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하반기 이후 웰빙은 마케팅의 중심어가 되었다. 열풍으로까지 묘사되는 웰빙 트렌드를 읽는 주요한 코드를 알아본다.
지난 해 하반기에 조심스럽게 등장한 웰빙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다양한 기관에서 발표하는 2003년 히트 상품 목록에는 웰빙 제품들이 빠짐 없이 자리를 차지하였다(<표 1> 참조). 새해 들어 웰빙의 기세는 웰빙 의류, 웰빙 체조, 웰빙 주택, 웰빙 수면법 등 의식주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른바 웰빙 열풍이다. 소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건전하고 건강한 삶을 위한 소비 방안을 모색하는 경향은 우리보다 앞서 선진국에서 관찰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미국판 웰빙인 ‘LOHAS(Life Of Health & Sustainability)’가 그렇고, 고액 연봉을 포기하고 한적한 시골로 낙향하는 영국의 다운시프터(Downshifter)들에 대한 얼마 전 기사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의 웰빙 열풍을 이해하고 기업 경영에 활용하기 위한 웰빙의 주요한 코드를 알아본다.
코드 1 : 웰빙의 개념 정의는 상당히 자의적이다
웰빙에 대한 통일된 개념 정의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값 비싼 유기농 제품을 먹고, 최고급 스파를 즐기는 고급화 소비로 웰빙을 정의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명상 음악, 요가 등 주로 정서적인 차원을 웰빙의 대표 상품으로 들기도 한다. 혹은 돈을 지출하는 소비 행위는 아니더라도 지역 사회 봉사에 팔을 걷고 나서는 건전한 시민상을 웰빙의 한 편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웰빙은 단어 자체가 갖는 특성으로 다양한 개념들을 포괄적으로 끌어 안는다. 사전(辭典)적으로 웰빙은 well과 being의 합성어이다. 여기서 ‘well’이 내포하는 건강한, 건전한, 안락한, 고급스러운 등의 다양한 의미는 웰빙 개념 정의에 상당한 혼선을 가져다 준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상반되는 모습이 동일한 웰빙 카테고리로 함께 취급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헬스 클럽에서 땀 흘리는 운동을 하는 모습 뿐 아니라 집 안에 가만히 않아 명상을 하면 여유롭게 쉬는 일 역시 웰빙인 것이다. 보다 포괄적으로 정의한다면 well-being이라는 합성어가 의미하는 행복, 만족, 복지로까지 확대할 수도 있다. 소비의 궁극적인 목적이 개인적인 효용 만족이라고 본다면 결국 ‘모든 소비 행위 = 웰빙 소비’라는 등식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웰빙 소비가 새로운 트렌드로 다루어지기 위해서는 여타의 소비 트렌드와 구분되는 차별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기업 차원에서도 지나치게 넓거나 혹은 한정된 개념 정의로는 경영상에 시사점을 발견하기 어렵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웰빙의 가장 적절한 정의는 ‘자신과 가족의, 건전하고 건강한 삶을 위한 소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코드 2 : 웰빙의 진원은 소비 니즈의 본질적 변화에 있다
하나의 소비 트렌드의 배경을 읽기 위한 가장 중요한 측면은 주요한 소비 환경 변화를 살피는 일일 것이다. 이제 탄생한 지 얼마되지 않는 웰빙이 열풍으로까지 번지게 된 소비 환경 변화에는 어떠한 내용들이 있을까.
무분별하고, 성취 지향적 삶의 再考
자신의 건강에 이로운 것, 해로운 것에 대한 관심은 소비자들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최근의 연이은 소비 이슈들은 단편적인 건강하고 건전한 삶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을 전에 없이 높은 수준으로 올려 놓았다. 지난 해 이후 최근까지 집중되고 있는 신용 불량자 문제, 각종 성인병의 만연, 전세계를 일시에 초식 동물 사회로 몰고 간 광우병, 조류 독감으로 이어지는 글로벌 이질(Global Epidemics) 등은 우리에게 건강하고 건전한 소비에 대해 다시 한 번 심사숙고 할 계기가 되었다.
사회 구성원들의 근본적인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서도 웰빙 열풍의 동기를 읽을 수 있다.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2003년 한국의 사회지표’ 조사에서 건강에 대한 관심은 98년 36.7%에서 02년 44.9%로 8.2% 포인트 증가한 반면, 경제 문제는 98년 30.5%에서 02년 24.5%로 오히려 6% 포인트 감소하였다. 젊은 세대에서는 이러한 가치관 변화가 더욱 현저하다. 최근 한 인재파견 회사에서 2030세대 남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직장 인식 조사 결과를 보자. 직장 생활을 통해 얻고 싶은 최우선 목표에 대한 질문에서 ‘경제적 부’(28.1%)나 ‘자기가치 실현’(17.9%)보다 ‘개인 생활과 사회 생활의 적절한 조화’(41.9%)가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다. 더 이상 고소득이나 명예보다 여유로운 개인 생활을 선호하는 젊은 직장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스마트한 웰빙 소비자들
얼마 전 모 방송사에서는 신규 입주 아파트가 인체에 주는 해독을 경고한 적이 있었다. 방영 이후 최신식 설계와 디자인의 새 아파트를 선호하던 소비자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모르면 몰라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내 몸에 좋은 것과 해로운 것을 알게 된 다음에야 내게 좋은 제품을 선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주목할 것은 소비자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좋은 것, 해로운 것을 구분하는 지식의 총량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TV 매체와 신문, 잡지 등에서는 소비자들의 관심거리가 되는 웰빙 관련 정보를 깊이 있게 전달하고 있다. 요즈음 대부분의 일간지에서는 주1회 꼴로 건강을 주제로 하는 별도의 섹션 신문을 제공하는 일은 일반화되어 있다.
인터넷을 통해 적극적으로 정보 탐색에 나서는 노력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의 소비자들은 병원에 한 번 가더라도 사전에 웹상에서 자신의 질병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섭렵하는 일을 빼 놓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건전하고 바람직한 삶을 위한 정보를 적극 탐색하려 한다. 이러한 정보가 세계 제1의 초고속 망을 갖춘 우리나라 전역으로 순식간에 대중적 상식이 되는 일도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이에 따라 웰빙 즉, 건강하고 건전한 삶에 방해가 되는 좋지 않은 음식물, 잘못된 식 습관 등은 자연스럽게 여과될 것이다.
코드 3 : 웰빙은 최근의 신소비 트렌드와 한 배를 탔지만 대중성에서 차별화된다
웰빙은 최근에 주목을 받고 있는 기타의 주요 소비 트렌드와 동일한 맥락에서 신소비 니즈의 한 흐름이다. 다른 한 편으로 웰빙이 갖는 대중적 특성은 여타의 신소비 니즈와 구분해주는 주요한 차별 포인트이다.
기본적 소비 이후의 新소비 트렌드
최근에 주목을 받는 소비 트렌드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지난 해 짝퉁 용어를 만들어 낸 명품족, 합리성보다는 감성적 만족을 주된 제품 선택 기준으로 삼는 감성(Emotional) 경향, 온라인 상의 아바타나 개인 홈페이지인 불로그에 대한 열광으로 대변되는 아이덴터티(Identity) 소비 등이 대표적이다. 명품 브랜드를 선호하는 소비자는 유사한 기능과 품질의 제품 가운데 브랜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명품 제품에 3~4배가 넘는 가격을 기꺼이 지불한다. 가상의 인형에게 입힐 옷에 수 천원의 돈을 아끼지 않는 신세대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기본적 의식주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화들은 아니다.
이러한 ‘신소비 트렌드’들은 포화 상태에 이른 대부분의 시장에서 신규 수요 창출의 중요한 돌파구가 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최근의 히트 상품들을 과거 10년 전의 유사한 제품 카테고리로 비교해 보면 이러한 신소비 트렌드의 영향이 뚜렷하게 보인다(<표 4> 참조). 반면 이전의 히트 상품들은 기존 제품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부가적인 기능을 추가하는데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웰빙을 보는 기업의 시각 소비 역시 기본적 소비 니즈가 충족되면서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 없고, 아무 옷이나 입을 수 없고, 아무 집에서 살 수 없다는 신소비 트렌드의 중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웰빙 소비의 대중화 특성
웰빙 이전의 신소비 트렌드는 일부 소비 계층에 한정되는 면이 강했다. 예를 들어, 명품족은 중산층 소비자 이상의 2030 세대에 포커스 된 측면이 강했다. 또한 아이덴터티 소비의 주체는 개성 표현이 강하고 또래 소비 문화에 뒤지는 것을 터부시하는 10~20대 신세대 소비자들이었다. 이에 반해 웰빙은 기존의 소비 트렌드에 비해 폭 넓은 대중성을 가지고 있다. 10대의 신세대들은 산뜻한 트레이닝 패션으로 웰빙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며, 주부들은 건강식 먹거리를 고르면서 가족 건강의 수호 천사로서 웰빙족임에 만족할 것이다. 값 비싼 스포츠 클럽에서 최고급 스파를 즐기는 프리미엄 소비의 주체가 있을 것이고, 저녁을 먹고 동네 한 바퀴를 가볍게 뛰는 가족들 역시 전형적인 웰빙족임에 틀림없다. 미국의 LOHAS 인구와 소비 행태는 우리 웰빙의 대중화 경로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웰빙 열풍의 기업 경영 관점
우리의 웰빙 트렌드도 선진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향후의 주요한 소비 트렌드이면서 현재보다 더 광범위한 대중화의 경로를 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진행 중인 웰빙 열풍을 기업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주요한 포인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실질적인 Value를 제공해야
웰빙 흐름의 주체는 소비자들이다. 기업 차원에서는 무엇보다 소비자 관점에서 실질 가치(Real Value)를 제공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요란한 광고 문구나 막대한 마케팅 노력보다는 소비 니즈에 부응하는 실질적인 가치를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중요할 웰빙 니즈의 키워드는 ‘건강’과 ‘실속’으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건전한 소비 태도나 지역 봉사, 정신적 평안 등의 개념보다는 건강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에서 수익 가능성을 발견하기가 용이하다. 고령화의 전개, 환경의 위협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은 시간이 갈수록 증대될 것임에 틀림없다.
실속화 역시 웰빙 트렌드의 본질을 읽는 중요 키워드이다. 물론 웰빙을 고급화 소비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존의 소비 트렌드와의 차별성이나 지속성, 실속 소비 성향의 일반화를 생각하면 고급 소비의 대표격인 명품족과 웰빙족은 차이가 있다(<표 5> 참조). ‘자신과 자기 가족의 건강한 삶’을 목적으로 소비하는데 굳이 값비싼 과시성 제품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웰빙의 마케팅 차원의 활용
웰빙 열풍의 다른 특성은 제품이 아닌 마케팅 차원에 있다. 웰빙이라는 마법의 단어는 기존 제품의 마케팅 메시지에 어렵지 않게 접목할 수 있다. 지난 해 대표적인 웰빙 가전 제품인 공기 청정기가 출시된 시점은 훨씬 이전이었다. 본격적인 성장의 계기는 지난 해의 극심했던 황사 현상이었다. 이즈음 등장한 웰빙 개념은 성장세에 상당한 탄력을 주었다. 당연히 공기 청정기의 마케팅 화두로 웰빙이 자리를 차지하였을 것이다. 어쩌면 웰빙의 인기가 아니었다면 ‘맑은 공기를 통해 건강한 삶을’ 식의 통상적이고 개별적인 마케팅 메시지를 내는데 그쳤을 것이다.
건강을 주제로 하는 대개의 전자 제품에서 동일하게 웰빙의 마케팅 통합화가 진행된다. 발 마사지기, 혈압계, 전기 마사지 의자 등의 가전에서도 기존의 실버 가전 메시지를 뒤로 두고 웰빙을 화두로 전향 배치한다. 주택 분야에서도 지난 해 9.23 조치 이후, 투기 수요보다는 실 거주자 수요가 상대적으로 중요해지면서 거주자 편의시설에 기울이는 노력이 커지고 있다. 체력 단련 시설은 물론이고 종합 병원과 제휴로 입주자들에게 헬스 케어 시스템을 제공하거나 침대 매트리스 소독, 욕실 청소 및 소독 등의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등의 마케팅 기법도 인기를 끈다고 한다. 물론 이 경우에도 웰빙 메시지는 약방의 감초격으로 거리낌 없는 포용력을 발휘한다.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건강한 삶과는 전혀 무관한 제품들에 억지로 연결되는 웰빙 마케팅의 차용이다. 제품의 실질과 무관한 과대 광고나 무리한 웰빙 개념의 적용은 경계할 일이다.
감성 특성을 적극 가미하라
건강에 기여하는 실속형 제품이라고 시장에서 성공을 보장 받을 수 있을까. 최근의 잉여소비 시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오히려 더 일반적이다. 건강과 실속이라는 키워드가 웰빙 소비 니즈의 본질이기는 하지만 나 홀로 웰빙 마케팅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그간의 웰빙 제품간의 성적표를 보면 프리미엄화, 감성 경향 등 여타의 소비 트렌드를 접목한 제품이 승리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난 해 다양한 공기 청정기 제품 가운데 인기를 독차지했던 샤프 전자의 플라즈마 클러스터는 기능상의 우위보다는 세련된 외관의 기여가 컸다는 후문이다. 몸을 건강하게 하는 다양한 방법 가운데 요가가 유독 인기를 끌었던 가장 큰 이유도 감성 소비자를 유혹하는 독특한 매력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소비자 신뢰의 중요성
웰빙 산업에서는 소비자와 기업간 신뢰의 구축이 다른 산업에 비해 매우 중요해진다. 웰빙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가 높아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칫 이 부분이 간과될 우려가 있다. 하지만 결과는 치명적이다.
몇 해전 일본에서 발생한 사건은 시사하는 바 크다. Snow Brand Milk는 1925년 일본 축산업자들의 공동 투자로 설립된 전통 있는 유가공 기업이었다. 2000년 7월 변질된 저지방 우유 공급으로 촉발된 소비자 신뢰의 추락은 회사에 되돌릴 수 없는 타격을 주게 된다. 신선한 우유에 대한 웰빙 소비자 니즈에 경쟁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품질 관리를 무시한 결과였다. 회사는 기존의 당일 추출, 다음날 배달이라는 ‘D-1’ 방식의 업계 표준을 넘어 당일 생산, 당일 배달인 ‘D-0’ 시스템으로 시장 지배력을 높여 갔다. 웰빙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최소한의 완제품 품질 검사도 생략하면서 급기야 2차 대전 이후 최대 규모인 13만 명의 식중독 환자를 발생시키면서 기업의 생명을 마감하게 된다.
웰빙의 진화에 주목하자
현재 진행 중인 웰빙의 모호하고 다중적인 개념은 시간이 지나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될 것이다. 환경 오염의 심화, 글로벌 이질의 빈번한 발생, 고령화 사회의 진입 등의 여건들은 시간이 갈수록 실질적인 소비 니즈로서 웰빙에 힘을 실어줄 것임에 틀림없다. 이에 따라 향후 전개될 웰빙의 진화 모습에서 기업 수익의 접점을 찾는 일이 시간이 갈수록 중요해 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