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유감(有感)
강진읍 동문 밖 시장통에는
세 평짜리 보리밥집이 있다는데
그 집 군동면 덕천 사람 오가님씨는
무자년 쥐띠생으로 올해가 일흔다섯
팔자가 사나워서 서른다섯에 청상이 되었다는데
아들 둘에 핏덩이 같은 딸 하나 들쳐업고
고향땅 읍내에 돌아와 식모살이부터 했다는데
손맛이 좋아 이 골목 저 골목 밥상을 여나르다
논 너 마지기 팔아서 시장통에 점포를 마련하고
보리밥을 판 세월이 어언 사십 년
어야 동상 배부르게 묵고 가소
어야 성님 배부르게 묵고 가소
호박고지, 고구마순, 토란대, 고사리, 죽순, 가지,
무, 파, 숙주, 열무, 솔, 미나리, 감태, 톳, 미역줄기...
그녀의 손아귀에 들어가면 강진의 산천초목이 벌벌 떤다는데
그 옛날 동문매반가 천주학쟁이 다산을 거두어주던
주막집 노파의 쩌릉쩌릉한 목소리를 닮아서
인정에 허기진 사람들이 뻘밭에 화랑게처럼 모여든다는데
상호도 간판도 없어 어느 날 손님이
첫사랑 순심이 생각에 지 맘대로
순심이 보리밥집이라 부르게 하였다는데
그 순심이 보리밥 소문을 듣고 외지인들 강진바닥을 헤매다
군청에 하도 민원을 넣어서
그러께쯤 군청에서 간판을 만들어 달아주기도 했다는데
으째서 할매를 붙였냐고 성화를 부리니
김주사 썩을 놈이 순심이도 인자 할매가 되어부렀다고
장터 바닥에 우세스럽게 소락대기를 질렀다고
오가님씨 처음으로 서른다섯 청상 무렵 수줍은 미소로 웃었다는데
번듯하게 키워 논 자식들 등쌀에
내년이면 정년하고 토하젓이나 만들어 팔아야겠다는
강진 읍내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순심이 할매 보리밥집
/ 2022년 1월 8일 무심재 이형권 /
@ 네비 : 강진읍 시장길 7-1
@ 061-434-64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