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image
장만영
병든 하늘이 찬 비를 뿌려......
장미 가지 부러지고
가슴에 그리던
아름다운 무지개바져 사라졌다.
나의 「소년」은 어디로 갔느뇨. 비애를 지닌 채로
이 오늘 밤은
창을 치는 빗소리가
나의 동해(童骸)를 넣은 검은 관에
못을 박는 쇠마치 소리로
그렇게 자꾸 들린다......
마음아, 너는 상복을 입고
쓸쓸히m 진정 쓸쓸히 누워 있을
그 어느 바닷가의 무덤이나 찾아 가렴.
[어휘풀이]
-동해(童骸) : 어린 아이의 뼈
-마치 : 못을 박거나 무엇을 두드릴 때 쓰는 연장으로 망치보다 작다.
[작품해설]
이 시는 이미지스트로서의 장만영의 면모를 잘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전원(田園)의 평화와 동심(童心)의 청순한 시심(詩心)을 간직하고 있던 장만영도 갈수록 혹독해져 가는 일제 치하의 현실 상황에서 더 이상 그 순수성을 지킬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상처 입은 동심은 결국 밝고 건강한 그의 시를 침울하고 절망적인 것으로 변모시킴으로써 절망·허무·비극·암흑 등과 같은 이미지로서의 ‘비’를 노래하게 된다.
1연은 ‘병든 하늘’이 뿌리는 ‘찬 비’를 통해 폐허와 절망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장미’는 사랑을, ‘무지개’는 희망을 의미한다. 2연은 사라져 버린 소년을 부르는 호칭적 진술을 통해 더욱 절망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소년’이 누구를 뜻하는지 알 수 없으나, 1연에서 제시한 암울한 현실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적 배려로 여겨진다. ‘장미’→‘무지개’→‘소년’으로 이어지는 ‘상실’의 분위기는 ‘비애’라는 구체성으로 나타난다. 한편, 2행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행을 단행으로 배치함으로써 그것을 강조한다.
3연은 비의 절망적인 이미지를 통해 화자의 극한적 현실 인식을 보여 주고 있다. 화자는 자신의 방을 ‘검은 관’으로 인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창을 치는 빗소리’를 ‘검은 관에 / 못을 박는 소리’로 생각하는 절망의 극한적 상태에 빠져 있다. 이것은 19세기 말 서구에 등장했던 다다이즘의 정신적 불안과 공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해’는 어린 아이의 시신이라는 뜻으로 2연의 ‘소년’과 관련시킨다면, 그것은 소년이 버리고 간 육신이 되며, 결국 화자 자신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식민지 현실이란 시인에게서 동심의 순수성마저 빼앗아 가 버린 절망적인 상황임을 알 수 있다. 4연은 화자가 자신에게 전하는 위무(慰撫)의 말이다. 사랑과 희망, 소년의 순수까지도 상실해 버린 화자로서는 이미 ‘상복’을 입은 상주(喪主)나 다름이 없다. 그러기에 화자는 자신에게는 ‘너는 상복을 입고 / 쓸쓸히, 진정 쓸쓸히 누워 있을’ 육신이 있는 ‘그 어느 바닷가의 무덤이나 찾아 가’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 시의 찬 비의 이미지는 ‘상실과 죽음’으로 형상화되어 시인의 비극적 현실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소개]
장만영(張萬榮)
초애(草涯)
1914년 황해도 연백 출생
1932년 경성제이고보를 거쳐 일본 미자키 영어학교 rhed과 졸업
1932년 『동광』에 「봄 노래」가 김억에 의해 추천
1937년 제1시집 『양(羊』) 간행
1953년 서울신문 출판국장으로 있으면서 『신천지』 주재
1966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1975년 사망
시집 : 『양』(1937), 『축제』(1939), 『유년송』(1948), 『밤의 서정』(1956), 『한국시집』(1957)
『저녁종소리』(1957), 『그리운 날에』(1962), 『장만영시선집』(1964),
『저녁놀 스러지듯이』(1973), 『양』(1974), 『추억의 오솔길』(1975), 『어느 날의
소녀에게』(1977), 『놀 따라 들불따라』(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