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소풍을 온 것 처럼 기분이 너무 좋구나^^ " 아버지의 칠순잔치를 열기 위해 온 가족이 고향에 모였던 날에 역으로 마중나온 어머니께서 모처럼 아들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면서 한 마디를 하셨습니다. 넉넉하지 않았던 집안살림을 꾸리느라 어머니는 아들이 초등학생이 되기 전부터 이불 만드는 공장에서 밤낮으로 재봉틀을 돌리며 일을 해야 했습니다. 가끔씩 배가 고픈 아들이 공장을 찾아가면 하얀 솜을 뒤집어 쓴 어머니가 종종걸음으로 뛰어 나와 바지 춤에서 돈을 꺼내 가만히 아들의 손에 쥐어주곤 했었습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여섯식구의 식사 준비와 네 개의 도시락을 싸면서도 한 마디의 불평도 없이 정작 당신은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헐레벌떡 뛰어 출근을 해서 종일 일을 하고는 밤늦게야 돌아오곤 했습니다.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소풍날에 있었던 일입니다. 소풍날이면 아무리 바빠도 김밥을 꼭 챙겨서 갖다 주시던 어머니가 점심 때가 됐는데도 오지를 않았습니다. 배고픔과 기다림에 지친 아들은 어머니를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에야 어머니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뛰어 왔습니다. 머리카락과 옷에 덕지 덕지 붙어있는 솜들이 마치 구름 속에서 나온 사람 같았습니다. 왜? 이제 왔냐며 화를 내고 뾰로통한 얼굴로 아들은 꾸역 꾸역 김밥을 입에다 주어 담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하면서 슬픈 표정을 지으며 들고 온 사이다를 계속 컵에 따라주었습니다. 화가 덜 풀린듯 아들이 뒤도 돌아 보지않고 앞만 보고 걸어 가는데 종종 걸음으로 따라온 어머니가 아들의 손을 살며시 잡았습니다. 그때 아들의 눈에 어머니의 손에 감겨진 피묻은 붕대가 보였습니다. 아들에게 가기 위해 급한 마음으로 재봉틀을 돌리다 그만 재봉틀 바늘에 손가락을 깊숙히 찔린 어머니는 피가 흘러 내리는 아픈 손가락을 제대로 치료도 못하고 대강 붕대만 감은 채 김밥을 싸들고 허겁지겁 아들에게 달려 왔던 것입니다. 붕대에 아직도 피가 남아있는 어머니의 손을 보자 아들은 그만 돌아서서 울고 말았습니다. 아들 때문에 머리와 옷에 묻은 솜털도 떼어내지 못한 채 붕대를 감고 달려온 고마우신 어머니를 원망만 하고 있었다는 것이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어머니의 붕대에 감겨진 손을 살며시 잡고 작은 목소리로 " 엄마! 미안해요~"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그날의 소풍은 결코 잊지 못할 추억으로 오래 남게 됩니다. 어머니의 손에 그때의 상처가 아직도 흉터로 남아있는 그 손을 잡고 함께 걷고 있는데 어머니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함께 걷는 것이 얼마만일까.... 초등하교 시절 때 있었던 소풍 이후 처음인 것 같았습니다. 고향집 뒷산에 떠있는 둥그런 달이 모자간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습니다. 다 아는 것 같아도 모르는 게 더 많고 잘 하는 것 같아도 더 잘하지 못하고 가까운 것 같아도 가끔씩 토라지면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들들의 못된 버릇입니다. 그리고 자식들 보다 주는 것이 훨씬 더 많고 큰 사랑은 어머니의 가이없는 모정입니다. 오늘따라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속이 안 좋다고 하며 자식들이 먹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만 보고 계셨던 어릴 적의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기억속에서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는 어머니가 생각이 날 때마다 가끔씩 어머니가 계시는 하늘을 향해 이런 고백을 합니다. " 어머니~ 너무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가장 커다란 기쁨과 행복이었습니다~ 언제나 고맙고 감사했었습니다~" 여러분 곁에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시다면 이시간 당장 전화기를 드십시오. 그리고 바쁘다는 핑게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어머님께 이 말씀을 꼭 전해 드리십시오. "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 이 말씀은 키워주신 우리들의 어머니께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코 후회가 없는 효도를 날마다 실천하심으로 행복과 기쁨만이 가득 넘치는 삶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