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개역개정판)
마태복음 6: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개역개정판)
제103문
문: 셋째 간구로 우리는 무엇을 구합니까?
답: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셋째 간구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기꺼운 마음으로, 하늘에서 천사들이 하듯이, 모든 일에서 주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고 열복(悅服)하게 하여 주시기를 구합니다.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은 천도교 신자이다.
심지어 그의 장인은 천도교 3대 교조인 손병희..
3번의 결혼을 했었고(특별히 마지막 부인은 그의 명월관 기생으로서, 후일 비서를 지나 아내가 되는 주옥경이었다.)
독립운동을 했음에도, 동학농민운동(동학농민혁명..)에 적대적인 시각을 가진 안창호와는 대립하는 관계였다.
전투 능력과 조직 장악력도 상당하였는데,
1905년 당시 이미, 대한제국 내 민간인 최초 자동차(심지어 캐딜락...) 보유자였고,
한옥을 몇 채나 가지고 있었던 부자였는데,
이를 보고 사이비 종교 단체의 교주가 돈독이 올랐다는 말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학 인수나, 후학 양성 등에는 진심이었으며,
본인도 천도교 활동보다는 독립운동에 힘썼다는 것은 사실이다.
(당시로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천도교의 교세와 영향력이 가장 두드러진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단, 서양 선교사님들처럼 병원이나 교육 등의 자선 사업 면에서는 더 세련되게(?) 보이지 않았다는 견해도 있다.)
특별히 그의 사위 방정환은 어린이들을 위해 헌신했던 인물인 것도 맞다.
그 유명한 색동회를 (한국 동요의 아버지) 윤극영 등과 함께 일본에서 조직했으며,
아직도 유교 문화가 지배했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어린이에게도 존댓말을 쓰는 운동을 펼쳤던 것도 그와 그의 추종자들이다. (사회주의적인 성격이 좀 드러나는 활동도 있었다만..)
본디 말랐던 그의 체형이 비만이 되었고 (항상 장인 집에서 좋은 것들이 제공되었다는 것도 거의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엄청난 스트레스로 인한 흡연으로 건강이 나빠진 가운데
1922년 장인 손병희의 사망에 이은 조직적 타격으로, 경제적 어려움까지 이어지고
결국 1931년 31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그의 아내 손용화 씨는 1991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많은 고생을 하였다고 한다. 단, 사망 1년전인 1990년, 남편 방정환은 우리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기도 하였다.)
일제 시대의 우리 교회와 선교사님들의 헌신은 이루 말할 수 없으나
어린이들에 대한 방정환과 천도교의 조직적인 활동에 당시 사람들이 주목했던 것도 우리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게다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정환의 마음은.. 진심이었던 것 같다.
어린이는 복되다. 어린이는 복되다. 한이 없는 복을 가진 어린이를 찬미하는 동시에,
나는 어린이 나라에 가깝게 있을 수 있는 것을 얼마든지 감사한다.
〈어린이찬미〉, 1924년 5월 15일 소파 방정환
탁월한 문예가이면서도 이야기꾼이었던 그가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였으며, 1920년대 특유의 신파적 분위기를 최대한 살렸던 그의 언변에
그를 감시하던 일본 순사들조차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그 유명한 미와 경감...(미와 와사부로)조차도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고 한다.
"방정환이라는 놈, 절대 미워할 수 없는 놈이다… 내지(內地, 일본) 사람이었더라면 나 같은 경부 나부랭이한테 불려다닐 처지가 아니었을텐데… 일본 사회라면 든든히 한 자리 잡았을 것을… 아깝지 아까워.“
그가 우리 나라에 최초로 소개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이탈리아의 동화 작가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의 동화 난파선(1886)...
그걸 또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내일의 죠, 베르사유의 장미 등을 만든 데자키 오사무(出崎統, 1943-2011)가 만화로 만들었는데
원작에는 없는 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고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당연히 방정환이 소개했던 원작은 아주 짧은 이야기였는데다가
본인이 살을 붙이고, 내러티브를 극적으로 이야기하여 눈물을 자아냈던 것이고,
(여기엔 십자가나, 마지막 기도 이런 이야기는 없다고 한다..)
우리에게 알려진 이야기는 데자키 오사무의 일본 애니메이션을 더빙한 이미 50년전인 1976년에 방영된 MBC 만화 세계 옛날 이야기 버전일 것이다.
어머니는 병으로, 아버지는 탄광 붕괴 사고로 떠나보낸 고아 소년 마리오는 영국에서 친척들이 있는 이탈리아로 떠날 수 밖에 없었는데
배에서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소녀 줄리에타를 만나 친해졌다.
줄리에타는 믿음이 있었지만, 마리오는 부모를 데려가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가득차 있었고, 무신론자 비슷하게 되어 있었다.
항해 도중 갑자기 폭풍이 불어 머리를 다치게 되고 줄리에타가 손수건으로 매어 지혈한다. 그 뒤 폭풍이 점점 거세져 마침내 배는 침몰하게 되고 구명보트에 올라타야 하는데 사람 수에 비해 구명보트는 적었다. 선장은 마지막 구명보트에 어린이 한 명은 탈 수 있다며 마리오에게 타라고 하지만 그는 자신은 기다릴 부모가 없으나 줄리에타는 기다릴 부모가 있다며 줄리에타를 태우고 대신 줄리에타의 십자가를 가져간다. 작별인사를 하며 가라앉는 배에서 그 십자가를 붙들고 마리오는 마지막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아버지 만나게 해주실거죠?"
슬픔은 기숙하고
아픔은 익숙한게 인생이다.
이 놈의 인생은... 어리다고 봐주지 않다.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나
21세기 초인 지금이나
아니 그보다 훨씬 전 성경 시대에도
심지어 창세기의 족장 시대에조차
이런 비극적인 일들은 즐비했을 것이다.
어린이들의 인권과 인격이 무시되었던 시절에
삶은 그 아이들에게 더 가혹했을지도 모른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이 평탄하게 살지 않았으며
야곱은 말할 것도 없다.
최소한 창세기에서 가장 큰 슬픔을 겪었던 사람은 누굴까?
20대 초반에 어머니를 먼저 보내고,
사랑하는 후배의 일곱 살 딸이 엄마를 먼저 보낸 상황에서 본다면
그리고 어린이날, 소외 받고 고통 받는 아이들이 가장 먼저 찾는 존재가 누굴까 생각해본다면...
아마 베냐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본명은 베노니(슬픔의 아들)
엄마인 라헬이 출산 후 사망 직전에 지어준 이름이다.
작명 센스보다 본인의 삶에 대한 애환이 더 컸던 것일까?
창세기 35: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개역개정판)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었던 오른손의 아들 베냐민(왼손잡이들의 조상...)
자기를 아껴주었을 형도 (배다른 형들에 의해) 갑자기 실종되었던 어린 동생...
형이 입던 색동옷 물려 받았을테지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우리 엄마는 나 때문에 죽었어... 이런 생각을 몇 번 정도 했을까?
사실 그 아이 때문은 아니다.
형과 아버지에게 사기 치고, 친정 아빠(라반)에게 찾아온
저 인간 야곱을 생각하면
연애시절은 좋았을지 몰라도
결혼 내내 어땠을까?
“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든지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창 31:32)” 그랬는데...
야곱도 이 말을 생각하면서
자식 낳지 못한다며 난리치던 아내에게 노를 발했던 일(창 30:2)을 생각했으리라.
어찌 되었건
베노니... 내 슬픔의 아들.
라헬의 마지막 모습은 고통과 슬픔이었고,
그것을 그대로 표현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삶,
엄마 없는 네 삶이
엄마는 가장 염려되는구나...
그것이 가장 슬프구나...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노래하고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슬픔은 기숙하고, 아픔은 익숙한 것이 삶일텐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삶이란 괴로운 것이란다...
이런 이야기를 자녀들에게, 다음 세대에게 해야할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야곱처럼 그 이름을 바꾸어 버려야 한다.
베냐민. 오른손의 아들.
인생을 다르게 읽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쳐야 한다.
범사에 그를 인정하고 (잠 3:6)
뜻이 땅에서 이루어질 것을 믿고 가르쳐야 한다. (마 6:10)
신앙은 고통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 편한 상태로 만들어주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단, 그 고통의 의미를 바꾸어 버린다.
하나님과 함께 걸어온 사람에게는
고통을 해석하는 능력, 인생을 해석하는 능력이 생긴다.
우리가 길러야할, 아니 성령을 통해 공급받아야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가야할 유일한 능력이 바로 이것이다.
슬픔을 슬픔으로만 끝내지 않는 힘
베노니를 베냐민으로 읽어내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