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이끈 예술 이론
1900년을 넘어가면서 시회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1900년 시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어렵더라도 예술 이론도 조금 알면 도움이 된다.
이때, 오스카 와일드로 대표되는 유미주의가 나타난다. 유미주의에 의하면 예술은 사회 가치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고,‘예술은 스스로 독립하여 완전한 형식을 갖는다.’는 것이다. 사회 가치관 따로, 예술 따로라는 것이다. 예술을 사회 가치관으로 평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부딪히는 문제는 성(性)이었다. 미술을 독립된 분야라고 평가하면서 ‘그림이란 線과 色으로 구성되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하였다.(시시콜콜하게 철학적, 도덕적 문제를 들고 나오지 말라는 뜻이다.)
이때 소설에서는 성애소설(性愛)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미술에서는 누드 가 비난받았다.(밀레) 엘리트 계층은 이런 작품들이 노동자 계급을 타락시킨다고 하였다.
유미주의는 상징주의로 나아가게 했고, 추상미술이 나타나는 배경이 되었다. 클림트의 경우에서 미술의 충돌 문제를 보게 된다.
또 하나는 자연주의 이다.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의미이지만 에밀 졸라에서 보듯이 소설은 현실의 참 모습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내용이 되면서, 역시 성을 다루었다. 어쨌거나 현상 너머의 본질을 보여준다면서 상징주의 그리고 다시 추상미수로 나아간다. 상징 미술은 지시 기능이 아니라 암시 기능이라고 말하였다. 유미주의는 ‘순수’로 나아감으로 감흥을 이끌어 낸다는 것이다.
이때 유행한 자연주의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면서 상징주의와 반대편에 해당한다. 자연주의가 주로 다루는 주제(소설에서)는 성이었다. 성적인 표현은 예술의 독립성으로 설명했고, 성적 주제의 소설이 시민-대중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다. 누드 미술도 양면성을 지닌다.(토마스 하디의 테스도 성애를 다룬 소설이라고 한다.)
(사회가 性에 엄격하였으므로 사회 가치와 삐딱하게 나아가는 것을 예술의 독립이다 카면서)
성 해방은 여상 해방과 맞물리면서 사회 문제화 한다. 변화를 이끈다는 명목으로 일반 시민들도 성 앞에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재미 있는 사실은 성 문제에 이론을 제공한 사람이 프로이트이다 성적 해방이 터져나오면서 강박관념에서 벗어난다고 말하지만 정신질환자가 더 늘어났다는 것은 아이러니 이다.
1900년을 넘어가면서, 변화, 변화를 부르짖은 이면에는 제공되는 미술이론이 있었다. 가장 강력하기로는 프로이트 이론이었다.
1900년 대에 나타나는 미술과 연관성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