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張問行 자장이 '행(行)'에 대해 묻자,
猶問達之意也 영달하는 것을 물은 의미와 같다. 子曰 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行矣 言不忠信 行不篤敬 雖州里行乎哉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말이 충실하고 믿음직하며, 행동이 독실하고 공경스러우면 비록 오랑캐 나라에서도 행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이 충성스럽지도 미덥지도 않으며 행동이 독실하지도 공경스럽지도 않으면 아무리 작은 지역이라도 행해지겠는가?
○ 子張意在得行於外 故夫子反於身而言之 猶答干祿問達之意也 篤 厚也 蠻 南蠻 貊 北狄 二千五百家爲州 자장은 밖에서 행세할 수 있는 것들에 뜻을 두었기 때문에, 공자께서 오히려 자신에게 돌이키라는 것으로 말했던 것이다. 이는 녹봉을 추구하고 영달하는 것을 물은 것에 대답했던 의미와 같다. 篤은 두텁다는 것이다. 蠻은 남쪽 오랑캐, 貊은 북쪽 오랑캐다. 2,500家를 1州로 하였다.
周禮夏官職方氏 四夷八蠻七閩九貊五戎六狄 鄭司農註 東方曰夷 南方曰蠻 西方曰戎 北方曰貊狄 주례 하관편 직방씨에 따르면, 4夷, 8蠻, 7閩, 9貊, 5戎, 6狄이 있다고 하였다. 정사농의 주석에 따르면, 동방은 夷라고 말하고, 남방은 蠻이라 말하며, 서방은 戎이라 말하고, 북방은 맥적이라 말한다고 하였다.
朱子曰 篤有重厚深沈之意 敬而不篤 則有拘迫之患 주자가 말하길, “篤에는 중후하고 심오하다는 뜻이 있다. 공경하지만 독실하지 않다면, 구속하고 겁박한다는 근심이 있다.”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篤敬者 敦篤於敬也 言忠信 則言有物 行篤敬 則行有恒 以是而行 何往不可 남헌장씨가 말하길, “篤敬이라는 것은 공경함에 돈독한 것이다. 말이 충성스럽고 신의가 있다면, 말에 사물이 있는 것이고, 행실이 공경에 돈독하다면 행실에 항상 일정한 법도가 있는 것이니, 이로써 행한다면 어디를 가더라도 안 될 것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凡事詳審不輕發 是篤底意思 戒謹恐懼惟恐失之 是敬底意思 篤自篤 敬自敬 쌍봉요씨가 말하길, “모든 일을 상세히 살펴서 가볍게 자기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篤의 뜻이다. 경계하고 삼가며 두려워하면서 오직 그것을 잃을까봐 걱정하는 것이 바로 敬의 뜻이다. 篤은 篤이고, 敬은 敬이다.”라고 하였다.
問言思忠言而有信 此合忠信來言上說 如何 曰 忠信都訓實 忠是出於心者 信是見於事者 如口裡如此說 心下不如此 是不忠也 口裡如此說 驗之於事却不如此 是不信也 忠是前一截事 信是後一截事 若前一截實後一截虛便不可 누군가 묻기를 “말을 할 적에 忠을 생각하고 말하여 信이 생겼다면, 이는 충과 신을 합하여 말하는 것 위에서 말한 것이니, 어떠합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忠과 信 모두 성실함이란 뜻으로 풀이되니, 忠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信이란 일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예컨대 입으로는 이렇다고 말하면서 마음으로는 이와 같지 않다면, 이것이 바로 不忠이다. 입으로는 이렇다고 말하였는데, 일에서 징험해보니 이와 같지 않았다면, 이것이 바로 不信이다. 忠은 앞 절의 일이고, 信은 뒷 절의 일로서, 만약 앞의 한 절은 성실하지만 뒤의 한 절이 허황되다면 이것은 아니 될 일이다.”라고 하였다.
立 則見其參於前也 在輿 則見其倚於衡也 夫然後行 일어서면 그것이 앞에 늘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수레에 탔을 때는 그것이 멍에에 기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하니, 그렇게 한 뒤에야 행해지는 것이니라.”라고 하셨다.
○ 其者 指忠信篤敬而言 參 讀如毋往參焉之參 言與我相參也 衡 軛也 言其於忠信篤敬念念不忘 隨其所在 常若有見 雖欲頃刻離之而不可得 然後一言一行 自然不離於忠信篤敬 而蠻貊可行也 其라는 것은 忠信과 篤敬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참은 가서 참여하지 말라는 말의 참자와 같이 읽는다. 이는 나와 더불어 서로 참견한다는 말이다. 衡은 멍에를 말한다. 이것은 그가 忠信篤敬을 항상 생각하여 잊지 않고, 자신이 있는 곳마다 항상 눈에 보이는 듯이 하여, 비록 잠시라도 떨어지고자 하여도 그렇게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런 연후에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라도 자연스럽게 충신독경에서 떨어지지 않게 되어 비록 오랑캐의 땅에 가더라도 충분히 행세할 수 있다는 것이다.
記曲禮 離坐離立 毋往參焉 離 麗也 謂兩人相附 麗而並坐 或並立 我無往參之爲三焉 예기 곡례편에, 나란히 쌍으로 앉거나 서 있으니, 거기에 가서 끼어들지 말라고 하였다. 離는 쌍이라는 뜻으로, 두 사람이 서로 붙어서 쌍으로 나란히 앉거나 나란히 서 있는데, 내가 그곳에 가서 끼어들어 셋이 됨이 없이 하라고 말한 것이다.
朱子曰 參前倚衡 只是見得理如此 不成是有一塊物事 光輝却在那裡 주자가 말하길, “눈앞에 끼어들고 멍에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은, 단지 이치를 보아서 터득함이 이와 같다는 것일 뿐이고, 여기에 하나의 사물이 있지만, 그 광휘가 오히려 저곳에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此謂言必欲其忠信 行必欲其篤敬 念念不忘 而有以形於心目之間耳 이는 말에는 반드시 忠과 信이 있기를 바라고, 실행함에는 반드시 篤敬이 되기를 바라는 것을 항상 잊지 않고 간직하여 心目之間에 드러날 수 있음을 말했을 뿐이다.
問參前倚衡 何物參倚 坐立所見 何物可見 潛室陳氏曰 參前倚衡 不是有箇外來物事 便是忠信篤敬 坐立所見 要常常目在之耳 此是學者存誠工夫 令自家實有這箇道理 鎭在眼前不相離去 누군가 묻기를, “參前倚衡(앞에 끼어들고 멍에에 의지한다)은 어떤 것이 끼어들고 의지한다는 것이며, 앉거나 서서 보는 바가 무엇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잠실진씨가 말하길, “參前倚衡이라는 것은 외부에서 온 사물이 아니라 바로 忠信과 篤敬이고, 앉으나 서나 보는 바라는 것은 항상 그것에 눈을 두고자 한다는 것일 뿐이다. 이는 배우는 사람이 하는 정성을 보존하는 공부이니, 자신이 이 도리를 실제로 갖고 있으면서 눈앞에 눌러두어 떠나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鄭氏舜擧曰 子張務外者也 故問干祿問行 皆以言行告之 忠信篤敬 視寡尤寡悔 淺深不侔 子張之學進矣 정순거가 말하길, “자장은 밖에 힘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녹봉을 구하는 것을 물었고 영달하는 것을 물었던 것이니, 모두 언행으로써 알려 주었던 것이다. 말에 충신이 있고 행동에 독경이 있음은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가 적음에 비추어 보면, 그 얕고 깊음이 고르지 않으니, 자장의 학문이 진보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忠信篤敬乃言行當然之理 工夫全在忠信篤敬念念不忘八字上 惟念念不忘於心而後 常如有見於目 忠信篤敬 吾心此理也 州里之人與蠻貊之人 亦皆此心此理也 盡吾之心 則通乎人心 雖遠而可行 不盡吾心 則無以通乎人心 雖近而不可行矣 신안진씨가 말하길, “忠信篤敬은 곧 언행의 당연한 이치다. 그 공부는 忠信篤敬念念不忘이라는 8글자 위에 온전히 달려 있다. 오직 마음에 항상 잊지 않고 가지고 있게 된 이후에, 항상 눈에 보이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忠信篤敬은 내 마음의 이러한 이치이니, 중국의 州里에 사는 사람과 남쪽이나 북쪽에 사는 오랑캐들 모두 역시 이 마음의 이러한 이치다. 내 마음을 다한다면 남의 마음과 통하니, 비록 멀더라도 행세할 수 있다. 내 마음을 다하지 않는다면 남의 마음과 통할 수가 없으니, 비록 가깝더라도 행세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子張書諸紳 자장이 공자의 이 말을 허리띠에 적었다.
紳 大帶之垂者 書之 欲其不忘也 紳이란 아래로 늘어뜨린 큰 띠다. 그것을 적은 것은 잊지 않고자 함이다.
雙峯饒氏曰 書紳見他佩服之切 子張到晩年儘切實 如言執德不弘之類 可見 쌍봉요씨가 말하길, “허리띠에 적었다는 것은 그가 대단히 절실하게 탄복하였음을 보여준다. 자장은 만년에 이르러 상당히 간절하고 성실하였는데, 예컨대 執德不弘과 같은 부류를 말한 것에서 알 수가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書上文夫子所言於紳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윗글에서 공자께서 말씀하신 것을 허리띠에 적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 程子曰 學要鞭辟近裏 著己而已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言忠信 行篤敬 立則見其參於前 在輿則見其倚於衡 只此是學 質美者明得盡 査滓便渾化 卻與天地同體 其次惟莊敬以持養之 及其至則一也 정자가 말했다. “배움이란 편벽한 것을 쳐내고 내면에 접근하여 자신에게 들러붙게 하고자 하는 것일 따름이다. 널리 배우고 뜻을 돈독히 하며, 절실한 것을 묻고 가까이 생각하며, 말은 忠信으로 하고, 행동은 篤敬으로 하되, 일어서면 앞에 忠信篤敬이 나타나 보이고, 수레를 타면 멍에에 그것이 기대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오직 이것이 학문이다. 자질이 훌륭한 사람은 밝게 터득함이 극진하게 되니, 사욕 찌꺼기도 곧 녹아 사라져서, 도리어 천지와 더불어 한 몸이 된다. 그 다음(자질이 그 다음 등급인 사람)은 오직 씩씩하고 공경함으로써 그것을 붙들고 키우는 것인데,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곧 동일한 것이다.” 朱子曰 鞭辟近裡 此是洛中語 辟如驅辟一般 一處說作鞭約 是要鞭督向裏去 今人皆就外面做工夫 下云切問近思言忠信行篤敬 何嘗有一句說向外去 只就身上理會便是近裏著(着)己 주자가 말하길, “鞭辟近裏, 이 말은 낙중지방의 말이다. 辟은 대체로 편벽된 것을 몰아내다와 같은 뜻인데, 어떤 곳에서는 鞭約으로 말하기도 한다. 이는 채찍질하여 안을 향하여 몰아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모두 외면에 나아가 공부를 하는데, 아래에서 말한 切問近思와 言忠信, 行篤敬이 일찍이 언제 한 구절이라도 외면을 향해서 말한 적이 있는가? 그저 내 몸 위로 나아가 이해한다면, 이것이 바로 近裏著己다.”라고 하였다. 天地同體處是義理之精英 査滓是私意人欲之未消滅者 人與天地本一體 只緣査滓未去 所以有間隔 若無査滓 便如天地同體 如克己復禮爲仁 己是査滓 復禮便是天地同體處 如曾子不忠不信不習 漆雕開言吾斯之未能信 皆是有些査滓處 只是質美者見得透徹 那査滓處便都盡化了 若未到此 須當莊敬持養旋旋磨擦去敎盡 卽此是學 只爭箇做得徹與不徹耳 天地와 同體인 곳은 義理의 정화이고, 査滓는 私意와 人欲이 아직 소멸되지 않은 것이다. 사람은 천지와 더불어 본래 한 몸이었으나, 단지 사재가 아직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간격이 있는 것이다. 만약 사재가 없다면, 곧바로 천지와 한 몸인 것처럼 될 것이다. 克己復禮하여 仁을 행하는 경우에는, 己는 사재이고, 復禮는 바로 천지와 한 몸인 곳이다. 마치 증자가 ‘하루에 충성을 다하지 않았는가? 신의를 주지 못하였는가? 익히지 않았는가?’ 등 3가지를 반성하였듯이, 또한 칠조개가 ‘나는 아직 이것을 믿지 못한다’고 말한 것처럼, 이런 것들이 모두 사재가 있는 부분이다. 단지 자질이 훌륭한 사람은 투철하게 보고 터득하여, 저 사재가 있는 곳이 모조리 다 사라졌을 뿐이다. 만약 이런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다면, 모름지기 莊敬으로써 붙잡고 기르며 돌려가며 갈고 닦아서 다 사라지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배움인데, 다만 그저 투철하게 하느냐 투철하게 하지 못하느냐를 다툴 뿐이다.
問竊謂切問近思是主於致知 忠信篤敬是主於力行 知與行不可偏廢 而程子謂隨人資質各用其力而其至則一 如是則亦有行不假於知者 未知如何 曰 切問忠信 只是泛引切己底意思 非以爲致知力行之分也 質美者固是知行俱到 其次亦豈有全不知而能行者 但因持養而所知愈明耳 내가 切問近思는 致知에 주안점을 둔 것이고 忠信篤敬은 力行에 주안점을 둔 것이니 知와 行 중에서 하나라도 없앨 수는 없다고 말하였지만, 정자는 사람의 자질에 따라 각자 그 힘을 쓰되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똑같다고 말하였는데, 이와 같다면 또한 知에 힘을 빌리지 않고서도 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누군가 물었다.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切問과 忠信은 그저 자신에게 절실한 것이라는 의미를 피상적으로 인용한 것일 뿐, 致知와 力行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다. 자질이 훌륭한 사람은 본디 知와 行을 함께 이르게 하지만, 그 다음 수준에서는, 어찌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능히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다만 붙잡고 기르는 것으로 인해 아는 바가 더욱 밝아질 따름이다.
胡氏曰 明得盡査滓化 却天資高 知之卽能行之 而私意無所容也 莊主容敬主心 內外交致其力 常常操守以涵養之然後 可使私意消釋 程子此條專爲學者言 不主於釋經也 호씨가 말하길, “밝히기를 극진히 하면 사재가 소멸되는데, 도리어 천부적 자질이 높으면 그것을 알고서 곧바로 능히 행할 수 있기에, 사사로운 뜻이 용납될 곳이 없는 것이다. 莊은 용모에 주안점을 두고, 敬은 마음에 주안점을 두는데, 안과 밖이 서로 그 힘을 지극히 하여, 항상 붙잡아 지킴으로써 함양한 연후에, 사사로운 뜻을 녹여서 풀어버릴 수 있다. 정자의 이 구절은 오로지 배우는 사람을 위하여 말한 것이지, 경전의 풀이에 주안점을 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