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폴로,동방견문록 2】
마르코 폴로 이전에도 중국을 여행한 이들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중국과 그 주변국가에 대해 상세한 기록을 남긴 최초의 서양인이었고 아시아대륙을 가로지르는 길을 지도에 그린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의 아버지와 숙부가 무역으로 큰 돈을 모으고 있는 동안 마르코는 17년 동안을 황제를 위해서 일했다.
황제는 처음에는 그를 자신의 특사로 임명하여 전국 각지로 보냈다.
그 동안 그는 코친차이나,버마,인도 등지까지 돌아다닐 수 있었다.
후에 그는 부유한 지방인 양주의 태수를 3년 동안이나 지냈다.
나중에 그는 수도에 돌아와 황제의 추밀원위원을 제수받았다
(추밀원은 중국 역대왕조의 자문기관이다.
비서실의 역할도 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황제의 나이는 이미 70세를 넘는 고령이었고,그가 사망하면 후계자 자리를 다투고 있는 여러 경쟁자 중 누가 등극하여도 그들이 안전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폴로 일가는 판단했다.
1292년 초 황제의 명령으로 특별히 제작된 배를 타고 25년 만에 고국으로 향했다.
베니스에 도착하자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자기 집의 하인들까지도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막았다.
모두들 그들이 이미 죽은 것으로 단념한 지 오래였다.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협잡꾼이 아니라는 것을 납득시키기 위해 그들은 잔치를 베풀어 그들에게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대접하였다.
아직도 그들의 여행담을 의심하는 손님들에게 그들은 긴 여행으로 남루해진 몽골의 의상을 입고 그들 앞에 나와 실로 꿰맨 이음매를 풀어헤치니 그속에서 보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것이 폴로 일가의 주장을 입증해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중국의 황제가 아니고서야 어느 누가 이런 보물을 줄 수 있겠느냐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이들이 베네치아로 돌아오고 4년 뒤 베네치아와 제노바 사이에 동방무역로의 지배권을 둘러 싼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에서 포로가 된 마르코 폴로는 제노바의 감옥에 갇혀 피사 출신 작가 루스티첼로에게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루스티첼로는 그것을 받아 적었다.
1298년부터 1299년 사이 감옥에서 이루어진 이 구술(口述)의 결과가 [세계의 기술(記述)](Divisament dou monde), 즉 [동방견문록]이다. [일밀리오네](Il Milione)라는 제목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임종을 앞둔 마르코 폴로에게 친구들은 영혼의 안식을 위해 [동방견문록]에 실린 ‘거짓말’들을 취소하고 회개하라 권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본 것들의 절반도 다 이야기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