스런 위암말기로 발견돼 손도 못써보고 죽게되면서 넷째딸인 처제는 막내가 자기에게 800만원의 채무가 있기 때문에 둘째 처남의 집을 자기가 같겠노라고 집을 처분해 버렸다.
아내의 주장은 왜 막내동생에게 빌려준 돈을 엉뚱한 동생에게 받아야 하느냐는 것. 그 동생이 얼마나 고생하며 그 집을 샀는지를 안다면 어찌 네가 그럴수 있느냐고 항의를 했지만 그야말로 쇠귀에 경읽기일 뿐이다. 처제의 욕심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강경에 처갓집이 약간의 농토가 있는데, 장모님이 별세하면서 재산분할을 안하다보니 경작권을 이웃에게 넘겨 해마다 토지임대료로 논에 대해 몇가마의 쌀을 받게되는데, 그 관리권도 자신이 차지해 도대체 해마다 받는 쌀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형제들에게 보고를 안하고 아내는 그러한 행위를 도저히 눈감아줄 수 없는 불의로 규정을 하고 항의를 하게 된다.
아들셋은 죽었고 다행히 큰처남은 결혼해 두아들을 남겨서 고향땅에 처남댁이 살고있지만 넷째딸의 위새에 눌려 그냥 심부름만 해주는 정도일 뿐이다. 넷째의 횡포를 다른 자매들이라도 항의를 하고 바로잡아야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관심도 없는 상태이다. 아내는 이러한 일들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되는 옆에서 지켜보는 내 자신도 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친정재산 도둑질하려고 덤벼드는 행동은 잘못된 것이지만 두명의 언니도 전혀 관심이 없으니 그냥 지켜보자는 것이 내 주장인데 아내는 수용을 못하고 있다. 아내가 그만큼 친정에 애정이 많고 노처녀가 되도록 돈을벌면 친정에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친정일에 관심을 가졌느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이권이 생기면서 부터 친정에 관심을 갖게된 것이 사실이다.
처제도 나름의 애로가 있었을 것이라 본다. 무엇보다 술을 너무 좋아하는 신랑때문이다. 한때 유명그룹 계열사에 잘 근무하다가 결국은 술때문에 권고사직을 당한 후 관세사 자격증에 몇년을 허비한 후 처제가 미술학원을 운영하며 가정경제를 책임지다보니 돈에 대한 애착이 생기게되면서 친정재산까지 탐내게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