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문의 자서전 외 1편
조윤온
첫울음을 터뜨린 나에게 그가 말했지
라훌라!
그때부터 나의 삶은
거꾸로도 똑같은 이름이 되었어
생일 다음에 일생이 시작되던가?
한 글자 더, 생과 생 사이에는 고苦가 끼어 있네
울음과 음울은 순서를 바꾸며 찾아오고
때로 웃음 뒤에 쓴웃음이 새치기해도 눈치채지 못했어
이대로 눈감은 채로 있고 싶어
일몰이 오기 전 모든 시간은 몰일이었지
세상의 행불행을 죄다 모아 반으로 나누면
나는 몇 글자를 가지게 될까?
절반만 괴롭게 살고 싶어, 일주일을 가르면 며칠이 될까?
그런 물음 속에서 속절없이 일백일, 일천일이 흘러가
똑같아 보이는 나날의 반복 속에서
서정과 정서가 거울을 보며 그리는 자화상 같다는 걸
이별과 별리가 가끔은 다른 뜻처럼 읽힌다는 걸
조금씩 이해하게 돼
행과 복, 고와 행, 쓺과 삶, 너무 커다란 한 글자는
뒤집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돼
나의 기일은 일기에 담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아
그렇지만 자비로운 신에게 허락을 구해
거꾸로 돌아가
첫 행을 다시 쓸 수 있다면
첫울음을 터뜨린 나에게
그가 말했지
야, 이 삶은 좋은 삶이야
수평계
조윤온
각자의 생각 속으로 침강하는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의자에서 일어나
체조를 한다
관내 방송의 구령에 맞추어
앞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똑같은 몸짓을 하며
그때 시간은 잠시 수평으로 흘렀다
다음 동작을 위해 고개를 돌리면
똑같이 고개 돌린 옆사람의
뒷모습이 보이고
좌우와 자세를 헷갈리지 않는 한
우리는 서로 마주 보지 못하지만
언젠가 알게 될 거야
우리가 똑같은 눈금,
똑같은 높이에 발 딛고 있다는 걸
어깨동무하듯
외계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평평지구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있다
개인정보 및 약력
이름 : 조온윤(曺溫潤)
약력 : 1993년 광주 출생. 201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발표를 시작했다. 시집으로 『햇볕 쬐기』가 있다. ‘공통점’ 동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