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문화에 편승하지 말라는 훈화가 무색하게시리 며늘아기로부터 배달된 꽃바구니>
아침에 출근해서 묵은 먼지를 좀 닦으려고 사제동행하여 계단의 걸레질을 하고 교실에 들어갔더니 내 책상 위에 앙증맞은 바구니에 알사탕이 열 개쯤 꽂혀있는 게 아닙니까?
아하!~~ 화이트데이라 그러는구나. 남자가 여자에게 주는 날. 드디어 훈시 시작.
“그 것은 우리나라의 풍습이 아니라 외국에서 연인들끼리 보내는 것이고, 그리고 상인들이 많이 팔기 위해서 어쩌구, 저쩌구...... ”
일장 훈시를 늘어놓고 공연한 데 돈 쓰지 말라고 하는데, 소위 진단평가라는 시험 본 결과 남자 중에서 제일 꼴지인 심XX가 막대사탕을 한 보따리를 들고 있는 게 아닌가요?
‘쯧쯧쯧, 공부는 못해도 그런데 관심은 있구나, 어쩌겠나? 점심시간에 나눠주라고 해야지. 다 사람마다 타고난 재주는 다르니까 연애라도 잘해서 잘 살면 되지, 뭐. 누가 압니까? 인간성이 좋으니.......'
그리고 학년 초라 수업태도를 바로잡느라고 집중력 기르기로 훈련해가면서 한 눈 팔지 말라고 주의를 줘가면서 몰입의 경지에 가려고 열심히 수업을 하고 있는데......
“삘리링!~~ ”
“네. 4학년 6반 입니다.”
“아이 한 명 내려 보내세요, 교무실로.”
“무슨 일인데요?”
“꽃바구니 배달이 왔어요.”
“누구게서? 무슨 일로?”
“몰라요, 쪽지에 꽂혀있으니 갖다가 보세요.”
스승의 날도 아니고...... 당시에 맡은 애들로부터 종이꽃 외에는 아무 것도 받지 않는 스승의 날. 가끔 오랜 된 제자들이 배달시키는 경우가 있어서 의아해하면서 아이를 교무실로 보내고 조용히 공부하는데 한아름하는 커다란 아름다운 바구니가 들어오는 게 아닙니까? 아이들이 난리다.
“누가 보낸 것이예요?”
얼른 쪽지를 열어보더니 아들, 며느리의 이름으로 보낸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님께/ 기도와 격려로 사랑해주시는 어머님께 / 항상 감사드립니다./ 어머님! / 저희들도 어머님을 무지무지 사랑해요!/ 행복 가득한 화이트데이 되세요~~~~장우, 은진드림”
라고 씌어있는 게 아닙니까?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서 읽어주고나니 수업은 뒷전이었지요.
“아들이 몇 살 이예요?” “ 대학생이어요?” “군대는 갔다 왔어요?” 쏟아지는 질문에
“장가도 갔다.”
“오잉? 에이, 거짓말.......”
인간적으로 거짓말은 안하며 일 년을 솔직하게 터놓고 함께 살아야 아이들이 감동하고 먹힙니다. 그래서 애들과의 친하게 지내는 관계 까닭에 놀라운(?) 사실을 말해놓고 수업으로 들어갔습니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던, 말던...... 내 가족으로부터 받았으니 꽃바구니는 집으로 운반한다고 했지요.
오후에 우리교실을 방문한 40대 중년 여자동료에게 꽃다발의 정체를 밝혔더니 은근히 부러워하면서
“쇠고기 몇 근이 더 나은 것 아녜요?"
“후후후!~~ 사실은 나도 그래, 그렇지만 젊은 애들 분위기 맞춰주려면 좋다고 해야지.”
집에 오니 남편은 시쿤둥입니다. 자기는 바렌타인데이에 며늘아기로부터 쵸코렛 받았으니 되었다나요? 쪽지 편지에 아버님이란 말은 없어서겠지요? 이제는 괜찮다고 했지만 저녁에는 일부러 반찬 만들어서 언제 가져갈 거냐고 문자 메시지 치면서 과잉봉사(?)를 했답니다. 고기전, 동그랑땡전에 느타리버섯 나물, 시금치 나물에 미역국, 그리고 명란젓, 또 연근졸임 등.
“얘들아!~ 꽃다발에 감동 먹어서 맛있는 반찬 만들어 놓았으니 언제 와서 가져가렴!”
아무튼 우리며늘아기 요새 예쁜 짓만 골라서 한답니다. 드디어 은근히 고대하던 장학금도 탄대요. 비록 1/3 타는 장학금이지만......
“월말 경에 돈 나오면 맛있는 것 사드릴게요.”
말한 지가 꼭 1주일인데......
“그런 줄 알았으면 등록금 많은 대학에 갈 걸 그랬나요? 후후후”
그리고 또 출판사 일도 짬짬이 알바로 한대요. 벌써 2월에 시간 많을 때 고3 남학생 한 달 가르쳤는데 더 가르쳐달랬지만 학교공부에 시간 할애하기에 바빠서 거절했답니다. 이러니 어찌 아니 예쁠소냐 입니다.
제친구들은 이제는 할머니 되어서 인터넷 카페에도 잘 놀러 못 오고 손주들 재롱 보느라 바쁘지만, 난 할머니 되는 것은 아주 먼 이야기니까 이렇게 들어와서 수다를 하고 있답니다. 혹시 이런 내가 바로 주책아닌가요? 핫핫핫!~~
학교선 바빠 죽을 지경이지만 카페는 심심하네요. 다들 뭐하기에 그리 분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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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주 많이 행복하시네요 늘 지금처럼 기쁜일만 있었으면 합니다 축하 드립니다.
예쁜 꽃바구니와 함께 가내에도 행복한 꽃이 더욱 활짝 피었네요. 저는 이부서 저부서에서 보내준 사탕먹느라 입안이 달기만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