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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05. 묵상글 (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 순교적 삶. 등 )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 아직 / 05:05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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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05.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2025.07.05 05:00
- 환난이 인내가 되도록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김대건 신부님의 축일에 전례는 독서로 로마서를 읽는데
김대건 신부님은 이 말씀대로 사신 분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낸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 모두에게 그런가?
사실 인내가 생기기 전에 환난으로 무너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내력이 생기는 것은 환난이 닥쳤을 때 그 환난을 견디고 버텨야 하고,
견디고 버티는 그만큼 인내력이 생기는 것인데
환난을 감수하고 감당하려는 자발적인 마음이 없을 때
오래 견디거나 버티지 못하고 인내가 생기기 전에 금세 무너지곤 하지요.
그런데 환난을 감수하고 감당하려는 자발적인 마음은 어떻게 생깁니까?
사랑 이외에는 없습니다.
우리의 실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지 않은 사람은
환난이 닥칠 때 쉽게 무너지고 잘 일어나지 못합니다.
반대로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은 고통을 잘 견딥니다.
사랑을 많이 받아 자존감이 높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닥친 환난이나 닥칠 환난에 굴하지 않고 자기를 지켜내고,
그러는 과정에서 인내심과 함께 인내력도 생겨나고,
단련을 통해서 사람이 단단해지며 어려움 중에도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어저께 저는 저의 고향 선배 신부님의 서품 금 경축에 다녀왔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을 주보로 모셨기에 축일을 기해 금 경축을 한 것인데
신부님은 교구 사제로서 일반적인 본당 사목도 하셨지만
거기에 안주하시지 않고 파푸아뉴기니로 선교도 다녀오셨습니다.
그 바람에 선교지에서 말라리아를 앓게 되어 청력을 잃게 되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본당 사목 중 사제관에 어르신을 모시고 살던 것이 계기가 되어
아홉 개의 노인 복지시설을 거느리는 재단을 세우셨지요.
그러는 가운데 신부님이 겪은 고난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이 많았는데
이런 모든 어려움을 다 이겨내게 한 열정과 희망이
다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Amor가 아니라 Passio입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고 여러분도 잘 아시듯
Passio는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Passio Christi(그리스도의 수난)에서 잘 드러나는,
고통과 환난을 무릅쓰는 사랑이요 고통과 환난을 감수하고 감당하는 열정입니다.
오늘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로 축일을 지내는 김대건 신부님이
26년 짧은 생애 동안 이 Passio Christi를 충실히 산 분이시고,
저의 선배 신부님은 김대건 신부님의 모범을 충실히 따른 분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후예인 저도 저의 선배 신부님의 자극을 받아
김대건 신부님의 삶을 살기로 다시 한번 도전하는 오늘이고,
저도 저의 선배 신부님처럼 후배들에게 자극이 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희망도 하고 결심도 하는 오늘 저입니다.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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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05.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순교적 삶
“순교영성의 생활화”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10)
사랑의 순교입니다. 주님 사랑의 지극한 표현이 순교입니다. 예전 2세기 순교영성의 시대에는 많은 신자들이 주님께 대한 열렬한 사랑 때문에 순교를 갈망했습니다.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입니다. 가톨릭교회는, 특히 한국교회는 순교자들의 교회입니다.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는 순교성지요 전국토가 성지입니다.
지난 엊그제 7/2일에는 어느 수도회 장상의 방문이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배려로 3개월 동안 국내성지순례차 첫 번째 들린 수도원 방문이었고 함께 저녁미사를 봉헌했고 저녁식사도 했습니다. 장상의 순교성지 여정에 주님의 축복 가득하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참으로 관광순례여행에 국내성지순례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을 것입니다. 관광의 허전함을 보완해 주는 성지순례 영적체험이기 때문입니다.
가톨릭교회역사상 18-19세기 1세기에 걸쳐 만여명의 순교자들을 낸 교회는 한국뿐이 없습니다. 죽은자들이 살린자들을 살린다는 말이 있는데 이런 무수한 순교자들, 순국자들이 나라를 살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애국가 가사의 실현임을 믿습니다. 그리하여 오늘은 만세칠창에 하나 “한국순교자들 만세!” 더하여 만세팔창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만25세! 꽃다운 나이에 순교한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를 봉헌합니다. 오늘 시간되면 부를때 마다 감동을 선사하는 최민순 작사, 이문근 작곡의 성가 287장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 노래' 를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제 고향집은 성 김대건의 생가터 솔뫼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입니다. 한국성직자들뿐 아니라 저는 감히 ‘대한민국-한반도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라 칭하고 싶습니다.
비상한 순교만 있는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순교도 있습니다. 순교영성의 일상화가 마침내 비상한 순교도 맞이할 수 있게 합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알게 모르게 계속되는 순교의 역사입니다. 오늘 역대기 하권의 제1독서는 요아스의 변절로 인한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가브리엘 사제의 순교를 보여줍니다. 그가 순교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남기고 간 경고가 오늘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 될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
사필귀정이요 인과응보입니다. 참으로 자나깨나 일편단심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순교영성의 일상화가, 주님 평화의 전사로서의 삶이 참 절실한 작금의 현실입니다. 총칼만 안들었지 정말 영적전쟁치열한 삶의 전쟁터 현실입니다. 오늘 복음의 세원리가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조심하여라, 걱정하지 마라, 인내하여라 셋입니다.
물론 오늘 복음은 1-2세기 실제적 순교현실에 대한 기술입니다. 사람들을 조심하라 합니다. 차별과 분별은 다릅니다. 약육강식, 각자도생의 이리떼 세상같기도 한 현실에서 비둘기 같이 순결하되 뱀같이 슬기로워야 합니다. 분별의 지혜를 발휘하여 무지로부터, 악마로 부터 오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이어 ‘걱정하지 마라’입니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불안하기로 하면 끝이 없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고백처럼, 착한 목자 주님께서 늘 함께 하시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의 은총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런 걱정 역시 믿음 부족의 반영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다음으로 인내입니다. 인내의 믿음, 인내의 사랑, 희망의 인내, 인내의 겸손, 인내의 용기, 인내의 구원, 늘 거기 그 자리 산같은 인내의 정주입니다. 노승이자 고승에 속하는 노수도승들의 특징은 한결같이 인내의 대가, 겸손의 대가라는 것입니다. 순교영성의 일상화를 위한 결정적 요소가 바로 인내입니다. 오늘 복음의 결론이 강조하는 바, 끝까지 견디는, 버티는 인내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함께 사는 공동체생활 역시 순교영성의 일상화에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부부는 '살아 있는 순교자'라 하는데, 어느 형태의 공동생활이든 역시 영적훈련, 인내의 훈련에는 제일입니다. 그리하여 성 베네딕도는 공동생활중 형제들의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라’합니다. 건드리지 말고 그냥 놔 두라합니다. 이는 방관이나 방치가 아니라 지극한 사랑의 인내로 참아 견디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전 수도공동생활이 인내의 수련, 인내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 베네딕도의 다음 아름다운 예고 말씀이 위로와 평화를 줍니다.
“수도생활과 신앙에 나아감에 따라 마음이 넓어지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의 감미로써 하느님의 계명들을 달리게 될 것이다.”
고진감래요 인내의 열매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이 순교영성의 일상화에 참 좋은 도움이 됩니다.
“주의 가르침에서 결코 떠나지 말고, 죽을 때까지 수도원에서 그분의 교훈을 항구히 지킴으로써, 그리스도의 수난에 인내로써 한몫끼어 그분 나라의 동거인이 되도록 하자. 아멘.”
그대로 순교자들의 살아 있는 후예가 바로 이런 수도자들이요, 삶의 현장에서 어려움을 잘 견디어 내고 있는 가톨릭 교회신자들입니다. 잘 들여다 보면 가톨릭 신자들 영혼 깊이에는 면면히 계승되는 순교영성의 DNA가 있습니다. 명실공히 명품신자, 명품인생을 만드는데 결정적 요소가 사랑과 섬김으로 요약되는 순교영성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순교적 삶에 참 좋은 도움이 됩니다. 끝으로 늘 나눠도 늘 새로운 제 좌우명 기도를 나눕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5,12ㄱ).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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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05.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오늘 우리는 우리나라의 첫 사제요, 한국 사제들의 수호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자 신심미사를 봉헌합니다.
김 대건 안드레아 성인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귀중한 선물을 주십니다. 그 어떤 어려움에서도,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선물입니다. 그것은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내 이름 때문에”(마태 10,22) 발생합니다. 곧 성인께서는 살아있을 이유도, 핍박을 받고 죽을 이유도, 오직 “예수님 때문”이었음을 말해줍니다.
성인께서는 하느님을 “임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성인께서는 ‘임자’를, 오로지 한 분 주인님으로 섬기고, 사랑하셨습니다. 이 ‘임자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 모진 핍박과 수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사랑으로 기뻐하고 감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으로써 그 사랑을 증거 하셨습니다.
이러한 그분의 사랑은 <옥중편지>에서 이렇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관장께서 내가 천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형벌을 당하게 해주시니,
관장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천주님이 이런 은공을 갚고자
당신을 더 높은 관직에 올려주기를 바랍니다.”
성인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고문을 달게 그리고 기쁘게 받았을 뿐만 아니라 당신을 고문하는 관장에게 감사를 드렸으며, 나아가 오히려 그를 더 높은 관직에 올려달라고까지 기도하셨습니다.
이 유쾌함, 이 놀라운 사랑!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오히려 자신을 못 박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셨듯이, 스테파노가 죽어가면서도 자신에게 돌팔매질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셨듯이, 성인께서는 매질하는 관장에게 오히려 감사를 드렸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더 높은 관직에 올려 지기를 희망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참으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5).
이처럼, “순교”란 단지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하며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면서, 마침내 자신이 믿고 사랑하는 분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며 기뻐하는 일!
이것이야말로 그분의 죽음이 순교임을 드러내는 진정한 표시가 됩니다. 그러니, 우리도 힘들고 어려운 일에도, 먼저 감사하고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품은 “임자에 대한 사랑”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성인과 함께 <제2독서>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로마 5,2-3).
그것은 고통 중에도 오로지 하느님께 희망을 두며, 우리의 희망이 아니라 하느님의 희망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도록 우리 자신을 허용할 때 가능해지는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는 비록 목숨 바쳐 순교할 기회는 없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생각과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 그것이 바로 순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순교”는 믿고 있는 ‘자신’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있는 분’을 증거 하는 일입니다. 곧 자신의 죽음으로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살아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2고린 4,11)
그렇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생명이 살아있음을 드러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내 이름 때문에~”(마태 10,22)
주님!
제 안에 새겨 두신 당신 이름을 기억하게 하소서.
당신 이름으로 부어 주신 사랑을 기억하게 하소서.
당신 이름에 희망을 두오니 당신 이름에서 구원을 주소서!
당신 이름 때문에, 돌팔매질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이름을 증거 하는 순교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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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05.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제가 사제로 서품받은 순번은 2059번입니다. 김남길 신부님은 2054번, 저보다 다섯 순번 앞선 번호입니다. 김영관 신부님은 2050번, 저보다 아홉 번 먼저 서품을 받았습니다. 신부님들은 저보다 먼저 달라스 성당에서 사목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본당에서 지내고 있는 윤충훈 신부님의 서품 순번은 6153번입니다. 저보다 4,093번 뒤의 후배 사제입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사제가 김대건 신부님의 뒤를 따라, 복음의 길 위에 서 왔다는 사실에 참으로 깊은 감동이 있습니다. 윤충훈 신부님의 세례명은 세례자 요한입니다. 회개의 길을 준비했던 세례자 요한처럼, 윤 신부님도 본당 공동체 안에서 신자들의 마음을 주님께로 이끄는 겸손한 길잡이가 되고자 늘 성실히 사목하고 계십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 사제직의 첫 길을 열어주셨다면, 윤 신부님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는 아름다운 열매이자, 후배 사제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봅니다. 1번, 과연 누구일까요? 맞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입니다. 한국인으로 처음으로 사제품을 받은 사제, 한국 교회 사제직의 시작이 된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지만,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김대건 신부님은 그 밀알이었습니다. 그분은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에 땅에 떨어져 썩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너무도 짧고 안타까운 인생입니다. 1845년에 사제가 되셨고, 1년 후인 1846년에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그분은 하느님 나라의 풍성한 열매를 맺은 복된 존재입니다. 지금 한국에는 7,100명 넘는 사제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30배, 60배, 100배가 아니라 7,100배의 열매를 맺은 셈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가 바로 오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윤충훈 신부님이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가 없었다면, 오늘 우리 본당의 이 사제단도 없었을 것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성지가 된 곳이 있습니다. 먼저, 충청남도 당진에 있는 ‘솔뫼 성지’가 있습니다. 솔뫼는 김대건 신부님의 고향입니다. 신부님이 태어나신 곳입니다. ‘솔뫼’라는 말은 ‘소나무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아름다운 성지로 꾸며져 있어서 많은 분이 순례를 옵니다. 2014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이곳을 방문하셔서 아시아 청년들과 함께 미사 드렸습니다. 참 뜻깊은 곳입니다. 다음은 멀리 중국 ‘마카오’입니다. 신부님은 신학생 시절, 마카오의 성 바오로 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낯선 땅에서 공부하며 사제가 되기 위해 준비를 하였습니다. 지금은 그 신학교 건물이 유적지로 남아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첫 사제가 거쳐 간 곳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마카오에서 공부하다가 ‘상하이’로 옮겼습니다. 거기서는 진산 지역의 라자르 신학교에서 공부하였고, 마침내 1845년 8월 17일, 프랑스 선교사인 페레올 주교님께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 사제가 탄생한 순간입니다. 정말 감격스러운 역사입니다.
신부님은 조선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입국 길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주도 한경면 용수리, 지금의 용수 성지에 도착하셨습니다. 라파엘 호는 풍랑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곳이 바로 김대건 신부님께서 조선 땅에 처음 발을 디딘 곳입니다. 조선에 들어온 뒤에는 신자들을 만나서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전라북도 익산에 있는 ‘나바위 성지’입니다. 1845년 10월 24일, 첫 미사를 봉헌한 곳입니다. 그 감격의 미사가 지금까지도 신자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박해는 여전히 계속되었고, 결국 신부님은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1846년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스물다섯의 나이로 순교하였습니다. 지금 그곳에는 순교 기념성당과 전시관이 있어서, 많은 이들이 신부님의 희생을 기억하고 기도합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짧은 생애 안에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 교회를 위한 헌신, 영혼을 위한 순교적 열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분의 순교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열매로 우리 본당에도 사제들이 있습니다. 제가 있고, 윤충훈 신부님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아름다운 계보 안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도 좋은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열매 맺는 삶을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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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05.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해방(Emancipation)이란 무엇인가?
하느님의 숨
2025.07.04. 21:42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7월 4일 금요일 - 스물일곱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해방과 정의
오늘날 모든 종류의 자유와 해방이 필요합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리처드 로어는 자유와 해방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가르칩니다:
저는 오늘날 필요한 자유와 해방(liberation)을 설명하기 위해 "emancipation"(해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습니다. 해방(emancipation)은 우리에게 개인적인 자유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자유의 체제적인 차원에 주의를 기울이게 해 줍니다. 완전히 해방된 아주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우리는 대개 문화와 시대, 정치, 견해, 혹은 심지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미묘한 사회적 동의와 관련해서도 우리 자신의 무의식 속에 있는 더 작은 안전 체제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자기 발언, 자유 시장, 그리고 우리 자신을 지키고 방어할 자유와 같은 정치적인 자유와 경제적인 자유는 우리가 내면으로부터 얻는 만큼의 자유만을 선사해 줄 뿐입니다. 우리가 만일 사랑할 내면의 자유를 성취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역설적으로 체제들이 우리에게 약속해 주는 자유마저도 누리지 못하면서 그 외적인 체제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소위 매우 선택적이고 계급에 기반하며 종종 부정직하고 편견에 노출되어 있는 자유만을 자유로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우리의 자유 시장 체제에 대한 더 나은 대안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할 자유를 지니고 있나요? 만일 우리가 이런 주제를 꺼내게 된다면 우리는 위험한 사람들이며 미국의 정서에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라고 여겨질 가능성이 큽니다. 총기 소유 권리와 군비에 한정 없이 재정을 투자하는 상황이 우리 자신을 보호할 자유를 정말로 주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리고 이런 상황이 우리에게 우리 나라의 경제 자원의 대부분을 우리의 보호를 위해 사용할 권리와 자유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우리 사람들에게 음식이나 건강 관리, 혹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우리의 나라, 우리의 안전 체제, 우리 종교, 혹은 우리 인종에 둘 때,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됩니다. 더 광대한 "하느님의 왕국"에서의 시민권만이 우리가 "자유"라고 명명한 잘 숨겨져 있으면서도 합의된 특정 상자의 감금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사실상, 이런 것들은 근본적인 문화적 합의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것들을 우리가 감금된 상자라고 인식하기 힘들 뿐입니다.
이런 상자들은 좋은 것이고, 도움이 되며, 때로는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제가 할 일이기도 하고, 또 그리스도교 지혜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이 아니라,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 한 가족이라는 사실"(에페 2,19)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일입니다. 비록 우리가 실질적으로는 사회라는 더 작은 상자 안에서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가장 큰 상자 안에서 상자에서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창조적이면서도 동시에 어려움을 주는 긴장이긴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자유의 모든 차원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세상에 있지만 세상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이라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역사적 표현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이긴 하지만, 오늘날 우리 대부분은 세상의 체제 안에 살고 있고, 그 체제의 사람들이 되었으며 그 체제를 위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말입니다!
그러니 자유의 더 깊고 더 크고 더 놀라운 차원을 표현하기 위해 "해방"(emancip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합시다: 이 해방은 내면과 외면이 해방과 개인적, 경제적, 구조적, 영적 해방을 모두 포함하는 해방입니다. 명백하게도 이것이 우리가 온 삶을 바쳐 이루어내야 할 우리의 임무입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젊은 여성이었던 저는 확고한 무신론자였고, 30대에 와서는 불가지론자였는데.... 50대인 지금 저는 그리스도와 신성한 어머니신 하느님과의 사랑에 더더욱 빠지고 있는 저를 보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몇 년간 CAC의 매일 묵상을 읽어왔는데, 이 묵상 글들이 제 삶에 깊은 영향을 주었던 겁니다. 저에게 있어 매일 묵상의 가장 근본적인 측면 중 하나는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현실적이고 감지할 수 있고 사랑 가득한 진리로 해석해 준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것이 교회와 그리스도교 역사가 전해 주는 유해한 이야기들을 해독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믿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일종의 영적 해방을 찾은 겁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Em S.
References
Adapted from Richard Rohr, “Introduction,” ONEING 3, no. 1, Emancipation (2015): 11–12. Available in print and PDF download.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Sushil Nash, untitled (detail), 2020, photo, United Kingdom,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주먹은 억압과 불의에 맞서 저항과 연대, 그리고 일치를 위한 강력한 상징입니다.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을 위한 내면의 갈망은 기대치 않게 억압하는 자들을 위한 해방까지도 가져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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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영성 묵상글
침묵의 소리를 듣는 돈오점수의 삶~
하느님의 숨
2025.07.05. 04:49
[침묵]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꽉 차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침묵 안에는 어떤 소리, 혹은 의미가 가득 들어 있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사이먼과 가펑클(Simon and Garfunkel)이 불렀던 'Sound of Silence'(침묵의 소리)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People talking without speaking
People hearing without listening
....
No one dared
Disturb the sound of silence"
"소리 내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
귀 기울이지 않고 듣는 사람들
....
아무도 감히
침묵의 소리를 깨트릴 용기가 없었다네"
이런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가사인데, 이 가사를 통해 작사한 사람(폴 사이먼)이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이 가사에 좀 특별한 의미가 들어 있다고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하는 '말' 혹은 '언어'는 늘 겉으로 표현되어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 발설되지 않아도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를 기념하면서 예수님으로부터 혼란하고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차분히 성령의 침묵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권고를 듣습니다. 거기에 우리에게 용기가 되고 힘이 되는 말씀이 들어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이 말씀은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평소의 삶에서 의도치 않은 상황이나 예기치 않은 상황을 겪게 될 때 정성을 기울여 그 의미를 찾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일상 삶에서 많은 것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어떤 때는 마음이 혼란해지는 상황을 겪기도 합니다. 후회스러운 상황도 겪게 되고요.... 그러나 사실 우리가 겪는 이런 상황들 속에는 분명히 우리 삶에 필요한 어떤 의미나 우리 삶의 성장에 박차를 가해 주는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 상황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또 거기에 귀를 기울여 보면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게에 말씀해 주시는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삶과 믿음의 여정에서 이런 상황들을 겪게 될 때 누가 '나'를 평가하거나, 또 '내'가 '나' 자신에 대해 평가하는 것을 넘어서 그 의미를 되새기면서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이끌어가시는 방향을 찾고자 한다면 우리 삶은 분명히 성장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삶의 상황들은 다 우리로 하여금 배움의 길을 걷도록 초대해 주는 상황들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잘했든 잘못했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하고서 배우면 참 좋겠지만, 우리 삶의 경험에 의하면 우리는 잘못하고 나서야 참으로 삶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배움을 차곡차곡 마음에 쌓지 않는다면 우리 삶은 참으로 성장해갈 수 없을 것이고, 그 깨달음이란 그저 단순한 순간적인 자각 정도로 그치고 말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불교에서 말하는 돈오점수(頓悟漸修)가 의미하는 바이겠지요?! 깨달음 혹은 자각을 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 깨달은 바를 마음에 새기면서 그것을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려는 노력을 계속 기울이지 않는다면 진정한 깨달음, 혹은 깨달음의 완성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의 깨달음을 삶에 적용해 가는 가운데 실패를 거듭한다 하더라도 다시, 또다시 그 깨달은 바를 새기고 또 새기면서 실천에 옮기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우리 삶의 배움의 과정에 참으로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저는 제 경험을 통해 반복해서 비슷한 상황을 겪어가면서 이전에 했던 깨달음을 다시, 또다시 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실패를 거듭한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우리가 의도치 않은 상황 속에서 당신의 메시지를 보내 주신다는 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순교자들이 갑자기 어떤 신앙의 용기가 생겨서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순교의 은총을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시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평소에 다양한 상황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이끄심에 시선을 집중하고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 은총의 순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순간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존심을 내려놓는 겸손"이라고 봅니다. 실패를 반복하더라도 겸허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다시 초심자의 자세로 배워가고자 한다면 차츰차츰 우리는 나아지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나'의 그런 부족함에 단순히 실망만 하거나 좌절만 한다면 전진하는 삶이 아닌 퇴보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겠지요?!
일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영성의 발전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삼보 진진 이보 후퇴]의 과정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삶에는 엄연히 후퇴 혹은 퇴보의 과정도 있기 마련이기에 우리는 이 엄연한 우리의 부족함(이보 후퇴)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채워짐의 과정(삼보 전진)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겸허한 마음으로 이 후퇴의 과정 안에서 겸허하게 성령의 이끄심에 시선을 집중하고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특별히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을 기리며 돈오점수의 삶을 살아가기로 다시 마음을 먹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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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05.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님.
✝️ 교부들의 말씀 묵상✝️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마태 10,17)
그들이 너희를 채찍질 할 것이다
또다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싸움을 준비시키십니다. 그들은 부당한 대우와 남들이 가하는 벌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는 선을 위해 악을 참고 견딜 때 승리가 있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그들에게는 영원한 전리품이 마련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박해하는 이들과 맞서 싸우거나 저항하라고 가르치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시는 것은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당신이 함께 겪어 주시리라는 것뿐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 성인 / 영적 글 묵상✝️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20
버림과 그대로 둠은 어떻게 열매를 맺는가
여행 중에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르셨는데 마르타라는 여자가 집으로 모셔 들였다(루카 10,38).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우리의 몸은 물론이고 우리 몸의 모든 지체를 사랑해야 한다.
누구나 저마다 자신을 어느 정도 사랑합니다. 자기의 몸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과 다름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은 결국 죽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끄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그것만이 참된 사랑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하면서 어찌 하느님을 사랑하겠다고 하는가?”라고 엑카르트는 묻는다. 자기 사랑이 없는 곳에는 이웃 사랑도 있을 수 없다.
이웃을 돌볼 임무를 맡은 사람이 자신을 사랑한다면, 그는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는 자리를 찾게 될 것입니다.
자기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십시오.(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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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 이웃 종교(생태)의 날✝️
프란치스코와 토끼 그리고 물고기
그가 그레치오 마을에 머물러 있을 때의 일이었다. 아기 산토끼 한 마리가 덫에 걸려 잡혀 있는 것을 어느 형제가 산 채로 그에게 가져왔다. 지극히 복되신 분이 그것을 보자 가엾은 생각이 들어 말하였다. “아기 산토끼 형제여! 나에게로 오시오. 어쩌다가 이렇게 속아 걸려 잡혔습니까?" 그 아기 산토끼를 잡고 데려온 형제가 놓아 주자마자 성인에게로 도망하여, 누가 붙잡고 있지도 않았는데 마치 가장 안전한 장소인 양 그의 품에서 고요히 쉬었다. 아기 산토끼가 성인의 품에서 얼마간 쉬고 난 다음, 거룩한 사부님은 아기 산토끼를 다정스레 쓰다듬으며 자유를 찾아 숲속으로 돌아가도록 놓아 주었다. 그 토끼는 땅에 놓여졌지만 번번이 성인의 품으로 뛰어올랐고, 끝내 성인은 형제들을 시켜 그 토끼를 근처의 숲에 데리고 가도록 하였다.
그는 물고기에 대해서도 그와 똑같이 감미로운 사랑으로 마음이 움직였는데, 잡힌 물고기를 물에다 놓아 줄 기회가 있으면 물고기에게 다시 잡히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일러 보내곤 하였다. 한번은 리에티 호수의 나루터 가까이에서 그가 배에 타고 있었는데, 어부 한 사람이 흔히 팅카라고 불리는 큰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서 정성스럽게 그에게 바쳤다. 그는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받고 나서 그 물고기를 형제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그는 물고기를 배 밖의 물에 놓아 주며 신심 깊게 주님의 이름을 찬미하기 시작하였다. 잠시 그가 기도를 계속하는 동안에, 물고기는 배 근처에서 노닐며 놓아 준 곳에서 멀리 가지 않았다. 기도가 끝나고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이 물고기에게 떠나도 좋다는 허락을 주자 그제서야 사라졌다.
-첼라노가 전하는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중에서-
한번은 프란치스코가 그레치오에서 살아 있는 산토끼 한 마리를 선물 받았다. 그는 그 토끼를 땅에다 내려놓고 좋아하는 곳으로 가도록 풀어주었다. 그러나 그가 토끼를 부른 순간 그것은 펄쩍 뛰어 프란치스코의 팔에 안겼다. 프란치스코는 다정하게 안고 마치 어머니처럼 그것을 가련해 하는 것 같았다. 그 다음 그는 다시는 잡히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부드럽게 경고하고는 그것을 자유롭게 가게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그가 가라고 땅 위에다 내려놓기만 하면 토끼는 어떠한 신비한 방법으로 프란치스코가 자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랑을 감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품으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결국 프란치스코는 수사들에게 그 토끼를 숲 속 더 안전한 장소에 갖다 두게 했다.
같은 방법으로 트라시메노 호수에 있는 한 섬에서 잡힌 토끼는 모든 사람을 두려워했지만 프란치스코의 포옹에는 그곳에 제집인 것처럼 제몸을 맡겼다. 그레치오로 가는 도중에 피에딜루꼬 호수를 지나고 있을 때 한 어부가 물새 한 마리를 주었다. 프란치스코는 그것을 받아서는 양팔을 벌려 그 새를 놓아주려 했으나 그새는 떠나려 하지 않았다. 성인은 거기 서서 하늘을 우러러 보며 기도했다. 한참 후 자신으로 돌아와 새에게 날아가 하느님을 찬미하라고 한번 더 격려했다. 프란치스코가 그에게 축복을 주자 그 새는 약간 몸을 움직여 자기의 기쁨을 내보이고는 날아갔다.
같은 호수에서 프란치스코는 살아 있는 생선 한 마리를 얻었는데 보통 때처럼 형제로서 말을 건네고는 배 가까이 있는 물에 도로 넣어 주었다. 그 고기는 프란치스코의 애정에 매혹된 것처럼 그의 앞에서 이리저리 설치며 놀더니 프란치스코가 축복과 함께 허락하자, 그때서야 겨우 떠났다.
-보나벤뚜라에 의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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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05.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배우이자 시나리오 작가가 있습니다.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무명이었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도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은행 잔고는 단돈 15만 원 정도만 들어 있었습니다. 개 사료를 살 수도 없어서 키우던 개를 팔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경제적으로 너무나 힘든 상태, 암울한 상태였습니다. 여기에 아침에 타고 다니던 오래된 자가용이 고장나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영화 제작자가 와서 그가 직접 쓴 시나리오를 4억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사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사람의 상황이었다면, 이런 제안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또 친한 친구가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조언하시겠습니까?
너무 힘든 상황이니 당연히 4억 원에 시나리오를 팔 것이고, 또 친구도 그렇게 조언할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 시나리오는 사흘 만에 쓴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를 팔고 경제적 여유를 가진 다음, 다른 시나리오를 쓸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사람은 자기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연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팔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입니다. 그리고 그가 쓴 시나리오는 수조 원 규모의 프랜차이즈 영화가 된 ‘록키’였습니다.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세상의 기준을 굳이 내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우리 신앙인 역시 하느님 나라라는 꿈이 있습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먼저인데, 세상 기준이 먼저가 됩니다. 돈이 먼저라고, 세상의 지위가 먼저라고, 세상으로부터 인정이 먼저라고 말합니다. 자기의 꿈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무엇이 먼저일까요?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며 하신 ‘박해 예고와 위로’의 말씀입니다. 선교의 실제 상황에서 마주하게 될 어려움, 특히 박해에 대한 예언과 이에 대처하는 자세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마태 10,19)
이 구절은 많은 순교자들의 고백이 성령의 영감으로 나왔다는 믿음의 근거로 사용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역시 이 말씀에 힘을 얻어 순교하실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신앙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때 성령께 철저하게 의지하면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라는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언제나 초심자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매 순간을 새롭고 신선하게 인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한 경지를 맛본다. 그처럼 피어오르는 존재의 큰 기쁨은 초심으로부터 온다. 편견 없는 마음으로부터 온다(조셉 골드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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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05.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굿뉴스 게시판-우리 묵상 체험.
■ 순교 영성을 늘 기억하면서 /박윤식 250704. 21:08 ㅣNo.183231
7월 5일은 한국인 최초의 사제로서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성인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이다.
대부분의 축일은 일반적으로 돌아가신 날을 잡아 정하여지지만,
이 경우 신부님은 9월 16일에 돌아가셨지만 이 날을 축일로 지내는 건,
1925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포함하여 79위가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 위로 선포된 날이기에 그렇다.
신부님은 1821년 충남 솔뫼에서 태어났다.
그는 열여섯 살인 1836년 사제가 되고자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떠났다.
1844년 부제품을 받고 잠시 귀국하였다가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1845년 8월 17일 상하이의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신부님은 서해 해로의 입국 통로를 개척하려다가, 1846년 9월 16일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1984년 5월 6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한국 순교자 103위를 시성하면서
김 신부님을 정하상 바오로 신부님과 함께 한국의 대표 성인으로 삼았다.
우리는 김대건 신부님을 단순히 한국인의 첫 사제였기에 기억하는 것이 아닌,
박해 시대에 민중의 희망이었던 분이었기에.
신부님은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했다.
그렇게도 뿌듯하고 감동적인 출현이었지만, 사제 생활은 단 일 년으로 끝난다.
이렇게 스승이신 예수님을 버리지 않은 것은 제자로서의 사명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 그분께서 너희에게 일러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신부님께서는 순교하기 전 감옥에서도 사제요 지도자답게 신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용기를 잃지 말 것이며,
하느님을 섬기는 데 뒷걸음치지 말라고 강력하게 권고하셨다.
한국 교회가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성장한 것은 순교자들의 피와 전구가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박해가 없는 오늘날,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한 교회가 순교 정신을 잊어버리고
복음에 대한 충성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오늘 특별히 김대건 신부님이 지니셨던 전구를 청해야만 하겠다.
어쩜 당시만 해도 낙담하고 체념할 만도 하건만 신부님은 결코 희망을 잃지 않으셨다.
교회를 사랑하시는 만큼이나 하느님을 사랑하셨던 신부님은 자신의 나라가 새로운 길,
올바른 길을 찾아가기를 간절히 원하셨고, 언젠가는 주님의 섭리로 꼭 그리되리라고 분명히 믿으셨다.
우리는 신부님의 그 깊은 신앙과 순교 정신,
그리고 극한 상황에서도 주님의 섭리 속에 이루어질 역사에 대한 의연한 희망의 모범을 배워야 할게다.
그러할 때 낙담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순교의 씨를 뿌리고, 하느님의 영이 깃든 신앙인이 될 수 있으리라.
오늘날은 더 이상 믿음에 대한 박해도 없고 목숨을 건 순교를 강요받는 시대는 아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청빈 겸손 순명의 복음 정신대로 바르게 산다는 게, 어쩜 그 순교만큼이나 큰 부담이 된단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박해하는 이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당신의 이름 때문에 박해받는 이들에게 당신의 큰 사랑을 꼭 부어 주실 것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주님의 제자들은 환난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가질 게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을 결코 부끄럽게 하지 않을 것이리라.
그러기에 그 진리를 포기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순교자들의 순교 영성을 늘 기억하면서,
세상의 온갖 유혹을 꼭 이겨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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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자료는 추가 안내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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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05.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굿뉴스 게시판-우리 묵상 체험. 서하[nansimba].
https://bbs.catholic.or.kr/bbs/bbs_view.asp?num=8&id=2116401&menu=4770
위 “굿뉴스 게시판-우리 묵상 체험”리스트에서 “서하”를 찿아보십시오.
늦게 올라오거나 다음날 또는 게재 아니될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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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05.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김명겸 요한 신부님.
예수님 때문에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사람들에게 증언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은
평소에 우리가 원수 관계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고
나와 가깝게 지냈던 가족 관계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렇게 미워하는 사람이 나와 상관 없는 사람이 아니고
내가 믿었던 사람
내가 마음을 주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 미움은 더 큰 상처로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미움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미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다보니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의 미움을 받으셨는데
이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도
예수님께서 받으신 것처럼 똑같이 받게 됩니다.
사실 예수님을 따르면서 한 쪽의 모습만 닮아가지 않고
모든 부분의 모습을 닮아가게 됩니다.
즉 예수님 때문에 받는 미움의 상황에서
나 혼자 있지 않습니다.
상대방은 나만 미워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예수님도 그 상황에서 함께 미움을 받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부터 보게 됩니다.
잘못이 있다면 고쳐야 하겠지만
나는 열심히 산다고 살아온 삶에서 미움을 받는다면
나를 돌아보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것을 반성이나 겸손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반성이라는 이름으로 내 잘못을 찾으려고 할수록
없는 것을 찾을 수 없고
오히려 자신을 스스로 괴롭히면서
고통만 늘어갑니다.
미움의 상황에서 아파하는 나 자신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아파하시는 하느님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그 미움 속에 머물러 있을 때
우리는 그 미움을 감당할 힘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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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05.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함승수 세례자 요한 신부님
마태 10,17-22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우주 비행사가 우주 공간에서 오랜 시간동안 지내면 어떻게 될까요? 우주에는 중력이 없기에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도 수월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으니 아주 편안할 것 같습니다. 특히 허리나 무릎 관절이 아파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버거운 이들에게는 참으로 좋은 조건일 듯 하지요. 하지만 우주 공간에 오래 머무르면 오히려 건강상태가 안좋아진다고 합니다. 근육이나 골밀도는 내 몸을 짓누르는 압력을 견디면서 강화되는 것인데 그럴 일이 없으니 근육량은 점점 감소하여 약해지고, 골밀도는 낮아져 작은 충격에도 뼈가 쉽게 부러지는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힘들어도 제 힘으로 땅을 딛고 살아야 합니다. 나를 무겁게 내리누르는 세상의 거센 압력을 견뎌야 몸과 마음의 근력이 강해지고 뼈도 단단해지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쉽고 편한 것만 찾는 나태한 신앙, 주님을 통해 이익을 얻기만을 바라고 십자가를 외면하는 이기적인 신앙은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작은 풍랑에도 쉽게 휩쓸리고 무너지기에, 우리는 주님께서 맡겨주신 십자가의 무게를 기꺼이 견뎌내야 하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는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의 삶과 신앙을 기념하는 신심미사를 봉헌합니다. 김대건 신부님을 포함한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모질고 혹독한 박해의 시기를 잘 이겨내실 수 있었던 것은 쉽고 안락한 삶에 안주하게 만드는 나태함과 안일함의 유혹에 맞서 싸우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건네주시는 고통과 시련이라는 십자가를 힘들고 괴롭다고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과 순명의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끌어안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원의 여정이 힘들다고 중간에 멈춰서거나 딴 길로 새지 않고 끝까지 그 길을 걸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느님께서 그분들을 위해 마련해주신 ‘의로움의 화관’을 쓰고 참된 영광과 행복을 누리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모진 박해와 미움을 감내해야 함을 예고하시면서,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그런 점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고통과 시련을 어쩌다 한 두번 감당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구원이 보장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을 사는 동안 내내 잘 감내하다가 마지막 순간 유혹에 걸려 넘어져 최후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은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신앙의 길, 구원의 길의 ‘끝’에 있기에, 우리가 성실함과 항구함으로 그 끝에 다다르지 못하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해온 노력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마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힘들고 어려운 구원의 길을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하느님 나라’를 죽은 다음에야 가는 나라로 여기지 않고,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부터 하느님 나라의 복된 삶을 누리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우리에게 그럴 수 있는 힌트를 알려줍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고통과 시련을 피하고 싶어하지만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우리 안에 참고 견디는 마음인 ‘인내’가 생겨 내적으로 강해질 기회를 얻습니다. 한편 인내를 꾸준히, 최선을 다해 실천하는 ‘수양’을 계속하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지요. 그러면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이 아니라 하느님만이 나에게 참된 행복을 주실 수 있다는 희망을 지니고 지금을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께 희망을 지니고 살아온 것을 후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게 넘치도록 후한 보상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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