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비옥한 외 1편
장대성
앞서 걷는 너에게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
이쯤이면 지나친 것 같은데 생각할 때마다
손을 들어 더 높은 곳을 가리키는
우리는 산을 오르고 있다
네가 십 년 전에 묻은 슬픔을 꺼내러
제 몸을 칭칭 휘감은 채
쓰러져 길을 막는 당나무
전생에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은
당나무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자신의 몸을
빙빙 도는 거라고
내가 말할 때 너는 걸음을 멈췄다
우리에게 일정한 간격이 있어야 한다는 듯
너를 따라 나도 제자리에 서서
여기야?
너는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서 내내 울었어
조금 더 안쪽으로 가기 위해 넓어지는 보폭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등은 가깝고
발목에 스치는 수풀 그것이
간신히 붙잡은 옷깃을 놓친 소리처럼 들려올 때
거대한 당나무 옆에서
소매를 걷어 올린 네가 땅을 파기 시작한다
나는 그 옆에 앉아 흙을 손에 쥔다
차갑고 부드러워
죽은 사람의 뒷덜미를 쓸어내리는 것 같다
흰 천에 덮인 사람의 형체는
우리가 한참을 오른 설산의 능선
발을 내딛기도 전에 허물어진 경사
추위에 얼어붙은 손끝은 일렁이는 불에
녹아 흐르다 뚝뚝 물을 떨어트렸는데
깊은 산 속에서 사람을 생각하면 안 돼
옹달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토끼의
붉은 눈을 바라봐선 안 돼
어떤 기억은 다른 기억 모두를 휘감아
머릿속에 메아리를 만들고
흙을 쥔 손의 힘이 서서히 풀리는 동안
나는 멍했다 머리 위로
까치가 높게 날아올랐다
너는 분명 슬픔을 묻어두었는데
뼈가 되었다고
하얗고 단단해서 마음과 비슷하다고
구덩이 안에 들어가
누군가의 갈비뼈쯤 되어 보이는 것을
흔들고 쓰다듬으며
이리로 좀 와 보라고
내게 손짓하고 있다
나중에 다시
장대성
커튼을 열기 전까지
방에 어둠이 맺힌 것을 몰랐다
빛을 물방울처럼 떨어뜨리는
식물의 잎이 연약하다
세수를 해도
씻겨나가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어
이를 닦으며
거울 속에 묻은 나를 손등으로 문지르면
뽀드득 소리가 나
유리는 지울 때 가장 선명해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꿈을 꾸고 깨어나
곧 죽을 사람을 사랑하는 영화를 봤다
내가 뒤척인 방향으로 빛이 들어와
등이 머문 자리를 훑고 간다
밥을 먹기 위해 칼을 든다
양상추와 토마토를 냉장고에서 꺼내 자르고
화분에 물을 주고
빛이 드는 의자 반대편에 앉아
밥을 먹는다
의자는 밝아 보인다 내가 앉을 때면
삐거덕거리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췄는데
지금은 그냥 밝아서
티브이를 틀고 뉴스로 채널을 돌린다
처음 나오는 내용으로
하루의 운을 정했다
오늘은 사람이 죽었네
평범한 날이겠구나
청소기를 돌리고
널어둔 빨래를 걷는 동안
등이 따뜻했다
혼자서 혼자의 일을 할 때
등이 밝아지는 거 같았는데
돌아보면
돌아본 나의 앞모습만 남아 있었다
거의 다 말랐구나
빛이
잎 끝부분에 걸쳐 있다가 바닥으로
창문 바깥으로 되돌아가고
화분 앞에 앉아
벽에 기대어 졸다가
눈이 부셔서 일어났다
커튼을 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방
어둠, 어둠 하고 읊조린다
약력
1998년 광주광역시 출생
2024년 계간 《파란》 신인상 시 부문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석사 과정
카페 게시글
애지의시인들
우리 젊은 시인들: 장대성의 높고 비옥한 외 1편
애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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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4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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