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윤곤강
비바람 험살궃게 거쳐 간 추녀 밑 -
날개 찢어진 늙은 노랑나비가
맨드라미 대가리를 물고 가슴을 앓는다
찢긴 나래에 맥이 풀려
그리운 꽃밭을 찾아갈 수 없는 슬픔에
물고 있는 맨드라미조차 소태 맛이다.
자랑스러울손 화려한 춤 재주도
한 옛날의 꿈 조각처럼 흐리어
늙은 무녀(舞女)처럼 나비는 한숨 진다.
[어휘풀이]
-추녀 : 네모지고 끝이 번쩍 들린, 처마의 네 귀에 있는 큰 서까래
-소태 : 소태나무의 껍질. 약으로 쓰는데 맛이 매우 쓰다.
[작품해설]
이 시는 늙고 병든 나비의 형상을 통해 삶의 애상감과 시인의 처했던 당시의 현실 상황을 암시적으로 나타낸 3연 9행의 간결한 이미지의 회화적 소품이다. 그러므로 제재인 나비는 단순한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감정 이입의 방식에 의해 화자에 동화된 진술의 주체로서 형상화시키고 있다.
현실의 모진 역경을 견디지 못해 추녀 밑 맨드라미 꽃 위에 앉아 ‘가슴을 앓’는 나비는 ‘그리운 꽃밭을 찾아갈 수 없는 슬픔’ 때문에 평소 즐겨 찾던 ‘맨드라미조차 소태 맛’이다. ‘화려한 춤 재주’를 자랑하던 젊은 시절은 어느덧 ‘옛날의 꿈 조각처럼 흐리어’ 가고, 이제 나비는 ‘늙은 무녀(舞女)처럼 한숨지고’ 있을 뿐이다.
이 시는 이렇게 지난날의 영화롭던 나비와 현실의 비참한 나비를 대조하는 방법으로 비극적인 현재의 모습과 영락(零落)한 노경(老境)의 슬픔을 잘 나타낸다. 그러므로 이 시는 청춘의 활기찬 삶을 지나온 노인의 회오(悔悟)에 찬 인생의 반성과 현실에 대한 절망감을 표출하고 있으면서도, 화자가 단지 지나온 삶을 후회하는 개인적 감정의 표출만으로 그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화자 자신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 표현 방법에서 기인한다.
[작가소개]
윤곤강(尹崑崗)
본명 : 윤명원(尹明遠)
1911년 충청남도 서산 출생
1925년 보성고보 편입
1928년 혜화전문학교 중퇴
1933년 일본 센슈대학 졸업
1934년 『시학』 동인
1934년 카프 2차 검거에 관련되어 피검. 12월에 석방됨
1937년 첫 시집 『대지』 발간
1945년 해방 직후 조선문학가동맹 가담
1950년 사망
시집 : 『대지』(1937), 『만가(輓歌)』(1938), 『동물시집』(1939), 『빙화(氷華)』(1948)
『피리』(1948), 『살어리』(1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