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 될 수 없는가?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가?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도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여러분은 방금 전 세 개의 문제가 쓰인 시험지를 받아 들었다. 이 중 하나를 골라 답을 해야 하는데 문제가 쉬워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생각할 시간은 충분하니 걱정마라. 시험시간이 무려 4시간이기 때문이다. 아, 그런데 중요한 조건이 하나 있다. 19살 고등학교 3학년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시절의 지적 수준과 사고력으로 문제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써야 한다. 자신 있는가? 생각을 써내려갈 수 있겠는가?
이 세 문제는 프랑스의 고등학교 졸업시험, 바칼로레아의 철학 부분 기출문제이다. 이 시험의 결과에 따라 일반대학 입학 여부가 결정되므로 우리나라의 수학능력시험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 말인 6월에 치러지는 바칼로레아는 20점 만점에 10점만 받으면 합격하는 합불 시험이다. 게다가 합격자는 점수에 관계없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일반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합격률은 평균 80%이며 불합격하더라도 7월 초에 구술시험으로 재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 시험의 목적은 최대한 많은 학생에게 대학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1808년 5월 17일 나폴레옹 1세의 칙령으로 창설되어 첫 해 31명의 합격자를 배출한 뒤, 1945년 3%에 불과하던 합격률은 1975년 24%, 1992년 50%, 2002년 78.8%로 확대되었고 2012년에는 84.5%를 기록했다.
물론 이들이 모두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제도가 다르기 때문에 정확하게 대조할 수는 없지만, 2008년을 기준 합격자의 53.9%는 일반대학에, 21.8%는 단기 기술교육 전문대학에 등록했다. 그리고 14.1%는 그랑제꼴이라는 소위 고급엘리트 양성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반(프레빠, CPGE:Classes Preparatoires aux Grandes Ecoles)에 들어간다.
2013년 EBS 지식채널 e의 『시험의 목적』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바칼로레아가 널리 알려지면서 이것이 마치 교육제도의 이상향인 것처럼 인기를 끌었다. 합격률이 80%를 웃도는 주관식 시험에서 경쟁이 없는 절대평가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다는 메시지는 그런 생각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으리라 본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랑제꼴 준비반에 진학하는 학생이 14.1%에 불과한 것처럼 소위 일류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왜 공부하는가. 왜 시험 보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칼로레아라는 시험 자체는 매우 의미가 있다. 이 시험은 여전히 생각하는 시민, 자신의 생각을 피력할 수 있는 시민을 양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학과 물리를 포함한 전 과목이 주관식으로 출제된다는 점도 시험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적절해 보인다. 적어도 프랑스 국민들에게 “왜 바칼로레아를 치르는가?”라고 물어본다면 “어떤 문제나 현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도록 하려고”라는 답이 나올 것 같다.
한국의 아이들은 왜 시험을 보는가
대한민국의 수학능력시험. 이 시험의 목적은 무엇일까.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와 일대일 비교는 어렵겠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적어도 시험의 목적은 분명한지, 시험의 방식과 절차가 목적에 부합하는지는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1994학년도 대학입학자부터 치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문자 그대로, 대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1993년까지 대입을 결정했던 대학별 학력고사가 암기 중심의 시험이었다면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제시된 지문이나 도표 등을 이해하고 분석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력 중심의 시험이다. 그래서 암기력은 다소 떨어져도 이해, 분석, 판단, 비교와 같은 능력이 좋다면 높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줄 세우기에 실패하면 큰일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 시험의 목적이 대학에서의 수학능력을 측정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과연 몇 명이나 동의할까?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수능을 전후하여 언로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변별력이다. 실제 시험을 출제하는 교육과정평가원의 주요 보도 자료에서도 변별력은 중요한 요소로 제시된다. 즉, 이 시험은 줄을 세우기 위함이다. 하나라도 더 아는, 조금이라도 더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학생에게 1점이라도 더 줄 수 있도록 문제를 구성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수하지 않은 학생을 선별하는 시험으로 변질되었다는 말이 나온 건 이미 오래되었고, 최근 몇 년 동안에는 문제에 오류가 발견되면서 시험의 위상은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교육전문가도 아니며 입시제도에 얽힌 복잡한 이야기를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변별력에 집착한 나머지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오래전부터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여 그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교육당국은 줄을 세우는데 성공했을지언정 이제 대학에서는 그 줄에 대한 신뢰도 깨졌다. 대학마다 매년 새로운 전형을 발표하며 우수한 학생을 모집하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대학교육협의회가 밝힌 2015년 대입전형 수는 892개이다. 전국 215개 대학에 평균 4. 15개의 전형방법이 존재하는 것인데 학생들은 이를 어떻게 대비해야 한다는 말인가. 대학 수학능력을 입증하는 시험도 모자라 이제는 각 대학에서 자신의 능력을 수십 가지의 방법을 통해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학생들의 기초학력도 부족한 실정이다. 심지어 내로라하는 학생들만 모인다는 서울대학교의 신입생 중에서도 수학 분야의 기초학력 수준에 미달한 학생은 전체의 18%에 달했다. 이 수치는 2008년 15.22%, 2009년 12.62%, 2010년 9.36%로 줄어들다가 2011년 11.31%, 2012년 18.37%로 증가했다. 영어 부분에서도 12.91%에 달했다.
평가의 기준에 따라 이 수치는 다르게 해석할 수 있지만, 결론만 놓고 보면 대학 입장에서는 기초 학력이 부족한 학생을 5명 중 1명꼴로 입학시키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들의 수학능력이 제대로 검증되었다고 볼 수 있는가. 한국경제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경북대, 부산대 등 전국 10개의 국립 및 사립대 이공계 교수 261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한 결과 수학, 물리, 화학 등 기초과목의 수업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한다는 의견이 86%를 넘었다. 또한 90%는 신입생의 기초 수준이 10년 전보다 퇴보했다고 평가했다.
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현재 그 시험이 목적을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200년의 역사를 가진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앞으로도 그 목적을 달성하면서 존재할 것이다. 이 시험은 서열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게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바칼로레아가 출발했던 최초의 의도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분명히 알고 있기에 오늘날 바칼로레아의 모습은 흔들림이 없다. 그러나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오늘은 어떤가. 매년 수능일을 앞뒤로 심하게 흔들리고, 심지어 담당기관의 수장까지 사퇴하기도 한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시험의 목적도 그렇다.
우리가 과거와 미래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은 현재라는 방점을 찍을 자리가 바로 두 점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왜” 시험을 봐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한다면 이름뿐인 ‘수학능력시험’에 빠져 공교육과 사교육, 수험자와 평가자, 정부와 민간, 학교와 학부모의 소모적인 논쟁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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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ㅇ 수능시험이 문제가 아니라 입시위주 주입식인 개한민국 교육이 쓰레기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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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ㄴ 저중에 그랑제콜 들어가는건 일부
수시도 줄세우기고 본고사도 줄세우기고 모든게 줄세우기가 아닌가
줄세우기가 뭐가 문제란 말인가
선발하는데 줄세워야지
더 나은 사람이 있고 못한 사람이 있는 건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운 거다
일부에서 줄세운다는 자극적인 표현으로 몰고가는 거 같다
공무원 기업 고시 뭐든 줄세우기로 선발하는데 왜 유독 대입만 갖고 그러는가
대입이 수요가 많으니 표심때문에 달려드는 것인가?
점수로 줄세우지 않으면 돈으로 줄세운다
역사적으로 보면 비현실적 이상주의가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든다
수능이 원인이 아니라 성공에 집착하는 문화가 원인인 것을 문화를 단기간에 바꿀 순 없겠지만
222 줄 세워야한다 주관식 좋지만 객관식이 더 공정함 수능 수시 60대 40이 적당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