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색조 / 이삼우
팔색조는 천연기념물 204호다. 개똥지빠귀와 비슷하고 흰눈썹황금새, 삼광조와 더불어 주로 제주도와 남부 해안가 숲에 관찰된다고 한다. 부위별로 팔색 찬란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후조候鳥다. 화려하게 변신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처신의 달인으로, 천의 얼굴로 연기하는 배우에게는 찬사의 의미로 팔색조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애증이 머무는 뜨락에서 버거운 남자와 살아가는 한 여인이 있다. 팔색조처럼 입음새가 화려하거나 사치와는 거리가 먼 검박한 주부다. 길섶에 숨어 피는 냉이꽃같이 자신을 허투루 드러내지 않을 뿐, 꼿꼿한 자존감과 순백한 마음을 지닌 여인이기도 하다. 네 남자만 사는 성곽에 갇혀 살다 보니 설레야 할 보랏빛 청춘이 있기나 했을까.
그녀도 어느덧 칠순 고개를 넘어섰다. 경로 우대증 카드로 지하철을 타면서 공짜라고 흐뭇해한다. 담박하면서 귀여운 구석이 있다. 쥐와 마주치면 바퀴벌레나 뱀보다 더 기함한다. 쥐띠인 내가 기분이 좋을 리 없지만, 굳이 내색하지는 않는다. 쥐띠와 말띠는 궁합이 십이간지 중 상극이어서 상충살相沖殺이 있다고 사주풀이를 하기도 한다. 둘 중 한
사람은 쥐 죽은 듯 살아야 할 운명이라지만 지금껏 말 등에 올라타 그냥저냥 잘 버티고 있다.
그녀에게도 갱년기는 넘을 수 없는 수미산이었을까. 세월의 나무에 흔들리며 고운 미성은 잦아들고, 지치고 갈라진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음색에 미묘한 파문이 일고 음폭도 넓어지고 높아졌다. 목청 파장에 따라 곁에 있는 식구도 신경 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가 엿가락처럼 늘어지기도 한다. 감정의 기복도 예측불허라 어느 구름 속에 비가 들었는지 알기 어렵다.
음색은 공명의 진동에 따라 변성되고, 목소리의 톤이나 억양은 감정 따라 변하는 호흡이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녀는 언제라도 도, 레, 미, 파… 음계 속에 숨겨둔 팔음계八音階를 쏙 끄집어내어 상대에 따라 맞춤형 대화를 구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천의 목소리를 목젖 깊숙이 숨겨두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남편에게 건네는 대화는 대체로 건조하고 허허롭다. 영혼이 깃들지 않아 공허한 바람이 인다. 음색에도 윤기가 없어 까칠하다. 평생 내 것으로 알고 있었던 처녀 시절의 수줍은 듯 고운 목소리, 젖은 듯 촉촉한 속삭임은 환청이었을까.
친구와 이야기할 때는 낭랑하다. 타임캡슐을 열어젖히고 풋풋한 여고 시절로 되돌아간다. 손주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 시세에 흥분하기도 한다. 몸매 타령으로 한숨 내쉬다가 급기야는 집안에 얼쩡대는 남편 험담으로 마무리한다. 며느리 이야기가 이어지는 날은 밥솥이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아들과의 전화는 음색이 눅진하고 애틋하다. 서울 시민으로 살아가는 큰아들에게는 한껏 도와주지 못해 안쓰러워하는 모정이 휴대전화 속으로 젖어 든다. 집밥이 엄지 척이라며 세끼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던 작은아들이 결혼하면서 앓던 이를 뽑아버린 듯 시원했던가. 둘째에게 향하는 음성은 솜사탕처럼 달달하다. 객지에서 애완견 ‘달자’를 키우며 유유자적 독신으로 지내는 막내는 숨기고 싶은 아킬레스건이다. 장가가라고 윽박지를 때는 숨결이 가쁘고 된소리가 난다. 이럴 땐 옆에 있다가 새우 등 터질까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이다.
며느리들과 대화할 때는 목청꿀이 묻어난다. 시어머니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으면서 진득하고 곰살맞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아들보다 며느리 음역을 맞추어 가는 현명한 처신이 돋보인다. 시어머니 앞에서 아들 험담하는 철없는 며느리도 학의 날개깃으로 품어 안는다. 어른으로서의 너그러움과 아우라가 느껴진다.
손주들과 통화할 때는 아르페지오 가성까지 곁들여 함박꽃이 핀다. 말끝마다 목화솜이 봉긋봉긋 터지고 성대 깊숙이 숨겨두었던 옥구슬이 돌돌 구른다. 스마트 폰 너머에서 손녀들이 굴뚝새처럼 재잘거린다. 썰렁한 집안에 모처럼 부드러운 화음으로 훈기가 오랫동안 머문다.
오선지 맨 윗줄의 높은 음표는 아랫줄에 웅크리고 있는 낮은 음표를 슬그머니 깔아뭉개려 한다. 부부 듀엣으로 화기애애 곡조를 맞추다가도 가끔 불협화음으로 티격태격하기도 한다. 협주에 파열음이 생기면 소프라노와 바리톤이 오선지에서 내려와 한바탕 진검승부를 겨루지만, 결과는 볼 것도 없다. 언제나 바리톤이 어이없이 패한다. 목소리가 커야 이기는 세상이 그녀의 집에도 통한다.
바리톤에도 봄바람이 훅 불어올 때도 있다. 뜬금없이 “백화점 쇼핑하러 가자.”라고 할 때나 “외식 한번 어때요?” 하며 분위기를 띄울 때는 그녀의 목소리가 안개비처럼 노긋하다. 속이 뻔히 보이지만 상대가 평화의 메시지를 보내니 바리톤도 날 선 꼬리를 감추고 베이스로 돌아간다.
팔색음八色音은 그녀가 가족과 소통하는 울림이다. 시시각각 어깃장으로 뻗대는 한 남자를 달래며 어디로 튀질 모를 세 아들의 고삐를 다잡느라 성대가 성할 날이 없었으리라. 주눅 들지 않고 알토와 소프라노를 넘나드는 간절한 비원으로 바람 잘 날 없는 가정을 굳건히 지켜냈을지도 모른다.
낙엽 구르는 소리와 속삭임 등은 데시벨 측정 기준으로 10∼15dB 정도이고 보통의 대화가 40∼60dB 범위라고 한다. 아내가 남편에게 띄우는 목소리와 남편이 아내에게 건네는 말투가 데시벨 기준으로 측정한다면 어느 정도일까. 내가 이길까, 아내가 이길까.
살면서 별것이 다 궁금할 때가 있다.
첫댓글 궁금할 게 뭐가 있습니까.
지는 게 이기는 거다. 이것이 살아내는 방법 아닌가요.
잘 지내시죠.
잘 살아내고 있는 가정의 행복한 모습입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