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슈거’니까 마음껏?…안심하면 안 되는 이유
‘제로 슈거(무가당)’ 소주인 하이트진로의 ‘진로’(왼쪽)와 롯데주류의 ‘새로’.
최근 탄산음료와 이온음료, 과자, 아이스크림은 물론 소주·맥주 같은 주류까지도 ‘제로 슈거(zero sugar·무가당)’ 열풍이 불고 있죠. 기왕 먹을 것이라면 당류가 첨 가되지 않은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습니다.
당류가 단순히 살만 찌우는 것은 아닙니다. 당류를 과잉 섭취할 경우 기억력의 중추인 해마의 기능을 저하시키고 신경전달물질 교란을 일으켜 치매 발생 위험 이 높아집니다. 특히 설탕과 같은 단당류는 혈중 포도당 농도를 급격하게 올리 고 내려 심혈관계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후천성 당뇨병이나 다양 한 암 발생 위험도 커지죠.
이렇게 건강에 좋지 않은 설탕을 굳이 먹지 않고도 단맛을 즐길 수 있다면 제로 슈거 제품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예컨대 동일한 양의 탄산음료를 먹는다고 가정하면 일반 탄산음료 대신 제로슈거 탄산음료를 먹으면 당류 섭취 로 인한 질병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탕을 대신해 단맛을 내는 데 사용되는 아스파탐 등 감미료들은 대부분 체내에 흡수되지 않고 배출되기 때 문에 건강상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제로 슈거니까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가공식품을 더 많이 섭취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설탕을 다량 함유한 제품의 경우 오히려 과잉 섭취 에 대한 소비자들의 경각심은 높은 편이지만, 제로 슈거 제품에 대해서는 일종 의 죄책감이 덜한 만큼 더 쉽게, 더 자주 소비하게 된다는 것이죠. 가공식품에는 꼭 당류가 아니더라도 유화제 등 과잉 섭취 시 몸에 무리를 줄 수 있는 식품첨 가물이 함유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주류의 경우 ‘제로 마케팅’이 알코올 섭취를 부추긴다면, 당류 섭취 감소로 인한 건강상의 유익보다 알코올 섭취로 인한 건강상의 해악이 더 크다고 할 수 있겠죠.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술을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하 고 있습니다.
과도한 가공식품 소비는 균형 잡힌 영양 섭취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각종 영양 성분을 골고루 섭취하려면 다양한 식재료를 각 특성에 맞게 조리해 섭취해야 하 는데 가공식품의 경우 대부분의 영양성분이 탄수화물, 지방 등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죠. 포만감을 주는 가공식품은 정량의 식사를 하지 못하게 합니다. 결국 건강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공중보건대학 연구진은 탄산음료와 과자, 냉동식품, 레토르트 식품, 아이스크림 등 공장에서 바로 먹을 수 있도록 가공돼 나온 ‘초가 공식품’ 소비가 10% 증가할 때마다 암 발병률이 2% 증가하고, 암 사망률 역시 6%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난 2월 국제학술지 ‘e클리니컬 메디신’에 발 표했습니다. 특히 초가공식품 소비가 10% 늘어날 때 난소암 발병률은 19%, 난 소암 사망률은 30% 높아져 가장 큰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 이는 영국 내 19만 7426명의 식습관과 질병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최근에는 걷잡을 수 없는 제로 슈거 열풍에 세계보건기구(WHO)도 제로 슈거 제품은 건강상의 유익이 없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WHO는 지난 15일(현지시 간) 발표한 ‘비설탕 감미료(NSS)에 대한 가이드라인’에서 체중을 조절하거나 비 전염성 질병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NSS를 사용하지 말 것을 권장했습니다. 이 는 NSS가 들어간 제로 슈거·제로 칼로리 식품 관련 최신 연구 283건을 검토한 결과입니다. NSS에는 아스파탐, 사카린, 수크랄로스 등 인공감미료와 스테비아 등 천연감미료가 모두 포함됩니다.
WHO는 “이번 검토 결과는 장기간의 NSS 섭취로 인해 제2형 당뇨병과 심혈관 계 질환, 성인 사망률의 위험 증가와 같은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이 있을 수 있음 을 시사한다”고 밝혔습니다. 프란체스코 브란카 WHO 영양·식품안전국장은 “NS S는 영양가가 전혀 없다. 건강을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식단에서 단맛을 완전히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반 탄산음료나 제로 슈거 탄산음료나 결국 같은 가공식품으로 영양적 가치가 없다는 점에서 서로 다를 바가 없고 설 탕을 뺐다고 해서 비만, 당뇨병 등 가공식품의 만성질환 유발 위험이 없어지는 건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시중 가공식품에서 많이 쓰이는 NSS 중 하나인 에리스리톨이 심혈관계 질환 발 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미국 클리블랜드클리닉 연구팀은 미 국과 유럽의 성인 4000명의 혈중 에리스리톨 수치와 심혈관계 질환 발병 위험 의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 유의미한 상관 관계가 나타났다고 지난 2월 국제학술 지 ‘네이처 메디신’에 발표했습니다. 에리스리톨은 혈소판을 활성화시켜 혈액의 응고를 일으킬 수 있고, 에리스리톨의 잔여물로 추정되는 화합물의 혈중 수치가 증가할수록 심장마비나 뇌졸중 발병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문가들은 식품회사들이 과도한 제로 마케팅을 하면서 소비자들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마치 제로 슈거·제로 칼로리 가공식품이 건강에 유익한 것처럼 혼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식품의 표 시·광고에 관한 부분을 규제하고 있긴 하지만, 전반적인 소비자 인식 제고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제로 슈거 제품의 유익성은 ‘동일 품목의 설탕이 들어간 제품을 같은 양으로 소비했을 경우보다는 당류 섭취가 줄어든다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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