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 獒樹 )
맥골 입구, 매추라기(상신촌) 에서 시가지가 이어지는 오수는 충견에 엃힌 지명(地名)으로 익히 알려진 곳이다. 남북으로 둔남천이 흐르는 넓은 냇가에는 벌써 파란잎이 눈의 피로를 풀어주고 서쪽으로 둔전들을 거쳐 성황당, 일곱머리 삼계면 어은리의 비린내 고개로 이어지는 도로와 신포정(新浦亭) 해월암(海月庵)을 끼고 미륵뎅이, 까막재를 오르는 칙칙한 숲은 푸르름이 더 해간다. 일찍이 둔덕 팔경의 하나로 꼽는 천황관월(天皇觀月) 이라던가. 남원군 보절면에 있는 해발 909미터의 천황봉은 이곳 미륵뎅이(관월부락) 에서 바라보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라 했다. 팔공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산서와 지시랭이 들 (지사면)을 적시고 성수산에서 발원한 물이 둔남천을 질러 신포정을 물빛에 어리게 하더니 관월리 앞에서 합쳐 넓디 넓은 오수천을 이룬다. 이 물은 둔데기 (둔덕) 들을 살찌우고 율천과 함께 하류에 삼계석문(三溪石門) 백사장을 만든다. 이곳 오수는 동서로 장수와 순창을 잇는 708번 국도의 중심이며 남원을 향한 17번 국도가 이어져 상공업이 발달해서 비교적 윤택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저 유명한 춘성정 저택이 현재 보존 되어 있는가 하면, 1천년전 신라 시대의 의견에 얽힌 비(碑)가 있는 원동산을 비롯해서 해월암과 충혼탑을 세운 북부산이 오수분지를 오목하게 감싸고, 조선시대 오수역은 11역 39원을 관할할 만끔 교통의 중심지였다. 오동상감연죽 기능 보유자 추정열옹의 혼이 살아 있는 곳, 오수시장 둔남천 근처의 공방이다. 아들 용근씨가 연죽 공방을 대 물림한 이곳은 35년동안 추옹의 정열을 불태운 곳이다. 그 옛날 부터 오수장은 근동에서 꽤나 컸던가 보다. 충견에 얽힌 이야기도 거령현(지사면)에 사는 김개인이 오수장에 나왔다가 술에취해 벌어진 하나의 사고이 듯 , 덕과 장터에서 오동상감 연죽을 제작하는 방법을 익혔다는 추옹은 기술을 익혀주던 박상근 씨가 세상을 떠나자 당시 남원에서만 만들던 유일한 오동상감연죽의 대를 잇기 위해 오수시장 근처를 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추옹이 기술을 익힌지 3년 만이었다고 전하니 내 어릴때도 장터에 가면 담뱃대를 파는 곳에 기웃거릴 수 있었지만, 기실 어려서는 담뱃대가 모두 답뱃대 인줄 알았지, 오동 상감 연죽인 줄 뉘 알았겠는가? 부유층이나 양반들에 의해 주문생산 하였다 하니 아마도 내가 보았던 것은 장죽과 곰방대가 전부였을 것이다. 담뱃대 하나를 만드는데 삼, 사일이 걸리고, 구리와 아연 니켈 등의 합금으로 이루어진 백동은 그 주조가 복잡할 뿐 아니라 대단히 비싼 값이라 한다. 지금은 추옹대신 그 아들이 공방을 지킨다. 정축년인 올해도 그 옛날 처럼 오수장은 풍성하다. 비록 담뱃대나 비녀를 파는 노점상은 없을지라도 이곳은 우리네 삶의 정겨움이 벌컥 넘친다. 6,25당시 주민들을 대피시키며 적의 동태를 살피던 망루가 50여년 아픈 과거사를 세월의 그을음 그대로 우뚝 선 망루 아래 새로운 건물의 파출소가 세워졌다. 장수방향의 깃점이 되기도 하는 이곳 주변은 상가들의 상품 진열로 휘황하다. 이 상품들은 갈퀴나 호미에서 부터 최첨단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막걸리 한잔을 마시고 고급 음식점에서 서양음식을 맛 볼수 있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서민금고에서 전국을 온라인화 할 수 있는 금융기관이 즐비하고 일찍 부터 발달한 공장들, 지금은 쇠락한 공장 건물만이 원동산 옆에 동그마니 선 오수 제사 공장은 한때 (60년대) 전북여성의 직업 변천사에 큰 획을 그었다는 곳이다. 그 옛날 유행하던 염병(장티푸스)에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시절, 특별한 비법으로 한약을 조제하여 수 많은 사람을 살려냈다는 영화당은 4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금암리 매실밭은 매실 엑기스 원료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한다. 뒷말, 웃말 (동,후리)까지 건물이 세워지는 이곳은 충견의 기념비가 원동산을 지키지만 보신탕을 유명한 신포집은 전국에 소문 날 만끔 식도락 가들의 요람 인 것이 무척 이채롭다. 아직도 대나무 끝에 원색의 청, 홍 깃발을 내달고 무당집임을 알리는 곳이 교회의 종탑과 함께 공존하는 이곳 오수, “살아서 주인을 위해 죽어서도 사람을 위해서 ”라고 하는 변명아닌 변명을 토박이 들 한테 들으면서 어이없어 웃고 말지만 한쪽에서는 의견의 넋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내고 한켠에서는 그 개의 고기로 삶을 영위하는 현실에 그 누구도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할 것이다. 실은 나 조차도 그 보신탕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는 고로... ... 개의 넋이 나무가 되었다는 원동산의 노거수 (老巨樹), 개와 그 나무로 인해 지명까지 오수(獒樹)인 이곳 괴목나무 잔가지 끝에 가로등 불빛이 반짝이며 나를 이해 시키려는 듯 속삭이는 것만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