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80911.99099003857

1907년 한국을 방문한 일본 황태자 후에와 기념촬영한 각료들. 우로부터 이등박문, 한사람건너 영친왕과 일본 황태자가 보이고 뒷줄에는 친일파인 조중웅과 이완용(네번째)과 송병준이 보인다. 연합뉴스
이완용은 을사오적의 한 사람이며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최악의 매국노로 불린다.
이완용 가문은 해방 이후 멸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완용 자신도 살아생전 자객의 습격을 받아 생사의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이완용은 공식적으로 승구·항구 두 아들을 뒀다. 하지만 장남이 1905년 요절하면서 차남 항구의 아들인 병길이 가문을 잇게 됐다.
해방 이후 이병길은 ‘반민특위’에 체포됐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견제로 반민특위가 무력화된 뒤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1992년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땅 712평(당시 시가 30억 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내고 승소한 이윤형이 그의 아들이다.
이윤형은 이후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 2002년께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차남인 이항구는 해방 직전은 1945년 3월 숨졌다. 일제 말기라 그의 아들인 이병주가 작위를 물려받았지만 특별한 친일행위가 확인되지 않아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그는 1962년 일본으로 밀항해 귀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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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윤형 노양심? ㅎ
승소????ㅋㅋㅋㅋ그래서 저 이윤형의 자식들도 잘 살고 있다는거?
현실 일본 귀화했지만 재외동포로 차별받고삼 평생 그렇게 조아리고 살아라
일본귀화 ㅋㅋㅋㅋ 친일파 자손이 일본놈 됐네 ㅋㅋㅋㅋㅋ그래 일본서 살어라
환장.. 이게 제일 열받아
와 당시 시가 30억 ...
당시 30억?? 시발....
삭제된 댓글 입니다.
69살까지 장수했음 폐렴으로 죽었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방되기 전에 죽고
@박광득 익산에 묻혔었대 훼손 하는 사건 있어서 일본 순사가 묘 지키고 ^^... 그 이후로도 훼묘 사건 있어서 화장시킴 ㅅㅂ
이 매국노 놈들 ㅡㅡ
노양심 존나게잘설겟ㅈ
승소요?...
승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