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의 뒷물결
이웃 사는 후배가 동승해 가자는데도… 내가 속한 자생연구단체서 토요일 오전 창원 근교 초등학교에서 정기 모임을 가지는데 미리 불참을 알리고 양해를 구했다. 회원이면 마땅히 모임에 빠지지 않아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얼굴은 자주 내밀지 못해도 회비는 제 때 내고 매년 꼬박꼬박 펴내는 회지에 수록할 원고는 다른 회원보다 먼저 내는 편이다.
가을이 이슥해진 시월 끝자락이다. 마지막 주 토요일은 예식장 걸음으로 시간을 비워 두어야했다. 지난 주 일요일도 대학 동문 자제 혼사로 부산을 다녀왔다. 일주일 새 두 차례나 부산으로 행차한다. 이번엔 여동생의 딸이니, 생질녀가 혼례식을 올린다. 형제자매가 많다보니 조카들이 줄지어 결혼과 출산이 이어진다. 청년 실업난 속에 모두 반반한 일자리를 꿰차고 있음이 기특하다.
예식장 가는 길이 아니라면 서북산이나 여항산의 길고 긴 임도를 걸으면서 가을 정취에 흠뻑 젖을 수 있을 것이다. 대암산이나 용제봉 산마루에 올라 아직 저물지 않았을 쑥부쟁이나 구절초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북면 지인 농장에 들려 유채나 상추를 마련해 식탁을 풍성하게 차릴 수도 있을 텐데. 마음으로만 그려본 일정들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야 한 날이었다.
우리 내외는 나들이차림으로 부산으로 향했다. 예식이 오시인지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다. 학업을 못 다 끝내고 공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생질녀였다. 신부 대기실에서 본 생질녀는 평소보다 더 예뻐 보였다. 인연은 멀리 있지 않아 반려는 직장 동료로 만난 사이다. 새신랑은 지난 추석 연휴 때 제법 떨어진 시골 큰외삼촌 댁에까지 인사차 찾아와 얼굴을 미리 본 적 있었다.
서울 사는 큰 녀석은 추석 쇠고 처음 만났다. 녀석도 이제 성인이니 집안 길흉사에 빠져서는 안 될 나이가 되었다. 같은 항렬의 사촌들을 모처럼 만나 그들끼리 궁금한 안부를 나누었다. 요즘 결혼식 문화가 신랑신부 당사자 중심이 아니고, 그걸 빙자하여 하객들만의 자리였다. 특히 내 초등학교 동기들 자제 혼사가 그렇다. 동기 자제 혼사가 있는 날은 차수를 변경한 동창회가 열린다.
예식 시간보다 좀 이르게 닿아 그런지 주차장이 썰렁했다. 실내로 드니 예식장 로비와 홀은 생각보다 널렀다. 덩그런 화환만 몇 개에 하객은 아무도 없고 종사원들만 분주히 오갔다. 정한 시간이 가까워지자 사회자 멘트가 나오길 식전 행사로 뮤지컬 공연이 있을 거라 했다. 예식 축하 분위기를 띄우기 알맞은 율동과 선율이 한동안 펼쳐져 나를 비롯한 일부 하객은 멍하게 지켜봤다.
진행을 맡은 사회자가 신랑 측서 의뢰한 젊은이인지, 이벤트사에 의뢰해 파견 나온 사람인지 몰라도 분위기를 생기 있고 발랄하도록 띄워주었다. 뜻밖에도 주례를 세우지 않은 주제(?)가 있는 예식을 진행하였다. 식의 절정은 신랑이 양가 어른과 신부에게 띄우는 편지 낭송이었다. 이어 생질녀가 다니던 대학 동아리 친구들이 무대 위로 올라 짧은 시간이었지만 뮤지컬 콘서트를 펼쳤다.
정해진 절차 따라 예식을 끝내고 기념사진 가족사진 촬영 때 잠시 배경이 되어주었다. 신랑신부가 폐백을 올릴 때 하객들은 뷔페로 먼저 가 점심을 들었다. 가족들은 조금 뒤쳐져 갔다. 언제나 그렇듯 뷔페음식은 속 빈 강정처럼 겉치레만 그럴 듯한데 신선하고 깔끔했다. 식장은 하객이 넘쳐나도 식당은 그리 붐비지 않았다. 조카와 조카며느리들은 그들끼리 오붓하게 테이블을 차지했다.
나는 형제들과 같이 자리를 정했다. 초밥과 회를 몇 점 들어와 시원 소주 뚜껑을 열었다. 대낮이지만 주말 여가이기에, 그것도 잔치 자리이기에 잠시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다. 손위 형님이 네 분이지만 잔을 권할 데는 울산 작은형님뿐이었다. 운전이 아니라면 진주 매제가 대작이 가능한데 인내심을 발휘해 꾹 참아야했다. 바깥으로 나오니 기온이 뚝 떨어져 가을은 깊어가고 있었다. 16.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