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 단상
저는 딱딱하게 굳은 누룽지를
물에 넣어서 끓여 먹기를 좋아합니다.
구수한 맛도 좋고 속도 편하기
때문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조리를 ‘누룽지탕’이라고 하던데
정감이 가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아내
말로는
집에서 누룽지를 일부러 만들려고 하면
굉장히 번거롭고 연료비도 많이 든다고
합니다.
이제는
옛날처럼 자연스럽게 누룽지가 나올 만한
밥솥,
가마솥,
냄비 등을 사용하여
밥을
하는 가정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하는 밥이 아니라면
모두가 ‘전기밥솥’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징징거리는 ‘눌은밥 주문’으로
아내는
몇
번 누룽지 만들기를 시도하고
또
그렇게 얻어 먹기도 하였는데
결국에는
상기한 이유 등으로
슈퍼나 마트에 상품으로 나와 있는
‘누룽지’를 사다가 끓여 먹게
되었습니다.
상점에서 ‘파는 누룽지’가 있다는 말을
일찌감치 들어보았고
또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것들을 본 적도 있지만
별반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제는
먼저
휘-
둘러보며
찾아보는 먹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만 하여도
판매
누룽지는 조악한 포장의 비닐봉지에
대충의 모양으로 담겨져서
가격표시 스티커가
붙어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엊그제
아내와 함께 시내 마트에 나가 보니까
그런
포장들은 거의 없어지고
아주
유려하고 번쩍이며
세련된 포장들의 누룽지가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금방 알 수 있는
식품계의 큰 기업들도
여러 곳이 ‘누룽지 사업’에 뛰어들어서
바야흐로
‘누룽지전국시대’가 펼쳐진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되는데-
제
입맛만 그런 줄 알았더니
예상외로
‘누룽지 팬’들이 많은 것을 반증하여
줍니다.
가격은
보통
3kg
정도에
17000원 선이어서
제가
놀라는 표정으로 입을 벌리자
아내는
집에서 만들어 먹으려면
그
보다 훨씬 더 비싸진다고 하여서
입을
꾹 닫았습니다.
(쯧-
그 번쩍이는 포장비용을 좀 줄이고
값을
내리면 좋을 텐데...)
그렇게 사온 누룽지로
부지런히 ‘누룽지탕’을 끓여 먹고 있는데
새우젓이나 잘 익은 김치 또는
물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아주 맛이
있습니다.
그리고
옛날
생각도 솔솔 피어오릅니다.
누룽지...
60년대 중 후반 때에는 밥을 하고 나면
거의
꼭
누룽지가 나왔습니다.
밥솥
밑에 눌어붙은 누룽지 위에
칙-하고 물을 부어서는 끓여 내면
숭늉이 되었고
더
밑쪽을 대나무 주걱으로 박-박-
긁어내면
‘눌은밥’이 나왔는데
곧
‘누룽지탕’의 원조입니다.
숭늉은
주로
식사를 마치신
어른들의 입가심용으로 많이
드셨고-
눌은밥은 곧잘
엄마와 아이들 차지가 되곤 하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짠-
하기도
합니다...)
저의
기억으로는
구수한 맛 이에 별다른 맛은 없었지만
당시에는
비록
아이들이라고는 하여도
밥상머리에서 ‘맛’을 따지는 일은
‘사치’로 여겨질 때라
그저
부지런히 후-후-
불어가면서
그때도
역시
새우젓이나
깍두기를 얹어 먹곤
하였지요.
작금에
이렇듯 누룽지산업이 생겨나고
저렇듯 판매경쟁에 이르게 되기까지는
그때 그 시절
누룽지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할과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해 봅니다.
손에
들고
찬찬히 살펴보는 누룽지 포장지에
설명글을 읽어 보면-
이렇게도 몸에 좋고
저렇게도 몸에 좋다는 말들을
조금은
과도히 하고는 있는 것
같습니다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가볍고 속편한 식사용이기도 하고
또
저처럼 ‘옛날 맛’을 추억해 보면서
또
그
시절에 길들여진
입맛을 찾는 사람들 또한
생각보다 꽤 있지 않겠는가
합니다.
왁자지껄한 골목길에서
비석치기나 딱지 구슬치기를 하며 놀 때
밥솥에서
금방 긁어 떼어낸 누룽지를 들고 나온
친구가 있으면 우르르 몰려가서
한 쪽 얻어먹었던 일들이
이제는 먼 추억이 되었습니다.
(에잇,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이젠 안 먹어-!
그래요
그때는
왜 그렇게 콧물들을 많이 흘렸었는지-
그야말로
‘콧물 젖은 누룽지’였지요.
허허.)
삶은
감자,
고구마,
누룽지...
그리고
어쩌다가 생긴 마른 오징어 다리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히히히-”
하였던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탕’이라고 하는 말은
‘국’의 높임말이라고도 하는 사전 속 설명인데
그렇다면 누룽지국...?
아무래도
그보다는 설렁탕 곰탕이라는 이름에 익숙한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누룽지탕’이 더 잘 어울립니다.
그
남다르고
독특한 구수한 향내(!)
속에는
다른
음식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정겨움’이 있습니다.
물론
‘누룽지간식’의
어린
시절을 지낸 때문이겠지요.
비록
너나없이
가난하여 가진 것이 없었지만
어쩌다 얻게 된 ‘미깡’
한 개도
골목길 한편 양지쪽에 오종종 모여 앉아서
한
쪽 한 쪽 조심스레 떼어내서
나누어 먹던 반세기 전 그 시절
그
친구들이 불현 듯 보고 싶어집니다...
해서...
이제는 나이가 환갑을 벌써 넘긴 탓도
있겠지만...
한
동안은
부드럽고 구수한 ‘누룽지탕’으로
끼니를 삼으며 풋풋했던 날들을
추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혹
비슷한
‘누룽지 추억’을 가지고 있는
세대이십니까?
사람의 일이란 모르는
것이라-
혹시라도
언젠가 우연처럼 마주하고
수인사라도 나누게 되는 날이
온다면-
다른
것보다
‘누룽지탕’을 앞에 놓고
아이들의 표정으로 “히히히-”
함께 웃어
보십시다.
그때까지 늘
건강하십시오.
by/산골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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