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주세요
28일째(1월 28일 목요일) 같이 외출해요.
어제의 일도 있고 도한이도 이 녀석을 알고 있으니 데려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게다가 나이도 별 무리 없는 것 같고. 그래서 5시에 가게로 데리러 갈 테니 같이 좀 나가자고 했다.
“재우오빠 오늘 어디 가는 거예요?”
아니 정신연령상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으음 도한이 군대간대서 그 전에 축하해주려고.”
“군대? 축하?”
“응 사실 축하라기보다는 위로지만…….”
“에에? 왜요?”
“그 전에 하나야 군대가 뭐하는 건지는 알고 있니?”
하나는 잠시 턱을 괴고 고민하다가 무릎을 탁 치면서 말했다.
“알아요! 우주괴수하고 싸우다가 지는 사람들! 결국은 거대로봇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째서 하나는 그런 걸 보고 있는 거지. 남자애도 아니고 대체 요즘 세상에 그런 걸 틀어주는 방송국이 어디 있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 남자라면 한번쯤 갔다 오는 곳인데 별로 좋은 곳은 아니야 아니 좋을지도 모르지만 으음 정확하게 말하면 목적은 나라를 지키는 곳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처럼 전쟁이 날지도 모르는 위험이 높은 나라만 징병제로 하고 있다고 해. 남자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 아니 좋아하는 사람도 있긴 있지.”
나의 횡설수설강의는 30분을 더 이어졌다. 하지만 하나는 요점을 파악하지 못한 채 해롱해롱 댈 뿐이라서 어쨌든 하나에게 분위기를 타라고 가르쳐 주었다.
“여어!”
“그래.”
정모가 나타났다. 도한은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다.
“도한이 늦네…….”
“아니 네놈이 오지게 빨리 온거다.”
“아니 네녀석들이 늦은 거야.”
약속시간은 5시 30분. 현재시각은 5시 30분 25초…26초…
“그런데 그쪽에 붙어 있지 마. 옆에 계신 아가씨한테 폐가 되잖아.”
“응? 하나야 폐가 되니? 나 떨어질까?”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하나는 정색을 하고 반대했다. 우후훗. 정모녀석 얼굴이 새파래진다.
“뭐 뭐냐! 너는! 설마…….”
“그래 그 설마다.”
“안되겠다. 경찰에 알려야겠다. 아무리 네가 막 되먹은 녀석이라도 설마 부녀자를 납치해서 세뇌까지 시키다니! 그것도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그거 하나한테 민폐다.”
“아아 아가씨 죄송합니다만 이 녀석이랑 같이 다니시면 위험해요!”
“네가 10배는 더 위험해.”
정모녀석은 하나의 표정을 살핀다. 하나는 정모의 알 수 없는 발언에 고개를 갸웃거릴 뿐 뭐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후후후 봐라, 이 아가씨도 동요하고 있잖아.”
“헛소리 그만하고 소개할게. 하나야 이 녀석은 생긴 건 좀 험악하게 생기고 성격도 더럽게 나쁘고 버릇도 안 좋고 ‘애인없음’ 경력 27년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끔 좋은 녀석이야. 이름은 뭐더라?”
“모르는 척 하지마!”
“그래 김정모야. 그냥 한번 듣고 잊어버려.”
“네.”
어이 대답하지 마.
“정모 이쪽은 지 하나. 내 먼 친척 동생이야. 복잡한 이야기는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일단 우리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어.”
“하나에요 잘 부탁해요,”
하나는 다소곳이 인사를 했다.
“응 나는 김정모야. 어쩌다 보니 이 녀석 친구야. 잘 부탁해…인데 너희집?”
"응."
"에휴 하나도 참 힘들겠구나."
"무슨 의미야!"
"여어!"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눈 직후 도한이 왔다.
“어라? 하나까지 왔네. 잘 왔어.”
“에헤헤.”
정모는 화들짝 놀랬다.
“뭐야? 도한이 한태는 벌써 소개 시켜 준거야? 언제 그랬어! 이봐!”
“전에 알바 알아봐 달라고 해서 갔는데 그때 우연히 만났어.”
도한이는 착해서 다행이다!
“뭐……뭐야 그런 거였어?”
그럼 뭘 기대한거냐?
“자 그럼 일단 가자.”
“그래.”
“잠깐만! 그건 뭐야?”
“응?”
정모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두리가 있었다.
“어라? 두리야! 나오면 안돼잖아.”
어째서 데리고 온 거야…….
“하나야 두리 데리고 오면 안되잖니.”
“에에? 제가 데리고 온 거 아니에요.”
어이 지금 책임회피해도 늦었어.
“으음 그럼 두리가 혼자 가방에 들어갔고 하나는 그것도 모른채 가방을 들고 나왔던 거구나.”
“네네.”
“그럴 리가 있냐!”
“하윽.”
내 목소리에 놀랐는지 하나는 눈물까지 글썽거린다.
“이봐, 서재우.”
“응?”
정모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몇몇의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악역은 너야.”
정모의 소근대는 듯한 작은 목소리. 하지만 내 귀에선 울린다.
악역은 나?
“그건 그렇고 그 햄스터는 어떻게 할거니?”
도한이 하나에게 물었다.
“지금 집에다가 갔다놓고 오기도 그렇고 그냥 데려가자.”
정모까지 저렇게 나오고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다.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와아.”
하나는 두리에게 볼을 부비면서 좋아한다.
“대신 가방 안에다가 넣어놓고 아무도 못 보게 해야 돼. 식당에서 동물은 무지무지 싫어하니까.”
“네.”
하나는 언제 침울했었냐는 듯 금방 표정이 밝아졌다. 뭐, 몰래하면 되는 거야 몰래하면. 뭐든지 안지킬 때에는 들키지만 않으면 돼.
우리는 자주 가는 밥집으로 향했다.
물론 두리는 하나 가방 속에 꽁꽁 숨겨 두었다. 하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너무 그렇게 긴장 안 해도 돼.”
나는 하나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보고 있으면 하는 행동이 꼭 웃음이 나올 것 같다. 보통은 일부러 하려고 해도 못할 텐데 말이다.
밥집에서 나머지 친구들을 만나서 도한이가 가는 길을 축하해 주었다. 친구들에게는 하나의 정체를 꽁꽁 숨겼다. 이 녀석들까지는 어떻게 나중에 정체가 드러나도 괜찮겠지만 다른 녀석들은 내가 감당할 수가 없다.
그리고 2차로 가는 자리까지는 함께 했다. 사실 3차까지는 같이 하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재우야 그런데 너 복학은 언제 하냐?”
“응 이번학기에 할거야.”
말을 건 것은 같은 과 친구다. 뭐 세상은 불공평하다. 같이 입학했는데 얘는 벌써 4학년 인데 나는 이제 다시 2학년으로 복귀해야 하는 건가?
“뭐, 이번학기에 복학하면 가끔 볼 수 있겠구나. 그런데 같이 온 애는…….”
“그건 노코멘트. 한 가지 확실한 건 애인은 아니야.”
“흐음 그래?”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는 듯 하더니 술잔으로 내 왼쪽을 가리킨다.
“근데 저렇게 마시고 있어도 괜찮은 거야?”
“응 나는 마셔도 괜찮……악!”
술잔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하나가……하나가……1000cc잔을 비우고 있었다.
“푸햐……와하하핫.”
웃고 있다.
“와아! 재우오빠~ 좋아좋아! 이거 더 주세요.”
왠지 무섭다.
“누가 먹였니?”
나는 잔잔한 미소를 띠면서 하나에게 부드럽게 물었다.
“도한오빠랑 정모오빠가요.”
벌써 오빠냐! 라고 할 때가 아니지. 이놈들이!! 내가 째려보자 도한이 움찔해서 급히 변명한다.
“하지만 무슨 맛이냐고 물어 보길래. 술 안 마셔 봤냐고 물어봤더니 안 마셔 보았다고 하길래 앞으로 사회생활 하려면 마셔야해. 라고 해서 내가 마시라고 줬지. 안돼?”
뭐 딱히 안될 건 없지만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먹일 건 없잖아.
“술 처음 먹는 애한테 너무 많이 먹인 거 아니야?”
“뭐, 저 정도로 약할 줄은 몰랐지.”
하나 앞에는 1000cc잔 2개가 올려져 있다. 너는 고래냐!
“약하다기 보다 너희가 너무 많이 먹인 거야.”
“하지만 좋다고 했는걸.”
“응응 좋은 걸.”
하나는 또 다른 잔에 손을 대려 하고 있었다.
“스톱.”
나는 하나의 손을 말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이 밀고 말했다.
“더 이상은 안돼.”
“에에? 왜에!”
이젠 반말이군.
“아무튼 안돼.”
“아앙 더 줘잉.”
으이구.
“이런 이유로 우리는 3차까진 함께 못할 것 같습니다.”
“습니다!”
하나는 내 마지막 말을 따라한다.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 하나야.”
“하나야 다음에 또 보자 언니가 귀여워 해줄게.”
“하나야 안녕!”
“하나야 재우가 찝적 대면 나한테로 연락해.”
기타생략. 어째서 나한테 인사하는 놈은 하나도 없는 거냐!
“도한아 그럼 잘 다녀와라.”
“응. 하나야 그럼 나중에 또 만나자.”
“다녀오쉐여오.”
하나는 이제 말이 꼬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봐! 어째서 나한테는 인사를 아무도 안하는 거야! 라는 사이에 다들 돌아가고 있었다.
“쳇.”
“아웅? 재우오빠? 에헤헤헤.”
한가지 알아냈다. 하나는 알콜이 들어가면 웃는다.
“에헤헤헤.”
하나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계속 웃고만 있었다.
“나나 실은 다 알고 있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나가 난데없이 말했다.
“뭘?”
“나 나 누군지 알아요.”
“응?”
하나는 한바퀴 돌면서 쓰러질 듯 휘청 이더니 다시 자세를 바로잡고 경례를 한다.
“픽슝!”
발음이 틀렸어.
“정신 차려.”
“아? 그게 아니지. 재우오빠 그러니까 나 기억났어요. 나에 대해서.”
하나는 눈동자가 돌아왔다.
“나는 햄토리! 햄토리였어요. 방가방가. 에헤헤.”
아니구나.
“방금 건 잊을게. 나중에 절대 놀리는 데 안 쓸게. 그러니까 다음 건?”
하나는 갑자기 가방을 뒤적뒤적한다.
“에헤헤 두리야. 나 너랑 같이 햄토리다! 와아 방가방가 에헤헤.”
아무래도 하나에게 술을 주는 건 앞으로 10년은 일렀던 것 같다. 나중에 무슨 일을 했는지 다 가르쳐 줘야겠다.
“에헤헤. 아앗! 두리야 어딜가?”
하나가 어설프게 안고 있던 두리가 하나의 품에서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하나야 두리 잡아!”
“넷! 대장!”
하나는 또 어설프게 경례를 한다. 대체 아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경례를 하다니.
하나는 두리를 잡으러 달린다. 두리는 별로 빠르지는 않지만 꾸준히 도망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놓칠 것 같은 걸. 두리는 자동차가 별로 없는 도로 한복판까지 도망쳤지만 결국 하나에게 잡혔다.
“와앗! 잡았다!”
하나는 도로 한복판으로 나간 두리를 잡았다.
“하나야 위험해!
이쪽은 차가 잘 다니는 곳은 아니지만 어둡고 길이 굽어 있어서 위험한데……어라! 차잖아! 하나야! 하나는 차의 헤드라이트를 보고 움직이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그냥 차에 치이려는 듯 멍하니. 어쩌면 그 시간은 0.1초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눈에는 무한하게 긴 시간으로 보였다. 나는 더이상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위험해!”
다른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는다. 단지 차에서 하나를 밀쳐내야 겠다는 생각뿐. 나는 그 3미터가 마치 수백만 광년이 떨어진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내 몸이 떠서 하나를 밀쳐 내었다고 생각한 순간. 나의 몸은 다시 하늘로 떠올랐다. 환한 헤드라이트 불빛이 내 몸을 덮쳤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세상이 한바퀴 돌았다고 생각한 순간 내 몸은 어딘가에 심하게 부딫혔다. 그리고 아무런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나는 괜찮은 걸까? 나는 억지로 정말 억지로 눈을 떴다. 눈은 희미한 무언가밖에 보이지 않는다. 가끔 들썩들썩하는 무언가 왔다갔다하는 무언가. 하나는 괜찮을까? 나는 힘들게 떴던 눈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어 감는다. 무거운 눈꺼풀에 눌려 나는 아무런 생각도 정신도 기억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지금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하나가 괜찮을까 라는 것뿐.
이번회부터는 다음화 예고가 없어요.
<다음회 예고>
??일째(?월?일?요일) - ??
|
|
첫댓글 끝으로 치닷는군요. 냥.
이제 슬슬 끝날 때가 된 거로군... (긁적) 어쨌든 마지막까지 건필!
' ')// 건필하세요:)
T^T 하나 귀여워.. 하다가, 차에!
건필. 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