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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태양의 샘 원문보기 글쓴이: 지니
조선시대 천재화가 단원 김홍도(1745 ~ ?)의 그림
장터
옥순봉(병진년 화첩중 !796년 52세) 호암 미술관 소장
추서부도 부분(1805)
마상청앵 간송 미술관 소장
삼공불환도(1801년 57세)
본관 김해(金海). 자 사능(士能). 호 단원(檀園)·단구(丹邱)·서호(西湖)·고면거사(高眠居士)·첩취옹(輒醉翁). 강세황(姜世晃)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圖畵署畵員)이 된 뒤 1771년(영조 47)에 왕세손(뒤의 正祖)의 초상을 그렸고, 1781년(정조 5)에 어진화사(御眞畵師)로 정조를 그렸다. 1788년 스승 김응환(金應煥)이 왕명을 받고 몰래 일본의 지도를 그릴 임무를 띠고 떠날 때 그를 수행, 부산까지 갔으나 김응환이 거기서 병으로 죽자 홀로 쓰시마섬[對馬島]에 가서 일본 지도를 모사(模寫)해 가지고 돌아왔다. 1790년 수원 용주사(龍珠寺) 대웅전에 《삼세여래후불탱화(三世如來後佛幀畵)》를 그렸고, 1795년(정조19) 연풍현감(延豊縣監)이 되었다가 곧 사임하였다. 이듬해 왕명으로 용주사의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삽화를 그렸으며, 1797년 정부에서 간행한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의 삽화를 그렸다. 산수화·인물화·신선화(神仙畵)·불화(佛畵)·풍속화에 모두 능하였고, 특히 산수화와 풍속화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산수화는 사실(寫實)묘사와 조국애가 어울려서 조국 강산의 아름다움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으로 당시의 신윤복(申潤福)·이인문(李寅文)·김석신(金碩臣)·김득신(金得臣) 같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또, 풍속화는 서민사회의 생활정서와 농(農)·상(商)·공(工) 등의 생활정서를 주제로 하여 그들의 생활모습을 익살스럽고 구수한 필치로 그린, 일종의 사회풍자를 곁들인 작품들이다. 기법도 서양에서 들어온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여 과감히 시도하였는데, 용주사의 《삼세여래후불탱화》에서 볼 수 있듯이 색채의 농담(濃淡)과 명암으로써 깊고 얕음과 원근감을 나타낸, 이른바 훈염기법(暈染技法)이 그것이다. 작품에 《소림명월도(疎林明月圖)》, 《신선도병풍(神仙圖屛風)》, 《쌍치도(雙雉圖)》, 《무이귀도도(武夷歸棹圖)》, 《낭구도(浪鷗圖)》, 《군선도병(群仙圖屛)》, 《선동취적도(仙童吹笛圖)》, 《풍속화첩(風俗畵帖:야공도·서당도·씨름도·무악도 등)》,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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