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름
생활용품․식용․약용…부종에 즉효
▶자기의 별로 돌아가 행복하소서
봄이 오는 길목으로 여름철새들이 돌아오면 겨울철새들은 떠날 채비를 하게된다. 사람 사는 세계에도 돌아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떠나가는 사람도 있다.
여름철새들은 봄이 오면 뱅골만 아라비아연안 인도양 중국 강남지방에서 제비, 두견이, 때까치, 뻐꾸기, 백로, 유리새들이 이 땅을 찾아오고, 겨울철새들은 가을이 되면 알래스카 캄차카반도 시베리아북극권에서 쇠기러기, 청둥오리, 되새, 양진이, 쑥새, 방울새들이 수 천 수 만리를 이동하여 무리지어 이 나라를 찾아온다. 이들은 어째서 그렇게 험하고 먼길을 여행하는 것일까 한철 행복하게 살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여름철새들은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아 기르기 위해 남쪽에서 먼 바다를 건너서 오고, 겨울철새들은 북극의 매서운 추위를 피하여 산 넘고 강 건너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이 땅으로 날아온다. 그리고 남북 극지방을 오가며 봄가을 이 땅에 잠시 머물다가는 나그네 철새들도 있다. 이 철새들은 그 먼길을 어떻게 정확히 때맞쳐 찾아오고 돌아갈 수 있을까. 학자들에 의하면 낮에는 태양을, 밤에는 별자리 위치를 따라 이동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구름과 눈비 오는 날은 이정표 없는 하늘 길에 어디로 갈 것인가. 아마도 이 철새들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자기의 별들이 있어 태어나면서부터 그 별들과 뇌파교신을 하며 길을 찾아 오고가는 예지와 지각을 갖추었으리라 생각된다.
철새들은 왔다가 돌아가는데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돌아갈건가.
소행성에 살던 어린왕자가 여러 떠돌이별들로 여행을 하다가 지구라는 별을 찾아왔듯이 우리들도 은하계의 어느 별들에 살던 생명체가 부모의 몸을 빌어 사람이란 이름으로 철새들처럼 이 땅에 왔으리라. 그래서 히말라야 산기슭 설국雪國의 나라 한 라마 Lama승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이 세상에 왔을 때 나는 울었고 가족들은 축복 속에 웃었다. 그러나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나는 웃을 것이요. 가족들은 슬퍼하며 울 것이다. 참으로 깊은 의미를 전하고 있다. 사람은 분명 생명을 갖고 떠나온 곳이 있고 엄연히 영혼이 돌아갈 곳이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철새들이 이 땅을 찾아왔으나 새끼들을 기르며 행복하게 살다가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때로는 모진 고생도 하고 인간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 잃은 목숨은 얼마였겠는가. 그래서 한이 많아 돌아갈 수 없는 철새들.
홀로 살고파 왔을까
홀로 울고파 왔을까
돌아가지 않는 길 잃은 철새
밤은 깊어서 낙엽은 쌓이는데
흐느끼는 소리만 흐느끼는 소리만.
「길 잃은 철새」유 호 작사 최희준 노래.
이같이 사람도 철새와 다를 바 없지. 한철만 살다 갈려고 이 세상에 왔다가 숙명 같은 악연을 만나 원혼이 된 사람들이 있다. 이승에서 겪은 잊지 못할 슬픈 사연들. 돌아 갈 수 없는 철새들 처럼 풀길 없는 여한과 원한. 그러나 이제는 한마음 접어 이 땅에 미련은 버려서 용서하고. 그리하여 자기의 별들로 돌아가 진정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염원하며 향 하나를 사른다. 「지하철참사:숨진 이들의 넋을 위로하며」
▶차가운 세상에 차가운 으름열매
어름덩굴과에 속하는 어름은 잔잎활엽 목본성 낙엽덩굴식물이다. 다른 나무를 의지해서 갈색덩굴이 얼기설기 감아 올라가며 5m까지 뻗어 자란다. 잎은 긴 잎자루 끝에 타원형의 자잘한 잎 다섯 장이 손바닥을 편 모양으로 모여나기로 달린다. 봄이오면 암자색 꽃이 잎겨드랑이에서 무리져 나와서 한 그루에 암․수꽃이 따로이 피는데 암꽃은 크고 수꽃은 작다.
암․수꽃 다같이 꽃잎은 없고 보라색 꽃받침 조각 3장이 꽃잎같이 보인다. 늦가을에 자갈색의 열매가 6~12cm크기로 익는다.
열매가 익으면 두텁고 부드러운 껍질 한복판이 세로 한 줄로 갈라져 벌어지고 그 속에 잘게 씹히는 씨앗들이 박힌 길둥근 속살이 드러난다. 이 속살에는 달콤한 즙이 많아 과일처럼 맛이 있다. 이러한 열매-두텁고 부드러운 껍질 일자로 갈라진 그 속에 길둥근 말랑한 속살-의 형상을 두고 여성에 빗대어 어름덩굴을 한문별칭 임하부인林下婦人 즉 나무아래 여인라 하여 옛 어른들은 체통을 지키는 체하며 엉큼하고도 기발한 이름을 지어놓았다.
우리의 선조들은 어름덩굴을 식용, 약용, 생활용품 등 여러모로 이용해왔다.
새싹은 볶음나물, 국거리, 묵 나물로 덖어내어서는 녹차를 대용했고 어름열매는 익기 전에 잘게 썰어 박나물처럼 볶아 먹기도 했으며 씨앗으로 기름을 짜면 귀한 식용유가 된다. 으름의 가늘고 긴 덩굴은 질겨서 바구니 망태 노끈과 같은 생활용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어름덩굴을 솥에 넣고 삶으면 갈색 물이 울어나는데 여기에 식초를 용매제로 하여 무명이나 명주를 고운 황색으로 물들였고, 더 진하게 끓이면 황갈색을 얻을 수 있어 천연염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오줌내기의 명약 부종에 즉효
한방에서 어름덩굴뿌리를 목통木痛줄기를 통초痛草, 열매를 연복자燕覆子라 한다. 중국에서는 통증에서 벗어나게 하는 나무란 뜻의 통탈목痛脫木이라했다.
「동의보감」에서는 목통木通이라 기록되어있다. 맛은 맵고 달며 성질은 평하면서 차다. 심포락, 소장, 방광경에 작용한다. 가슴 답답한 열을 내리고 센오줌내기와 달거리를 통하게 하며 젖을 잘 나게 한다. 소염과 억균작용도 있다. 적용질환은 콩팥성붓기, 심장성붓기, 임산후 붓기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몸이 붓는 증세와 신장염, 방광염, 요도염에 즉효한 약으로 쓴다. 동물실험에서 강한 이뇨와 강심효과는 물론 염증을 가라앉히는 작용이 확인되었다. 그 외 기록들에는 청심강화淸心降火, 잔뇨배뇨殘尿排尿, 통유通乳, 통림通淋, 통맥通脈, 통경通經, 활혈活血, 통혈通血, 어혈瘀血, 폐화肺火, 지통止痛, 부종浮腫 등에 쉽게 구할 수 있는 민간 약으로 전통이 깊다.
삶 자체가 그러하겠지만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으름약재도 많이 쓰면 혈압을 높인다.
그리고 임산부에 대한 안정성은 확인되어 있지 않다. 봄여름 여린잎은 나물과 차로 가을 겨울은 줄기를 약으로 채취하여 그늘에 말려두고 쓴다. 하루6~12g 달임약으로 복용.
깊은 산속 계곡에 자라는 쥐방울과의 활엽낙엽 덩굴나무 등칡-목질 덩굴길이10m도 으름과 같은 약효로 쓰이며 오줌내기 작용이 임상실험에서 더 세다고 확인됐다.
이 땅에는 황해도 이남지역의 산야 기슭에 잎다섯장의 5엽으름을 비롯하여 잎여덟장인 8손으름 잎 많은 다엽으름 한국특산이 자생하고 있다.
<艸開山房/oldm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