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인가....... 인터넷에서 한참 뜨는 단어가 ........ "대륙조선설" ............... 이라는 겁니다.
이것의 요지는 조선황실은 대륙 시안(Xian..우리발음으로 서안)에 있었고... (병자호란이후로 북경으로 천도했다는 설도 있는 걸로 알고 있음)...........
일제에 의해서 망한 이후로... 대륙에서 한반도로 조선황실이 유배되었다는 게 요지입니다. 물론 따라서 현재 경복궁등은 전부 일제가 만든 가짜라는 거죠.......
이것을 주로 주장하는 사이트중에..... http://cafe.daum.net/chosunsa..... http://www.sidaesori.co.kr....... 등등.. 그외에도 많은 재야사학자들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 대륙조선설을 접했을 때는 미친놈들이라고 생각했죠...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너무 다르고 황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륙조선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정연하고 이치에 맞고 상식적으로도 맞고... 그동안 역사에 대해서 의문을 품어왔던 많은 것들이......... 대륙조선설을 사실이라고 가정하자 눈 녹듯이 풀리는 것이었습니다.
대륙조선의 전신은 고려고....... 결국 고려도 대륙과 한반도와 동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아시아 제국이었고...... 삼국으로 올라가도 역시 동아시아 전체를 다스린 대제국들이었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쪽바리들과 서양이 짜고 한반도로 꾸겨집어넣었다는 것이 대륙조선, 대륙삼국의 요지입니다.
그럼 왜 제가 대륙조선설을 믿게 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설명하겠습니다.
현재 서울대를 비롯한 친일파후손 역사학자들이 장악한 강단사학계의 주장은 실제유물로 입증할 수 없는 것은 전부 뻥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대륙조선과 대륙삼국의 실제유물을 입증할 증거가 없으니 뻥이라는 것이죠.
삼국과 고려,조선이 동아시아의 패자였다면...... 당연히 동남아와 한반도 역시 대륙삼국과 고려, 조선의 영향권에 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삼국과 고려, 조선의 유물이 안 나올 수가 없겠죠??? 하지만 대륙의 유물은 지나공산정권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함부로 보여주지도 않고 조사도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실제유물만 가지고 대륙에서 나온 유물이 없다고 대륙삼국과 대륙조선설을 부인한답니까? 이건 바로 쪽바리들과 지나족들의 주장과 똑같은 것으로 바로 우리 강단을 장악하고 있는 친일파 이병도계 역사학자들은 바로 쪽바리들의 하수인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쪽바리들이 만든 역사관으로 우리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 궁궐이라고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대부분 불교의 사찰양식과 아주 흡사합니다.
처음에는 중국이나 일본의 궁궐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보면 볼수록 우리나라 궁궐의 양식은 불교사찰건축양식이지..... 왕이나 황제의 거처하는 건축양식이 아닙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섬라(태국)의 왕이 조공을 바쳐오는 장면도 있는데.. 태국이나 베트남의 궁궐양식만해도 경복궁보다 확실히 도성의 건축양식을 제대로 갖춘 궁궐양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500년이나 왕조를 이어간 나라가 경복궁같이 초라한 궁궐을 도성이라고 살았다는 건 말이 안됩니다. 경복궁이 왕이사는 도성의 건축양식이 아니라는 건 이미 많이 밝혀진줄 압니다.
기타 경복궁이 할리우드셋트라는 건 "시대소리" 사이트에 많이 밝혀졌더군요..
제가 조선왕조가 근세까지도 대륙에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 또다른 이유는
바로======>1500년대 중반부터....... 1949년까지........... 서양세력이 동아시아를 침략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배운 역사와는 너무나 다른 사실들이 숨어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임진왜란이 1592년에 현재 일본열도에서 왜적이 한반도로 쳐들어와서 생긴 한반도와 일본열도 왜적의 싸움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허구인가하는것은....===>http://cafe.daum.net/chosunsa에 잘 나와있더군요..........
남해안에서 거북선과 임진왜란 유물이 거의 안나오고..... 난중일기에 현 대륙의 여러지명과 양자강일대가 격전지로 나오고 하는 여러가지 증거들이 있지만...
제가 더욱 충격을 받은것은......... 1500년대라고 하는 시점입니다.
서양백인들이 식민지침략의 도화선은 1492년 스페인의 후원으로 시작한 콜롬부스의 아메리카대륙 발견이 아닌가 합니다.
그후로 스페인의 마젤란이 필리핀에 도착한게 1521년이고.. 1565년부터 스페인은 필리핀식민통치를 시작했습니다.
현재 필리핀의 국명인 필리핀은 식민통치당시 스페인국왕이던 필립에서 연유합니다. 참 한심한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ㅎㅎ
어쨋든 스페인의 필리핀식민통치가 시작된 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8년전이군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인 1590년경에 포르투갈의 선단이 대만에 도착해서 대만북부에 포르투갈 군대가 주둔하게 되고 포르투갈인들이 정주합니다.
서양인들이 식민지침탈하는 과정에서 선단이라 함은 대규모 화력을 갖춘 군함과 대규모 해군병력이 함께 이동하던 시기였습니다....언제 어느곳에서 해적이나 상륙시 원주민의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데.... 대양을 항해하면서 해군력의 지원없이 식민지원정을 했다는 건 왜곡된 역사일 뿐입니다.
이미 임진왜란 이전에 포르투갈의 대규모해군병력이 대만북부에 주둔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또한 일본인들이 포르투갈상선과 처음 교류한 것이 1543년입니다.
임진왜란의 무려 50년 전이군요............... 이때 왜놈들은 포르투갈 해군의 조총을 봤을 것이고 눈이 뒤집어졌을 겁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갑자기 포르투갈이라는 외계인이 나타나서 레이저건을 건네준거나 마찬가지죠........ 당시 칼과 화살로 전쟁이 결정나던 시대에 조총이란 건 거의 요즈음의 레이저총이나 마찬가지로 엄청난 충격을 줬을 겁니다.
50년이란 세월이면 당신 조선통신사를 국고를 탕진하면서까지 신처럼 떠받들던 일본인들에게는 충분히 서양세력에게 신식무기를 사들여서 조선과 한판뜰 수 있는 충분한 준비기간이었을 겁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만약 당시 조선왕조가 한반도에 있었다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거죠.............. 그리고 현재의 일본이 당시에도 일본열도였다면 이것 역시 뭔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스페인이든... 포르투갈이던..... 혹은 포르투갈이 먹고 있던 대만을 다시 스페인이 물려받고 그걸 다시 네덜란드가 통치한 것이 1590년대부터 1600년대인데...........
생각을 해보세요........ 스페인과 포르투갈... 네덜란드에서....... 한반도와 일본은 거의 지구의 끝과 끝입니다......... 또 스페인이 군대를 주둔시키고 필리핀을 직접식민통치 시작한 게 1565년입니다......... 지구 저끝 유럽에서 수백일을 항해해서 필리핀을 먹은게 1565년이고..... ....... 포르투갈 선단이 일본에 도착한 게 1543년이라면..............그리고 그게 일본열도라면.....
당연히..........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최소한 1543년과 1565년사이에는 한반도에 찝적거렸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대로 하면 서양식민지 원정단이 최초로 조선에 모습을 보인건 1653년 네덜란드 하벨표류기라고 배웁니다... 물론 상선이라고 듣기좋게 포장해서 말이죠...
1653년이라?????????????????.........
이미 1590년에 포르투갈인들이 대만북부에 주둔하고 있었고.. 포르투갈인이 대만에서 쫏겨나가고 그 공백을 스페인이 채웠다가 필리핀에서 허덕이는 스페인군의 힘의 공백을 이용해서 네덜란드가 대만을 식민지로 만든게 1624년입니다.
또 포르투갈 선단이 일본에 도착한게 1543년이면....네덜란드인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한 1653년과는 무려 110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차가 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죠...... 당시 임진왜란에서도 보듯이......1543년 포르투갈에게 조총을 전수받은 이후로..... 일본은 각지방 영주들끼리 조총으로 무장하고 대규모 전쟁을 벌이면서 군사력이 엄청나게 커졌습니다......그리고 그 군사력이 임진왜란 침략의 원동력이 됐다는 것도 다 알 겁니다.
그럼 유럽끝에서 수백일을 항해해온 항해기술과 측량기술이 당시 이미 대양항해로 상당수준 발달해있던 백인들이...... 1543년 일본열도를 발견하고 1653년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할 때까지 한반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이미 1565년부터 군대를 주둔시키고 필리핀을 식민통치시작하고........ 이미 1590년에 대만북부를 차지한 서양인들이......한반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일본만 발견했을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죠.... 유럽인들이 동양으로 오려면..... 인도양을 지나서.... 싱가폴있는 말라카해협을 거쳐서....... 대양의 거센파도를 피하려면.... 가장 안전한 항해방법은.. 베트남연안을 따라서..... 대륙의 동남해안(홍콩,복건성,대만)을 따라서 동아시아를 훓는것이
가장 안전한 항해방법입니다....... 결국.... 홍콩, 마카오등의 광동성남해안이 가장 먼저 유럽백인들의 손에 닿았을 것이라는 것이 상식이란 거죠...
아니 상식적으로..... 서양인들이....... 대륙의 동남해안을 거쳐 올라가면서... 태풍이 불 것같으면 잽싸게 배를 정박시키고 대륙의 연안이나 대만에 상륙해서 피해야지....
싱가폴의 말라카해협을 지난 후에....... 다른데 다 놔두고..... 태풍불고 위험한 남지나해 망망대해 바다를 항해해서 1543년 일본열도에 갔다가..... 별 볼 일없어서....
47년이나 후에 대만북부를 먹고 식민통치했다는게.... 말이 됩니까?????????? 하하하...
그리고 대륙동남해안을 따라서 식민지만들만한 지역들을 탐색하다보면... 산동반도에 다다르게되고.. ... 산동반도에서는 한반도가 보이고... 산동반도에서 발해만을 거쳐서 현재 동북삼성의 다렌등을 머저 볼것이고... 그도 아니며 산동반도에서 한반도로 항해한 후에.....
그후에 .... 일본열도로 가야... 상식적으로 가장 안전한 항해라 이겁니다..
당시에는 연안항해가 가장 안전한 항해이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1543년의 포르투갈의 일본도착 이후의 서양인들의 행적을 보면................... 일본이라는 지방은....... 현재의 일본열도일 수는 절대없고......
대만보다는 남쪽에 붙어있는 대륙동남해안지역이어야 아다리가 맞게 됩니다.
바로 대륙조선사를 주장하시는 재야사학자님들의 견해와 정확하게 일치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대륙동남해안인...... 수많은 재야역사학자들에 의해서.... 현재 일본열도 상위지배층의 본뿌리라는 복건성... 바로 대만과 마주보고있는 대륙동남해안의 자료를 조사해보았습니다. ... 아니나 다를까........................ 서양인들의 서세동점 선박일지나 기록을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곳이.... 바로...................... 홍콩... 광동성 남부해안... 하이난섬... 닝샤... 샤먼 .. 등등.... 바로 복건성의 해안지역들입니다............ 서양인들이 말라카해협을 지나서.. 가장먼서 교역을 시도한지역이.... .바로 이지역들이란 말이고........ 포르투갈 선단이 1543년 도착한 일본이라는 지방은 현재의 일본열도가 아니라.... 바로 이....... 홍콩남쪽부터.... 대만과 대만과 마주보는 현재 중국대륙까지의 해안선이라 이말이죠..
이렇게 보면..... 모든의문이 하나씩 풀려나가기 시작합니다....
포르투갈 선단이 싱가폴의 말라카해협을 지나서 대륙남동연안을 따라서 안전항해를 하다가 1543년 제일먼저 맞닥뜨리는 집단이...바로 대륙의 동남해안에서 해적질해먹고 살던 왜적떼.. 바로 쪽바리들이었다는 것이죠.....그후 쪽바리들에게 조총을 전수해주고....1590년에 포르투갈 군이 대마북부를 장악했다는 사실은.........1543년부터...1590년까지.....포르투갈이 쪽바리들에게 조총을 전수해주고....조총의 전투전술도 가르키며 단련시킨후에....1590년에 이르러 대륙의 황제국이었던 조선왕조를 공격하기위해서...포르투갈이 대만북부에 교두보를 확보했던것으로 보입니다.......
옛날에 짱골라애들이 그러는데....복건성넘들은 중국에서도 의리가 없기로 유명하고 사기잘치고 뒷끝이 안좋다는 말들을 하더군요....전 그때 복건성이 어디붙어있는줄도 잘 몰랐죠.......다시말하면 복건성지역은 엣부터 사람에대한 평파이 대륙에서 좋지않았다는것이고..
제가 복건성출신 짱꼴라들을 대해본결과...겉으로는 아주 살살거리고 친절한게 현재 쪽바리들과 아주아주 비슷하더군요.....
또 복건성과 대만,홍콩주변의 남동해안과...홍콩마주한 광동성지역은 바다와 강에 우리 남해안처럼 섬이 엄청나게 많아서 해적들이 해적질하기 딱좋게 되어있습니다........결국 대륙왜족들이 주 근거지가 바로 여기....광동성남부...복건성..대만지역이라는 얘기죠...
서양인들의 기록을보면......바로 이 대만,홍콩..대륙동남해안에 1600년, 1700년까지 일본해적들이 왕성하게 활동한다고 나와있습니다...........이것도 일본열도라고하면 말이 안되죠...
만약 현재 일본기득권층의 뿌리가 근세에 대륙동남해안에서 일본열도로 건너갔다면 현재 복건성과 그 주변에는 왜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어야 합니다...
제가 조사해본 바에 의하면.........지나족이 대륙을 공산주의로 차지하고난후에... 쪽바리들과의 물밑교류하에 복건성지역의 왜의 흔적을 상당부분 지운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진실은 드러나는법................임진왜란때 왜적들은 꼬갈모자를 썻는데 바로...............현재 대륙에서도 이 꼬깔모자를 쓰는 지역이....바로 복건성과 광동성.. 그리고 베트남지역입니다.......바로 거기서 거기죠????? 아마도 베트남역시 임진왜란때.....포르투갈등 서양세력과 연합한 왜적과같이 조선왕조에 대항했을수도 있습니다.
일본에 가보시면.....신사(진쟈)라는게 있는데....거기가보면...어쩐지 음습한 분위기가 나고 절마당 한가운데에 향을 갖다가 태웁니다................그런데....이런건 우리 조선민족, 한민족의 풍습과는 상당히 다른데....................이 쪽바리들의 풍습과 거의 똑같은 모습을 볼수있는게 바로..............대륙의 동남해안지역입니다.......
일본에 가보면....쥬까(중화)요리라고 전국적으로 퍼져있는데....일본인들은 한국음식보다 쥬까요리를 더욱더 옛날부터 즐겨먹습니다......현재 일본집권층이 만약 전부 백제계라면 쥬까요리보다는 고추장을 더 즐겨먹을겁니다......현재
일본인들의 생활양식과.......복건성,광동성의 생활양식을 비교해보면...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들이 더욱더 나올겁니다.
네덜란드가 스페인을 대만에서 몰아내고 38년간 1624년부터 대만을 식민지배했는데....
이걸 물리치고 대만을 독립시킨사람이 정성공이라고 합니다....
서양인들은 코싱가....라고 하는데......이 정성공이 명나라 부흥운동의 기수 어쩌고 지랄하는데......... 이 정성공이 태어난곳이.....일본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 히라도[平戶] 출생입니다....
아버지는 지룡(芝龍), 어머니는 다가와 시치자에몽[田川七左衛門]의 딸인 일본 여자였습니다..... 그의 아버지 정지룡(鄭芝龍)은 타이완 해협에서 무역업과 해적행위로 큰 돈을 번 해상모험가였다고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아버지 정지룡(鄭芝龍)은 어린 아들을 일본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게 했으나, 정성공이 7세 되던 해에 명조에서 수군을 지휘하는 관직을 제수받게 되자 그를 선조의 땅인 푸젠 성[福建省] 남부로 데려왔다. 그 후에 난징[南京]의 태학(太學)에 입학, 전겸익(錢謙益)에게 사사하였다. 명나라가 멸망하자 1650년 아버지의 해상권을 이어받아 진먼[金門]·샤먼[廈門:아모이] 두 섬을 근거지로 무역을 하여 군비에 충당하는 한편, 자주 본토의 연안을 공략, 본토 반격의 기회를 노렸다고 기록은 나옵니다...
그후 정성공은 청나라에 굴복하지않고....복건성해안을 중심으로 해적질과 무역업으로 해상왕노릇하다가..결국 청군에 쫏겨서..1661년 당시 네덜란드가 식민통치하고있던 타이완을 공격해서 뺏읍니다....그러다가 타이완에서 찝적거리다가 죽고 그 아들도 역시 타이완에서 왕노릇하다가 청의 수군에 의해서 1683년 함락됩니다. 이게 청의 수군인지...조선수군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어차피 근데 대륙역사는 전부 조작됐으니까..
제가 정성공에 주목하는 이유는...바로 이자가 일본 나가사키출생이라는 거죠... 그리고 정성고 아버지 정지룡이 타이완과 복건성해협에서 해적질과 무역업으로 큰돈을 번...좋게말해 해상무역가....실은 해적이었다는 겁니다.
엄마역시 일본여자였다는걸로봐서.....정지룡역시....왜적(요즘말로 일본인)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아비,어미 둘다 쪽바리라고하면....근대 지나역사로 각색한 대륙역사에서 서양(네덜란드)애들 깨부순기록이 하나도 없으니 은근히 애비는 명나라인이었다고 각색한걸로 보입니다.
그리고 다시.....정성공이 태어난곳이....."일본 나가사키"..라는 것이죠..ㅎㅎ 이것역시....현재의 일본열도로 가정하면 전~~~~혀 말이 안되죠...
왜 대만해협에서 해적질수괴로 있던 정지룡이가....바닷길 수천킬로미터나 떨어진 일본열도 나가사키까지가서.....일본여자랑 결혼하냐 이말입니다...ㅎㅎㅎ
말도 안되죠?? 요즘같이...쾌속선으로 가도..부산에서 시모노세키까지 거의 몇시간도 더 걸리는걸로 아는데..
이것도 일본을 현재의 복건성주변으로 상정하면 의문이 아주 쉽게 풀립니다. 당시 홍콩주변,복건성과 대만해협주변은 해적질하던 왜적들의 주무대였고 정지룡이가 지나꽝똥족이었던...왜적쪽바리였던...당시 왜적군벌중 하나였던 다가와 시치자에몽[田川七左衛門)의 딸과 정략결혼을 해서 성장한겁니다.
나가사키는 결국 복건성해안 어느지역일거고....근세에 일본열도로 지명이 옮겨진것이죠...
정성공이 1650년 아버지의 해상권을 이어받아 진먼,샤먼(아모이)를 근거로 해상권을 확장했다고 나오는데.....바로 이 진먼,샤먼,닝샤..이들지역이 서양세력이 동양을 침략하면서....해상무역항으로 이용한 주요 항구들입니다. ..이런점에서 볼때도.....정성공역시.....왜적이었을 가능성이 높죠..
단지....네덜란드군을 대만에서 물리쳤기때문에...근데 지나족들이 띄워주는걸겁니다.
대만인들이 유난히.....일본인들에게 호의적이고..일본의 식민통치에대해서 오히려 고마워하는것도......우리가 보기에는 정말 아이러니하죠....
청나라의 지배와 본토인들의 지배에 질려서 일본의 지배를 더 좋아했다는 말도 있으나.....대만원주민들과 일본인들의 전통의상이나 음식등 여러가지 비교해보면...비슷한점이 아주아주 많습니다.
일본에 가면...마쯔리라고해서....집단으로 참여해서 하는 축제가있는데.. 복건성이나...홍콩등 대륙동남해안에 가면...이와 비슷한것을 많이합니다.
특히 일본과....홍콩등지에서는.....집단으로 배를젖는 경기를 축제로 자주하는데.....전형적인....해적집단의 전통중 하나가 노젖기 시합이죠..
유목부족이...집단사냥이라는 부족축제를 통해서 부족의 단합과 전쟁연습을 함께하듯이.....해적집단은 노젖기를 통해서 부족통합과 전쟁연습을 합니다.
서세동점에서 빼놓을수없는것이.....역시..또 아편전쟁이죠... 우리는 아편전쟁에 대해서 학교에서 아주아주 단편적으로 배웁니다.
영국이 동양의 차를 갖다가 팔고..어쩌구...그 반대로 영국은 아편을 팔아서 무역균형을 맞추려다 전쟁이 나구 어쩌구.....개구라를 애들한테 가르칩니다. ..ㅎㅎ.
서세동점의 가장 핵심적인 사건은 제가보기에.....임진왜란.... 아편전쟁....조선왕조붕괴......이 3개인것 같습니다. .....
포르투갈세력이 먼저 대륙왜족에게 조총을 쥐어주고 50년간 단련시킨다음 1592년에 임진왜란을 일으켜서 대륙을 먹으려다가...실패했고.....
이때 대륙왜족이....남동부해안의 해상권을 일시 상실하고...현재의 일본열도로 상당수가 도망갔을수있습니다.....대만에서 오키나와 섬들을 따라서 조선정벌군을 피해서 도망간 잔당들이 분명있을겁니다....일부는 필리핀과 대만산악지대로 숨었을거고....
임진왜란이 끝나고....토쿠가와 막부는 포르투갈과 결별하는데.. 아마도.....조선왕조에 패하고난후 포르투갈의 지원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결별했을겁니다...
또한 백제를 조상으로 모시고 신처럼 떠받들던 일본왜족들에게......1542년부터 기독교를 집요하게 확산시키려고하는 포르투갈이......전통을 중시하는 일본인들에게는 경계의 대상이 되었죠..
기독교세력에 의해서 정체성이 파괴되는것을 두려워한 일본은 1638년 일본의 주활동지역인 대륙동남해안에서 포르투갈을 쫏아냅니다.
그후로 지금까지...일본은 서양의 기술과 제도는 받아들이되.... 기독교는 정권차원에서 철저히 봉쇄하는 정책을 취하고있습니다.
그결과 국론이 분열되는 일은 없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라는 나라죠..
기독교는 서양세력이 식민지를 경영할때 제일먼저 사상전으로 침투시키는 종교죠 ..일단 사상적으로 서양의 노예로 만들어놔야...저항도 안하고 가지고놀기 좋으니깐....
어쨋든 이 임진왜란이 끝나고나서.....대륙왜세력은 일부는 일본열도로 도망갔을확률이 있고.....일부 대륙에 남은세력은 조선왕조에 겉으로는 복종하면서...후일을 도모한걸로 보입니다.
그리고....포르투갈이 물러나고....일본은 네덜란드와 짝짜꿍이 됩니다.
포르투갈이 대만에서 나간후에 스페인이 대만을 또 차지하는데.. 원래 대만해협에서 해적질하며 대만을 자기 앞마당처럼 생각하던 일본은 네덜란드에게 대만북부에 금광이 엄청나다고 대만의 스페인군을 공격해서 뺏어갖자고 합니다.
1642년 대만에 네덜란드 요새가 세워지는데 이때 사령관이 Coen이더군요...
이름보니 유대인같은데......당시 식민지침탈전에 x대인들이 주로 배후로 많이 나오더군요...동양에 파견된 기독교선교사역시...x대인들이 많고...
네덜란드라는 나라는 말그대로...식민지침탈하던 거대상인집단들이 모여서 만든 일종의 상인집합체비슷한 나라인데.....
지금도 네덜란드에서 유대인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걸로 압니다.
뉴욕의 월스트릿도....맨해튼을 점령한 네덜란드출신 유대인들에 의해서 생긴걸로 압니다만.....
어쨋든.....이태리에서....포르투갈로..다시 스페인으로..다시 네덜란드로.. 다시 영국으로.....유대인이 빠지는일이 없군요....ㅎㅎㅎ
어쨋든....1600년대...네덜란드는 현재 인도네시아,스리랑카등가지 점령하고 포르투갈,스페인에 이은 동아시아 남지나해의 새로운 주인으로 군림한걸로 보입니다.
이게 바로 1차대전과 2차대전으로 결국은 연장선상에서 벌어진것 같아요.. 역사를 자세히 보면......물론 자세히 얘기하면 글이 너무 길어지니..
임진왜란 이후로......서세동점의 두번째 핵심이 바로 아편전쟁인데... 아편을 영국애들이 대륙의 몽골왕조를 붕괴시킬려고 일부러 대량으로 풀었는데...
그 아편을 푸는 똘마니역......거간꾼노릇을 한게..바로 일본인들입니다. 이건 서양인들이 쓴 기록을 보면 다 나와있어요...
당시 대륙에서 영국과 대륙인사이에서 아편을 실질적으로 배달하고 이득을 챙긴 중간상인은 거의 대부분 일본인들입니다. 이것도 일본을 현재의 일본열도라고 가정하면 전혀 앞뒤가 안맞죠..
영국넘들이.....아미 미쳤다고.....홍콩이나 샤먼에서 아편을 풀고...할일이 없어서 배로 수천킬로떨어진 일본까지 가서 중간상을 모집하겠습니까?? 그것도 한두명도 아니고....수만명을 동원해야 하는데..ㅎㅎㅎ
역시나....왜를 하이난섬,홍콩,복건성연안의 대륙왜적들로 가정하면 의문이 아주 자연스럽게 풀립니다........
이미 서양인들과 1542년부터 대륙 동남해안에서 교류하며 서양인들의 길잡이노릇을 해온 일본인들이야말로....영국인들 입장에서는 대륙에 마약을푸는 똘마니들로 가장 제격이었죠........영국인들은 쪽바리들을 이용해서 대륙의 은화를 싹쓰리하고....대륙의 몽골왕조를 붕괴시킬수있는 일석이조가 되고 쪽바리들역시...임진왜란으로 붕괴됐던 일본세력을 아편판매로 번돈으로 회복할수있고...대륙 곳곳을 염탐하며 재침략의 정보를 얻을수있었으니....
당시에 서양인들이 쓴 대륙의 상황을 보면.....길거리에 아편환자들이 널부러져있고.....고관대작들까지..아편에 빠져서...재산을 탕진하고 일본인들에게 절절매는 상황까지 나열되어있습니다.
또 대륙 몽골왕조의 재정이 일본인들을 동원한 영국(사실 그배후에는 특정민족이 도사리고있었죠...이미 그때에도..)의 아편판매로... 아주 거덜나는 그런상황이었다고 나옵니다.
서양인들이 보기에도 이럴정도니.....얼마나 개판이었는지 상상이 가죠..
제가 여기서 자꾸 대륙몽골왕조 어쩌구 하는것은....우리가 학교에서 배운것은 대륙이 청왕조였다고 배웠지만......서양인들의 기록에는 몽골왕조로 나온다 이말입니다.........복장이나 전통을봐도..현재 몽골인들과...청왕실의 복장이나 전통은 거의 똑같아요.......쿠빌라이가 원을 세우고 몽골고원에서 왕비를 얻었듯이..청도 황제들이 황후를 몽골고원에서 데려왔습니다.
대륙조선설 주장하는 역사학자들의 말처럼...만주가 현재의 동북삼성이 아니고 진짜 만주가..현재 신강성,내몽골,몽골지역이라면 이역시 정확하게 맞아떨어집니다. ...
진짜 만주는 현재 동북삼성이 아니고.....시안(서안)의 서북쪽..오르도스지역과 현재...내몽골지역이고......청이라 함은...바로 몽골왕조인데..
쪽바리들이 역사를 왜곡하기위해서....청(여진)과 몽골이 다른부족인것처럼 찢어놓은 겁니다..........여진이나 몽골이나 다 북부여,고구려의 후손들이고 정통 우리민족입니다.
따라서 서양인들 눈에는....조선이 근세까지 황제국이었던... 아니면 병자호란 이후에....청(몽골)조에게....대칸의 지위를 물려주고 조선은 청의 제후국으로 눌러앉았던간에.....둘다 몽골왕조로 보였다 이겁니다.
어차피 몽골과 우리는 같은핏줄로 생긴것도 같으니..서양인이 보기에는 전부다 같은 몽골왕조로 보였던거죠...
어쨋든....네덜란드가 남지나해에서 일본과 짝짜꿍하며 1600년대에 왕초노릇하다가 1700년대로 들어오면...인도를 점령한 영국이 말라카해협을 넘어서 동아시아로 본격적으로 진출합니다.
1700년대 후반에 들어서 영국은 홍콩등 대륙남해안 광주(꽝저우)를 중심으로 급격하게 세력을 확장하는데.....1832년까지 중국무역을 독점한게 바로 인도식민통치의 핵심인 동인도회사입니다.....
무슨 영국에 중국차수입이 급증해서 그 비용을 조달하려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중국에 팔았다고 개구라치는게..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인데... 이건 순전히 속이기위한것이고.......아편으로 대륙의 몽골왕조(조선,청)을 붕괴시키기위해서......기획적으로 시작한게 바로 아편판매입니다.
이 아편판매를 통해서....대륙의 은화를 싹쓰리함으로서 대륙몽골왕조의 재정을 파탄나게했고.........대륙몽골왕조의 재정이 파탄날즈음인 1840년 .....대륙 몽골왕조(조선이었던....청이었던...)는 대륙에서 영국넘들이 쪽바리들을 앞세워서 아편을 판매하는것을 금시시켰고...
이걸 기회로 삼아서 영국넘들이 대륙을 공격한게 바로 아편전쟁입니다.
임칙서가 영국넘들 아편을 빼앗자 영국상인들이 마카오로 도망갑니다. 이때 마카오는 포르투갈 잔당들이 지배하고있었죠...마카오가면 마카오인은 중국인..대만인..서양인..일본인의 혼혈이라는 말들이 많은데.. ..여기서 일본인이 나온다는것도..역시 일본을 일본열도라고 가정하면 말이 안되지만....일본을 홍콩주변의 복건성해안이라고 보면 의문이 쉽게 풀립니다....
1840년에 시작된 아편전쟁은 1842년에 끝나는데..영국군 사상자가 520명인데 대륙왕조의 사상자는 2만명에 이릅니다....완전히 새총과 기관단총의 싸움이었다고 봐야죠.......이때 이미 대륙왕조는 망했다고 봐야합니다..... 단지 영국애들이 대륙의 쪽수가 너무많고 너무 멀어서 쉽게 먹고 통치할수가없기에 서서히 단물을 즐겨가며 빼먹을려고 놔둔거라고 봐야겠죠...
이때 아편전쟁의 주역이....청조인지...조선인지는 아직 확실히 모르겠지만.. 역사가 청조로 왜곡된걸로 봐서 조선왕조였을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조선왕조역시 1700년대에서 1800년말까지 극심한 혼란을 겪는데.... 서양의 대륙침략에 의한 대륙왕조의 혼란과 조선왕조의 구한말 혼란이.... 아주아주 흡사하다는 점에서....조선왕조를 청조로 바꿔치기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편전쟁이후 대륙왕조는 난징조약으로 해안의 항구 상당부분을 영국,미국,프랑스등에게 뱃기고..관세주권마저 뺏기로.....세제,사법상주권도 일부 뺏기고 반식민지상태로 전락합니다.
이때 상해,녕하(닝샤),샤먼,광주,복주등이 서양인들손에 넘어가는거죠..
이후로 서양의 공산품은 급속도로 밀려들어와서 대륙의 재래식제조업을 고사시키고...아편은 계속 유통되서 은화는 계속빠져나가서 국가제정은 완전거덜나고..기독교 선교사들은 외교관신분처럼 마음대로 대륙을 휘젖고다니며 기독교를 전파하며 정보를 탐색하고 서양사상을 주입시키고... 관료는 더욱 부패해지고.....대륙왕조는 붕괴의 길을 급속도로 걷게됩니다.
바로 이 1842년부터 벌어지는......충격적이고 역사적인 사건들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시간에서는 거의 제대로 다루어지지않고 왜곡되고 짜집기된 가짜역사를 배우고 있다는 겁니다.
만약 상식적으로 생각해서....조선왕조가 한반도에 있었다면........ 과연 서양세력이 1542년에 일본에 도착한이후로.....일본,대만.필리핀, 대륙의 동남해안을 1842년까지 아주 난도질을 해댈동안.....
과연 대양 수만킬로를 항해해온 그들이...조선이 청보다 강해서... 대륙에는 1700년대부터 아편을 광범위하게 뿌릴동안....한반도는 가만 두었을까요??
당시 우리가 배운대로라면..조선은 청의 속국이라고 배웠고... 청보다 군사력도 약해서 빌빌대던 왕조라고 배웠는데...
대만도 점령하고 필리핀도 점령하고...일본도 가지고놀던 서양세력이 뭐가 이뻐서....힘도없고 군사력도 약한 한반도는 1800년대말까지 건드리지도 않고....아편도 뿌리지 않았냐 이말입니다....하하하..
결국...조선황실이 한반도에 있었다면....상식적으로 전~~~~혀 말이 안되는 거죠.......조선황실이 대륙에 있었고......아편전쟁의 주역이라면 말이되는겁니다.
왜냐면....조선황실이 대륙에 있었고..동아시아 연방의 황제국이었다면 한반도는 당연히 조선연방의 일원이었을것이고....서양인들이 고지도에 곧죽어도 Corea라고 적는것을 봐서는....조선 이성계에게 적극적으로 항복하지않은 고려의 충신이나 후손들이 많이 피신해와서 살던....지역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양인들이 한반도에 와봤더니..곧죽어도 자신들은 고려인이라고 했을테고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동포들이 자신들을 곧죽어도 고려이이라고 불러주길 원하듯이....그걸보고 서양인들은 한반도를 고지도에 코리아라고 적었을겁니다.......물론 대륙 조선황실 입장에서는...한반도 산골까지 숨어들어간 고려왕실이나 고려충신들의 후손들을 눈감아줬을 확률이 높겠죠...어차피 대륙을 차지했으니까..
서양인들 입장에서.....그리고 당시에는 누구라도...식량과 산물이 풍부한 대륙이 탐나지....한반도같이 경작지가 아주적은 산골짜기는 별로 쓸모가 없는 지역입니다.....요즘에야 교통이 발달해서 산골짜기까지 도로가 깔리지만 불과 100년전까지만 해도.....가장 중요한 지역은 농사를 지을수있는 평야지역이고 대륙의 풍부한 자원을 빼갈수있는 대륙 동부해안의 항구들이죠.....
결국 한반도는 원래 고려의 후손들이 많이 피난해들어와 살았고.. 삼국이 대륙에 있었을때는 전부 백제의 영향권이니 백제유물들이 많이 남아있는 것이고......대륙에 아편전쟁등으로 혼란할때 많은수가 한반도로 피난왔을것이고.. 조선왕조가 붕괴하면서...또 엄청난 조선인들이 피난왔을것이고...
그후 또 엄청난 수가 1950년까지 이주해왔을 겁니다.
1860년 8월 북경이 영불연합군에게 함락됩니다.......이건 대사건이죠.. 당시 북경에 있던 황제가....조선황제였는지....아니면...청황제였는지는 알수가 없지만....둘중에 하나는 황제였을거고.....서양과 지나,일본이 자꾸 청을 내세워서 역사를 왜곡하는걸 봐서는...조선이 먼저 멸망했고.. 청을 옹립해서 역사를 각색한것 같습니다.
당시 북경함락 사진을 보면....미군 공수부대도 참여했고....일본군도 대규모로 참여했고...러시아도 참여했고...한마디로 서양세력이 총동원되서 대륙왕조의 숨통을 끊어놓을려고 대격전이 벌어진것을 알수있습니다.
구식무기로 대항하는 대륙왕조에....신식무기로 무장한 서양제국이 전부 연합해서...미군 공수부대까지 동원된걸보면.....당시 대륙왕조의 저항이 얼마나 필사적이었나를 느낄수있습니다.
특히 당시 사진들을 보면.....꼭 등장하는게..바로 인도넘들입니다. 물론 당시는 인도나 파키나 방글라나 다 영국의 용병으로 식민지전쟁에 대규모로 참전했는데.....영국넘들이 대륙왕조를 무너뜨릴때도.. 바로 이 인도종자들을 대규모로 동원했더군요.......
전형적인 이이제이라고 볼수있죠......
인도인 사위를 둔 반기문이를 유엔 사무총장에 앉혀놓고..... 파키스탄출신을 시켜서 유엔명의로 한국은 단일민족 순혈주의를 주장하는 인종차별국가라고 하는 술수와 비슷한 경우라고 할까요...
1864년 흥선대원군이 집정하면서 쇄국정책을 강화하고 이때부터 병인양요,신미양요등 서양세력과 전쟁이 벌어지는데......병인양요,신미양요도 한반도 인천,강화도를 가정하고 분석해보면 한마디로 코에디입니다....
병인양요나 신미양요는...베이징 동쪽의 천진해서 시안까지...황허강을 타고올라가면서....시안이나 연안근처까지 벌어진 해상전인듯 싶습니다. 제가 분석해본 바로는.....
어쨋든 강화도에서 어쩌구 저쩌구 하다가..또 황해도올라가서 약탈하고 하는거보면 완전 코메디더군요....
근데...시안주변..연안이라는 지역이 있는데...이주변을 놓고 분석해보면 딱맞아 떨어지는게 있습니다...지금 기억으론 병인양요같은데....
대륙역시 1860년부터...1905년까지는...그야말로 대혼란기..... 대 격변기로....엄청나게 세밀하게 분석적으로 다루어져야하는 역사임에도 우리 역사교과서에서는 철저히 숨기고 왜곡하기에 바쁩니다.
조선왕조의 붕괴는 아편전쟁때부터 1905년..내지 1910년에 모든비밀이 숨어있습니다.
그들을 실질적으로 조종하는 특정집단역시 아주 위험해질겁니다.
일단 대륙왕조가 붕괴한게 대략 1905년에서 1915년사이로 보이고...
....1912년부터 1925년정도까지는...무너진 대륙의 지배체제를 놓고...
쪽바리들은 열심히 서양눈치를 봐가며 군수공업을 발전시켜서... 대륙을 먹을 준비를 하고......
서양은 쪽바리들을 예의주시하면서......대륙몽골왕조가 무너진틈을타고 각지에서 발호하는 군벌들을 제거하기위해서........
그리고 대륙의 몽골인종의 숨통을 끊어놓기위해서...지나족 손문이라는자를 키워서 신해혁명이라는걸 일으킵니다.
당시 일반인은 배타고 외국간다는게 특권층아니면 힘든시기에.. 미국,영국,캐나다.일본,하와이등을 제집드나들듯이 드나들었다는것은 서양세력이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는거죠...
뿐만 아니라...이 손문이라는 자가...대륙왕조가 붕괴되기전까지 또..붕괴된 후에도...일본과 아주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진자라는것을 역사자료나 사진자료를 조금만 검토해봐도 알수있습니다.
광조우에서 혁명봉기했다가 실패하자 잽싸게 일본으로 도망가고.. 뭐있으면 잽싸게 또 일본으로 도망가고..여차하면 일본으로 도망가서 쪽바리들의 보호를받는 인물이 바로 손문인데.....원래 일본종자이거나.. 그도 아니면....꽝똥 지나족인거나....둘중에 하나인건 확실합니다.
근데....이것도 일본이 현재 일본열도라면 전~혀 앞뒤가 안맞죠.....
꽝조우에서 농민봉기일으키려다가 실패했으면...그때 이미 홍콩이나 마카오는 영국,포르투갈이 지배하고있는 동네인데....당시 미국,영국등 서양세력의 지원을 받던 손문이 뭐하려 수천키로 떨어진 일본 동경으로 피신하냐 이겁니다. ..엎어지면 코닿을데가..홍콩이고..마카오인데..ㅎㅎㅎ
결국 일본동경은 현재 일본열도에 있었던것이 아니라...광조우 삼각지 홍콩에서 가까운 남동부해안 어느지역이었을 것입니다.
실제 손문의 마누라 동생의 남편....즉 손문의 동서인 장개석역시 일본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고...일본동경에 수시로 드나들고....
장개석이넘도 일본육사 출신입니다.....이것역시...일본이 현재 일본열도라면 아주아주 뭔가 안맞죠...
결국 장개석이역시..대륙 왜족이었을 확률이 아주높고...그도아니면 지나족과 왜족의 혼혈이었을겁니다.
연안은 대륙왕조의 중심지이자 황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북경과 함께 가장높은 동이족이 대륙을 통치하는 중심지역이죠...
개인적인 추측은 그동안 동이족황제가 대륙을 통치하던 중심인 시안을 점령함으로서...전 대륙에 공산당이 대륙의 지배자가 되었다는 상징적 심리전을 전개하기위해서였을수도 있고...
연안근방에 있던 조선의 항일무장단체인 동북항일연군을 제압하기위해서 그랬을수도 있을것같고......아직 확실한 이유는 모르지만..
뭔가 이유가 반드시 있습니다.
어쨋건.....대륙왜가 1945년 일본열도로 쫒겨가고.....남은건 장개석과 모택동인데.......사실 해상권과 제공권을 장악하고있던 미국과 영국이 모택동하나 제거하는거 일도아닌데....장개석을 대만으로 쫏아낸거보면...
서양인들의 의도가 확연히 드러납니다...당시 미국,영국,소련은 전부다 특정xx에 의해서 지배되던 나라로 서로 전부 짜고치는 나라라고 봐야죠...
1945년 얄타회담이 있었죠? 그때 미국 루스벨트..영국처칠...스탈린이 전후처리 회담을 했는데....아마 여기서...모택동을 대만으로 쫒아내고 대륙을 공산화시키자고 합의했을겁니다.....
아시아라는 거대한 대륙이 유럽식의 산업혁명을 이루게되면.... 얼마나 무시무시해질것이라는것을 백인들은 잘 알고있었죠.....
산업혁명이야말로...수천년간 동양에 눌려살던 서양인들에게 세상의 주인이 될수있는 기회를 주었는데.....
1700년부터 무려 200년동안이나 힘들여서 대륙왕조를 붕괴시켰는데 이 거대한 대륙을 산업화시키면...삽시간에 백인들을 따라올거라는걸 그들은 잘 알고있었죠.....쪽바리들도 군수산업 좀 갈켜줬더니 항공모함 만들고 전투기만들어서 기어오르는걸 본 서양인들은 대륙은 공산주의로 최소한 몇십년간 묶어놓고 동양인들이 서양인을 따라오지 못하도록 해놔야하다고 생각했을겁니다.
그결과...겁모르고 날뛰는 짱깨석이는 대만으로 쫏아내고...말잘듣는 스탈린 똘마니 모택동으로 하여금 대륙을 장악하고 철저한 공산주의로 통제하게 하자고 합의를 봤을겁니다..
제가봤을때는...스탈린 역시 똘마니였고....처칠역시 허수아비에 불과한 인물이고 이 3명중 진짜 왕초는 루즈벨트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 3명이 찍은 사진보면...스탈린과 처칠은 완저히 주눅들어서 빌빌기고 루즈벨트는 외투걸치고 왕초처럼 거들먹거립니다.
아마도 이때부터..xx자본이 유럽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통치하기로 결심한것 같아요.....루즈벨트역시 xx인이라는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죠..
얼마 전부터인가....... 인터넷에서 한참 뜨는 단어가 ........ "대륙조선설" ............... 이라는 겁니다.
이것의 요지는 조선황실은 대륙 시안(Xian..우리발음으로 서안)에 있었고... (병자호란이후로 북경으로 천도했다는 설도 있는 걸로 알고 있음)...........
일제에 의해서 망한 이후로... 대륙에서 한반도로 조선황실이 유배되었다는 게 요지입니다. 물론 따라서 현재 경복궁등은 전부 일제가 만든 가짜라는 거죠.......
이것을 주로 주장하는 사이트중에..... http://cafe.daum.net/chosunsa..... http://www.sidaesori.co.kr....... 등등.. 그외에도 많은 재야사학자들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 대륙조선설을 접했을 때는 미친놈들이라고 생각했죠...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너무 다르고 황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륙조선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정연하고 이치에 맞고 상식적으로도 맞고... 그동안 역사에 대해서 의문을 품어왔던 많은 것들이......... 대륙조선설을 사실이라고 가정하자 눈 녹듯이 풀리는 것이었습니다.
대륙조선의 전신은 고려고....... 결국 고려도 대륙과 한반도와 동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아시아 제국이었고...... 삼국으로 올라가도 역시 동아시아 전체를 다스린 대제국들이었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쪽바리들과 서양이 짜고 한반도로 꾸겨집어넣었다는 것이 대륙조선, 대륙삼국의 요지입니다.
그럼 왜 제가 대륙조선설을 믿게 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설명하겠습니다.
현재 서울대를 비롯한 친일파후손 역사학자들이 장악한 강단사학계의 주장은 실제유물로 입증할 수 없는 것은 전부 뻥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대륙조선과 대륙삼국의 실제유물을 입증할 증거가 없으니 뻥이라는 것이죠.
삼국과 고려,조선이 동아시아의 패자였다면...... 당연히 동남아와 한반도 역시 대륙삼국과 고려, 조선의 영향권에 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삼국과 고려, 조선의 유물이 안 나올 수가 없겠죠??? 하지만 대륙의 유물은 지나공산정권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함부로 보여주지도 않고 조사도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실제유물만 가지고 대륙에서 나온 유물이 없다고 대륙삼국과 대륙조선설을 부인한답니까? 이건 바로 쪽바리들과 지나족들의 주장과 똑같은 것으로 바로 우리 강단을 장악하고 있는 친일파 이병도계 역사학자들은 바로 쪽바리들의 하수인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쪽바리들이 만든 역사관으로 우리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 궁궐이라고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대부분 불교의 사찰양식과 아주 흡사합니다.
처음에는 중국이나 일본의 궁궐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보면 볼수록 우리나라 궁궐의 양식은 불교사찰건축양식이지..... 왕이나 황제의 거처하는 건축양식이 아닙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섬라(태국)의 왕이 조공을 바쳐오는 장면도 있는데.. 태국이나 베트남의 궁궐양식만해도 경복궁보다 확실히 도성의 건축양식을 제대로 갖춘 궁궐양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500년이나 왕조를 이어간 나라가 경복궁같이 초라한 궁궐을 도성이라고 살았다는 건 말이 안됩니다. 경복궁이 왕이사는 도성의 건축양식이 아니라는 건 이미 많이 밝혀진줄 압니다.
기타 경복궁이 할리우드셋트라는 건 "시대소리" 사이트에 많이 밝혀졌더군요..
제가 조선왕조가 근세까지도 대륙에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 또다른 이유는
바로======>1500년대 중반부터....... 1949년까지........... 서양세력이 동아시아를 침략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배운 역사와는 너무나 다른 사실들이 숨어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임진왜란이 1592년에 현재 일본열도에서 왜적이 한반도로 쳐들어와서 생긴 한반도와 일본열도 왜적의 싸움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허구인가하는것은....===>http://cafe.daum.net/chosunsa에 잘 나와있더군요..........
남해안에서 거북선과 임진왜란 유물이 거의 안나오고..... 난중일기에 현 대륙의 여러지명과 양자강일대가 격전지로 나오고 하는 여러가지 증거들이 있지만...
제가 더욱 충격을 받은것은......... 1500년대라고 하는 시점입니다.
서양백인들이 식민지침략의 도화선은 1492년 스페인의 후원으로 시작한 콜롬부스의 아메리카대륙 발견이 아닌가 합니다.
그후로 스페인의 마젤란이 필리핀에 도착한게 1521년이고.. 1565년부터 스페인은 필리핀식민통치를 시작했습니다.
현재 필리핀의 국명인 필리핀은 식민통치당시 스페인국왕이던 필립에서 연유합니다. 참 한심한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ㅎㅎ
어쨋든 스페인의 필리핀식민통치가 시작된 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8년전이군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인 1590년경에 포르투갈의 선단이 대만에 도착해서 대만북부에 포르투갈 군대가 주둔하게 되고 포르투갈인들이 정주합니다.
서양인들이 식민지침탈하는 과정에서 선단이라 함은 대규모 화력을 갖춘 군함과 대규모 해군병력이 함께 이동하던 시기였습니다....언제 어느곳에서 해적이나 상륙시 원주민의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데.... 대양을 항해하면서 해군력의 지원없이 식민지원정을 했다는 건 왜곡된 역사일 뿐입니다.
이미 임진왜란 이전에 포르투갈의 대규모해군병력이 대만북부에 주둔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또한 일본인들이 포르투갈상선과 처음 교류한 것이 1543년입니다.
임진왜란의 무려 50년 전이군요............... 이때 왜놈들은 포르투갈 해군의 조총을 봤을 것이고 눈이 뒤집어졌을 겁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갑자기 포르투갈이라는 외계인이 나타나서 레이저건을 건네준거나 마찬가지죠........ 당시 칼과 화살로 전쟁이 결정나던 시대에 조총이란 건 거의 요즈음의 레이저총이나 마찬가지로 엄청난 충격을 줬을 겁니다.
50년이란 세월이면 당신 조선통신사를 국고를 탕진하면서까지 신처럼 떠받들던 일본인들에게는 충분히 서양세력에게 신식무기를 사들여서 조선과 한판뜰 수 있는 충분한 준비기간이었을 겁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만약 당시 조선왕조가 한반도에 있었다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거죠.............. 그리고 현재의 일본이 당시에도 일본열도였다면 이것 역시 뭔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스페인이든... 포르투갈이던..... 혹은 포르투갈이 먹고 있던 대만을 다시 스페인이 물려받고 그걸 다시 네덜란드가 통치한 것이 1590년대부터 1600년대인데...........
생각을 해보세요........ 스페인과 포르투갈... 네덜란드에서....... 한반도와 일본은 거의 지구의 끝과 끝입니다......... 또 스페인이 군대를 주둔시키고 필리핀을 직접식민통치 시작한 게 1565년입니다......... 지구 저끝 유럽에서 수백일을 항해해서 필리핀을 먹은게 1565년이고..... ....... 포르투갈 선단이 일본에 도착한 게 1543년이라면..............그리고 그게 일본열도라면.....
당연히..........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최소한 1543년과 1565년사이에는 한반도에 찝적거렸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대로 하면 서양식민지 원정단이 최초로 조선에 모습을 보인건 1653년 네덜란드 하벨표류기라고 배웁니다... 물론 상선이라고 듣기좋게 포장해서 말이죠...
1653년이라?????????????????.........
이미 1590년에 포르투갈인들이 대만북부에 주둔하고 있었고.. 포르투갈인이 대만에서 쫏겨나가고 그 공백을 스페인이 채웠다가 필리핀에서 허덕이는 스페인군의 힘의 공백을 이용해서 네덜란드가 대만을 식민지로 만든게 1624년입니다.
또 포르투갈 선단이 일본에 도착한게 1543년이면....네덜란드인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한 1653년과는 무려 110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차가 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죠...... 당시 임진왜란에서도 보듯이......1543년 포르투갈에게 조총을 전수받은 이후로..... 일본은 각지방 영주들끼리 조총으로 무장하고 대규모 전쟁을 벌이면서 군사력이 엄청나게 커졌습니다......그리고 그 군사력이 임진왜란 침략의 원동력이 됐다는 것도 다 알 겁니다.
그럼 유럽끝에서 수백일을 항해해온 항해기술과 측량기술이 당시 이미 대양항해로 상당수준 발달해있던 백인들이...... 1543년 일본열도를 발견하고 1653년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할 때까지 한반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이미 1565년부터 군대를 주둔시키고 필리핀을 식민통치시작하고........ 이미 1590년에 대만북부를 차지한 서양인들이......한반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일본만 발견했을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죠.... 유럽인들이 동양으로 오려면..... 인도양을 지나서.... 싱가폴있는 말라카해협을 거쳐서....... 대양의 거센파도를 피하려면.... 가장 안전한 항해방법은.. 베트남연안을 따라서..... 대륙의 동남해안(홍콩,복건성,대만)을 따라서 동아시아를 훓는것이
가장 안전한 항해방법입니다....... 결국.... 홍콩, 마카오등의 광동성남해안이 가장 먼저 유럽백인들의 손에 닿았을 것이라는 것이 상식이란 거죠...
아니 상식적으로..... 서양인들이....... 대륙의 동남해안을 거쳐 올라가면서... 태풍이 불 것같으면 잽싸게 배를 정박시키고 대륙의 연안이나 대만에 상륙해서 피해야지....
싱가폴의 말라카해협을 지난 후에....... 다른데 다 놔두고..... 태풍불고 위험한 남지나해 망망대해 바다를 항해해서 1543년 일본열도에 갔다가..... 별 볼 일없어서....
47년이나 후에 대만북부를 먹고 식민통치했다는게.... 말이 됩니까?????????? 하하하...
그리고 대륙동남해안을 따라서 식민지만들만한 지역들을 탐색하다보면... 산동반도에 다다르게되고.. ... 산동반도에서는 한반도가 보이고... 산동반도에서 발해만을 거쳐서 현재 동북삼성의 다렌등을 머저 볼것이고... 그도 아니며 산동반도에서 한반도로 항해한 후에.....
그후에 .... 일본열도로 가야... 상식적으로 가장 안전한 항해라 이겁니다..
당시에는 연안항해가 가장 안전한 항해이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1543년의 포르투갈의 일본도착 이후의 서양인들의 행적을 보면................... 일본이라는 지방은....... 현재의 일본열도일 수는 절대없고......
대만보다는 남쪽에 붙어있는 대륙동남해안지역이어야 아다리가 맞게 됩니다.
바로 대륙조선사를 주장하시는 재야사학자님들의 견해와 정확하게 일치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대륙동남해안인...... 수많은 재야역사학자들에 의해서.... 현재 일본열도 상위지배층의 본뿌리라는 복건성... 바로 대만과 마주보고있는 대륙동남해안의 자료를 조사해보았습니다. ... 아니나 다를까........................ 서양인들의 서세동점 선박일지나 기록을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곳이.... 바로...................... 홍콩... 광동성 남부해안... 하이난섬... 닝샤... 샤먼 .. 등등.... 바로 복건성의 해안지역들입니다............ 서양인들이 말라카해협을 지나서.. 가장먼서 교역을 시도한지역이.... .바로 이지역들이란 말이고........ 포르투갈 선단이 1543년 도착한 일본이라는 지방은 현재의 일본열도가 아니라.... 바로 이....... 홍콩남쪽부터.... 대만과 대만과 마주보는 현재 중국대륙까지의 해안선이라 이말이죠..
이렇게 보면..... 모든의문이 하나씩 풀려나가기 시작합니다....
포르투갈 선단이 싱가폴의 말라카해협을 지나서 대륙남동연안을 따라서 안전항해를 하다가 1543년 제일먼저 맞닥뜨리는 집단이...바로 대륙의 동남해안에서 해적질해먹고 살던 왜적떼.. 바로 쪽바리들이었다는 것이죠.....그후 쪽바리들에게 조총을 전수해주고....1590년에 포르투갈 군이 대마북부를 장악했다는 사실은.........1543년부터...1590년까지.....포르투갈이 쪽바리들에게 조총을 전수해주고....조총의 전투전술도 가르키며 단련시킨후에....1590년에 이르러 대륙의 황제국이었던 조선왕조를 공격하기위해서...포르투갈이 대만북부에 교두보를 확보했던것으로 보입니다.......
옛날에 짱골라애들이 그러는데....복건성넘들은 중국에서도 의리가 없기로 유명하고 사기잘치고 뒷끝이 안좋다는 말들을 하더군요....전 그때 복건성이 어디붙어있는줄도 잘 몰랐죠.......다시말하면 복건성지역은 엣부터 사람에대한 평파이 대륙에서 좋지않았다는것이고..
제가 복건성출신 짱꼴라들을 대해본결과...겉으로는 아주 살살거리고 친절한게 현재 쪽바리들과 아주아주 비슷하더군요.....
또 복건성과 대만,홍콩주변의 남동해안과...홍콩마주한 광동성지역은 바다와 강에 우리 남해안처럼 섬이 엄청나게 많아서 해적들이 해적질하기 딱좋게 되어있습니다........결국 대륙왜족들이 주 근거지가 바로 여기....광동성남부...복건성..대만지역이라는 얘기죠...
서양인들의 기록을보면......바로 이 대만,홍콩..대륙동남해안에 1600년, 1700년까지 일본해적들이 왕성하게 활동한다고 나와있습니다...........이것도 일본열도라고하면 말이 안되죠...
만약 현재 일본기득권층의 뿌리가 근세에 대륙동남해안에서 일본열도로 건너갔다면 현재 복건성과 그 주변에는 왜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어야 합니다...
제가 조사해본 바에 의하면.........지나족이 대륙을 공산주의로 차지하고난후에... 쪽바리들과의 물밑교류하에 복건성지역의 왜의 흔적을 상당부분 지운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진실은 드러나는법................임진왜란때 왜적들은 꼬갈모자를 썻는데 바로...............현재 대륙에서도 이 꼬깔모자를 쓰는 지역이....바로 복건성과 광동성.. 그리고 베트남지역입니다.......바로 거기서 거기죠????? 아마도 베트남역시 임진왜란때.....포르투갈등 서양세력과 연합한 왜적과같이 조선왕조에 대항했을수도 있습니다.
일본에 가보시면.....신사(진쟈)라는게 있는데....거기가보면...어쩐지 음습한 분위기가 나고 절마당 한가운데에 향을 갖다가 태웁니다................그런데....이런건 우리 조선민족, 한민족의 풍습과는 상당히 다른데....................이 쪽바리들의 풍습과 거의 똑같은 모습을 볼수있는게 바로..............대륙의 동남해안지역입니다.......
일본에 가보면....쥬까(중화)요리라고 전국적으로 퍼져있는데....일본인들은 한국음식보다 쥬까요리를 더욱더 옛날부터 즐겨먹습니다......현재 일본집권층이 만약 전부 백제계라면 쥬까요리보다는 고추장을 더 즐겨먹을겁니다......현재
일본인들의 생활양식과.......복건성,광동성의 생활양식을 비교해보면...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들이 더욱더 나올겁니다.
네덜란드가 스페인을 대만에서 몰아내고 38년간 1624년부터 대만을 식민지배했는데....
이걸 물리치고 대만을 독립시킨사람이 정성공이라고 합니다....
서양인들은 코싱가....라고 하는데......이 정성공이 명나라 부흥운동의 기수 어쩌고 지랄하는데......... 이 정성공이 태어난곳이.....일본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 히라도[平戶] 출생입니다....
아버지는 지룡(芝龍), 어머니는 다가와 시치자에몽[田川七左衛門]의 딸인 일본 여자였습니다..... 그의 아버지 정지룡(鄭芝龍)은 타이완 해협에서 무역업과 해적행위로 큰 돈을 번 해상모험가였다고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아버지 정지룡(鄭芝龍)은 어린 아들을 일본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게 했으나, 정성공이 7세 되던 해에 명조에서 수군을 지휘하는 관직을 제수받게 되자 그를 선조의 땅인 푸젠 성[福建省] 남부로 데려왔다. 그 후에 난징[南京]의 태학(太學)에 입학, 전겸익(錢謙益)에게 사사하였다. 명나라가 멸망하자 1650년 아버지의 해상권을 이어받아 진먼[金門]·샤먼[廈門:아모이] 두 섬을 근거지로 무역을 하여 군비에 충당하는 한편, 자주 본토의 연안을 공략, 본토 반격의 기회를 노렸다고 기록은 나옵니다...
그후 정성공은 청나라에 굴복하지않고....복건성해안을 중심으로 해적질과 무역업으로 해상왕노릇하다가..결국 청군에 쫏겨서..1661년 당시 네덜란드가 식민통치하고있던 타이완을 공격해서 뺏읍니다....그러다가 타이완에서 찝적거리다가 죽고 그 아들도 역시 타이완에서 왕노릇하다가 청의 수군에 의해서 1683년 함락됩니다. 이게 청의 수군인지...조선수군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어차피 근데 대륙역사는 전부 조작됐으니까..
제가 정성공에 주목하는 이유는...바로 이자가 일본 나가사키출생이라는 거죠... 그리고 정성고 아버지 정지룡이 타이완과 복건성해협에서 해적질과 무역업으로 큰돈을 번...좋게말해 해상무역가....실은 해적이었다는 겁니다.
엄마역시 일본여자였다는걸로봐서.....정지룡역시....왜적(요즘말로 일본인)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아비,어미 둘다 쪽바리라고하면....근대 지나역사로 각색한 대륙역사에서 서양(네덜란드)애들 깨부순기록이 하나도 없으니 은근히 애비는 명나라인이었다고 각색한걸로 보입니다.
그리고 다시.....정성공이 태어난곳이....."일본 나가사키"..라는 것이죠..ㅎㅎ 이것역시....현재의 일본열도로 가정하면 전~~~~혀 말이 안되죠...
왜 대만해협에서 해적질수괴로 있던 정지룡이가....바닷길 수천킬로미터나 떨어진 일본열도 나가사키까지가서.....일본여자랑 결혼하냐 이말입니다...ㅎㅎㅎ
말도 안되죠?? 요즘같이...쾌속선으로 가도..부산에서 시모노세키까지 거의 몇시간도 더 걸리는걸로 아는데..
이것도 일본을 현재의 복건성주변으로 상정하면 의문이 아주 쉽게 풀립니다. 당시 홍콩주변,복건성과 대만해협주변은 해적질하던 왜적들의 주무대였고 정지룡이가 지나꽝똥족이었던...왜적쪽바리였던...당시 왜적군벌중 하나였던 다가와 시치자에몽[田川七左衛門)의 딸과 정략결혼을 해서 성장한겁니다.
나가사키는 결국 복건성해안 어느지역일거고....근세에 일본열도로 지명이 옮겨진것이죠...
정성공이 1650년 아버지의 해상권을 이어받아 진먼,샤먼(아모이)를 근거로 해상권을 확장했다고 나오는데.....바로 이 진먼,샤먼,닝샤..이들지역이 서양세력이 동양을 침략하면서....해상무역항으로 이용한 주요 항구들입니다. ..이런점에서 볼때도.....정성공역시.....왜적이었을 가능성이 높죠..
단지....네덜란드군을 대만에서 물리쳤기때문에...근데 지나족들이 띄워주는걸겁니다.
대만인들이 유난히.....일본인들에게 호의적이고..일본의 식민통치에대해서 오히려 고마워하는것도......우리가 보기에는 정말 아이러니하죠....
청나라의 지배와 본토인들의 지배에 질려서 일본의 지배를 더 좋아했다는 말도 있으나.....대만원주민들과 일본인들의 전통의상이나 음식등 여러가지 비교해보면...비슷한점이 아주아주 많습니다.
일본에 가면...마쯔리라고해서....집단으로 참여해서 하는 축제가있는데.. 복건성이나...홍콩등 대륙동남해안에 가면...이와 비슷한것을 많이합니다.
특히 일본과....홍콩등지에서는.....집단으로 배를젖는 경기를 축제로 자주하는데.....전형적인....해적집단의 전통중 하나가 노젖기 시합이죠..
유목부족이...집단사냥이라는 부족축제를 통해서 부족의 단합과 전쟁연습을 함께하듯이.....해적집단은 노젖기를 통해서 부족통합과 전쟁연습을 합니다.
서세동점에서 빼놓을수없는것이.....역시..또 아편전쟁이죠... 우리는 아편전쟁에 대해서 학교에서 아주아주 단편적으로 배웁니다.
영국이 동양의 차를 갖다가 팔고..어쩌구...그 반대로 영국은 아편을 팔아서 무역균형을 맞추려다 전쟁이 나구 어쩌구.....개구라를 애들한테 가르칩니다. ..ㅎㅎ.
서세동점의 가장 핵심적인 사건은 제가보기에.....임진왜란.... 아편전쟁....조선왕조붕괴......이 3개인것 같습니다. .....
포르투갈세력이 먼저 대륙왜족에게 조총을 쥐어주고 50년간 단련시킨다음 1592년에 임진왜란을 일으켜서 대륙을 먹으려다가...실패했고.....
이때 대륙왜족이....남동부해안의 해상권을 일시 상실하고...현재의 일본열도로 상당수가 도망갔을수있습니다.....대만에서 오키나와 섬들을 따라서 조선정벌군을 피해서 도망간 잔당들이 분명있을겁니다....일부는 필리핀과 대만산악지대로 숨었을거고....
임진왜란이 끝나고....토쿠가와 막부는 포르투갈과 결별하는데.. 아마도.....조선왕조에 패하고난후 포르투갈의 지원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결별했을겁니다...
또한 백제를 조상으로 모시고 신처럼 떠받들던 일본왜족들에게......1542년부터 기독교를 집요하게 확산시키려고하는 포르투갈이......전통을 중시하는 일본인들에게는 경계의 대상이 되었죠..
기독교세력에 의해서 정체성이 파괴되는것을 두려워한 일본은 1638년 일본의 주활동지역인 대륙동남해안에서 포르투갈을 쫏아냅니다.
그후로 지금까지...일본은 서양의 기술과 제도는 받아들이되.... 기독교는 정권차원에서 철저히 봉쇄하는 정책을 취하고있습니다.
그결과 국론이 분열되는 일은 없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라는 나라죠..
기독교는 서양세력이 식민지를 경영할때 제일먼저 사상전으로 침투시키는 종교죠 ..일단 사상적으로 서양의 노예로 만들어놔야...저항도 안하고 가지고놀기 좋으니깐....
어쨋든 이 임진왜란이 끝나고나서.....대륙왜세력은 일부는 일본열도로 도망갔을확률이 있고.....일부 대륙에 남은세력은 조선왕조에 겉으로는 복종하면서...후일을 도모한걸로 보입니다.
그리고....포르투갈이 물러나고....일본은 네덜란드와 짝짜꿍이 됩니다.
포르투갈이 대만에서 나간후에 스페인이 대만을 또 차지하는데.. 원래 대만해협에서 해적질하며 대만을 자기 앞마당처럼 생각하던 일본은 네덜란드에게 대만북부에 금광이 엄청나다고 대만의 스페인군을 공격해서 뺏어갖자고 합니다.
1642년 대만에 네덜란드 요새가 세워지는데 이때 사령관이 Coen이더군요...
이름보니 유대인같은데......당시 식민지침탈전에 x대인들이 주로 배후로 많이 나오더군요...동양에 파견된 기독교선교사역시...x대인들이 많고...
네덜란드라는 나라는 말그대로...식민지침탈하던 거대상인집단들이 모여서 만든 일종의 상인집합체비슷한 나라인데.....
지금도 네덜란드에서 유대인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걸로 압니다.
뉴욕의 월스트릿도....맨해튼을 점령한 네덜란드출신 유대인들에 의해서 생긴걸로 압니다만.....
어쨋든.....이태리에서....포르투갈로..다시 스페인으로..다시 네덜란드로.. 다시 영국으로.....유대인이 빠지는일이 없군요....ㅎㅎㅎ
어쨋든....1600년대...네덜란드는 현재 인도네시아,스리랑카등가지 점령하고 포르투갈,스페인에 이은 동아시아 남지나해의 새로운 주인으로 군림한걸로 보입니다.
이게 바로 1차대전과 2차대전으로 결국은 연장선상에서 벌어진것 같아요.. 역사를 자세히 보면......물론 자세히 얘기하면 글이 너무 길어지니..
임진왜란 이후로......서세동점의 두번째 핵심이 바로 아편전쟁인데... 아편을 영국애들이 대륙의 몽골왕조를 붕괴시킬려고 일부러 대량으로 풀었는데...
그 아편을 푸는 똘마니역......거간꾼노릇을 한게..바로 일본인들입니다. 이건 서양인들이 쓴 기록을 보면 다 나와있어요...
당시 대륙에서 영국과 대륙인사이에서 아편을 실질적으로 배달하고 이득을 챙긴 중간상인은 거의 대부분 일본인들입니다. 이것도 일본을 현재의 일본열도라고 가정하면 전혀 앞뒤가 안맞죠..
영국넘들이.....아미 미쳤다고.....홍콩이나 샤먼에서 아편을 풀고...할일이 없어서 배로 수천킬로떨어진 일본까지 가서 중간상을 모집하겠습니까?? 그것도 한두명도 아니고....수만명을 동원해야 하는데..ㅎㅎㅎ
역시나....왜를 하이난섬,홍콩,복건성연안의 대륙왜적들로 가정하면 의문이 아주 자연스럽게 풀립니다........
이미 서양인들과 1542년부터 대륙 동남해안에서 교류하며 서양인들의 길잡이노릇을 해온 일본인들이야말로....영국인들 입장에서는 대륙에 마약을푸는 똘마니들로 가장 제격이었죠........영국인들은 쪽바리들을 이용해서 대륙의 은화를 싹쓰리하고....대륙의 몽골왕조를 붕괴시킬수있는 일석이조가 되고 쪽바리들역시...임진왜란으로 붕괴됐던 일본세력을 아편판매로 번돈으로 회복할수있고...대륙 곳곳을 염탐하며 재침략의 정보를 얻을수있었으니....
당시에 서양인들이 쓴 대륙의 상황을 보면.....길거리에 아편환자들이 널부러져있고.....고관대작들까지..아편에 빠져서...재산을 탕진하고 일본인들에게 절절매는 상황까지 나열되어있습니다.
또 대륙 몽골왕조의 재정이 일본인들을 동원한 영국(사실 그배후에는 특정민족이 도사리고있었죠...이미 그때에도..)의 아편판매로... 아주 거덜나는 그런상황이었다고 나옵니다.
서양인들이 보기에도 이럴정도니.....얼마나 개판이었는지 상상이 가죠..
제가 여기서 자꾸 대륙몽골왕조 어쩌구 하는것은....우리가 학교에서 배운것은 대륙이 청왕조였다고 배웠지만......서양인들의 기록에는 몽골왕조로 나온다 이말입니다.........복장이나 전통을봐도..현재 몽골인들과...청왕실의 복장이나 전통은 거의 똑같아요.......쿠빌라이가 원을 세우고 몽골고원에서 왕비를 얻었듯이..청도 황제들이 황후를 몽골고원에서 데려왔습니다.
대륙조선설 주장하는 역사학자들의 말처럼...만주가 현재의 동북삼성이 아니고 진짜 만주가..현재 신강성,내몽골,몽골지역이라면 이역시 정확하게 맞아떨어집니다. ...
진짜 만주는 현재 동북삼성이 아니고.....시안(서안)의 서북쪽..오르도스지역과 현재...내몽골지역이고......청이라 함은...바로 몽골왕조인데..
쪽바리들이 역사를 왜곡하기위해서....청(여진)과 몽골이 다른부족인것처럼 찢어놓은 겁니다..........여진이나 몽골이나 다 북부여,고구려의 후손들이고 정통 우리민족입니다.
따라서 서양인들 눈에는....조선이 근세까지 황제국이었던... 아니면 병자호란 이후에....청(몽골)조에게....대칸의 지위를 물려주고 조선은 청의 제후국으로 눌러앉았던간에.....둘다 몽골왕조로 보였다 이겁니다.
어차피 몽골과 우리는 같은핏줄로 생긴것도 같으니..서양인이 보기에는 전부다 같은 몽골왕조로 보였던거죠...
어쨋든....네덜란드가 남지나해에서 일본과 짝짜꿍하며 1600년대에 왕초노릇하다가 1700년대로 들어오면...인도를 점령한 영국이 말라카해협을 넘어서 동아시아로 본격적으로 진출합니다.
1700년대 후반에 들어서 영국은 홍콩등 대륙남해안 광주(꽝저우)를 중심으로 급격하게 세력을 확장하는데.....1832년까지 중국무역을 독점한게 바로 인도식민통치의 핵심인 동인도회사입니다.....
무슨 영국에 중국차수입이 급증해서 그 비용을 조달하려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중국에 팔았다고 개구라치는게..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인데... 이건 순전히 속이기위한것이고.......아편으로 대륙의 몽골왕조(조선,청)을 붕괴시키기위해서......기획적으로 시작한게 바로 아편판매입니다.
이 아편판매를 통해서....대륙의 은화를 싹쓰리함으로서 대륙몽골왕조의 재정을 파탄나게했고.........대륙몽골왕조의 재정이 파탄날즈음인 1840년 .....대륙 몽골왕조(조선이었던....청이었던...)는 대륙에서 영국넘들이 쪽바리들을 앞세워서 아편을 판매하는것을 금시시켰고...
이걸 기회로 삼아서 영국넘들이 대륙을 공격한게 바로 아편전쟁입니다.
임칙서가 영국넘들 아편을 빼앗자 영국상인들이 마카오로 도망갑니다. 이때 마카오는 포르투갈 잔당들이 지배하고있었죠...마카오가면 마카오인은 중국인..대만인..서양인..일본인의 혼혈이라는 말들이 많은데.. ..여기서 일본인이 나온다는것도..역시 일본을 일본열도라고 가정하면 말이 안되지만....일본을 홍콩주변의 복건성해안이라고 보면 의문이 쉽게 풀립니다....
1840년에 시작된 아편전쟁은 1842년에 끝나는데..영국군 사상자가 520명인데 대륙왕조의 사상자는 2만명에 이릅니다....완전히 새총과 기관단총의 싸움이었다고 봐야죠.......이때 이미 대륙왕조는 망했다고 봐야합니다..... 단지 영국애들이 대륙의 쪽수가 너무많고 너무 멀어서 쉽게 먹고 통치할수가없기에 서서히 단물을 즐겨가며 빼먹을려고 놔둔거라고 봐야겠죠...
이때 아편전쟁의 주역이....청조인지...조선인지는 아직 확실히 모르겠지만.. 역사가 청조로 왜곡된걸로 봐서 조선왕조였을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조선왕조역시 1700년대에서 1800년말까지 극심한 혼란을 겪는데.... 서양의 대륙침략에 의한 대륙왕조의 혼란과 조선왕조의 구한말 혼란이.... 아주아주 흡사하다는 점에서....조선왕조를 청조로 바꿔치기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편전쟁이후 대륙왕조는 난징조약으로 해안의 항구 상당부분을 영국,미국,프랑스등에게 뱃기고..관세주권마저 뺏기로.....세제,사법상주권도 일부 뺏기고 반식민지상태로 전락합니다.
이때 상해,녕하(닝샤),샤먼,광주,복주등이 서양인들손에 넘어가는거죠..
이후로 서양의 공산품은 급속도로 밀려들어와서 대륙의 재래식제조업을 고사시키고...아편은 계속 유통되서 은화는 계속빠져나가서 국가제정은 완전거덜나고..기독교 선교사들은 외교관신분처럼 마음대로 대륙을 휘젖고다니며 기독교를 전파하며 정보를 탐색하고 서양사상을 주입시키고... 관료는 더욱 부패해지고.....대륙왕조는 붕괴의 길을 급속도로 걷게됩니다.
바로 이 1842년부터 벌어지는......충격적이고 역사적인 사건들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시간에서는 거의 제대로 다루어지지않고 왜곡되고 짜집기된 가짜역사를 배우고 있다는 겁니다.
만약 상식적으로 생각해서....조선왕조가 한반도에 있었다면........ 과연 서양세력이 1542년에 일본에 도착한이후로.....일본,대만.필리핀, 대륙의 동남해안을 1842년까지 아주 난도질을 해댈동안.....
과연 대양 수만킬로를 항해해온 그들이...조선이 청보다 강해서... 대륙에는 1700년대부터 아편을 광범위하게 뿌릴동안....한반도는 가만 두었을까요??
당시 우리가 배운대로라면..조선은 청의 속국이라고 배웠고... 청보다 군사력도 약해서 빌빌대던 왕조라고 배웠는데...
대만도 점령하고 필리핀도 점령하고...일본도 가지고놀던 서양세력이 뭐가 이뻐서....힘도없고 군사력도 약한 한반도는 1800년대말까지 건드리지도 않고....아편도 뿌리지 않았냐 이말입니다....하하하..
결국...조선황실이 한반도에 있었다면....상식적으로 전~~~~혀 말이 안되는 거죠.......조선황실이 대륙에 있었고......아편전쟁의 주역이라면 말이되는겁니다.
왜냐면....조선황실이 대륙에 있었고..동아시아 연방의 황제국이었다면 한반도는 당연히 조선연방의 일원이었을것이고....서양인들이 고지도에 곧죽어도 Corea라고 적는것을 봐서는....조선 이성계에게 적극적으로 항복하지않은 고려의 충신이나 후손들이 많이 피신해와서 살던....지역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양인들이 한반도에 와봤더니..곧죽어도 자신들은 고려인이라고 했을테고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동포들이 자신들을 곧죽어도 고려이이라고 불러주길 원하듯이....그걸보고 서양인들은 한반도를 고지도에 코리아라고 적었을겁니다.......물론 대륙 조선황실 입장에서는...한반도 산골까지 숨어들어간 고려왕실이나 고려충신들의 후손들을 눈감아줬을 확률이 높겠죠...어차피 대륙을 차지했으니까..
서양인들 입장에서.....그리고 당시에는 누구라도...식량과 산물이 풍부한 대륙이 탐나지....한반도같이 경작지가 아주적은 산골짜기는 별로 쓸모가 없는 지역입니다.....요즘에야 교통이 발달해서 산골짜기까지 도로가 깔리지만 불과 100년전까지만 해도.....가장 중요한 지역은 농사를 지을수있는 평야지역이고 대륙의 풍부한 자원을 빼갈수있는 대륙 동부해안의 항구들이죠.....
결국 한반도는 원래 고려의 후손들이 많이 피난해들어와 살았고.. 삼국이 대륙에 있었을때는 전부 백제의 영향권이니 백제유물들이 많이 남아있는 것이고......대륙에 아편전쟁등으로 혼란할때 많은수가 한반도로 피난왔을것이고.. 조선왕조가 붕괴하면서...또 엄청난 조선인들이 피난왔을것이고...
그후 또 엄청난 수가 1950년까지 이주해왔을 겁니다.
1860년 8월 북경이 영불연합군에게 함락됩니다.......이건 대사건이죠.. 당시 북경에 있던 황제가....조선황제였는지....아니면...청황제였는지는 알수가 없지만....둘중에 하나는 황제였을거고.....서양과 지나,일본이 자꾸 청을 내세워서 역사를 왜곡하는걸 봐서는...조선이 먼저 멸망했고.. 청을 옹립해서 역사를 각색한것 같습니다.
당시 북경함락 사진을 보면....미군 공수부대도 참여했고....일본군도 대규모로 참여했고...러시아도 참여했고...한마디로 서양세력이 총동원되서 대륙왕조의 숨통을 끊어놓을려고 대격전이 벌어진것을 알수있습니다.
구식무기로 대항하는 대륙왕조에....신식무기로 무장한 서양제국이 전부 연합해서...미군 공수부대까지 동원된걸보면.....당시 대륙왕조의 저항이 얼마나 필사적이었나를 느낄수있습니다.
특히 당시 사진들을 보면.....꼭 등장하는게..바로 인도넘들입니다. 물론 당시는 인도나 파키나 방글라나 다 영국의 용병으로 식민지전쟁에 대규모로 참전했는데.....영국넘들이 대륙왕조를 무너뜨릴때도.. 바로 이 인도종자들을 대규모로 동원했더군요.......
전형적인 이이제이라고 볼수있죠......
인도인 사위를 둔 반기문이를 유엔 사무총장에 앉혀놓고..... 파키스탄출신을 시켜서 유엔명의로 한국은 단일민족 순혈주의를 주장하는 인종차별국가라고 하는 술수와 비슷한 경우라고 할까요...
1864년 흥선대원군이 집정하면서 쇄국정책을 강화하고 이때부터 병인양요,신미양요등 서양세력과 전쟁이 벌어지는데......병인양요,신미양요도 한반도 인천,강화도를 가정하고 분석해보면 한마디로 코에디입니다....
병인양요나 신미양요는...베이징 동쪽의 천진해서 시안까지...황허강을 타고올라가면서....시안이나 연안근처까지 벌어진 해상전인듯 싶습니다. 제가 분석해본 바로는.....
어쨋든 강화도에서 어쩌구 저쩌구 하다가..또 황해도올라가서 약탈하고 하는거보면 완전 코메디더군요....
근데...시안주변..연안이라는 지역이 있는데...이주변을 놓고 분석해보면 딱맞아 떨어지는게 있습니다...지금 기억으론 병인양요같은데....
대륙역시 1860년부터...1905년까지는...그야말로 대혼란기..... 대 격변기로....엄청나게 세밀하게 분석적으로 다루어져야하는 역사임에도 우리 역사교과서에서는 철저히 숨기고 왜곡하기에 바쁩니다.
조선왕조의 붕괴는 아편전쟁때부터 1905년..내지 1910년에 모든비밀이 숨어있습니다.
그들을 실질적으로 조종하는 특정집단역시 아주 위험해질겁니다.
일단 대륙왕조가 붕괴한게 대략 1905년에서 1915년사이로 보이고...
....1912년부터 1925년정도까지는...무너진 대륙의 지배체제를 놓고...
쪽바리들은 열심히 서양눈치를 봐가며 군수공업을 발전시켜서... 대륙을 먹을 준비를 하고......
서양은 쪽바리들을 예의주시하면서......대륙몽골왕조가 무너진틈을타고 각지에서 발호하는 군벌들을 제거하기위해서........
그리고 대륙의 몽골인종의 숨통을 끊어놓기위해서...지나족 손문이라는자를 키워서 신해혁명이라는걸 일으킵니다.
당시 일반인은 배타고 외국간다는게 특권층아니면 힘든시기에.. 미국,영국,캐나다.일본,하와이등을 제집드나들듯이 드나들었다는것은 서양세력이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는거죠...
뿐만 아니라...이 손문이라는 자가...대륙왕조가 붕괴되기전까지 또..붕괴된 후에도...일본과 아주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진자라는것을 역사자료나 사진자료를 조금만 검토해봐도 알수있습니다.
광조우에서 혁명봉기했다가 실패하자 잽싸게 일본으로 도망가고.. 뭐있으면 잽싸게 또 일본으로 도망가고..여차하면 일본으로 도망가서 쪽바리들의 보호를받는 인물이 바로 손문인데.....원래 일본종자이거나.. 그도 아니면....꽝똥 지나족인거나....둘중에 하나인건 확실합니다.
근데....이것도 일본이 현재 일본열도라면 전~혀 앞뒤가 안맞죠.....
꽝조우에서 농민봉기일으키려다가 실패했으면...그때 이미 홍콩이나 마카오는 영국,포르투갈이 지배하고있는 동네인데....당시 미국,영국등 서양세력의 지원을 받던 손문이 뭐하려 수천키로 떨어진 일본 동경으로 피신하냐 이겁니다. ..엎어지면 코닿을데가..홍콩이고..마카오인데..ㅎㅎㅎ
결국 일본동경은 현재 일본열도에 있었던것이 아니라...광조우 삼각지 홍콩에서 가까운 남동부해안 어느지역이었을 것입니다.
실제 손문의 마누라 동생의 남편....즉 손문의 동서인 장개석역시 일본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고...일본동경에 수시로 드나들고....
장개석이넘도 일본육사 출신입니다.....이것역시...일본이 현재 일본열도라면 아주아주 뭔가 안맞죠...
결국 장개석이역시..대륙 왜족이었을 확률이 아주높고...그도아니면 지나족과 왜족의 혼혈이었을겁니다.
연안은 대륙왕조의 중심지이자 황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북경과 함께 가장높은 동이족이 대륙을 통치하는 중심지역이죠...
개인적인 추측은 그동안 동이족황제가 대륙을 통치하던 중심인 시안을 점령함으로서...전 대륙에 공산당이 대륙의 지배자가 되었다는 상징적 심리전을 전개하기위해서였을수도 있고...
연안근방에 있던 조선의 항일무장단체인 동북항일연군을 제압하기위해서 그랬을수도 있을것같고......아직 확실한 이유는 모르지만..
뭔가 이유가 반드시 있습니다.
어쨋건.....대륙왜가 1945년 일본열도로 쫒겨가고.....남은건 장개석과 모택동인데.......사실 해상권과 제공권을 장악하고있던 미국과 영국이 모택동하나 제거하는거 일도아닌데....장개석을 대만으로 쫏아낸거보면...
서양인들의 의도가 확연히 드러납니다...당시 미국,영국,소련은 전부다 특정xx에 의해서 지배되던 나라로 서로 전부 짜고치는 나라라고 봐야죠...
1945년 얄타회담이 있었죠? 그때 미국 루스벨트..영국처칠...스탈린이 전후처리 회담을 했는데....아마 여기서...모택동을 대만으로 쫒아내고 대륙을 공산화시키자고 합의했을겁니다.....
아시아라는 거대한 대륙이 유럽식의 산업혁명을 이루게되면.... 얼마나 무시무시해질것이라는것을 백인들은 잘 알고있었죠.....
산업혁명이야말로...수천년간 동양에 눌려살던 서양인들에게 세상의 주인이 될수있는 기회를 주었는데.....
1700년부터 무려 200년동안이나 힘들여서 대륙왕조를 붕괴시켰는데 이 거대한 대륙을 산업화시키면...삽시간에 백인들을 따라올거라는걸 그들은 잘 알고있었죠.....쪽바리들도 군수산업 좀 갈켜줬더니 항공모함 만들고 전투기만들어서 기어오르는걸 본 서양인들은 대륙은 공산주의로 최소한 몇십년간 묶어놓고 동양인들이 서양인을 따라오지 못하도록 해놔야하다고 생각했을겁니다.
그결과...겁모르고 날뛰는 짱깨석이는 대만으로 쫏아내고...말잘듣는 스탈린 똘마니 모택동으로 하여금 대륙을 장악하고 철저한 공산주의로 통제하게 하자고 합의를 봤을겁니다..
제가봤을때는...스탈린 역시 똘마니였고....처칠역시 허수아비에 불과한 인물이고 이 3명중 진짜 왕초는 루즈벨트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 3명이 찍은 사진보면...스탈린과 처칠은 완저히 주눅들어서 빌빌기고 루즈벨트는 외투걸치고 왕초처럼 거들먹거립니다.
아마도 이때부터..xx자본이 유럽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통치하기로 결심한것 같아요.....루즈벨트역시 xx인이라는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죠..
첫댓글 매우 긴 글인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대륙조선설 카페에서 퍼왔어요.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100점 만점에 70점 넘는 훌륭한 추리였고...뛰어난 분석입니다..암튼 조선은 망했고..한민족은..그대로 남아서 최고민족으로 이미 자리잡았고... 곧...올해부터...공식적으로 부활의 나래짓 할 겁니다....기대하십시요...
감사합니다
관심은 가는 내용이지만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궁금한 사항이 있는데 만약 위 내용이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조선의 대륙수도[서안]가 반도수도로 언제쯤 왜 이동되었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자금성이 경복궁과 비슷하던데 혹씨 북경이 대륙수도였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긴 하네요...
경복궁은 1394년 착공, 자금성은 1406년 착공으로 착공시기도 비슷합니다.
찾아서 올려볼게요
자금성이 경복궁이 아닌 이유... 지금의 대한문이 예전에는 대안문이었습니다... 자금성의 상징이 천안문인데... 한자'천' 에서 'ㅡ'을 빼고 '대안문'으로 불렀던 것입니다... 조선왕이 한성으로 피난을 왔다면... 천안문의 현판을 떼어다 덕수궁 정문에 달았을테지요.
황당한 소설에 현혹되지 맙시다.
현실적으로 동북삼성 북방에 간도땅이라도 돌려받아야지요. 돌아가는 사정을 보니 망하거나 소멸 되지 않으면 다행인 상태로 흐르고 있네요... 한민족역사를 배우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재야 사학자들의 의견도 충분히 토의하고 검토 해볼만한 내용이 많은데, 지금의 우리 나라 사학계에서는 좀 힘들겠지요?
하루 빨리 우리의 제대로 된 역사를 다시 배우고 싶네요.
가장 중요한 역사과목이 흐름이 끊기고 왜곡되어 암기과목이 되어버린 현실이 안타깝지만 꼭 제자리를 찾을것이라 믿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금자 아이디가
문패 이름 가지고 맞다 아니다 라는 반대 주장은 좀 어리석음
글쓴이 처럼 기록 위주로 반박하기
바람
진짜 어리석은 사람일쎄... 현판이란 단순한 물건이 아닌 기록 그 자체임... 천안과 대안의 뜻을 안다면 이따위 댓글은 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