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정 이름의 유래 서울특별시는 1984년 11월 7일 사가정길로 개칭했다. 사가정길의 명칭은 아차산 앞 벌판에 거주했던 조선초기의 학자이며 대신인 서거정의 소를 인용한 것이다. 즉 전철역 사가정역의 역 이름은 역사가 사가정로 아래에 위치하여 사가정역이라 명명되었다.
정치인 서거정
서거정은 25살에 나이에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사제감직장(司宰監直長)을 지냈다. 그리고 32살에 집현전박사(集賢殿博士) 등을 거쳐 37살에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하고, 38살에 문신정시(文臣庭試)에 장원, 공조참의 등을 역임했다. 이처럼 서거정은 조선 초기의 문인이 밟아야 할 기를 차근차근 걸으면서 지내온 인물이다. 나는 그의 삶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굴곡이 없이 위로 상승하는 곡선의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서거정은 40살이 되기 전까지 자신의 학식을 닦아 놓은 후에 대외적인 일을 하기 시작한다. 41살에 이조참의 때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대사헌에 올랐으며, 43살에 조선시대 최초로 양관 대제학(兩館大提學)이 되었다. 47살에 다시 발영시(拔英試)에 장원한 후 6조(曹)의 판서를 두루 지내고 1470년(성종 1) 좌찬성(左贊成)에 이르렀으며 이듬해 좌리공신(佐理功臣)이 되고 달성군(達城君)에 책봉되었으며 45년간 여섯 왕을 섬겼다.
이처럼 40 이후의 그의 인생은 문헌에 남길 정도로 파란만장하다. 명나라의 사신으로 다녀와서 대사헌에 오르고, 양관 대제학이 되며, 여섯 임금을 섬기었다는 것은 당시의 혼란스러운 왕위 교체 속에서 보았을 때 대단한 일이다. 서거정의 오랜 관직 생활은 창경궁 전각의 이름을 지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창경궁은 당시 생존하였던 세 왕후(세조 ·덕종 ·예종)의 거처를 위해 옛 수강궁 터에 지은 것이다. 이 때 그의 나이 65세 때의 일이다. 이처럼 서거정이 창경궁의 전각의 이름을 지었다는 것에서 45년간 여섯 임금을 섬기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의 일을 해 왔는 가를 알 수 있다.
첫댓글 저 묵동 사는데 이런곳이 있는줄 몰랐네여;;사진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