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4,6ㄴ-15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6 ‘기록된 것에서 벗어나지 마라.’ 한 가르침을 나와 아폴로에게 배워, 저마다 한쪽은 얕보고 다른 쪽은 편들면서 우쭐거리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7 누가 그대를 남다르게 보아 줍니까?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인 양 자랑합니까? 8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제쳐 두고 이미 임금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임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임금이 될 수 있게 말입니다. 9 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사도들을 사형 선고를 받은 자처럼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것입니다.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슬기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여러분은 강합니다. 여러분은 명예를 누리고 우리는 멸시를 받습니다. 11 지금 이 시간까지도,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고 12 우리 손으로 애써 일합니다. 사람들이 욕을 하면 축복해 주고 박해를 하면 견디어 내고 13 중상을 하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쓰레기처럼, 만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14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런 말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나의 사랑하는 자녀로서 타이르려는 것입니다. 15 여러분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끌어 주는 인도자가 수없이 많다 하여도 아버지는 많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내가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5 1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2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5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제자들이 주님을 따라 다니는 것이 늘 좋은 것만 아닌 듯싶습니다. 어느 한 곳에 거주하는 것도 아니고 이리저리 마을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때로 지칠 수 있겠지요.
안식일에 제자들은 허기져서 밀밭을 지나다가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습니다. 이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냥 지날 리가 없지요.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루카 6,2)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라는 법보다는 당장 허기진 제자들의 입장을 두둔하십니다.
그래서 과거 다윗이 놉의 사제를 찾아 가서 빵을 얻어 먹던 일을 회상시키십니다.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4절)
다윗과 그 일행은 사울에게 쫒기고 있다가 놉의 아히멜렉 사제를 찾아가 먹을 것을 청합니다.
사제는 다윗에게 하느님의 집에 모셨던 거룩한 빵을 내어 줍니다. (1사무 21,7)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공동체의 사람들을 나무라며 자신들의 처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고 우리 손으로 애써 일합니다. 사람들이 욕을 하면 축복해 주고 박해를 하면 견디어 내고 중상을 하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쓰레기처럼, 만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1코린 4,11-13)
다윗이 광야에서 허기지고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듯,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모습에서도 가난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도 바오로의 모습에서도 가난 뿐 아니라 인간적인 고통도 엿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신앙의 화려함이나 영광만을 바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웃이 내 신앙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또 사람들이 좋게 말하며 대접해 주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에 교황님께서 광화문 거리에서 복자들의 시복미사를 거행하셨습니다. 그곳에서 판결을 받고 나누어 가서 우리 교우들은 순교를 하였던 것입니다. 온 국민이 관심을 갖고 교황님을 환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순교자들은 그 당시에는 사람들에게 ‘천주학쟁이’로 멸시받고 숱한 고통과 함께 생명을 바쳤던 것입니다. 우리는 줄곧 ‘부활이 있기 전에 수난과 죽음이 있었다.’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 영광스러운 것, 빛나는 것을 바라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밀밭을 가다가 밀 이삭을 비벼 먹던 허기진 제자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따라 나선 길이 늘 기쁨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지요. 배고픔과 고통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 감사하는 것은 그 고통 속에서도 주님께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순교하는 영광은 없다하더라도 고통스러운 일, 오해 받는 일들 속에서도 주님을 의지하며 따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