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길을 가는 자여 행복하여라 ●지은이_양문규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5. 3. 15
●전체페이지_280쪽 ●ISBN 979-11-91914-77-1 03810/신국판(152×223)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25,000원
길 따라 사람 따라 여여생생!
양문규 시인의 여행에세이 『길을 가는 자여 행복하여라』가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 여행에세이는 저자가 문우들과의 문학기행 그리고 지인과 가족과 국내외를 여행하며 체득한 삶의 모습과 지역의 역사와 문화와 자연 풍광 등이 오롯이 담겨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마음도 찾을 수 없다(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금강경』)고 하는 것처럼 저자는 ‘지금, 여기’ 삶을 체득하는 생생한 걸음으로 길을 나선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슴 아픈 사연 하나쯤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술좌석 중간중간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이야기와 침묵 속으로 그가 살아온 질곡의 역사가 얼비쳤습니다. 그가 겪은 고초는 뒤울안 급하게 흘러가는 도랑물처럼 콸콸 가슴을 후려쳤습니다.
―「작은 침묵을 위하여 떠나는 또 다른 침묵」 중에서
어느 지역을 갈 때 언제 만나도 반가운 사람이 그곳에 있다면 여행의 기쁨은 배가 된다. 특히 같은 문인이라면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성님도, 강화도 들어왔으면 바로 연락주시야지.”(「말랑말랑한 시를 찾아서」) 하는 것처럼 그리운 사람들. “그는 여기서도 ‘오토바이 시인’으로 통했습니다. 마을 회관 앞에 주차하고 돌담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니 주인은 출타 중이고, 개 세 마리가 반갑게 맞아주”(「얼씨구, 지화자, 좋다」)는데 가는 곳마다 그리운 이름을 호명하고 그들과의 추억과 삶의 에피소드가 잔잔하고도 운치 있게 그려진다.
우리는 단둥역에서부터 북한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압록강까지 걸어갔습니다. 단둥은 심양의 서탑가에서 느꼈던 조선족 거리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착잡하기만 했는데요. 여기까지 오는데 에둘러 올 수밖에 없는 조국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고 슬펐기 때문입니다.
압록강 주변을 머무는 동안 내내 기분이 유쾌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들내미 군 입대 영장이 나왔다는 소식을 단둥에 도착하기 전 열차 안에서 카톡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절망(絶望) 아닌 또 다른 절망(切望)을 찾아서」 중에서
전국에 물 폭탄이 예고된 이른 새벽 집을 나섰습니다. 큰비 만나지 않고 예정된 시간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헝가리행은 딸내미와 사위 만나는 데 큰 뜻이 있지만 헝가리를 비롯 크로아티아와 이탈리아 여행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입니다. 비행기 탑승 후 12시간 10여 분 끝에 부다페스트에 도착했습니다. 딸내미 만난다는 설렘 때문인지 아주 긴 비행시간인데도 지루하거나 피곤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친정아버지 비행기 타다」 중에서
저자의 가족 사랑이 어김없이 발현되는데 부모님과 자식에 대한 애정은 뭉클하다. “어제도 오늘같이 오늘도 내일 같이/수만 리 장천 푸르고 푸르게” 언제나 큰 나무처럼 자식을 사랑“(「천황사 전나무」)하는 아버지와 외출하거나 외유할 때 “어디를 가냐, 자고 오냐?” 꼭 묻는 ‘엄니’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엄니, 공주 가면 공주가 있을까요?/싱겁게 물었더니만 엄니는 말 같지 않다는 듯/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공주를 찾냐/한마디 하시는데요/그게 아니고요, 공주에 가면/공주가 있을 것도 같아서 물어본 거요/야야, 공주는 집에도 있는데/말라고 없는 공주를 간다고 그라냐”(「공주에 가면」)
“북한이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착잡하기만” 한데 “조국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고” 거기다가 “아들내미 군 입대 영장이 나왔다는 소식”은 여행 일정을 더없이 무거워지게 한다.
또 시집을 가서 헝가리로 날아간 “딸내미 부부와 2박 3일, 이탈리아는 식구와 7박 8일로 국내 여행사를 통해 들어오는 여행팀과 로마에서 합류하는 것으로” 한 일정은 기온 최고 43도까지 오르는 강행군이었지만 그래도 “이탈리아까지 여행하는 행운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사위 회사에서 헝가리행 왕복 항공료를 지원해 경제적 부담을 덜”기까지 했으니 친정아버지 비행기 탈 만하다고 한다.
대전은 발 딛는 곳마다 시이고 시비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지난 2016년 작고한 임강빈 시인의 시비도 올해 보문산 사정공원 내 세워진다고 들었습니다. 임강빈 시인의 시비가 세워지면 다시 대전의 시비를 돌아볼 예정입니다. 그때는 오늘같이 주마간산 격으로 시비를 찾는 것이 아닌 고등학교 때 문학을 같이했던 지인들과 사나흘 시를 나누고 소주도 나누면서 제대로 된 문학기행을 할 것입니다.
―「불경한 봄날 시비(詩碑) 찾아 한 바퀴」 중에서
코로나19의 시절, 뜻하지 않게 홀로 걷거나 드라이브 여행을 하기도 하는데 가는 곳마다 문이 닫히거나 거리 두기로 인한 스산한 풍경을 만난다. 하루하루가 답답하고 불편함과 아울러 삶에 지치기도 한 시절이다. 자유롭게 멀리 나서지도 못하고 지척의 시비를 돌아보기도 하는데 붉게 타는 “저 노을 속으로 코로나19가 영영 사라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지럽고 아픈 세상 얼른 걷히고 ‘꽃도 웃고 사람도 웃는 진정한 봄날’을 간절하게 소망”하며 터벅터벅 산방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서글프기도 하다.
숙소가 설산 아래 있어서 그런지 아침이 상쾌했습니다. 이른 아침 호텔 뒤뜰 작은 꽃에게 “안녕, 엄청 이쁘구나” 인사를 건네면서 ‘여기가 어디지? 오늘 가는 곳을 넌 알고 있니?’ 물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에탈수도원으로 갔습니다. 거기에서도 작은 꽃들을 많이 만났는데요. ··· 이번 여행지 중 마음에 두지 않았던 곳이었는데도 마을을 돌아보면서 고향 같았습니다. 골목을 거닐면서 꽃과 함께 잘 놀았습니다.
―「길을 가는 자여 행복하여라」 중에서
여행은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삶을 성찰하는 순례의 길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순간 돌 속에 내가 박혀 있는 것처럼 갑갑했습니다. 일행을 찾기 위해 허겁지겁 길을 헤쳐 나갔습니다. 그러나 길이 바위와 바위틈이라 좁은 데다 워낙 사람이 많아 발걸음을 빨리 옮길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일행을 잃어버리고 석림 속에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구름이 흐르는 산의 남쪽」) 길을 잃거나 사람까지 잃어버리는 낭패를 겪기도 하고 “마음에 두지 않았던 곳이었는데도 마을을 돌아보면서 고향”을 느끼기도 한다.
“한때 탁발승을 꿈꿨”다는 저자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양식으로 길을 가고자” 한다. 그것이 “모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참삶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마니차를 돌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데 내 몸속에서 마치 옴마니 반메옴, 달이 든다, 달이 구르는 것처럼” 여행의 모든 “길이 지혜의 바다로 나아가는 공부가 되었는지 스스로 묻고 답”하며 “분명한 것은 여행을 통해 모든 걸 내려놓아야 충만한 삶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다시 배울 수 있었”(「지혜의 바다로 가는 자여」)다고 한다. 가는 곳마다 신선하고 따듯한 시선을 품는 이 여행에세이는 음식, 문화, 자연, 삶의 풍경 등을 진솔하게 읽어내고 있어서 그야말로 저자가 즐겨 말하는 ”여여생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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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작가의 말 · 04
제1부
생을 다시 얻는 봄날 · 11
작은 침묵을 위하여 떠나는 또 다른 침묵 · 21
가슴으로 듣는 새벽 종소리 · 29
얼씨구, 지화자, 좋다 · 37
말랑말랑한 시를 찾아서 · 47
풀섬에는 시인의 집이 있다 · 56
절망(絶望) 아닌 또 다른 절망(切望)을 찾아서 · 68
망종(芒種)을 하루 앞두고 · 84
과거로의 여행 · 95
지혜의 바다로 가는 자여 · 102
제2부
평화의 나라, 베트남 · 127
구름이 흐르는 산의 남쪽 · 143
불경한 봄날 시비(詩碑) 찾아 한 바퀴 · 166
조치원 아홉거리 길목 따라서 · 181
빛을 찾아가는 길 · 192
길을 가는 자여 행복하여라 · 205
여행을 하면서 여행을 반문하다 · 228
공주에 가면 · 236
친정아버지 비행기 타다 · 246
천황사 전나무 · 273
■ 작가의 말
어찌하다 보니 이순을 훌쩍 지나고 있습니다. 길을 가다 보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도 있고, 진흙탕 속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더러 벌 나비가 붕붕 나는 꽃길도 만날 수 있었으니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 여깁니다.
여기 글은 2010년부터 2023년까지 문우들과의 문학기행 그리고 지인과 가족과의 국내외 여행 이야기입니다.
여행 원고를 정리하면서 세월이 유수 같다는 말을 새삼 깨닫습니다. 천태산 여여산방에서부터 시작된 발걸음은 읍내 여여글방과 삼봉산 여여산방까지 십여 년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여행을 함께했던 몇몇 지인은 글 둥지를 떠났습니다. 또 몇몇은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한평생 짓던 인삼 농사를 접었고,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리던 엄니는 거동이 불편해 지난해 요양원에 입소하였습니다. 그리고 딸내미는 시집을 가고, 아들내미도 결혼을 합니다. 어찌 그뿐이겠는지요.
여행하면서 “아는 자가 좋아하는 자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자가 즐기는 자보다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논어』, 「옹야」)는 걸 절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길이 있으니 길을 가는 것과 같이 여행하면서 무엇을 배우고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행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2025년 새해 아침, 천태산 은행나무를 찾았습니다. 한때 천태산 은행나무에 기대어 살다 죽으면 여한이 없을 거라 여긴 적이 있습니다. 천태산 은행나무는 여전히 생의 기쁨이며 희망이고 안식입니다. 천태산 은행나무처럼 하루하루 ‘생을 다시 찾는 여행’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마음도 찾을 수 없다(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금강경』)지만 ‘지금, 여기’ 진지한 삶을 체득하는 생생한 마음으로 다시 길을 나섭니다.
길을 가는 자여 행복하여라, 메아리가 들려 옵니다.
2025년 정월 여여산방에서
양문규
■ 표4(약평)
빗방울이 간간 비치기는 했지만 멀리 바다 위로 붉은 기운이 가득했습니다. 1시간여 바닷가 주변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숲을 만났는데요. 바다로 가기 전 이미 이 숲을 지났는데도 숲은 보지 못하고 바다만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마을과 숲 사이를 두고 세워진 입간판을 보고서야 어제 저녁 식사 전 ‘물건리 방조어부림’ 산책 여정이 잡혀 있던 곳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닷물에 절을 대로 절은 방조림”을 이루고 있는 “느티나무 푸조나무 이팝나무 산딸나무 때죽나무 모감주나무 광대싸리 보리수 두릅나무 인동초 댕댕이덩굴 배풍등과 온갖 꽃과 풀의 길”을 걸으면서 “나무는 나무대로/덩굴은 덩굴대로/꽃은 꽃대로/풀은 풀대로” “서로서로 손을 잡고 어우렁더우렁 어깨를 걸고/모진 바람과 해일을 막아/물고기 떼까지 불러들”이는 “세상 가장 큰 숲”을 걸으니 얼마나 행복했겠는지요.
여행을 하면서 여행에 대한 반문은 아마도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 이후부터이지 싶습니다.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하는 것, 떠나고 싶을 때 떠나지 못하는 시절은 얼마나 불행한가요. 그것은 만나고 싶을 때 만나지 못하는 슬픔과도 같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다시 여행을 생각합니다._본문 중에서
■ 양문규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1989년 『한국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벙어리 연가』,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 『집으로 가는 길』, 『식량주의자』, 『여여하였다』. 산문집 『너무도 큰 당신』, 『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멋대로 생생』. 논저 『백석 시의 창작방법 연구』. 평론집 『풍요로운 언어의 내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