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왜 날뛰는 말을 타나
영웅 탄생의 필수 조건들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1805년 작·왼쪽). 역동하는 말과 이를 차분히 제어하는 나폴레옹의 카리스마가 영웅적 느낌을 배가한다. 다비드의 제자 앙투안 장 그로가 그린 ‘보리스 유수포프 왕자의 초상’(1809년 작·오른쪽)은 나폴레옹 그림과 같은 구도에 유수포프 왕자를 배치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는 그 유명한 혁명가 로베스피에르와 돈독한 우정을 나눌 정도로 프랑스 혁명의 적극적인 지지자였다. 그러나 감옥에 가서 고초를 겪은 뒤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조력하는 궁정화가로 변신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을 그림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은 다비드가 그린 대표적인 나폴레옹 선전화다. 이 그림의 주문자는 나폴레옹이 아니라 나폴레옹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었던 스페인의 카를로스 4세였으나, 나폴레옹도 이 그림을 좋아하여 여러 판본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그 결과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은 총 다섯 버전이 존재하게 되었지만, 그 어떤 것도 나폴레옹의 실제 모습과는 큰 거리가 있다. 이 그림에서 말의 휘날리는 갈기와 장수의 나부끼는 망토는 다가오고 있는 폭풍을 예고하는 듯하다. 폭풍이 몰아치는 이 험난한 날씨와 환경 속에서도 나폴레옹은 자신감을 잃지 않고 군사들을 지휘하는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를 점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군대와 싸우러 떠난 1800년의 실제 상황은 사뭇 달랐다. 산적과 복병을 두려워한 나폴레옹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복장을 하고 화창한 날씨에 현지인의 안내를 받아 조용히 알프스 산맥을 넘었던 것이다.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에서 인상적인 것은 나폴레옹의 모습뿐 아니라 그의 사타구니 아래서 약동하고 있는 말의 모습이다. 뒷발로 설 정도로 거칠게 날뛰고 있는 말. 그러한 말을 능숙하게 타고 제어하는 장수의 모습은 무위(武威)를 과시하고자 하는 로마 시대 조각상에 두루 나타난다. 당시 관객들은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을 보면서 자연스레 로마 시대의 영웅들을 연상했을 것이다. 이처럼 고전 예술의 관습을 두루 재활용한 다비드는 그에 걸맞게 신고전주의 화가로 분류된다. 그러나 실제는 어땠을까. 나폴레옹이 탔던 것은 기운이 넘치는 군마가 아니라 노새였다. 살찐 장수를 태우고 다니느라 지친 노새는 결코 뒷발로 서지 않았을 것이다.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이 나폴레옹 영웅화 작업의 일환이었다는 점은 앞쪽 바위에 그려져 있는 세 명의 이름을 통해 좀 더 분명해진다. 각각 ‘BONAPARTE’, 즉 보나파르트는 나폴레옹을 지칭하며 ‘HANNIBAL’은 로마제국을 공격하기 위해 코끼리를 타고 알프스를 넘은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을 가리킨다. 또 ‘KAROLVS MAGNVS IMP.’라는 글자는 카롤루스 대제, 즉 랑고바르드 왕국을 치기 위해 알프스를 넘은 프랑크 국왕 샤를마뉴의 라틴어식 이름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이 영웅들의 이름들을 그림에 새기라고 요청한 이는 다름 아닌 나폴레옹 자신이다. 이로써 알프스를 넘은 영웅들이라는 일관된 계보가 확립되었다.
그러면 뭐 하나. 나폴레옹은 결국 세인트헬레나섬에서 쓸쓸히 죽게 된다. 한때 세계를 제패했음에도 결국 몰락하고 만 영웅의 모습은 낭만주의 사조에 심취한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래서였을까. 나폴레옹은 죽었지만, 그에게 붙은 영웅 이미지는 끝내 죽지 않았다. 많은 대중 매체들이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을 복제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뿐 아니라 다비드의 제자 앙투안 장 그로는 1809년에 그린 ‘보리스 유수포프 왕자의 초상’에서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의 구도를 거의 그대로 차용했다. 주인공인 보리스 유수포프 왕자는 타타르족 장군 복장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림의 전체적인 구도는 다비드의 그림을 쏙 빼닮았다. 배경이 눈 덮인 알프스 산맥이 아니라 파도 치는 바다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 그림 제작을 주문했던 유수포프 왕자의 아버지는 완성된 그림을 보면서 아들이 나폴레옹 같은 영웅이 되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서울 종로구 가회민화박물관에 있는 전설 속 무신(武神) 백마장군을 그린 민화. 20세기 전반 작품으로서 나폴레옹 그림과 구도가 흡사하다. 필자 촬영
사납게 날뛰는 말을 능숙하게 제어하는 영웅의 이미지는 한국 회화의 역사에도 존재한다. 20세기 전반 한국에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민화인 백마 장군 그림을 보라. 백마 장군은 하늘과 땅을 오가며 인간과 무당을 수호하고 잡귀를 물리친다고 알려진 무신(武神)의 일종이다. 그런데 이 백마 장군 그림에 나타난 장군과 말의 자태는 명백히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에 나온 나폴레옹과 말의 모습을 닮았다. 20세기 전반기 한국 문화계에서 나폴레옹이 대표적인 영웅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 시기 민화에서 다비드 그림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영웅이 존재하기 위한 선결 조건은 역경이다. 그리고 그 역경은 폭풍이나 설원 같은 험준한 외부 환경으로 그려진다. 그와 같은 역경을 헤치고 난세의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를 동원할 수밖에 없다. 힘차게 도약하는 말은 바로 그러한 에너지를 표상한다. 에너지는 제대로 통제될 때 비로소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는 법. 다비드 그림에서 나폴레옹은 사나운 말의 넘치는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으로 그려진다. 역경, 에너지, 그리고 그 에너지를 통제할 수 있는 역량. 이 세 가지야말로 영웅 탄생의 필수 조건이다. 비록 노골적인 선전화이기는 해도 다비드의 그림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유는, 바로 그 필수 조건을 시각적으로 잘 구현하여, 뒷사람들도 따라 그리고 싶게 만들었다는 데 있지 않을까.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