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오는 새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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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태 찾아 갑니다.
<이모네포차... 내리는 봄비에, 봄꽃들이 좋아서 춤을 춥니다>
<보들보들 먹태 속살... 황태덕장에 봄바람이 삐기처럼 파고드는 요즘이 먹태의 제철이지요>
'먹태'라고...
들어보셨나요?
겨울바람 세찬 황태덕장에서...
황태를 만들다가 겨울날씨가 포근해지면 미처 어는 시간을 빼앗겨버린 명태가 속은 황태처럼 노릇하지만 껍질은
거무스름한 빛을 띠게 되는데 이를 '먹태' 또는 '흑태'라고 부른답니다.
바싹 얼지를 못하다 보니 오히려 살결이 촉촉하고 부드러워서 술안주로 제격이지요.
<먹고 튀? ... 먹태? 속살이 촉촉하고 부드러워서 술안주로 제격...>
겨울바람 세차게 불던 황태덕장에 봄기운이 삐끼처럼 파고드는 요즘이 먹태에게는 제철을 만난 셈입니다.
날씨의 변덕으로 만들어졌다 하여서 강원도 산지에서는 ‘바람태’라고도 부른다는 이 먹태가
봄바람에 살랑이던 제 입맛에도 맛바람을 솔솔 넣어줍니다.
<먹태는 청양고추와 마요네즈를 넣은 간장소스에 찍어먹어야 제 맛이다.>
<먹태살에 청양고추를 반지처럼 걸어 먹는 재미... 그리고, 그 맛이 일품>
가늘게 찢은 먹태살에 얇게 썬 청양고추를 마치 반지처럼 걸어서 먹으면 먹는 재미도 있고, 고소한 먹태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지요. 고추소스가 맵다보니 계속해서 손이 가고 또 매워서 또 먹고...
그러다보니 먹태가 맥주와 잘 어울리는 안주라고 합니다.
<먹태는 보통 맥주안주로 잘 어울린다고...>
<저는 막걸리하고 삐딱궁합을 맞추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막걸리하고도 환상궁합이네요>
‘먹태’를 탄생시킨 변신의 귀재... ‘명태’는 그 별칭도 다양합니다.
봄에 잡은 춘태, 가을에 추태, 얼린 동태, 갓 잡은 생태,말린 북어(건태),너무 마른 깡태, 그물로 잡은 망태,낚시로 올린 조태,
동짓달에 잡은 동지태, 새끼 노가리, 강원도에서 잡은 강태, 꾸들꾸들 말린 코다리,말리다가 땅에 떨어진 낙태, 몸뚱이가 부러진 파태, 잘못 말라 속이 망가진 골태, 멀리서 잡은 원양태,가까이서 잡은 지방태, 얼렸다 녹였다 황태, 황태중에도 제일 작은 엥치, 좀 더 큰 소태, 중태, 대태, 특태, 먹태, 흑태, 바람태, 백태 등...
아마 명태처럼 다양하고 재미난 이름을 가진 녀석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명태처럼 다양하고 편안한... 그런 이름이 또 있습니다.
바로... ‘이모’입니다.
엄마같기도 하고 동네 언니같기도 하고 아줌마처럼 보이기도 하다가 때로는 할머니처럼 호통도 칩니다. 삼촌이나 조카가 연상되어 더욱 만만하게 여겨지는 그 이름을 누군가 ‘이모~’ 하고 풀빵처럼 부르면 누룽지로 배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가끔 바람난 바람태 같기도 하다가 정숙한 모습의 여태를 뽐내기도 하는 만인의 연인이자 친구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모네포차’에서는 ‘사장님’이나 ‘아줌마’하고 부르면 못들은 척 합니다. ‘이모~’ 또는 ‘조카~’하고 부르면 기분이 좋아서 서비스안주도 따라옵니다.
<이모네포차에 "아줌마"나 "사장님"은 없다.
.....
"이모~" 또는 "조카~"하고 불러야 한다.>
<명태처럼 편안하고 만만한 이름... 이모네포차~>
<어느덧... 노름판에 밑천 드러나듯... 먹태의 껍질이 드러나고...>
이모처럼 만만한 먹태의 속살을 열심히 찢어 먹다 보면 드디어 ‘먹태’라는 이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껍질이 드러납니다.
아삭아삭 겉껍질의 미각이 이제 먹태를 아껴먹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내줍니다.
황태가 되다 만 먹태의 슬픈운명이 거무스름한 껍질에서 배어나는 듯...
껍질의 뒷맛과 함께, 먹태예찬이 끝나갈 때쯤이면 고 변훈 선생님의「명태」라는 가곡이 생각납니다.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며 춤추며 밀려 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지프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 크~/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짜악 짝 짖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명태~ 헛,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양명문 시)
발표 당시에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다가 나중에서야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이 노래를 저는 좋아합니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가난한 시인의 안주로나마 정체성을 남길 수 있으면 족하다는 명태의 삶은 가히 거룩하기까지 합니다.
<가는 겨울이 아쉬운 듯...>
먹태의 풍미를 맛볼 수 있는 수원의 이모네포차는
정조대왕의 숨결이 어린 화성의 관문 팔달문에서 성곽을 따라 팔달산에 오르는 계단입구 공원 앞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팔달문 롯데리아 뒤...)
지금은 한적한 골목길이 되었지만 정조대왕이 상업부흥의 도시로 만들려 했던 것처럼
예전에는 이 골목에 사람들이 넘쳐났었다고 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의 전설 같은 사연들을 이모네포차 가로등이 오롯이 담아서
늦은 새벽까지 남문의 뒷골목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새벽4시30분..., 이모네포차 가로등이 남문 뒷골목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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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40~50대분들은 이 골목에 추억이 많으실 겁니다.
40대의 마지막 발악, 용띠 신입의 첫 포스팅입니다~~ 잘 봐주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