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주 맛집
반가식 메밀묵 '순흥전통묵집', 인삼·사과·생강 곁들인 '정도너츠' 영남 북부의 독특한 '서부냉면', 질 좋은 고기와 착한 가격 '동남풍'
영주는 경북 북부지방 반가문화의 중심지다. 안동, 영주, 예천 일대는 아직도 반가의 전통이 남아 있고 음식에도 그 전통은 남아 있다.
가장 보수적인 지방 영주에서,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인기 있는 개혁가가 나오기도 했다. 고려시대에 태어나서 고려를 뒤엎은 사람 정도전이 이 지역 출신이다. 개혁가 혹은 혁명가이면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설계한 사람이었다. 한양 도성을 정했고 건국 초기 치세의 원칙을 세웠다. 민본사상을 바탕으로 개혁을 이끌어 조선을 설계했다. 그의 사상적 기반, 조선의 사회를 규정짓는 이론적 기반은 굳건한 유교, 유학이었다.
영주는 태백산맥 끝자락이면서 기차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외부와의 교류도 비교적 쉽다. 이런 지역의 음식은 얼마쯤 혼란스럽다. 전통을 지키는가하면 한편으로는 전통을 무시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서 만들어내기도 한다. 실제 영주 음식들이 그러하다.
흔히 영주의 맛집으로는 '순흥전통묵집' '정도너츠' '서부냉면' '동남풍' 등을 손꼽는다. '순흥전통묵집'은 말 그대로 영주의 전통적인 음식, 반가의 음식 중 하나였던 메밀묵을 잘 만들어내는 집이다. 메밀 음식은 조선시대 반가에서도 사용했던 것이다. 메밀로 국수를 만들면 최고지만 상당히 어려웠다. 제분기도 없고 기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전기가 없었던 시절이다. 국수를 만들 정도로 고운 메밀가루를 얻기는 힘들었다. 역시 묵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도토리묵 대신 메밀묵. 이게 반가 스타일이다.
깨와 김 가루 등이 거슬리긴 하지만 고객들이 원하는 부분이니 탓할 수도 없다. 그나마 고춧가루를 과하게 사용하지 않는 점에서 안심한다. 내부 분위기도 소박한 시골 스타일이다. 크고 작은 방이 여기저기 나뉘어 있고 얼마쯤 두서가 없는 스타일이다. 가을이면 '순흥전통묵집' 인근의 국도변에서 만나는 사과 등을 파는 노점상도 정겹다.
'정도너츠'는 조금 생경스럽다. 반가의 고장에 느닷없는 도너츠라니. 하지만 지금은 행정적으로 영주시에 속하는 풍기는 인삼의 고장이다. 다른 지역보다는 인삼이 비교적 흔하다. '인삼을 넣은 도너츠'는 인삼이 대량 생산되는 곳이 아니면 만나기 힘든 먹거리다. 물론 '풍기 인삼'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 외에도 사과, 생강 등을 넣은 도너츠도 수준급이다. 역전 외진 골목 안의 구 도심에 있었는데 최근 시내 인근의 큰길가에 깔끔한 매장을 새롭게 선보였다. 예전의 협소한 공간과는 달리 도너츠와 더불어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원래 영주, 풍기, 순흥 등은 고려시대 때부터 이름을 바꿔가며 자주 등장한다. 이 3곳은 인근의 안동과 더불어 한때는 같은 지역으로 불리기도 하고 더러는 흩어지기도 했던 인근의 지역들이다. 현(縣)으로 불렸다가 갑자기 도호부(都護府)가 들어서기도 하고 더러는 강등되어 역사책에 등장한다. 영주, 풍기, 순흥은 교류가 잦았던 지역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모두 한 지역이다.
풍기의 경우 주세붕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1543년)을 세운 곳이다. 주세붕은 1541년 풍기군수로 부임했다. 1548년 퇴계 이황이 마찬가지로 풍기군수로 부임한다. 퇴계는 기존의 백운동서원을 국가에 보고, 최초의 사액(賜額) 서원인 소수서원을 세운다. 영주, 풍기 일대를 영남 북부 반가의 고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서부냉면'은 반가의 음식인 '국수'가 냉면의 형태로 등장한 것이다. 현지의 분위기는 냉면집이라기보다는 고기집이다. 질 좋은 고기를 비교적 싼 값에 내놓는다. 그러나 외부 사람들은 영주 풍기에 냉면집이 있는 것에 놀라워한다.
냉면 마니아들은 어떤 경로로 북한음식인 냉면이 영남 북부 산골의 '서부냉면'으로 나타났을까, 라며 혼란스러워한다. '서부냉면'은 북한음식이 아닐까, 라고 오해한다. 실제 한국전쟁 때 북한에서 피난 온 사람이 세운 집이라는 요령부득의 이야기가 떠돌기도 했다. 그러나 평양냉면과는 거리가 먼, 그냥 영남 북부의 냉면집이다. 원래 국수가 흔했던 곳이다. 국수가 귀했던 시절에도 이 지역에서는 비교적 흔하게 국수를 먹었다. 전분이나 밀가루를 섞기도 하고 마치 강원도의 막국수같이 국수를 흔하게 먹었다. 국수에 대한 이런 전통이 '서부냉면'을 가능케 한 것이다.
국물로는 진한 닭 육수를 사용한다. 다른 지역의 쇠고기, 돼지고기와는 다르다. 막국수의 동치미와도 다르다. 다만 닭고기 냄새의 진한 육수 맛이 메밀 향을 가리는 게 아쉽다.
'동남풍'은 고기전문점이다. 육회와 생갈비 등을 내놓는다. 이상적인 음식점, 백년식당을 꿈꾼다. 젊은 주인이 알음알음 어렵게 공부해가며 제대로 만든 좋은 음식, 착한 음식을 만드는 중이다. 늘 좋은 재료를 찾아 헤맨다. 매일 써는 고기인데도 칼질 하나까지도 고민한다. 그릇도 유기와 사기그릇을 사용하고 참기름의 짙은 냄새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육회는 칼질이 제대로다. 이른바 직각 썰기가 신선하다. 갈비는 정성스레 지방부위를 발라서 내놓는다. 육회는 신선함이 돋보이고 갈비는 이미 많은 지방 부위를 제거해서 무게가 제법이다. 같은 1인분이더라도 다른 식당의 그것보다는 실하다. 가격도 착하다. 손이 많이 가는 밑반찬도 하나하나 허술함이 없다. 청국장은 압권이다. 쿰쿰한 냄새가 진동하는, 제대로 된 예전의 청국장이다. 식당 주인의 칼솜씨도 좋지만 뒷받침하는 어머니의 찬찬한 음식 솜씨도 일품이다. 진정성이 돋보인다. 주인장의 어머님이 직접 만드는 밑반찬 하나에도 허술함이 없다.
주간한국 /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 |
첫댓글 와 맛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