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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민 PD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죽음을 무릅쓰고 사랑을 선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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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무릅쓰고 사랑을 선택하다 (daum.net)
죽음을 무릅쓰고 사랑을 선택하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고 ‘도덕 경찰’에게 체포됐다가 의문사한 이란 여성이자 쿠르드족인 마흐사 아미니(본명 지나 아미니) 사건 이후 이란에서는 항의 시위가 폭발하고 있다. 이란 여성들은 히잡을 불태우며 분노하고 있다. 강경 보수 성직자 출신인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의 행보에 반발한 이들도 시위 대열에 합세했어. 이란 전역에서 벌어진 유혈 시위에서 수
v.daum.net
10월2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아미니의 죽음에 항의하는 연대 시위가 열렸다. ⓒAFP PHOTO
죽음을 무릅쓰고 사랑을 선택하다
사우디 미샬 공주는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로 중죄인이 되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 그녀는 세 번이나 자신의 사랑을 외쳤다. 이 사건은 종교와 인간의 보편적 권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고 ‘도덕 경찰’에게 체포됐다가 의문사한 이란 여성이자 쿠르드족인 마흐사 아미니(본명 지나 아미니) 사건 이후 이란에서는 항의 시위가 폭발하고 있다. 이란 여성들은 히잡을 불태우며 분노하고 있다. 강경 보수 성직자 출신인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의 행보에 반발한 이들도 시위 대열에 합세했어. 이란 전역에서 벌어진 유혈 시위에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를 들었을 거야.
이슬람 혁명 이전 이란 여성들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자유와 권리를 향유했다. 학교는 남녀공학이 되었고, 여성의 사회적·정치적 진출도 꾸준히 이어졌다. 하지만 1978년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 여성의 천지는 개벽했어. 혁명 당시 시위대의 절반은 여자였건만 혁명 정부가 발표한 법은 수많은 여성들을 경악시켰다. 법적 결혼연령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9세로 낮춰졌고 법정에서 여성이 한 증언의 법적 효력은 남자의 절반만 인정됐으며, 외출 시에는 반드시 차도르나 히잡을 쓰도록 강제됐다.
1979년 3월7일 이슬람 혁명 정권이 히잡 또는 차도르 강제 착용을 선포하자 다음 날인 3월8일 여성 수천 명이 이란 수도 테헤란에 몰려나와 시위를 벌이며 외쳤다. “우리는 너울을 쓰지 않겠다(〈조선일보〉 1979년 3월9일).” 이후 여성 시위대는 10만여 명까지 불어났지만 혁명수비대의 폭력적 진압이 이어졌고 여성들은 ‘너울’ 속에 그들의 입을 가려야 했지. 그로부터 43년 뒤, 또다시 히잡을 불태우고 머리카락을 자르는 여성들의 시위로 이란이 들끓고 있는 거야. 오늘은 이란 여성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의미에서 인간의 자연스러운 권리를 가로막은 이슬람 율법에 인간적으로 저항했던, 하지만 그 때문에 목숨을 잃은 한 공주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해.
이슬람 율법에 따른 여성 억압이 심한 나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빼놓을 수 없어. 여성들의 운전조차 2018년에야 허용됐고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것은 놀랍게도 2015년이야(최초의 여성 의원 당선은 2019년). 히잡, 차도르 등 여성이 둘러야 할 ‘너울’은 필수품을 넘어서서 생명 유지 장치(?)에 가깝고, 남녀는 철저히 분리되어 자유연애 같은 건 꿈도 꾸기 어려운 나라야.
현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사실상 ‘태조(太祖)’라 할 압둘아지즈 이븐사우드(1875~1953)는 자녀를 무려 49명이나 두었고 그 아들들이 형제 상속으로 지금까지 사우디 왕가를 이어오고 있어. 미샬 빈트 파흐드 알 사우드 공주(1958~1977), 줄여서 미샬 공주는 이븐사우드의 아들이자 이후 여러 국왕의 형이었던 무함마드 빈 압둘아지즈의 손녀로 태어났다.
미샬 공주는 갑갑한 국내를 떠나 해외로 유학 떠나기를 열망했지만 완고한 왕가는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엄청난 밀당 끝에 공주는 그녀가 원하던 나라가 아닌 중동 국가 레바논으로의 출국을 허락받지. 중동 분쟁에 본격적으로 휘말리기 전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는 중동에서는 꽤 자유로운 도시였고 ‘중동의 파리’라는 별명으로 유명했으니 미샬 공주도 그럭저럭 수용 가능한 선택이었을 거야. 일설에 따르면 미샬 공주는 손녀 가운데 자신을 가장 아껴준 할아버지의 힘을 빌려 유학을 성사시켰다고 해.
하지만 베이루트에서 그녀는 주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대사의 조카와 사랑에 빠진다. 이슬람 율법상 이미 그녀에겐 사랑 따위와는 무관하게 정해진 배필이 있었고, 다른 평민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간통 행위였지.
이즈음 찍힌 공주의 사진에는 서구 복장을 하고 자유롭게 춤추는 모습이 담겨 있다. 차도르로 가려버리기에는 그녀의 맵시는 너무나 자유로웠고 히잡 같은 것으로는 그녀의 사랑의 열정을 가릴 수 없었어.
서로를 사랑한 까닭에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인이 된 공주와 그의 연인은 서방세계로의 탈출을 기획한다. 공주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근처의 휴양지 크릭에 머물던 중 자신의 옷을 해안가에 띄워 마치 자신이 익사한 것처럼 꾸몄다. 그 후 남장을 하고 유럽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오르려 했지. 그녀의 연인 역시 여기에 동참했지만 이를 알아챈 사우디아라비아 관리들이 공항에 나와 있었고 연인은 꼼짝없이 체포되고 말아.
가족들이 사우디 공주를 회유했으나
재판 과정에서 공주는 가족들의 회유를 받는다. 연인 칼리드 알 샤에르 무할할의 유혹에 빠진 것일 뿐이라고, 즉 공주가 샤에르를 사랑하여 남자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고 거짓말만 하면 그녀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 하지만 공주는 되풀이되는 질문에 세 번씩이나 단호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간통죄를 범했습니다.” 즉 연인과 함께 죽겠다는 선언이었지. 죽음 앞에서 베드로조차 예수를 세 번 부인했건만 공주는 자신의 사랑을 가로막고 연인의 목숨을 위협하는 이슬람 율법 앞에서 그렇게 세 번 절규했다고나 할까.
왕가의 공주라는 신분도, 유난히 그녀를 아꼈다는 할아버지의 힘도 (오히려 손녀의 처형을 주도했다는 설도 있어), 죽음을 넘어선 사랑의 힘도 그녀를 구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베풀어진 마지막 자비는 투석형, 즉 돌팔매질에 의한 사형을 면하고 총살형에 처해진 것이었어. 그녀의 연인 샤에르는 공주의 죽음을 목도한 후 그녀의 친척(공주의 정혼자나 그 주변 사람)의 칼에 목이 잘린다. 전문 사형 집행인이 아니었던 그들의 칼은 무디기 이를 데 없었고, 다섯 번이나 칼을 쓴 다음에야 사형 집행이 끝났다고 해.
독실한 무슬림이었을 그 연인은 죽음 직전에 ‘인샬라’ 즉 ‘신의 뜻대로’를 되뇌었을 거야. 동시에 그들은 알라, 즉 하느님에게 ‘이것이 정말 당신의 뜻입니까’를 묻고 싶었겠지. 사랑도 교감도 없이 별안간 가족이 정한 사람과 결혼해 사는 대신, 자신의 인생에 빛처럼 들어온 사랑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총에 맞고 칼로 목이 끊겨야 하는 중죄가 되는 현실이 과연 신의 뜻일까 궁금했을 거야. 완고한 이슬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자가 자유롭게 자신의 사랑을 선택하는 것만으로 죽음을 맞아야 했던 건 미샬 공주만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부모가 정해준 신랑감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다른 남자에게 한눈을 팔았다는 혐의로, 집에 남자를 데려왔다는 핑계로 재판은커녕 부모·형제·이웃의 손에 죽어가는 여성이 전 세계적으로 연간 최대 5000여 명에 이른다.
아빠는 이슬람을 존중하고 그 신도들인 무슬림의 권리와 신앙의 자유를 인정한다. 하지만 모든 종교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이 종교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또 어떤 종교의 경전일지라도 모든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인간의 일상을 지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일부 기독교 목사들이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구절을 들고 와서 여성 목회자를 반대하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듯, 1300년 전에 쓰인 경전 구절로 21세기 인간을 단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야만이라고 보기 때문이야.
어떤 종교든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짓밟고 자신의 율법에 따를 것을 강요한다면 그 순간 그 종교의 신성함은 땅에 떨어질 거야. 1977년 미샬 공주가 총을 맞고 쓰러진 순간, 1979년 이란 혁명수비대가 히잡을 거부하는 여성들을 타격한 순간, 그리고 오늘 이란 곳곳에서 히잡이 불타오르는 순간, 그 모든 순간에 그랬듯 말이다.
김형민(SBS Biz PD)
[출처] 시사IN 202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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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길 산길을 거닐며 나무와 풀꽃, 바위, 구름 벗삼아 살아가고 있는 나그네입니다. 다음 블로그에서 이사왔습니다. 이삿짐을 옮기고 있습니다. 저의 주된 관심사는 전공인 생명과학-자연과학입니다(뇌과학, 심리학 포함). 시와 소설, 수필, 그림도 좋아합니다. 이곳은 저의 개인공간이므로 제 삶의 여정도 싣고 있습니다. 인담여국 품청사천 人淡如菊 品淸似泉 국화처럼 담박하고 샘처럼 맑게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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