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시월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엊그제 가을비가 내려서인지 기온이 뚝 떨어졌다. 쌀쌀해진 날씨와는 상관없이 아침 일찍부터 근교 산자락으로 오르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는 처지였다. 아내가 서울로 정기 검진 받으러 올라가는 날이었다. 나는 열흘 전에 일요일 낮 상행, 월요일 오후 하행 열차표를 예매해 두었다. 연가를 내어 동행하지 못하는 사정이라 역으로 떠남을 지켜보아야 했다.
점심식후 아내는 서울로 가고 나는 남은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궁리했다. 용추계곡으로 들어 비음산이나 진례산성을 둘러 와도 될 듯했다. 숲속 나들이 길로 들어 창원컨트리클럽 산등선을 타 도계동으로 빠져도 반나절은 보낼 수 있을 듯했다. 망설임 끝에 산행은 마음 접고 북면 지인 농장으로 걸음하기로 정했다. 동정동에서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 갈전마을 입구에 내렸다.
산모롱이를 돌아간 밭뙈기엔 고구마를 캔 흔적이 보였다. 축사를 지난 산비탈 단감과수원은 부녀들이 동원되어 감 따기가 한창이었다. 대단지 과수원이라 봄부터 여름까지 두엄 내고, 순 지르고, 농약 뿌리는 농장주가 따로 있고, 가을이면 한 해 지은 감 농사 전체를 몽땅 사서 수확 판매하는 사람 다르다고 들었다. 여느 농산물이 다 그렇듯 생산 현지와 소비자 가격엔 큰 차가 있었다.
지인 농장에 닿으니 일요일을 맞아 몇몇 방문객이 있었다. 모처럼 만나는 낯익은 얼굴이었다. 지난 주말은 시간을 내지 못했으니 보름 만에 들렸다. 밭 가운데 설치된 비닐하우스를 철거하고 있었다. 나는 인력의 고급 여부를 떠나 함께 힘을 모아주었다. 내가 다른 곳을 제쳐두고 지인 농장을 찾아가는 데는 유의미한 일들이 몇 된다. 뽕도 따고 임도 보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다.
찾아주는 이 드문 지인에게 말벗이 된다. 서로가 즐기는 곡차 대작을 나눌 수 있어 좋다. 나는 나대로 농장을 찾아가면서 산모롱이를 돌거나 고개를 넘으면서 알맞은 양으로 걸을 수 있다. 농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거리가 있다면 힘을 아끼지 않고 기꺼이 거들 수 있어 좋다. 가끔 나는 남새밭 김을 매고 종자를 구해 심어두기도 한다. 가을 들머리 심은 쪽파는 싹이 터 미끈해졌다.
내가 농장에서 무엇보다 눈독을 들이는 것은 청정채소들이다. 두엄에다 비료야 몇 줌 뿌려도 농약은 치지 않는다. 그 채소들은 나 말고 지인 농장을 찾아와 전담으로 가꾸는 이가 있다. 더러 나도 땅을 일구고 김을 매는 일을 도울 때가 있다. 싱싱하게 자란 채소의 수확 채집 우선순위야 그와 농장주인 지인일 테다. 그들이 먼저 찜하고도 넉넉한지라 언제나 나눔에 인색하지 않았다.
우리 집에선 마트나 할인매장에서 채소를 구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봄날엔 내가 들판이나 산자락에 올아 뜯어오는 들나물 산나물로 해결했다. 산나물이 쇠어버린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지인 농장을 드나들며 신선 채소를 조달한다. 더러 시골 큰형님 댁 일이나 경주 산골 친구 농장의 일을 돕고 오면서 품삯 대신 푸성귀를 배낭 가득 채워오기도 한다. 이러니 별도 시장을 봐올 일 없다.
지인과 함께 일손을 돕는 분들과 하우스 철거를 거들고 잔을 챙겨 곡차를 들었다. 이어 뽑아둔 고춧대에서 여린 고춧잎과 풋고추를 땄다. 데치면 나물로 쓰일 재료였다. 상추와 겨자채도 뜯었다. 종아리가 통통해져가는 무를 세 개 뽑았다. 김치를 담그고 된장국 재료 쓰일 것이다. 아까 살펴둔 쪽파도 몇 포기 뽑았다. 그때 이웃한 농장주 내외가 뭔가를 들고 와 난 푸성귀를 좀 안겨주었다.
채소를 배낭에 채워 담았다. 언제나 그렇듯 북면 농장을 방문하면 지인보다 더 많이 챙겨 나감에 고맙기도 하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인심 후한 지인은 언제든 찾아와도 관계없다고 했다. 짧아진 가을 해는 어느새 서산으로 넘어가고 땅거미가 졌다. 평소는 승산마을을 돌아가다가 시내로 들어가는 녹색버스를 탔는데 집 앞까지 태워주려는 지기가 기다리고 있어 서둘러 나왔다.6.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