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마치고 맞이한 모처럼의 휴식을 취할 수 있을 듯했던 행복한 주말. 이 황금 같은 주말을 나는 편하게만 맞이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삶과 철학"이라는 수업의 리포트(report)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떨어야 했기 때문이다. 토요일에는 성당의 교리(敎理) 선생님으로서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짬을 낼 수가 없었고, 결국 휴일인 오늘에서야 리포트를 위한 행보(行步)를 시작할 수가 있었다.
오전 8시경. 좀 더 누워 있고 싶은 유혹을 밀쳐 내고서 컴퓨터 앞에 앉아 다시금 답사를위한 일정을 검토했다. 답사를 위한 장소의 설정 및 확인 작업이었는데, 내가 설정한 장소는 영도 일대(一帶). 부산 대교를 거쳐 태종대를 들리고 오륙도까지 둘러 볼 예정이었다.
화창한 4월의 일요일 오전 9시. 가족과 함께 아침 식사를 마치고서 집을 나섰다. 활동하기 편하도록 케쥬얼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서, "다녀 오겠슴다!"를 힘차게 외치고서 mp3의 전원을 켰다. 그룹‘1TYM’의 "Hot뜨거"에 맞추어 발걸음을 옮기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이왕 해야 할 일이라면 귀찮아하지 말자"라며, 오랜만에 즐기는 여행의 일부로 치부(置簿)하기로 했다. 어차피 시험이 끝나면 간만에 여행을 하려고 계획 중이었으니까...
"103"번 버스를 타고서 우선 중앙동으로 갔다. 별도의 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부산대교"(釜山 大橋)에 이르렀다. 길이 260m, 너비 20m의 다리로서 "영도 대교"(影島 大橋)와 평행하게 동쪽으로 100m 가량의 간격을 두고 가설(架設)된 다리이다. 타이드아치(tied-arch) 공법(工法)으로 된 철강제 아치(arch)가 31m 높이로 치솟아 부산의 명물이 되었다. 이 대교는 부산의 도시 고속 도로와 연결되어 있어서 부산항에서 경부 고속 도로까지 곧바로 주행이 가능하다.¹
다리의 중간쯤에 서서 한없이 머리카락을 건드리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왜 "부산"·"영도" 대교라며 이렇게 명칭(名稱)을 달리했을까를 생각했다. 그냥 같은 이름으로 명명(名名)하여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을텐데 말이다. 오고 가는 이정표(里程標)가 틀려서일까? 부산 대교가 영도 대교 가설 이후 한 참 뒤에 만들어졌기 때문일까? 그런 단순한 해답으로 나뉘어진 명칭은 아니라는 생각이 분명히 들지만 그렇다고 그다지 만족할 만한 정답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내 추측에 따르면, 그 이름 안에 뭔가 특별한 의미를 두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예를 들자면 "부산을 대표하게 될 다리" 혹은 "협소(狹小)한 의미의 영도 대교가 아닌 더 넓은 의미에서의 부산 대교"라는 식의 의미. 뭐 그런 가치를 위한 의미 삽입을 목적으로 둘을 나눠 놓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가치, 의미. 인간의 역사(歷史)에서 흔히쓰이는 말들. 인간 이외의 다른 존재들에서 있어서도 과연 이러한 말이나 정의(定義)들이 사
용되기나 할까? 왜 유독 인간들은 가치·의미에 집착하는 것일까. 조금씩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언제나 그렇듯이 머리를 사용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런 복잡하고 의미 심장한 문제들에 관해서는 차후(此後) 집에 가서 천천히 생각해야겠다며 발길을 돌렸다. 바다위로 유유히 헤엄치는 갈매기 한 마리가 다시금 과자를 갈구(渴求)하고 있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서 버스 정류장을 향했다.
도대체 어떤 버스를 타야 할지 알 수가 없어 한참을 헤매다가 "태종대"라는 이름이 적힌 "30"번 버스를 탔다. "맞게 탄 것일까"라며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결국 내려 선 곳은 태종대(太宗臺)였다. 부산 대교에서 생각보다 약간의 시간을 지체해서일까? 태종대에 도착하니 시간은 벌써 점심을 향해 째깍거렸다. 휴일이라 사람도 꽤나 많은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치이지 않으려면 우선 배부터 채워야겠다며 식당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혼자 먹기가 썩 내키지 않아, 오늘도 기숙사에서 뺑이치고 있을 해양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흔쾌히 나오겠다는 친구 녀석을 기다리며 이곳 저곳을 둘러 보았다.
영도(影島)의 남동쪽 끝에 위치하는 해발(海拔) 고도(高度) 200m 이하의 구릉 지역(丘陵 地域)으로, 부산 일대에서 보기 드문 울창한 숲과 기암 괴석(奇巖 塊石)으로 된 해식(海蝕) 절벽 및 푸른 바다 등이 조화를 이룬다. 옛날에 신선(神仙)이 살던 곳이라하여 "신선대"(神仙臺)라고도 부르며, 신라 태종 무열왕(新羅 太宗 武烈王) 사후(射侯)²의 장소였다는 속전(俗傳)에 따라 현재는 "태종대"라는 명칭(名稱)이 일반화되었다. 오륙도(五六島)가 가깝게 보이고 맑은 날씨에는 56km 거리인 일본의 쓰시마섬(對馬島)이 흑점(黑點)처럼 희미하게 보이기도 한다. 60여년의 역사를 가진 영도 등대가 섬 남동부의 가파른 해안 절벽 위에 서 있고, 부근에 신선대 바위·망부석(望夫石)이 있으며 순환 관광로(路)의 중간 지점인 전망대에는 이곳 명물인 모자상(母子像)이 있다. 그 밖에 인공 해수 풀장인 "곤포(昆布)의 집"을 비롯한 위락(爲樂) 시설과 바다 낚시터 등이 있다.³
공원의 입구에서 한참 동안 태종대의 유래(由來) 및 설명에 관한 글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그렇게 친구를 만나 회비빔밥 한 술에 소주 한 잔 하는 그 맛이란 정말 일품이었다. 소주 한 병을 다 비워 갈 무렵, 친구 녀석이 우리 고등학교 시절 얘기를 꺼냈다. 고 1 여름 방학 때, 방학이라며 삼삼오오(三三五五) 모여서 태종대로 MT(Membership Training)를 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대학 입시 위주의 공부에 시달리고 있었던 우리는 부푼 마음을 진정시킬 겨를도 없이 그 길로 태종대로 왔었다. 뭣 모르는 사춘기 시절, 여학교의 또다른 무리와 즉석 미팅(meeting)까지 하면서 정말이지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후일담(後日譚)이지만, 당시 함께 갔던 친구 중에 한 녀석이 그 여학교의 학생이랑 사귀었었는데 지금도 연인 관계로 서로 만나고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 녀석도 정말 지독한 녀석이라며, 어떻게 근 7년을 한 아가씨랑 사귈 수가 있느냐며 혀를 내둘렀다. 그랬다. 그러고보니 마지막으로 태종을 왔던 것이 7년 전이었다. 그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 그리고 지금 내가 서 있
는 곳은 어디일까?
식당을 나와 친구와 함께 오륙도가 마주 보이는 조도(鳥島) 쪽으로 향했다. 배를 타고 한 번 가볼까도 했지만 아직은 성수기(盛需期)가 아닌 까닭에 배가 뜸하게 다녔다. 결론은 배 시간을 맞추지 못한 까닭에 오륙도 근처도 가보지 못한 채, 그저 멀리서 관망(觀望)하는 수밖에 없었다. 친구 녀석도 학교 근처라서 맘만 먹으면 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다 그런 것 같다. 가까이 있을수록 오히려 더 소홀해지거나 깜빡하게 되는 것이 말이다. 부산에 살면 사시 사철 바다를 보며 산다고, 바다를 보며 산다고, 바다를 접하기 힘든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들 말할 때가 있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 있다 보니 오히려 더 보지 못하는 성향이 짙다. 그러면서 여행을 다닐 때는 대게 좀 유명한 뭍으로만 다닌다니... 인간이-어쩌면 부산 사람들이-얼마나 모순적인 존재인가.
각설(却說)하고, 1972년 6월 부산 기념물 제 22호로 지정된 오륙도는 면적이라고 해야 고작 0.02㎢에 지나지 않는다. 예로부터 부산의 상징물이었으며 영도구의 조도와 마주하고 있다. 이 섬들은 육지에서 가까운 것부터 방패섬(2.166㎡), 솔섬(5.505㎡), 수리섬(5.313㎡), 송곳섬(2.073㎡), 굴섬(9.716㎡), 등대섬(3.416㎡)으로 나누어진다. 오륙도라는 이름의 유래는 방패섬과 솔섬에서 찾을 수 있다. 두 섬은 아랫 부분이 거의 붙어 있어 썰물일 때는 우삭도라고 하는 1개의 섬으로 보이고, 밀물일 때는 2개의 섬으로 보인다. 이처럼 조수(潮水)의 차이에 따라 섬이 5개 또는 6개로 보인다고 해서 오륙도라고 하게 된 것이다.⁴
친구와 함께 동삼동의 한 귀퉁이에 앉아 조도를 통하여 오륙도를 바라보며 갑작스레 노래를 불렀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야구장에서 흔히 부르는 조용필 씨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였다. 아마도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라는 구절 때문에 언뜻 그 노래가 생각이 났었으리라. 목청껏 소리를 높여 노래를 부르는 것이 인적이 드문 곳에 앉아 불렀기에 망정이지, 주택가가 있는 곳이었으면 아마도 고성 방가죄로 경찰서에 끌려 갈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리고 노래가 다 끝났을 무렵 나는 웃었다. 친구도 덩달아 웃었다. 아마도 나와 같은 추억을 더듬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어울려 다니며 학교에서도 우애가 깊었기로 소문난 6명의 사고 뭉치들이었다. 5명이 사고를 치면 나머지 1명은 항상 수습하기 바빴다.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몰래 빠져 나와 주차장에서 술을 마시다 교장 선생님께 잡힌 사건, 학우들을 선동하여 방학 중 자율 학습 집단 거부를 일으켰던 사건, 여학교 몰래 잠입하여 방석이나 인형들을 훔쳐 나오다가 그 학교 경비에게 걸렸던 일, 그리고 그 외... 그 모든 사건과 장난들은 항상 5명이 일으켰고 그 뒤에서 항상 1명은 수습을 하기 바빴다. 선생님들께서는 그런 우리들을 보고 오륙도라고 부르곤 하셨다. 친구는 6명인데 사고치는 녀석들은 5명이고 1명은 수습하기 바빠서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런 유치한 별명을 붙여 주셨던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사고 뭉치들이었지만 우애(友愛)와 서로 간의 믿음만큼은 그 당시 누구도 따라올 수가 없었다. 그런 우리 6명이 지금은 5명이 되었다. 고 2때. 친구 하나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항상 뒤에서 우리 일을 수습해 주던 그 친구 하나가 교통 사고로 먼저 떠났다. 그 녀석 때문에 우리는 꽤 오랜 시간을 아파하고 힘들어 하면서 학교를 다녀야만 했다. 그리고 녀석의 죽음 이후에는 그 어떤 장난도 치지 않았다. 그러면 안될 것 같아서...
지금 우리는 그 녀석을 그리워하며 이렇게 나란히 앉아 노래를 부르며 웃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순간 눈물이 나오려 했지만 애써 웃음으로 무마(撫摩)시키려 그렇게 노래를 부르며 웃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참을 말 없이 오륙도만 바라보았다. 간간이 스쳐 가는 사람들의 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몇 시간 동안 한 곳만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바람 하나가 옷깃을 때렸고 몸을 떨며 다시 현실로 돌아 왔을 때, 해는 뉘엿뉘엿 바다 속으로 들어가려고 꿈틀대고 있었다.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고서 우리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며 안재욱 씨가 부른 "친구"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그 때까지 참았던 눈물이 흘러 내렸다.
며칠 뒤면 배를 타고 실습을 간다는 녀석에게 그냥 한 번 웃어 주고서, 잘 갔다 오라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술도 한 잔 하고 몸이 고단했지만 잠을 자지는 않았다. 오히려 정신은 더 멀쩡하기만 했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모든 것들을 바라보며, 이번 리포트의 주제인 인간다움, 인간을 인간이라고 규정하게끔 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인간다움을 규정 짓는 것으로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이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할 수 있겠으나, 나는 인간의 조건을 "추억"이라고 정하고 싶다. 어쩌면 인간 이외의 다른 존재들에게도 추억과 비슷한 그 무엇인가가 있을테지만 그것은 "기억"일 것이다. 다시 말해, 동물의 경우 불을 접하게 되면 자신의 기억 속의 경험에 의해서 그것이 뜨겁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만 그 불로 인해 예전에 있었던 일에 대한 그리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불을 보게 됨으로서 물론 그것이 당연하게 뜨겁다는 것을 알테지만 그 외에의 다른 것 또한 함께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 불로 인해서 좋았던 것, 싫었던 것 등등의 기억들이 그려지면서 그 중 좋은 것에 관해서는 그리움을 갖게 된다. 즉, 추억 거리를 언급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내가 오륙도를 보며 친구를 그리워하고 추억을 떠올린 것처럼 동물이 오륙도를 본다고 하여 과연 그들이 추억을 떠올리거나 하나의 무엇을 그리워하는, 그런 감정들을 가질 수 있
을까?-여기서도 인간의 조건 중에 하나가 분명시 된다. 바로 감정이다.
두 번째로는 앞서 잠깐 언급했던 "의미"이다. 동물들은-계속 동물의 예를 들어서 식상할 수도 있겠으나, 인간에 대비하여 설명하기 가장 쉬운 예가 동물이기에 부득이하게 언급함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자신이 해야 하거나 정해진 것에 대하여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물론 인간들처럼 모성애(母性愛)·자기 보존·자기 방어 등의 이유는 있을 수 있겠지만, 어떤 것을 함으로써 그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치 않는다. 즉, 본능에 의한 행위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에 반해, 인간은 무슨 일에 있어서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전쟁의 의미, 산업 혁명의 의미, 삶의 의미, 수업의 의미 등등. 인간은 세상의 모든 현상들에 대하여 다양한 시각을 접목시켜 "의미"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풀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의미로부터 그 현상 또는 사물에 대한 가치 평가를 내리기 마련이다. 가치가 높은 것은 취(取)하고 낮은 것은 버리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전자의 경우는 인간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유용(有用)하고 참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좋지 않은 추억도 자신의 삶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약으로 작용하는 부분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추억이든 다 나쁘다고만은 규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인간이 얼마나 간사하고 이기적인 존재인가를 밝혀 주는 근거로서 유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이 가지는 인간으로서의 조건들 중 단점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장점으로 사용될 때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것에 대하여 하나의 옳은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에 맞추어 길을 걸으면 된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봤을 때, 좋은 것만 추구하고 이득이 되는 것만 쫓는 인간의 모습을 짧게 함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들을 사용한다. "개만도 못한 놈",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 등의 말들. 인간다움이란 것은 지금 소유하고 있는 이성을 바탕으로 하여 얼마나 옳고 바르게 살아가는 것인가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즉, 어떻게 옳고 바르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하게끔 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해답은 개개인의 생각과 입장 차이가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다"라고 단정지어서 언급하는 것은 피할까 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해 두고 싶은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다른 요소들은 다 배제를 하더라도 최후까지 인간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해 본다.
- 각주 -
1. 참고 : Daum(www.daum.net) 백과 사전
2. 사후(射侯) : 활쏘기에서, 과녁으로 쓰는 베. (사방 열 자 가량이며, 가운데에 둥근 표적을 그렸음)
첫댓글 [3] 자신의 생각과 주제에 관한 논리적 접근이 색다른 글입니다. 잘읽었습니다.
[4] 완벽히 잘된 글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글의 내용에 진실성이 담겨 있고, 본인의 경험을 바탕삼아, 아주 독창적인 인간다움 - 추억, 의미-을 끌어들인 점이 좋습니다. 지극히 감정적이면서도 논리성이 있는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3]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4) 한 편의 좋은 기행문을 읽은 느낌이네요.. 좋은 글에 감사...
[3] 철학과니 이 정도는 당연하다 생각하고 점수를 좀 뺀 거고(사실 이중배열은 좀 얄팍하기도 하고 해서 말이지)... 숙제... 인간이 가치에 집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런데 철학과가 머리 사용하면서 지끈거린다고 말하는 건 좀 웃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