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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가는 길
百折縈廻鳥道通 구불구불 험한 산길 이어진 좁은 길
梵宮隱約積林中 절은 깊은 숲속에 숨겨져 있네
四圍巉險峯全石 사면은 가파르고 산봉우리는 온통 바위뿐
一望紅明樹盡楓 바라보니 붉은 단풍 숲 다함이 없네
縱乏山門留玉帶 절은 벼슬아치가 머물기 부족하지만
且將名字待紗籠 장차 이름이 알려지기를 기다리네
更要老釋期重到 노승은 또 오라고 재차 기약을 청하니
笑登山花二月紅 웃으면서 꽃 피는 내년 2월을 기약하네
―― 탄재 이중하(坦齋 李重夏, 1846~1917), 「용문사에 노닐다(遊龍門寺)」
▶ 산행일시 : 2020년 11월 7일(토), 맑음, 미세먼지 나쁨, 포근한 입동
▶ 산행인원 : 5명(더산, 캐이, 토요일, 제임스, 악수)
▶ 산행시간 : 8시간 20분
▶ 산행거리 : 도상 14.5㎞
▶ 갈 때 :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 열차 타고 용문 가서, 군내버스 타고 용문사 입구
주차장으로 감
▶ 올 때 : 용문사 입구 주차장에서 군내버스 타고 용문에 와서, 무궁화호 열차 타고
청량리역에 옴
▶ 구간별 시간
07 : 05 - 청량리역(07 : 45 용문 도착)
08 : 52 - 용문사 입구 주차장, 산행시작(08 : 58)
09 : 24 - 용문사
10 : 15 - 용각골 마당바위
11 : 18 - 용문봉 능선 진입
12 : 00 ~ 12 : 43 - 963.5m봉 직전, 점심
13 : 03 - 963.5m봉
13 : 45 - 문례봉(汶禮峰, 폭산 暴山, 천사봉, 1,002.5m)
14 : 24 - △735.3m봉
15 : 03 - ┣ 중원산 갈림길(770m봉)
15 : 42 - 768.3m봉
15 : 46 - ╋자 갈림길 안부, 이정표(중원산 0.73km)
16 : 00 - 785.0m봉
16 : 10 - 중원산(中元山, △801.9m)
17 : 18 - 용문사 입구 주차장, 산행종료
19 : 55 - 청량리역, 해산
1-1. 용문산 지도
1-2. 중원산 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중원산이 남릉의 799.8m봉이다)
▶ 문례봉(汶禮峰, 폭산 暴山, 천사봉, 1,002.5m)
용문을 가는 데 차츰 꾀가 생겼다. 상봉에서 지하철을 타곤 하던 것을 청량리에서 무궁화호
기차를 타는 것이다. 상봉에서 용문까지 지하철로는 17개 역을 경유하고 1시간 10분이 소요
되며 요금은 2,150원이다. 청량리에서 무궁화호 기차를 탈 경우 2개 역(덕소, 양평)을 경유
하고 40분이 소요되며 요금은 3,800원이다. 지하철은 무엇보다도 17개역이나 경유하니 지
루하기 짝이 없다.
용문역사 앞에서 용문사 입구 가는 군내버스는 약 30분마다 운행한다. 용문산을 혼자 갈 때
에는 10분 이상을 기다리지 못하고 택시를 타는데, 오늘은 5명이나 함께 가고 막바지 가을
단풍구경을 하자고 사뭇 느긋하여 군내버스를 탄다. 미세먼지가 매우 심한 날이다. 한편 단
풍구경에는 좋은 날이다. 가을은 산골짜기에 몰려 있을 테고, 날이 맑다면 첩첩 산 조망을 놓
치게 될 아쉬움을 덜었으니까 말이다.
캐이 님과 토요일, 제임스 님은 용문사 입장료(대인 2,500원)를 내기가 억울하여 유격훈련
장이 있는 산등성이로 돌아가고, 더산 님과 나는 경로우대 무료라 대로로 간다. 매표원은 무
료입장권을 주지 않고 검표원에게 바로 가시라고 한다.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하지 않는 게
약간은 섭섭하다. 어느덧 반백의 형색이 신분증이 되어버렸다.
용문사 가는 길. 용문산과 용문사를 읊은 여러 시비(詩碑)가 발길을 붙든다. 그중 이곳 용문
사람인 겸재 양창석(謙齋 梁昌錫, 1909~1983)의 ‘용문팔경’ 시가 눈길을 끈다. 이 큼직한
돌을 비로 세우느라 얼마나 무진 애를 썼을까 궁금하다. 겸재는 제1경으로 「용문사 새벽 종
소리(龍門寺曉鐘)」를 들었다. 언젠가 용문사에서 템플 스테이를 하던지 새벽에 와 볼 일이다.
北寺長鳴祭佛鐘 북쪽 절에는 예불 올리는 종소리 길게 울리어
醒來萬像曙光濃 잠깨어 보니 만 가지 형상은 새벽빛이 짙구나
疎星点点風廻樹 별빛은 여기저기 보이고 바람은 나무숲을 감돌고
宿霧沈沈月在峰 새벽안개 자욱한데 산봉우리에 달만 걸쳐 있네
일주문을 지나면 대로 양쪽에 늘어선 노송이 천년고찰인 용문사의 품격을 한껏 높인다. 노송
아래 걸음걸음이 수행의 그것이다. 대로 아래 용각골 계류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 염불을 멈
추고 동안거에 들었나 보다. 주변의 가을은 색조가 바랬다. 잿빛이다. 어찌 보면 경건하고 어
찌 보면 스산하다. 송풍기 맨 인부는 무심히 낙엽 쓸어 가을을 몰아낸다.
용문사 입구 주차장에서 곧장 용문봉 능선을 오르지 않은 건 1,100년 세월의 용문사 은행나
무를 보기 위해서기도 했다. 며칠 전부터 샛노랗게 단풍이 든 화려한 모습을 제발 볼 수 있기
를 기대했다. 그런데 이미 잎이 다 지고 말았다. 앙상하다. 그러고 보니 해를 거르지 않고 알
현했지만 그때마다 늦었다. 내 게으름을 탓할 일이다.
용각골을 간다. 왼쪽 지능선을 한 피치만 오르면 조망이 트이는 용문산 남릉에 이르겠으나
미세먼지가 심하여 지척도 흐릿하여 적이 마음이 놓인다. 돌길이다. 우리가 만드는 길이 아
니라 남의 길이라 걷기 팍팍하다. 더구나 포근한 입동이다. 금세 땀난다. 사진은 발로 찍는
거라며 가늘어진 계류의 실폭마다 들여다보며 해찰한다.
용각골도 따지고 보면 협곡이다. 등로 양쪽이 바위절벽투성이라 한 걸음도 낙석위험에 자유
롭지 않다. 위를 올려다보지 말 일이다. 마당바위. 용문산의 명소다. 너른 암반은 먼저 오른
등산객들이 차지하였다. 우리는 그 옆의 식탁바위에 둘러앉는다. 캐이 님이 광어회를 가져왔
다. 어찌 맨입으로 먹을 수 있겠는가. 맨입은 광어에게 예의가 아닐 것. 이미 금간 사발이 깨
진들 대수일까. 산중 금주를 또 유예한다.
2. 일주문 지나 용문사 가는 길, 노송이 아름답다.
3. 일주문 지나 용문사 가는 길
4. 용문사 가는 길
5. 용문사 아래 용각골
6. 용문사 가는 길의 산자락
7. 용문사 아래 용각골
8. 용문사 은행나무
마당바위를 지나면 잘난 주등로는 왼쪽 사면을 오르고 우리는 인적 흐릿한 용각골을 직진한
다. 더산 님과 캐이 님은 이전에 몇 번 오간 용각골이지만 나는 처음 가는 길이다. 너덜길이
다. 암릉 암봉을 오르듯 기어오른다. 이렇게 골짜기의 아기자기한 너덜을 더듬다보면 능선
길은 여간 무미건조하지 않아 골짜기 산행에 맛을 들이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Y자 골짜기와 만나고 문례재가 가까운 오른쪽으로 간다. 점점 더 가팔라지는 너덜이다. 각자
도생이다. 흩어진다. 나는 직진하여 잡목 숲을 뚫는다. 무릎이 까이도록 낮은 포복한다. 엷은
지능선을 잡는다. 성긴 잡목을 붙들어 늑목 오르듯 한다. 암벽과 맞닥뜨린다. 암벽 밑자락을
오른쪽으로 돌아 얕은 골짜기로 내린다. 그리고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오르막이다. 되게 미
끄럽다. 일보 전진하려다 이보 후퇴하기 일쑤다.
용문봉 능선에 올라서고 배낭 벗어 가쁜 숨을 고른다. 이쯤이면 열린 하늘 남쪽으로 조망이
트일 법한데 온통 뿌옇다. 물론 양평의 마스코트인 추읍산도 감감하다. 옛 문인들도 용문산
에 올라 조망하기를 즐겼다. 그때는 미세먼지가 전혀 없었겠지만 그래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
로 멀리까지 조망하였는데 나는 심안으로도 불감당이다.
창계 임영(滄溪 林泳, 1649~1696)의 「백운봉 등유기(白雲峯登遊記)」에 따르면, 그는 용
문산 백운봉이 험하여 차마 그 정상에는 오르지 못하고 백운봉 아래에서의 조망을 다음과 같
이 적고 있다.
“내가 본 것 중에서 작고 가까운 것은 생략하더라도 멀리 있고 큰 것을 들면 다음과 같다. 원
주의 치악산과 호서의 속리산, 영남의 조령 등이 그 동쪽에 있고, 연산(連山)의 계룡산과 천
안의 광덕산(廣德山)이 그 남쪽에 걸쳐 있으며, 송도 (개성)의 천마산ㆍ성거산ㆍ송악산이
서쪽에 우뚝 솟아 있으니, 이 산이 그 중앙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이에 근거해서 알 수 있다.
그 외에 종종 멀리 푸른 산 빛을 비스듬히 드러내고 있으면서도 딱히 가리켜 말할 수 없는 것
들, 즉 네 고을의 여러 산과 같은 것들은 다 볼 수는 있었으나 높고 큰 명산이 없어서 알 수가
없었다.”
주) 네 고을은 여러 자료를 살피면 청풍, 단양, 영춘, 제천으로 보인다고 한다.
운양 김윤식((雲養 金允植, 1835~1922)은 어려서 부모가 돌아가시자 양근(양평의 옛 지
명)에 사는 숙부 청은군(淸恩君) 김익정(金益鼎)에게 의탁하여 성장하였는데, 그가 25세 때
인 1855년 여름에 비호령(飛狐嶺)을 넘어 상원암, 설암, 윤필암을 오르고 거기서 본 조망을
「윤필암원망기(潤筆庵遠望記)」에 다음과 같이 남기고 있다.
“호수 이남은 시력이 미치는 곳이 희미하고 아득하였다. 다만 이어져 있는 뭇 산이 개미 언덕
이나 무덤 모인 것처럼 보였고, 간간이 명산과 거악(巨嶽)이 불쑥 솟아나와 있었는데 마치
격랑 속에 서 있는 바위 같았다. 산승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어느 것은 어느 주의 진산이고
어느 것은 어느 강의 지류인지 내게 알려주었다. 이름을 들으니 모두 전에 보고 싶었으나 보
지 못한 것들이었는데, 영남의 소백산까지 이어졌다. 여기 밖으로는 안개와 구름이 자욱하게
끼어있고 하늘과 닿아 있어 눈으로 다 볼 수 없는 곳이요, 마음으로 상상할 수도 없는 곳이었
다. 소백산에서 여기까지 거리를 계산하니 칠백여 리였다.”
우리는 용문산 가섭봉의 가까운 남릉만 보고 물러난다. 잘난 능선 길을 가지 않고 문례봉을
일직선 그어 간다. 딴은 향긋한 더덕 손맛을 볼 수 있을까 해서다. 오지를 만들어 간다. 잡목
숲 생사면을 내려 돌다가 골로 가고 다시 잡목 숲 사면을 골라 누비다 능선에 오른다. 능선에
서면 차가운 북풍이 몰아치는 겨울이다.
천사봉. 문례봉 또는 폭산을 양평군에서는 ‘천사봉 1,004m’이라 한다. 그러나 국토지리정보
원의 지형도에는 산 이름 표시가 없고 표고는 1,002.5m이다. 우리는 천사봉을 양평군의 의
도대로 ‘天使峰’으로 새긴다. 올 때마다 우리를 기쁘게 하니 작명이 참으로 적절하다. 오늘
저녁에 먹을 만큼만 거둔다. 캐이 님은 자기의 더덕농장에서 또 분탕질했다고 내심 분해 하
지나 않을까?
9. 용문사 은행나무
10. 마당바위 가는 길의 용각골
11. 용각골
12. 용각골 상단
13. 문례봉(폭산, 천사봉, 1,002.5m)에서, 제임스 님
14. 용문산 가섭봉
15. 한강기맥과 도일봉
▶ 중원산(中元山, △800.4m)
천사봉 내려 중원산을 향하는 발걸음이 사뭇 가볍지만 등로 사정은 다른 어떤 때보다도 사납
다. 길고 가파른 내리막에 햇낙엽이 수북하니 심설보다 더 미끄럽고 해서 더 조심스럽다. 심
설 러셀은 그 자국으로 뒷사람의 발걸음이 한결 편하기 마련인데 이런 낙엽 러셀은 아무런
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그간의 누적한 인적은 낙엽에 덮였고 저마다 새로이 길을 낸다.
몇 번 주르륵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나서는 잡목 붙들고 더듬거리며 내린다. 진땀나게
긴 내리막은 △735.3m봉에서 주춤하다가 다시 급전직하한다. 중원산 능선길이 반공을 차지
한 장벽이다. 문례봉을 내리면서 길 저축하려고 내 나름 서둘렀는데 뒤따라오는 더산 님이
중원산으로 냅다 빼라고 주문한다. 더산 님은 캐이 님이 도중에 탈출할 것을 감지하고 미리
차단하고자 했지 않았을까?
혼자 가는 산행이 되고 만다. 금방 뒤따라오려니 하고 잰걸음 한다. 중원산 갈림길인 770m
봉을 오르는 길은 무척 힘들다. 낙엽에 덮인 인적을 알아볼 수 없어서 암릉 암봉을 꼬박 오르
고 내린다. 비지땀 쏟아 오른 중원산 갈림길에서 배낭 벗어놓고 기다리지만 바람이 차서 오
래 기다릴 수도 없다. 바람결에 일행들의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환청이었다. 적막강산이다.
770m봉에서 중원산 가는 길은 짜릿한 암릉 암봉을 자주 만난다. 봉봉 오르내리는 굴곡도 꽤
심하다. 슬랩은 낙엽 쓸어 발판 만들어가며 오르고 내린다. 816.5m봉(김형수의 『韓國400
山行記』에서는 ‘중원산’이다)을 길게 내린 안부는 ╋자 갈림길이 나 있다. 이정표에 중원산
0.73km이다. 암봉 4좌를 넘어야 한다. 가파른 데는 핸드레일 밧줄이 달려 있다.
중원산 직전의 785.0m봉은 오늘 산행 최고일 뿐이 아니라 드문 경점이다. 백운봉, 장릉, 가
섭봉, 용문봉, 문례봉, 용조봉이 농담의 실루엣으로 보인다. 가경이다. 숨 돌리고 한 피치 더
가면 너른 헬기장인 중원산 정상이다. 이정표에서 ‘용문산(주차장) 4.08km’이다. 더산 님과
통화한다. 캐이 님과 함께 조계골로 하산 중이란다. 제임스 님더러 나를 따라붙으라고 했단
다. 뒷배가 든든하다.
핸드레일 밧줄 잡고 바윗길을 내린다. 중원산 정상에서 22분 걸려 야트막한 안부인 ┣자 갈
림길이다. 직진은 인적이 없을뿐더러 목책으로 막았다. 오른쪽의 엷은 능선은 낙엽 쌓인 돌
길이다. 목장갑이 타는 냄새가 나도록 핸드레일 밧줄을 잡고 내린다. 능선은 조달골에서 맥
을 놓는다. 조금 더 가서 용계골과 만난다. 불통이던 전화가 트인다. 일행 모두 내려왔단다.
토요일 님과 제임스 님도 함께 도중에 탈출했다.
줄달음한다. 혹시 내 발걸음을 붙잡을 가을도 저물었고 오늘도 저물었다. 유격훈련 연병장
앞을 지나는데 빈 택시가 간다. 방금 전에 통화할 때 캐이 님이 내가 버스시간에 늦을 것 같
지만 기다리겠다고 했다. 저 택시를 타고 용문으로 갈까 잠깐 망설인다. 나 때문에 일행들이
버스를 놓치게 해서는 안 될 일. 일행들더러 먼저 버스 타고 가시라고 할까? 그만 둔다.
신점 마을 고샅길을 돌아 대로와 만나고 용문사 입구 주차장이다. 일행들은 가게 탁자에 앉
아 캔맥주로 목을 축이고 있다. 나도 낀다. 용문 가는 버스는 아직 오지 않았다.
16. 도일봉
17. 멀리 왼쪽은 백운봉, 오른쪽 앞쪽부터 용조봉, 용문봉, 가섭봉
18. 멀리 왼쪽은 용문산 가섭봉, 그 앞은 용문봉, 맨 오른쪽은 문례봉
19. 앞에서부터 용조봉, 용문봉, 가섭봉
20. 용계골
첫댓글 보통사람들은 전철타고 가는 용문역 기차타고가시는 대단한 분들은 어떤산행할까 궁금했는데...ㅋ
만추의 산행. "내 발걸음을 붙잡을 가을도 저물고." 너무 아름다운 표현이라 눈물 날 것 같아요.
늦가을을 꼭 붙들고 싶은 나날들입니다...오지는 안가 시지만 더 오지같은 산들을 다니시네요^^
거기에 그게 늘 있어주는 용문산이 명산이네요. 굿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