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대통령 회고록, 정책 결정 내막 ‘실토’ 드물고 후임 정권 치부 폭로 많아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댓글.twitterfacebookband..
ㆍ전문가들이 본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
ㆍ한국 특유 정치문화가 원인… 비판적 독해 필요
한국에서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 출간은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이 아니라 대개는 새로운 폭로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후임 정권의 치부가 드러나 화제가 되는 경우는 많았지만 정치철학이나 정책이 재조명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정치학·역사학·기록학 전문가들은 한국 특유의 회고록 집필 방식과 정치문화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정상호 서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국내 정치인(대통령 포함) 자서전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화자찬’과 ‘폭로’를 꼽았다. 서 교수는 “대통령의 회고록은 공적 문서로서 확인할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을 확인하는 자료로 가치가 크지만, 국내에선 중요한 정책결정 과정의 내막이 공개되거나 해명이 필요했던 사안에 대한 고백이 이뤄지는 경우가 드물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정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어떤 과정을 통해 결정되고 추진됐는지 확인할 수 없고, 노태우 전 대통령·박철언 전 장관 회고록도 자신이 북방정책의 공로자임을 밝히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한국 대통령들은 퇴임 후에도 정보는 많이 갖고 있는데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 폭로정치나 자서전에 집착한다. 카터 전 미국 대통령처럼 건강한 역할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권위주의적 정치문화에서 원인을 찾았다. 김 교수는 “전직 대통령 자서전은 집단적 작업으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대통령 비서관들이 퇴임 후에도 남아 계속 관계를 맺으며 그룹을 형성하고, 그들이 모셨던 주군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자서전 집필 작업에 집단적으로 착수한다. 논란 많은 사안을 자서전을 통해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대통령이 퇴임 후 곤욕을 치르는 현상은 단임 대통령제의 특징이지만, 후임 대통령 재임 중 자서전으로 정치를 재개하는 일은 없었다”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서전으로 인한 전·현직 정권 간 충돌은 제도적인 문제보다는 이 전 대통령 개인 특성의 결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인 회고록에 대한 비판적 독해도 강조했다. 고지훈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은 “한국에서 전직 대통령 자서전은 집단의 기록이라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학계에서는 정황증거, 공식문서를 통한 교차검증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정한다”고 밝혔다.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화자찬이거나 폭로뿐인 자서전이라도 자찬과 폭로의 맥락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세상 속으로]전직 대통령의 ‘회고록 정치’… “비밀의 기록” “후세에 대한 예의” “못다 한 이야기”구혜영·박은하 기자 koohy@kyunghyang.com 댓글.twitterfacebookband..폰트 크게하기폰트 작게하기프린트 복사하기.대통령의 필사(拂士)는 대통령의 삶과 정권의 공과를 전하는 최전선에 있다. 대통령을 지근 거리에서 보필하고 한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대통령의 회고록이나 자서전이 ‘당대 역사의 최후 진술’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필사들은 대통령의 진심까지 읽어야 한다. 역대 정권 필사들에게 ‘대통령 회고록’에 담긴 진심을 물었다.
■ “비밀의 기록”
노태우 대통령의 박철언(한반도복지통일재단 이사장·전 정무장관·74)
▲ YS에게 3000억 준 얘기넣을까 말까 분분했지만…
중요한 비사를 뺀다면 회고록을 낼 필요가 없죠
각 분야 리더들과 젊은이들이 바르게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회고록을 썼다. 2004년부터 1년 8개월 정도 걸렸다. 야당 총재에게 돈을 준 것이나, 월계수회를 조직해 불법선거운동을 한 내용까지 썼다. 20년 전 동일한 사실도 해석하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기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는 기록이 남겨져야 한다. 노대통령의 회고록을 낼 때 김영삼 총재에게 3000억원을 줬다는 얘기를 기록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쓰지 말자는 참모들이 많았다. 하지만 중요한 비사를 기록하지 않는다면 회고록을 낼 필요가 없다. 정치 현장에 있을 때나 현장을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출간하면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YS(박 전 장관은 한결같이 와이에스라고 호칭)가 대통령에 당선되서 나를 정치보복 대상 1호로 지목해 투옥시키려 했다. 참모들은 내가 과거에 YS에게 여러 차례 걸쳐 40여억원의 미화를 전달한 기록을 폭로하라고 얘기했고, 나도 많은 유혹을 받았지만 결국 구속됐다. 감옥에 있을 때와 출옥 이후 어떤 말도 안 했다. 회고록엔 많은 현역들이 등장한다. 체면과 위신, 명예와 관련있는 문제를 그대로 증언하려다 보니 미안했다. 전두환 대통령만 해도 ‘럭키세븐’(대통령 임기 개헌 관련 발언) 부분을 섭섭해 했다. 노태우 대통령도‘6·29선언은 전 대통령이 하라고 했다’는 부분을 서운해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서전은 좀 빠른 감이 있다. 우리나라는 분단국이고 갈등이 많은 사회라 좀더 시간이 흐른 다음에 냈어야 했다. 남북관계 문제는 잘못된 내용을 담았다. 남북문제는 대통령의 기록이 분단을 극복하고 남북이 평화통일을 이루는 과정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북한이 돈을 요구했지만 안 줬다는 등의 내용은 자랑과 과시밖에 안 된다. 그런 내용을 대통령 회고록에 담는다는 것은 너무나 신중치 못한 일이다. 대통령 참모들이 잘못 보좌해서 안타깝다. 자원외교도 나중에 판단할 문제다. (스스로) 아주 잘했다고 얘기하면 공감을 받기 어렵다.
■ “후세에 대한 예의”
김대중 대통령의 최경환(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전남대 객원교수·55)
▲ 역사의 정제된 평가 위해 사후 1년 뒤 내라고 지시
공과에 대한 성찰 담느라 최종 출간까지 7년 걸려
<김대중 자서전>은 김대중이라는 인물을 통해 바라본 한국 현대사였다. 숱한 회고록, 어린이용 자서전뿐 아니라 민주주의론이나 동아시아 평화구상 등을 다룬 학술논문도 나올 정도다. <김대중 자서전>이 의미있게 평가받는 이유는 진솔한 휴먼스토리이자 공과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원래 김 대통령은 정책과 역사를 쓰려고 했지만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 <마이라이프>를 6개월 동안 읽고 생각을 바꿨다. 또 하나는 공과에 대한 허물이나 회한을 적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자서전 최종 출간까지 7년 걸렸다. 컨셉을 잡는 시간만 2~3년이 필요했다. 그 뒤 1년 넘게 대통령이 40여차례 직접 구술한 것을 시작으로 학자, 정책 당국자, 정치인들과 질의응답하며 내용을 준비했고 각 분야 정책 담당자들과 수시로 만나 토론했다. 실제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김 대통령 자서전을 정책 분야별로 10권 정도 만들자고 제안했다.
특히 민주화 운동과정의 회한이 담긴 생애 전반기 부분을 집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김 대통령 스스로 처음 털어놓는 얘기도 있었다. 참모들을 불러 “내 출생에 대해 구술할테니 받아 적어라. 내가 어머니 명예 때문에 말하지 않았는데 이제 인생 정리를 위해 남기겠다”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책 분야에선 비정규직 문제, 중소기업 육성, 농촌 경제 등 당시 문제가 됐던 사안을 두고 “나도 대안을 갖고 있었지만 5년은 짧았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개인적으론 1987년 야권후보 단일화 실패 이후 “나라도 양보했었어야 했다”는 말과 대북송금 특검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빠진 내용도 많다. 신앙생활과 사형제 폐지, 인권, 건강보험제도, 기초생활보장제도 등을 다 담지 못했다.
김 대통령은 퇴임 이후 곧바로 자서전을 내지 않았다. 대통령의 기록은 역사의 정제된 평가가 필요하다며 사후 1년 뒤 출간하라고 했다. 주변 사람들에겐 “공적인 활동을 했으면 기록으로 남겨라. 후세에 대한 예의다”라고 했다. 최고 지도자의 자서전은 시대를 대표하는 역사의 교훈이라는 의미를 크게 생각했다.
■ “못다 한 이야기”
노무현 대통령의 윤태영(전 청와대 대변인·55)
▲ 통합 위해 살아온 역정 알려 시민들이 깨어나길 바라
사후 자서전 3권 나왔지만 모두 미완성 아쉬움 남아
노 대통령 사후 출간된 자서전만 3권이다. <운명이다>, <진보의 미래>, <성공과 좌절>. 3권 모두 못다한 이야기를 전하려고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원래 회고록은 한참 후에 내려고 했다. 정치에 대한 책을 쓰고 싶어했다. 그런데 갑자기 서거했다. 제일 급한 게 대통령의 생애를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거였다. 그래서 처음엔 전기로 쓰려고 했지만 유시민 전 장관이 갖고 있는 노 대통령 구술 자료와 재임기간 자료를 모아 <운명이다>라는 책을 출간하게 됐다. 그러나 미완성이라 제대로 된 회고록이 없어 아쉽다. 노무현정부의 5년을 리뷰하면서 정책학 개론까지 염두에 두고 되짚어보려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노 대통령이 일관되게 강조한 것은 국민통합이었다. 그의 삶은 통합을 위해 살아온 역정이다. 자서전을 내면서도 1990년 3당 합당 반대 등 노 대통령의 국민통합 의지가 알려지길 바랬다. 깨어있는 시민을 만드는 데 자서전이 일조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리했다.
자서전 출간을 위해 기록을 뒤지다 놀란 적이 많다. 정치에 대한 생각과 구상 등 노 대통령 고민의 깊이에 놀랐다. 한국정치가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는 노심초사가 깊었다. 전국정당, 대연정, 열린우리당 해산, 임기 후반 당과의 갈등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최근까지도 노 대통령의 말은 정쟁 대상이었다.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 분위기가 될거라 생각했는데 지난 대선까지 논란이 되지 않았나.
그를 차분히 돌아볼 수 있는 환경이 되면 대연정만 해도 정쟁 소재가 아니라 고민하고 준비한 일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비사가 많지 않은 대통령이다. 투명하고 공개하는 편이라 생각을 머리 속에 가둬두지 않는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 기록물을 사람들이 연구하고 후세 정치인들이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적인 자리에도 나를 배석시키면서 일거수일투족 남겨두려고 했다. 기록으로 남는 게 역사라는 것이 노 대통령의 철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