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어렸을 적이던 1980년대에는 21세기가 오면 모두가 우주복을 입고 첨단 기기들이 가득한 대궐 같은 집에 살게 될 거라는 식의 미래 예측이 여러 매체에 나왔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모습은 과연 그만큼 나아졌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물론 그때보다 먹고 입고 사는 것은 조금 나아졌지만, 수많은 청춘들이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펴지 못하고 ‘잉여’로 전락하고 있다. 일자리를 잡은 사람이라도 마냥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21세기인들은 20세기인들에 비해 불행해진(혹은 최소한 덜 행복해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2015년 12월 23일, 홍대 카페콤마 1호점에서는 김훈 작가와 허지웅 작가가 함께하는 ‘잡담회’라는 명목의 만남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에서는 김훈 작가를 메인 게스트로, 허지웅 작가를 사회자 삼아 전국에서 몰려온 팬들이 함께 ‘이 시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훈 작가와의 잡담
김훈 작가는 “나는 해답을 줄 수 없다. 다만 같이 고민하고 슬퍼하자”라는 말로 행사를 열었다. 김훈 작가의 책 <라면을 끓이며> 그리고 허지웅 작가의 책 <버티는 삶에 관하여>. 두 책의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이 날의 키워드는 다름 아닌 ‘밥벌이’였다. 하긴 마르크스도 인정하지 않았는가? “노동이 세계를 만든다. 경제가 모든 것의 근본이다”라고.
김훈 작가는 이날 행사에 오기 전 독자들이 보내온 메모를 읽었다. 그는 그 속에서 슬픔과 답답함을 느꼈다. 한국 사회의 문제적 모습을 보며 “기성세대는 헛 산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가졌다고 한다. 자신의 집필 활동이 과연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도 의문스러웠다고 한다. 그러나 말로 바꿀 수 없으면 세상은 바뀔 수 없다. 기득권의 도덕적 반성을 기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현실, 모두가 힘을 합쳐서 들고일어나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직업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느꼈을 ‘밥벌이의 지겨움’을 사회 문제로 환원시켜 논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현대의 문제는 개인과 사회 모두의 문제이다. 그는 밥벌이의 대가로 주어지는 돈을 ‘인건비’라는 말로 표현하는 데도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인건비’는 기업이 지출하는 수많은 항목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그는 대신 ‘임금’이라는 말을 쓰자고 했다. 임금은 국가의 미래와 개인의 삶을 만드는 소중한 돈이다.
오늘날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삶을 불행히 여기며 비관한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수치가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김훈 작가는 인간에게는 사랑과 희망과 확신이 있다고 굳게 믿는다. 그가 그런 것을 느낀 것은, 장애인 고아를 안은 테레사 수녀의 사진을 보았을 때였다. 장애인인데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아기였지만 테레사 수녀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보는 눈빛으로 그 아이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버티면서 다음을 도모하고 그 속에서 희망의 싹을 찾으라는 그의 말에서, 애니메이션 ‘스카이 크롤러’의 명대사 “당신은 살아요, 뭔가를 바꿀 수 있을 때까지!”를 떠올렸다. 강하니까 살아남은 게 아니다. 살아남았으니까 강한 것이다.
답을 찾는 것은 스스로의 몫
이후 많은 독자들이 김훈 작가와 일문일답을 던졌다. 앞서 말했듯이 김훈 작가라고 모든 것을 다 알거나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 다만 같이 고민하고 슬퍼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관객들의 질문 태도는 한없이 진지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취업 준비생들이나 각박한 현실 속에서 힘을 잃어가는 직장인들이 제일 많았다. 김훈 작가는 그들에게 현실을 이상보다 더 중시하라고 말했다. 노동이 고통스럽고 인내를 요구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자랑이고 희망이며 삶을 완성하는 수단이라고도 답했다. 앞날과 미래를 생각하면서 희망을 갖고 살라 고도 말했다. 희망을 과거에 건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로 식구들을 건사하고 있는 생계형 글쟁이인 기자도 그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후배 글쟁이에게 해줄 말이 없느냐고. 그러자 김훈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할 말이 없습니다. 나도 똑바로 못 사는데?”
하긴 어찌 보면 그쪽이 더욱 ‘진리’에 가까우리라. 우리는 그동안 진리를 쥐고 있다고 큰소리는 뻥뻥 치면서도 손안에는 한 줌의 재만 쥐고 있는 거짓 스승들에게 무던히도 휘둘리지 않았던가. 모두가 얼굴이 다르듯이 인생의 빛깔도 모두가 다르다. 자신에게 가장 충실하고도 어울리는 삶을 사는 비결을 찾아내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다. 특히나 요즘같이 어지러운 시대에는!
김훈
생년월일 : 1948.05.05~출생지: 서울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정외과에 입학했다. 3학년 때 영문과로 편입했으나 학업을 다 마치지 않고 군복무 후 한국일보에 수습기자로 입사한다. 1973년 입사한 이래 약 30여 년간 기자생활을 해온 그는 재직 당시 [문학기행] [내가 읽은 책과 세상] 등의 책을 출간하며 남다른 필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1994년 [문학동네] 창간호에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연재하며 소설가로서 문단에 등장했다. 2001년 장편소설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2004년 단편소설 [화장]으로 ‘화장火葬’과 ‘화장化粧’이라는 상반된 소재를 통해 "소멸하는 것과 소생하는 것 사이에서 삶의 무게와 가벼움을 동시에 느끼며 살아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이상문학상을 ...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정외과에 입학했다. 3학년 때 영문과로 편입했으나 학업을 다 마치지 않고 군복무 후 한국일보에 수습기자로 입사한다. 1973년 입사한 이래 약 30여 년간 기자생활을 해온 그는 재직 당시 [문학기행] [내가 읽은 책과 세상] 등의 책을 출간하며 남다른 필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1994년 [문학동네] 창간호에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연재하며 소설가로서 문단에 등장했다. 2001년 장편소설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2004년 단편소설 [화장]으로 ‘화장火葬’과 ‘화장化粧’이라는 상반된 소재를 통해 "소멸하는 것과 소생하는 것 사이에서 삶의 무게와 가벼움을 동시에 느끼며 살아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2005년 단편소설 [언니의 폐경]으로 황순원문학상을, 2007년 장편소설 [남한산성]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문학사에서 대체 불가능한 작가로 자리매김하였다. 김훈은 남성적이고 선 굵은 역사소설뿐 아니라 [풍경과 상처] [자전거 여행] 등의 산문집을 통해 유려한 우리말을 구사하는 에세이스트로서의 면모도 드러냈다. 특히 자전거 레이서로도 잘 알려진 그가 자전거를 타고 곳곳의 여행지를 찾아다니며 느낀 생각을 담아낸 여행산문집 [자전거 여행]은 "모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산문미학의 절정"을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았다. 저서로 소설집 [강산무진], 장편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칼의 노래] [현의 노래] [개] [남한산성] [공무도하] [내 젊은 날의 숲] [흑산], 산문집 [풍경과 상처] [자전거 여행] [내가 읽은 책과 세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