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산의 46% 가진 ‘파워 실버’… 경제 주무르는 큰손으로
[1000만 실버 시대] 美·日처럼 고령 자산가 급증
김은정 기자 입력 2023.07.01. 03:00 조선일보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사는 72세 김종은(여·가명)씨는 약대를 졸업하고 40년째 현직 약사로 일하고 있다. 4년 전까지 직접 약국을 운영하다, 남편과 사별한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아르바이트로 약국에 나가 생활비를 번다. 30평대 마포 신축 아파트와 중형차를 갖고 있으면서 또박또박 연금도 받는다. 직장 생활을 하는 아들·딸보다 김씨가 더 부자라서 노후 걱정은 없다. 그는 “자식들에게 손 벌릴 일 없이 남은 인생 건강하게 즐겁게 살다 가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일러스트=박상훈
그래픽=양인성, 박상훈
그래픽=양인성, 박상훈
본지가 국내 4대 은행에서 만 65세 이상 고객이 가진 예금액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취합한 결과, 평균 27.1%였다. 노인 고객 수는 16.6%에 그치지만, 고액을 맡긴 사람이 많아 예금 비중은 10%포인트 이상 더 높았다. 한 시중은행장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 고령화를 겪고 있는 만큼, 앞으로 금융회사들의 가장 큰 승부처는 고령층 자산관리(WM)가 될 것”이라고 했다.
◇富의 46% 가진, ‘파워 실버’ 등장
우리나라 가계자산의 약 70%를 차지하는 부동산까지 합친 세대별 자산을 따져보면 60세 이상이 가진 순자산이 전체의 46%에 달했다. 2021년 서울연구원이 세대별로 보유한 금융자산(은행 예·적금에 전·월세 보증금)에 부동산과 자동차 등 실물자산까지 조사한 결과다. 1940~1954년 태어난 산업화 세대는 가구당 평균 3억3936만원의 순자산을 가졌고, 1955~1964년 태어난 1차 베이비붐 세대의 순자산은 전체 세대 중 가장 많은 평균 4억966만원이었다. 이들을 합친 노인 세대가 전 세대 자산의 절반 가까이 가진 셈이다.
호텔 뺨치는 실버타운 - 서울시 광진구에 있는 실버타운 '더클래식 500'. 2009년 문을 연 이곳은 보증금 9억원에 관리비 포함 월 500만원 이상의 생활비가 든다. /더클래식 500
이런 경향은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도 비슷하다. 블룸버그와 금융정보회사 CEIC 등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1964년 이전에 태어난 세대가 미국 전체 가계자산의 69%를 가진 것으로 집계됐다. 현재 60세인 이들의 인구 비중은 약 30%지만 전체 자산의 거의 70%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도 2021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 가구가 가진 현금과 예금이 전체의 57.3%(626조엔) 수준이다.
우리나라 노인들이 다른 세대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부를 축적한 것은, 우리나라가 압축 성장하던 때 경제활동 최전선에 있었던 덕분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1975년에서 2022년 사이 우리나라 주거용 부동산 가격은 2318% 올랐다. 같은 기간 일본(107%)이나 미국(1247%) 상승률을 크게 뛰어넘는다. 주가지수(코스피)는 1980년 이후 지금까지 26배 뛰었다.
◇‘파워 실버 잡아라’ 기업들 발빠른 대응
많은 부(富)를 쥔 ‘파워 실버’ 등장에 기업들은 경영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KB국민카드는 최근 연회비 100만원짜리 프리미엄 카드를 출시하면서 ‘의료기관 동행서비스’를 혜택 중 하나로 집어넣었다. 고액 자산가 고객 중 검진서비스 등을 받으러 병원을 오갈 때 도움받길 원하는 수요가 있다고 보고 경쟁 카드 대비 차별화 포인트로 삼은 것이다.
우리은행은 최근 서울 돈암동과 서울 영등포 등 2곳에서 고령층에 특화한 일명 ‘효심(孝心) 영업점’을 열었다. 상담 창구 높이를 낮추고 큰 글씨로 볼 수 있는 ATM(자동화기기) 등을 배치했다. 폰뱅킹으로 모든 걸 처리하는 젊은 층과 달리, 고령층은 여전히 오프라인 영업점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도 서울 신림동에 ‘시니어 디지털 특화점포’를 냈다. 업무 목적별로 바닥에 ‘색상 유도선’이 그려져 있고, 번호표 발행기 화면을 키웠다.
기술 기업들도 대응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연내 출시를 목표로 노인들의 운동을 돕는 ‘입는 로봇’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 렌데버는 VR(가상현실) 플랫폼 ‘알코브’를 통해 홀로 사는 노인들이 멀리 떨어진 가족들과 가상 공간에서 만나 얘기하거나 게임, 여행 등을 하면서 외로움을 줄일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놨다.
이창권 KB국민카드 대표는 “고령자의 학력, 건강, 경제 수준이 크게 높아지면서 이들이 더는 소외 계층이 아니라 핵심 소비 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앞으로 이들을 겨냥해 최적의 상품을 내놓기 위한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했다.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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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75세·왕언니 95세, 셔틀 등하원… “며늘아, 잘 놀다오마”
[1000만 실버 시대] 하루 1만원대 ‘노치원’ 가보니
한예나 기자 입력 2023.07.01. 03:00 조선일보
“엄마, 오늘도 재밌게 놀다 와!” “어머님,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오세요.”
지난 21일 오전 8시 서울 송파구의 한 빌라촌. 12인승 회색 스타렉스 차량이 구석구석 누비면서 원생들을 태웠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이 차에 올라탈 때마다 40~50대로 보이는 중년 여성들이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원생들은 차 안에서 도란도란 수다를 떨었다. 80대 한모씨는 동승한 기자에게 누구냐 묻지도 않고 “손이 차네” 하면서 손을 꼭 잡았다.
원생 7명을 태운 스타렉스는 1시간 후 강동구의 6층 빌딩 앞에 도착했다. 이들이 이날 하루를 지낼 곳은 빌딩 5층에 위치한 90평짜리 어르신 주야간보호센터다. 경증 치매나 노인성 질환이 있는 고령자들을 돌봐주는 민간 시설이다. 그림 그리고 노래 부르고 낮잠도 자고 급식까지 주는 일과가 유치원과 닮았다고 해서 ‘노치원(노인들이 다니는 유치원)’이라고 불린다. 부슬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원생 30명 중 26명이 출석했다.
노치원에선 요양보호사들이 선생님이다. 1교시는 아침 체조. “어르신, 팔을 들어서 쭉쭉 피세요.” 수업 시간에 율동을 따라 하지 않는 ‘불량 학생’을 요양보호사 권혜정씨가 조용히 달랬다. 권씨는 “문 바로 앞에 있는 화장실까지 어르신을 안전히 모시고 가는 것도 중요한 업무”라고 했다.
점심 시간엔 선생님이 음식을 담은 식판을 나눠줬다. 잡곡밥과 호박 새우젓국, 돈육 두루치기, 비름나물 무침 등이 나왔는데, 모두 식판을 싹 비웠다. 치약을 묻힌 칫솔과 양치컵도 선생님이 준비해 줬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강동구의 노인 주야간보호센터 ‘엄마를 부탁해’에서 어르신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아 공을 던지며 실내체육 활동을 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집에서 매일 등·하원... 보호자는 돌봄 해방
오후 1시 30분 실내 체육 시간. 원생들이 팀 대항 공놀이를 했다. 점수판 위로 각자 공을 3번씩 굴리고, 합산 점수가 높은 팀이 이기는 방식이다. 최고점이 나오면 물개 박수를 쳤고, 0점이 나오면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공놀이가 끝나자 미술 시간이 시작됐다. “튤립은 무슨 색으로 칠해볼까요” “어르신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뭐예요?” 가벼운 치매를 앓고 있는 이모(86)씨는 12색 색연필 세트에서 검정, 초록, 갈색을 제외하고 알록달록한 색만 꺼내들었다.
이씨는 이날 새벽 6시에 일어나 하늘색 꽃무늬 셔츠를 골라 입고, 같이 사는 딸의 화장품도 얼굴에 톡톡 발랐다. 이씨는 “전에는 인생이 단조로웠는데 이곳은 내게 오아시스 같다”며 “초등학교를 다시 다니는 기분이 들어 즐겁다”고 했다. 보호자 만족도도 높다. 윤모(60)씨는 “시어머니가 노치원에서 균형 잡힌 식사를 하셔서인지 살도 찌시고 며느리 입장에선 감사할 따름”이라며 “효자도 이런 효자가 없다”고 했다.
이곳 노치원 학생들의 평균 연령은 85세. 왕언니는 95세이고, 막내는 75세다. ‘예쁜이’라는 별명을 가진 막내 김모(75)씨는 “언니들 만나서 농담도 하고 웃다 보면 아픈 것도 싹 낫는 기분”이라며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출석했다”고 했다.
6년째 노치원을 운영하고 있는 손근영 대표는 “노치원에서 어르신들이 규칙적으로 일상을 보낼 수 있어서 보호자들은 걱정을 덜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면서 “일본엔 어르신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다양한 돌봄 시설과 프로그램이 많은데 우리나라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에서 85%까지 지원
노치원은 지난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시행되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모든 국민은 매달 건강보험료에 추가로 장기요양보험료(건보료의 12.81%)를 내고 있는데, 이를 재원으로 건보공단이 노인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고령자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용료는 이용 시간, 노인의 장기요양 등급, 비급여로 시설에서 책정하는 식비와 간식비 등에 따라 달라진다. 보통 하루 8시간 이용 기준으로 하루 식비와 간식비 5000원을 포함한 노치원 한 달 이용료는 120만원대다. 하지만 이용자는 하루 1만원대의 본인 부담금만 내면 된다. 장기요양보험에서 최대 85%까지 지원하기 때문이다. 시설마다 프로그램은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체조·율동 같은 신체 활동과 음악·미술 같은 인지 활동이 많은 편이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주야간보호센터는 어르신들이 집 밖으로 나와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게 해주기에 과중한 가족 부양 부담을 줄여준다”면서 “다만 국가가 운영하는 비율은 1% 미만이고 대부분 민간이 운영 중인데, 이들이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잘 감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예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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