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상원의원을 지냈으며 2000년 대통령 선거에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유대계 정치인 조지프 리버먼이 82세를 일기로 저하늘로 떠났다.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 관계가 확연해지고 있다. 미국 정치권 역시 양당 제도의 폐해가 극심하게 드러나고 있는 마당에 평생 중도의 길을 걸어온 고인의 떠남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미국 주요 언론들과 영국 BBC 등은 27일(현지시간) 유족 성명을 인용해 고인이 뉴욕 브롱크스 자택에서 쓰러져 맨해튼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끝내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사망 원인은 낙상에 따른 합병증이라고 설명했다.
2000년 대선에서 함께 고배를 마신 앨 고어는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선거운동 내내 그의 곁에 나란히 서 있었음은 영예였다. 미국의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그의 끝없는 노력에 영원히 감사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상원의원 시절 그는 여러 진보적인 정책들을 지지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성적 소수자( LGBTQ)들이 정체성을 숨기고 복무하게 만든 국방부의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정책을 폐기하는 데 힘을 보탠 것이다. 그는 2012년 12월 상원과 작별하는 연설을 통해 "스스로의 경력을 돌아볼 때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입법 성취의 일부가 됐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다수가 공통으로 찾아냈기에 이뤄진 것들이었다"고 돌아봤다.
고인은 평생의 정치관을 지난주 블룸버그 TV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을 정도로 건강이 괜찮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토머스 제퍼슨은 자연 세계에서 태풍이 그렇듯 정치에서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매순간 조그만 정치적 반란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면서 "내 생각에 그는 죽은 숲을 정리하고 싶어했고, 자, 우리의 정치 시스템은 좋은 태풍과 정치적 반란을 당장 필요로 한다고 말하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리버먼 전 의원은 1942년 코네티컷주의 유대인 가정에서 삼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빵집 트럭 운전사 출신인 아버지와 어머니는 교육의 가치와 성공에 대한 야망을 심어줬으며, 그는 1960년 가족 중 처음으로 예일대에 입학했다. 리버먼 전 의원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라"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 연설에 감명받아 공직에 입문했다. 그는 유대인의 코셔 식단을 지키고 안식일엔 선거운동을 하지 않는 등 정통 유대 계율을 엄격히 따랐다.
1967년 예일대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로 일하며 공직 출마 기회를 모색하던 중, 1970년 현직 의원을 꺾고 민주당 소속으로 코네티컷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캠프 자원봉사자 중 한 명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었다. 1978년까지 주 상원의원을 지냈으며, 1983~1989년 코네티컷주 법무장관을 역임했다. 1989년부터 2012년까지 연방 상원의원으로 내리 4선을 했다.
고인은 낙태권, 환경 보호, 성소수자 권리, 총기 규제를 지지한 중도파로 평가된다. 민주당의 정통 노선에서 이탈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특히 외교 정책에 일관적으로 매파 목소리를 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전폭 지지해 당내의 거센 반발을 샀다. 이 때문에 이듬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했고, 2006년 네 번째 상원의원 도전에서 민주당원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같은해 11월 무소속으로 출마, 공화당과 무당층의 상당한 지지를 얻어 4선에 성공했다.
2000년 민주당 대선 후보 앨 고어의 부통령 후보로 나섰지만, 8년 뒤 대선에선 공화당 후보이자 둘도 없는 친구인 존 매케인을 적극 지지했다. 2008년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에선 베트남전 포로 출신인 매케인의 용기와 업적에 찬사를 보냈다. 대신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해선 대통령직을 맡기엔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란 식으로 낮춰봤다.
매케인은 리버먼 전 의원을 러닝메이트로도 고려했지만, 공화당 내에서 그의 민주당 이력과 낙태권 찬성 등 정치적 성향을 문제 삼으며 반발하자 세라 페일린 당시 알래스카 주지사를 택했다. 매케인은 훗날 이 선택을 후회한다고 털어놓았다.
2012년 상원의원 직을 물러난 뒤에도 중도주의 활동으로 여전히 맹렬 민주당원들의 반발을 샀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도 제3지대 단체 '노 레이블스'(No Labels) 공동의장을 맡으며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 말고 대안 인물을 찾자는 캠페인을 이끌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런 움직임이 바이든 대통령의 표를 빼앗는 동시에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탈환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