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님!
6개월 전 인가 봅니다.
지난 6월이었으니까요.
눈물 방울이 뚝뚝 번진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다섯 장에 걸쳐서 쓴 그 편지를 읽지 않으려다
일단 봉투를 치익 찢어서 대충 읽었습니다.
그리곤 곧 바로 그 편지를 쭉쭉 짖어서
있는 힘껏 구겨서 쓰레기 통에 집어 넣어 버렸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다시 관계를 회복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입에서 씹던 것도 뱉어 주고 받아 먹던 사이로
다시 돌아 갈 수 없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를 너무 사랑하고 존경하고 곁에서 함께 하고 싶은데
노력해도 제 안으로 도저히 들어 올 수 없어서
스님 곁에 머물며 편지를 쓴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곤 편지를 읽고 나거든 보름 후에 자신을 받아 준다는
증표를 남겨 달라고 했습니다.
병이죠.....
제겐 너무 깊은 병이 있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마음이 다쳤다 싶으면
귀도 닫고
눈도 닫고
입도 닫고
마음은 절벽처럼 깎아 버리고 말죠.
그 사람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들도 알려고 하지 않고
변명도 들으려 하지 않죠.
초하룻날 혼자 명상에 빠졌습니다.
지난 6월의 그 편지가 떠 오르며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못 먹는 술 백 일은 먹지 말라고 하셨지만
전 이미 그 약속 어기려 작정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올 해가 가기 전에 점심을 든든히 먹고
전 화개 장터로 내려 갈 것입니다.
그리곤 오후 3시 쯤 되면 전화를 할 것입니다.
안주를 주문하고
벽소령,세석,반야봉,토끼봉에서 내려 오는 화개 동천의 계곡물과
진안에서 시작 되어 곡성,구례를 지나 온 섬진강물이 만나는 곳.....
시냇물과 강물의 만남이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앉아서
그녀를 맞이 할 것입니다.
처갓집 양념 통닭집 창가에 앉으면 정말 잘 보이거든요.
그리곤 500cc맥주 한 잔 씩 하고서
겨울 해가 일찍 떨어져 땅거미가 지거든
칠불사 가는 막차를 타고 집으로 오렵니다.
스님!
제 소원 이루었잖아요......
밥상 앉아서 받아 보긴 처음이었습니다.
어딜 가나 부엌데기 신세 면하기 참으로 어려운데
스님 제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주신 것 너무 고맙습니다.
비록 지게 지고 나무 해 오는 일을 너무 많이 시켜서
힘들었지만요.....아직도 어깨 쭉지에 피멍이 있습니다.......
2.
작은 스님!
모름지기 친구란.....
나이도,
성별도,
아무 필요가 없지 않는가?
남들은 자네에게 작은 스님부터 선생님까지 다양하게 부르더라만
난 역시 고암,삼포,각궁(覺宮)이라고 부르는 것이 젤 편하다네.
스님이 내 이름 함부로 부른다고 나무라시더라도
게으치 말고 오랜 시간 자네가 나를 소리쳐 불러 왔듯이
그냥 소암이라고 불러 주게.
호칭 때문에 우리 사이 저벅 거리는 것 참으로 우스울 것 같지 않은가?
소암당이니,유정이 모친이니....그 따위 내겐 어색하기만 하다네.
자네를 정말로 존경한다네.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알고
부드러움 속에 감춰진 그 곧은 신조들 다 알고 있구만....
자네에게 빚진 것 있지....
후후후.....그 때 얼마나 행복 했었는지 모르지?
그러고 보면 자네는 바보인지 몰라.
3월 14일 날이라고 사탕을 주고 싶으면
그냥 아무거나 한 봉지 사다 주면 될 것을
호주머니에 있는 돈 몽땅 털어서 싸구려 왕사탕부터 막대사탕까지
다 사 오면 어쩌나.......
아마 그 때 만 이천 얼마였었지?동전까지 다 털어서 사 왔으니 말이야.
청포도 사탕도 있었고 땅콩 사탕도 있었고,복숭아 사탕도 있었고,캬라멜도 있었고....
그 날은 매화가 만개 했었지.
심야에 진주까지 가서 가출한 사람 한 명 잡아서
광양 매화 축제장에 가서 새벽까지 술을 마셨었잖아?
주머니에 갖가지 사탕 가득 넣어 가지고서
쭉쭉 빨아 가며 안주도 하곤 했었는데....
근데 말이야.
새벽에 여자 방문을 그렇게 후딱 열고 들어 서면 어쩌나?
정말 어리버리한 나니까 자네를 용서해 준다.
다짜고짜로 나더러 들어라고?
그 어둠 속에서 자네 얼굴도 안 보이는데 그렇게 급하게 해야 될 말이던가?
새벽 군불 지피다가 갑자기 떠 오른 화두던가?
소암은.....
"사람도 아니고
사람이 아닌 것도 아니고......"
그럼...난 뭐란 말인가?
나란 존재가 없단 말인가?
자네가 던져 준 그 말의 의미....대충은 알지.
나를 돌아 보라는 뜻이겠지.자기 성찰을 할 줄 모르는 여자를 꼬집은 말이겠지.
하지만 여태 숙제일세.
더 열심히 생각해 보고 언제 깊이 이야기해 보자구.
그리고 머리 좀 비우라는 말 명심하며 하루하루 잘 지내겠네.
고암!
자네의 홍익인간 실천하는 그 마음 정말 존경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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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키는 인터넷①』
(≫≪) 미군 희생 여중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