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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등 新한류 열풍 타고… 일본 MZ세대 “한국 가고 싶어요”
[위클리 리포트] K컬처 인기 업고 활기 찾는 ‘K관광’
K콘텐츠-K스타 세계적 인기 끌며, 日 젊은이들 한류 재확산 주도해
“현실 무기력 탈출구로 한류 낙점”… 한국 음악-패션 등 다방면에 관심
엔데믹 국면 전환 맞물리며, 한국 찾는 일본인 관광객도 젊어져
외국인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 없는 명동 거리. 일본 나고야에서 온 23세 동갑내기 친구 아카네, 사호, 게이 씨(앞줄 왼쪽부터)가 환한 표정으로 걷고 있다. 최혁중 기자
《서울 중구 명동에서 27일 만난 일본인 관광객 아이미 씨(21)와 지히사 씨(21)는 또렷한 한국말로 “트와이스 너무 예뻐요”라고 외쳤다. 한국에 3박 4일 일정으로 놀러온 두 사람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바로 명동의 한 면세점. 이곳에 트와이스 멤버들의 핸드프린팅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미 씨는 핸드프린팅에 손을 대고 있는 기념사진을 보여주며 “트와이스를 좋아하다 보니 한국도 좋아하게 돼 여행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 오사카에서 온 히로 씨(28)는 한손엔 무거운 짐 가방을, 다른 한손에는 핫도그를 쥐고 있었다. 이날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서 ‘방탄 벤치’ 인증샷을 찍고, 유명 베이글 맛집을 방문해 30분 넘게 줄을 서 베이글을 구입한 뒤 숙소로 가는 길이었다. 그는 “지난해 방탄소년단(BTS)에 뒤늦게 빠진 뒤 멤버들이 즐겨 먹는 한국 음식이 실제로 어떤지 늘 궁금했다”며 “유명한 관광지도 좋지만 현지인 ‘핫플’에서 한국의 힙한 감성을 느껴보는 게 이번 여행의 목표”라고 했다.》
지난해 10월 부산 연제구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30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 기원 콘서트 ‘BTS 옛 투 컴 인 부산’ 현장. 방탄소년단(BTS)은 최근 제36회 일본 골드디스크 대상에서 10관왕을 거머쥐는 등 일본 현지에서 K팝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부산=뉴시스
한류 열풍의 시초 격인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 NHK 위성에서 2003년 4월 3일 처음 방영된 지 꼭 20년이 지난 지금, 일본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제4차 한류’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BTS가 최근 일본 골드디스크 대상에서 10관왕을 달성한 데 이어 르세라핌, 스트레이키즈 등 K팝 아이돌 그룹들이 오리콘차트 부문마다 1위에 오르내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한류가 재확산되면서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다시 늘어날 것이란 기대도 커지고 있다.
● “역동적 K팝, 고단한 日 MZ세대 탈출구”
배우 현빈과 손예진이 주연을 맡은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일본에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통해 방영되며 큰 인기를 끈 이 드라마는 제3차 한류를 이끈 주역으로 꼽힌다. 스튜디오드래곤 제공
제1차 한류는 2003년 ‘겨울연가’를 계기로 일본 중년 여성들이 ‘욘사마’(배용준) 등 한국 드라마에 열광한 데서 시작했다. 이후 2010년대 동방신기를 비롯한 아이돌 그룹이 현지 투어 공연을 하며 제2차 붐을 일으켰고, 팬데믹 기간 K팝과 함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통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등이 인기를 얻으며 제3차 열풍을 이어갔다. 최근에는 가장 보수적인 문화 분야로 꼽히는 음식과 패션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대된 추세다. 일본 내 재일교포가 세 번째로 많은 고베 지역에서는 한국 총영사관과 한인 사회가 주축이 돼 효고현과 함께 ‘아시안 파크’ 출범을 준비 중이다.
제1, 2차 한류를 일본 중년층이 이끌었다면 최근 열풍을 주도하는 건 MZ세대다. 이들은 반한 감정이 기성세대에 비해 현저히 낮고, 어릴 적 여행 등으로 한국 문화에 친숙한 세대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과거엔 한국과 일본이 수직적 관계로 인식됐지만 일본 경제가 30년간 침체된 반면 한국은 급속 성장하면서 젊은층은 양국을 대등한 관계로 느낀다”며 “1970, 80년대 세계적으로 전성기를 누렸던 일본 문화가 경제적 쇠퇴와 함께 정체되면서 젊은층이 자국 콘텐츠에만 만족하기는 어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류 열풍의 기저엔 일본 젊은층이 느끼는 불안과 좌절이 깔려 있단 분석도 나온다. 장기적인 불황 속에서 자라난 일본의 20, 30대는 ‘무기력하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현실적으로 사고해 ‘사토리(득도) 세대’라고 불린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전망이 불투명한 젊은층이 현실의 무기력을 탈피할 수 있는 탈출구로 한류를 낙점한 것”이라며 “동일한 아이돌 문화여도 아기자기하고 소위 ‘소녀풍’인 일본 현지 음악 대신 역동적이고 화려한 K팝 문화를 즐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두 나라는 근현대 문화 코드가 닮아 공감하기 좋다는 점도 작용했다. 황진미 대중문화 평론가는 “우리나라 근대 문화가 일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로의 문화 콘텐츠에 친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1970, 80년대 이후 국내 문화가 자기 색을 갖고 발전하면서 일본 젊은층이 서로 ‘비슷하고도 다른’ 점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특히 20년 전 ‘욘사마’ 팬들이 지금 2030의 엄마 세대가 되면서 한류는 현지 젊은층에게 더욱 자연스러운 문화가 됐다”고 덧붙였다.
2, 3년 사이 K콘텐츠가 아시아를 넘어 서구권에서 인기를 얻은 것도 제4차 한류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동아시아 문화를 연구하는 김은영 인하대 중국학과 교수는 “통상 ‘문화 수도’로 여겨지는 북미와 유럽에서 K콘텐츠를 즐기는 현상이 일본 내에서 한류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자리 잡게 했다”며 “한류가 더 이상 마니아들만 즐기는 소수 문화가 아니라 당당하게 즐길 수 있는 주류 문화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 올 1, 2월 외국인 관광객 중 일본인 비중 최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우리나라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 수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 2월 한국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 수는 16만1293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4096명)보다 40배로 급등했다. 같은 기간 대만인(9만7447명), 미국인(9만5324명), 중국인(7만830명)을 크게 앞질러 일본인 관광객은 전체 외국인 관광객 중 가장 큰 비중(17.6%)을 차지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를 찾은 일본인 관광객. 외국인들은 길거리 음식을 구경하거나 화장품 가게 등에서 쇼핑을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최혁중 기자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거리에서 만난 일본인 나카지마 사야카 씨(22)는 처음 한국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YG엔터테인먼트 소속의 한일 보이그룹 ‘트레저’의 팬이다. 그는 “트레저를 좋아하면서 한국에도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일본 학교의 한국 수학여행이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재개되면서 지난달 21일에는 일본 구마모토현 루테루 고등학교 학생 37명과 교사 2명 등 총 39명이 수학여행으로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5일간 전북 전주 한옥마을, 서울 경복궁과 롯데월드 등을 구경했다.
최근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일본인 관광객은 팬데믹 이전에 비해 젊어지고, 방문지가 다양해진 것이 특징이다. 양경수 한국관광공사 일본팀장은 “일본 최대 온라인 여행 사이트 라쿠텐트래블에 따르면 ‘한국 여행’을 가장 많이 검색하는 연령대가 3년 전 40∼60대에서 한류 팬인 10, 20대로 바뀌었다”며 “20년 전 일본 중장년 여성 관광객이 드라마 촬영지를 구경했다면 지금은 젊은 여성들이 한국식 패션과 메이크업으로 꾸미고 성수동 등 서울 곳곳의 핫한 거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일 정상회담에 이어 5월 8일 일본 정부가 해외 입국자를 대상으로 유전자증폭(PCR) 검사 의무를 해제하면 관광객 유입은 더욱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일본 다이이치세이메이케이자이(第一生命經濟)연구소에 따르면 2004년 한 해 ‘겨울연가’ 열풍으로 유입된 일본인 관광객이 우리나라에서 유발한 경제적 효과는 총 1조1906억 원에 달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한류에 애정을 품고 온 여행객은 기존에 ‘가깝고 싸서’ 오던 이들보다 씀씀이가 큰 편”이라며 “5월 8일 일본 PCR 검사 의무 해제에 앞서 현지 한류 열풍을 관광 수요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장실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일본에서는 한류 20주년을 맞아 다양한 방한 캠페인을 준비 중이다. 중국권에서는 세대별 타깃 마케팅을, 미주에선 한류 콘텐츠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국가별 맞춤형 마케팅을 통해 올해 외래 관광객 1000만 명 유치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지윤 기자, 최지선 기자
외국인 관광 급증에… 생기 찾은 명동 상권, 백화점 매출도 ‘껑충’
[위클리 리포트] K컬처 인기 업고 활기 찾는 ‘K관광’
2월 홍콩인 관광객 전년 대비 60배↑… 엔데믹 국면 맞아 다시 한국 찾는 외국인 관광객
백화점 외국인 매출 4배 이상 증가
“블랙핑크 지수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분식집에 가보려고 한국에 왔어요!”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만난 태국인 페리 씨(25)는 초록색 분식 접시에 차려진 떡볶이와 김치볶음밥 사진을 보여주며 활짝 웃었다.
이날 명동 거리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거리 양쪽에는 길거리 음식을 파는 간이 트럭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고, 앞으로 걸어가려면 줄을 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했다. 서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지나가려는 사람들이 뒤엉켰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은 칼국수집 ‘명동교자’는 오후 6시에 이미 만석이었고, 관광객 4개 팀이 대기 중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점포들이 모두 문을 닫아 을씨년스러웠는데, 같은 곳인지 헷갈릴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엔데믹 국면과 한일 관계 개선, 중국발 입국자 유전자증폭(PCR) 검사 해제 등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대폭 늘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 2월에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91만367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8만1850명) 대비 5배가량으로 늘었다. 국가별로 일본(16만1293명) 대만(9만7447명) 미국(9만5324명) 중국(7만830명) 태국(5만3965명) 베트남(5만449명) 홍콩(4만3014명)의 순으로 많았다. 특히 홍콩은 춘제 이후인 2월이 관광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전년도 2월 대비 관광객이 약 60배로 폭증했다. 대만 역시 한국 관광 수요가 늘어난 데다 2월 평화기념일 연휴의 영향으로 방한객이 전년 동월 대비 56배로 늘었다.
코로나19로 급감했던 외국인 관광객 대상 매출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1, 2월 외국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1배로 증가했다.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은 올해 들어 3월 22일까지 전년 동기 대비 외국인 매출이 8.5배로 늘었다.
명동 화장품 가게 점원 김정은 씨(37)는 “문을 닫았던 가게들이 지난해 가을부터 조금씩 다시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주말에는 코로나 이전처럼 외국인 관광객이 많아 매출이 회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일본, 대만 등 22개국 외국인에 대해 전자여행허가제(K-ETA)를 내년 말까지 면제한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5월부터는 유럽, 미국 등 34개국 입국 비자 소지자가 환승 시 지역 제한 없이 최대 30일간 체류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관광공사는 지난해 7월 외국인 관광객들이 다양한 한국 콘텐츠를 체험해 볼 수 있는 한국관광홍보관 ‘하이커 그라운드’를 열고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박경숙 한국관광공사 관광홍보관운영팀장은 “올해 2월 기준 하이커 일평균 방문객 수는 2088명이며 이 중 외국인이 30% 정도를 차지한다”며 “국제 관광 시장이 정상화되면 한류팬을 비롯해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지선 기자, 이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