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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키스의 화가
아빠가 가끔씩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읽곤 한단다.
이 시리즈는 최근에도 계속 신간이 나오고 있는데,
알아보니 100권까지 기획했다고 하는구나.
엄청난 프로젝트로구나.
책 가격이 좀 비싸긴 한데,
컬러 사진도 많이 담겨 있어 읽기 편하고
책 구성도 괜찮고, 그리 두껍지도 않고(^^)
해당 인물과 그의 작품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좋더구나.
그래서 가끔씩 읽곤 한단다.
이번에 읽은 것은 클림트라는 작가란다.
지은이는 전원경이라는 분인데,
아빠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분이란다.
...
클림트라고 하면 화가보다 더 유명한 <키스>라는 작품의 작가로만 알고 있단다.
역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구나.
<키스>라는 작품은 아빠가 알고 그림 중에 가장 화려한 그림인데
실제로 그림에 금박을 붙여 놓은 작품이란다.
너희들에게도 이야기했더니
<키스>라는 작품을 알고 있더구나.
이상한 포즈로 키스를 하고 있다고 덧붙이면서 말이야.
그러면 이 유명한 작품을 그린 클림트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으며,
이 그림은 어떻게 그리게 되었을까?
이 책을 읽고 나면 알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책을 펼쳐 들었단다.
1. 클림트의 도시
클림트.
이 분에 대한 사전 지식은 하나도 없었단다.
구스타프 클림트.
오스트리아 빈 출생.
오스트리아 빈이라고 하면 음악의 도시 아닌가?
오스트리아 빈의 화가로는
클림트가 대표적이라고 하는구나.
화풍이 독특해서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에곤 실레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 또한 오스트리아 빈 출신으로
클림트와 교류도 했다고 하는구나.
비행기를 타고 오스트리아 빈 공항에 내리면
공항 벽에 클림트의 그림들을 볼 수 있다고 하니
오스트리아 빈에서도 클림트를 그들의 대표 작가로 공식 인정하는가 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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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
예술의 도시 빈에는 여러 예술가들의 흔적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남아 있다. 도시 곳곳에는 베토벤과 모차르트, 요한 슈트라우스와 슈베르트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거장들 중에서도 클림트처럼 빈에 자신의 발자취를 확실하게 남긴 이는 없다. 클림트는 빈의 공기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존재다. 빈 슈베하트 국제공항으로 입국하는 이들은 누구나 공항 벽에 펼쳐진 <키스>의 이미지를 만나게 된다. 실물보다 훨씬 더 큰 그 이미지들은 “클림트의 도시 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이 오래된 황제의 도시는 이제 예술의 황제로 클림트를 떠받들고 있다. 제국의 광휘는 오래 전 사라졌으나, 클림트의 영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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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볼게.
클림트가 언제적 사람이냐면, 1862년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서
1918년 죽을 때까지 줄곧 빈에서 지냈다고 하는구나.
클림트가 살았던 시절의 오스트리아 빈은 전통을 중시하는 사회였다고 하는구나.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슈테반 츠바이크도
오스트리아가 전통을 중시하는 것을 빗대어 ‘어제의 세계’라고 불렀다고 하는구나.
<어제의 세계>는 슈테반 츠바이크의 책제목인데
아빠도 지은이만 보고 사둔 책인데 오스트리아에 관한 책인가 보구나.
살짝 읽기 어렵겠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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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말처럼 클림트가 살던 오스트리아 제국은 ‘어제의 세계’였다. 황제가 거주하던 도시, 19세기 말에 바로크 스타일의 궁전과 고딕 양식의 교회를 지었던 시대착오적인 도시가 클림트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그처럼 과거지향적인 분위기에서도 변화는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다. 19세기를 떠나 20세기로 전진하는 시간의 흐름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기가 바뀌는 와중에 클림트는 먼 과거와 먼 나라에서 찾아낸 영감을 통해 혁신적인 걸작들을 창조해냈다. 그 혁신 속에서 발견되는 무수한 모순과 불균형들은 천재이기 이전에 빈 사람이었던 클림트가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클림트의 걸작들은 과거인 19세기도, 미래였던 20세기도 아닌 제3의 시간과 공간을 담고 있으며, 그 독특한 아름다움은 ‘어느 누구와도 닮지 않은 개성’으로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클림트의 걸작들은 변화하는 시대와 복잡하고도 모순된 한 도시가 놀라운 천재성을 만나 이뤄낸 유니크한 혁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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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가 1912년부터 죽은 1918년까지 만년에 지내던 집이 있는데,
클림트 빌라라 부르는 그 집이 2000년에 복원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독특하게도 그 집 거실에 삼국지의 관운장 그림이 걸려 있다고 하는구나.
클림트가 말년에 일본 판화 등 동양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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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혁명가 클림트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에 보헤미안 이민자 집안에서
칠남매의 둘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고 하는구나.
딱 봐도 어린 시절은 가난할 것 같구나. 역시나 가난했대.
그래서 17살부터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동생인 에른스트, 친구인 프란츠 마치와 함께 ‘예술가 컴퍼니’라는 회사를 차리고
건축물 장식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구나.
운도 좀 따르고 실력이 소문나면서
그들은 점점 많은 그림과 중요 건물의 천정과 벽면 그림을 그리게 되었단다.
당시 빈에서도 유명한 부르크 극장의 천장화와
빈 미술사 박물관 벽면 그림도 그랬어.
그러면서 경제적으로 여유도 생겨서
그들은 아틀리에를 구해서 캔버스에 그리는 그림 작업도 했대.
행복도 잠시,
동생 에른스트가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죽고 말았어.
그것도 아내 헬레나가 딸을 낳은 직후에 말이야.
아, 안타깝고 불쌍하구나.
동생 에른스트가 죽기 6개월 전에는 아버지가 56세 나이로
뇌출혈로 돌아가셨단다.
연이어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긴 거야.
이런 경험 때문인지
클림트는 평생 가족을 보살피고 함께 했다고 하는구나.
클림트가 평생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거의 결혼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여자친구 에밀리 플로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동생의 아내인 헬레나의 언니로 처음 알게 되었다는구나.
그렇다고 클림트가 일편단심 순정파는 아니었다고 해.
여러 여자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고,
사생아가 열네 명이나 되었다고 하는구나.
에른스트가 죽고 나서 친구였던 프란츠 마치와도 의견차이가 생겨서
예술가 컴퍼니는 해체되었다고 하는구나.
…
예술가 컴퍼니 활동을 할 때
클림트는 사진보다 다 사실적인 그림을 그렸단다.
책에도 그런 작품들을 소개해 주었는데,
정말 사실적으로 그렸더구나.
그런데 예술가 컴퍼니를 해체하고 나서
클림트는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술을 시도했고,
그와 뜻을 같이 사람들과 함께 ‘빈 분리파’를 결성했다고 하는구나. (1897년 5월)
이때부터 파격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대.
이 시절에 빈 대학의 천장화를 그리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의 바뀐 화풍으로 그리려고 했대.
여신의 누드 등이 포함된 스케치 초안을 빈 대학 측에 보여주었대.
빈 대학에서는 당연히 논란이 되었지.
결국 빈 대학은 클림트와 계약을 철회하기로 했단다.
바뀐 클림트의 화풍은 평론가들에게도 비판의 대상이었단다.
그런 비판에 신경 쓸 클림트가 아니었단다.
아마 평론가들의 입맛에 맞는 그림을 그렸다면
클림트가 오늘날 그렇게 유명해지지 못했을 거야.
클림트가 기존 전통을 깨는 것은 사실 스타일을 바꾼 것은 아니고,
잠재되었던 것을 겉으로 표출한 것이라고 하더구나.
클림트가 좋아했던 음악가는 음악의 혁명가 같은 베토벤이라고 하고
베토벤을 위한 <베토벤 프리즈>란 작품을 그리기도 했단다.
그런데 미술을 이해하는 세포가 턱없이 부족한 아빠로서는
그 그림이 도대체 왜 <베토벤 프리즈>라는 제목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더구나.
그런데 그 그림이 클림트 그림에 있어 중요한 이유는
금을 사용하는 소위 ‘황금시대’를 열었다는 점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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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126)
금세공업자의 아들인 클림트는 금을 얇게 펴서 바르는 중세의 기법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중은 ‘금을 칠한 벽화’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흥분했다. <베토벤 프리즈>가 큰 화제를 모은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었다. 클림트의 동료들은 이 새로운, 동시에 지극히 고답적인 재료의 등장에 관심을 기울였다. 금의 사용은 예술가를 마치 신처럼 보이게 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내심 클림트가 바라던 바였다. 클림트의 ‘황금시대’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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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황금시대
앞서 이야기했듯이 클림트는 평생을 오스트리아 빈에서 지냈는데,
몇 번 여행을 갔었는데
그 중에 이탈리아 라벤나 지역을 다녀온 것이 그의 그림 양식에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구나.
라벤나 지역에 성당이 많았고,
성당에 모자이크 양식으로 그림이 그려졌는데
그것에 영향을 받았대.
라벤나 여행을 가기 전 작품인 <소냐 닙스의 초상>과
라벤나 여행을 다녀온 후 작품인 <프리차 리들러 부인의 초상>을 보면
그의 변한 화풍을 여실히 알 수 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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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키스>라는 작품을 완성하게 된단다.
당시 평론가들은 이 작품에 대한 해석이 다양했다고 하는데,
오늘날은 그 그림에 흉을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구나.
이 그림은 현재 벨베데레 미술관에 있다고 하는데,
검은 벽에 <키스> 한 점만 딱 걸려 있다고 하는구나.
지은이 전원경 님께서 <키스>에 대한 평가를 한 글이 있는데
감정이 메마른 아빠가 읽어봐도 그림에 대해 잘 설명해 주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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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벨베데레 미술관의 <키스>가 전시된 방으로 들어서면 검은 벽에 <키스> 한 점만이 걸려 있고 그 앞으로는 관람객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몰려 있다. 독일어, 영어, 중국어, 한국어 등 각 나라 가이드들의 열띤 해설이 한꺼번에 들려온다. 그러나 그 모든 소음과 소란은 이 그림 앞에서 일순간에 정지한다. 남자가 여자의 몸을 안고 볼에 막 입을 맞추려고 하는 순간이다. 하나가 된 두 사람의 주위로 온통 황금빛 비가 내리고 있다. 이것은 곧 소멸하기 전의 우주, 마지막으로 빛나는 불꽃의 광휘와도 같다. 극도로 관능적인 순간이지만 결코 천박하거나 노골적이지 않다. 직사각형 문양의 가운을 입은 남자는 황금빛 구름을 몰고 천상에서 지상으로 막 내려온 듯하고 꽃무늬 옷을 입은 여자는 지상에서 막 피어난 것처럼 보인다. 여자의 발목에는 황금빛 넝쿨이 감겨 있다. 눈을 감고 있는 여자의 얼굴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지 않지만, 남녀가 서로를 갈구하는 감정은 너무도 강렬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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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키스>는 화가로서 클림트의 인생이 함축된 작품이기도 하다. 남녀의 뒤로 펼쳐진 어두운 배경이 된 암흑은 그의 여름 휴가지인 아터 호수의 고요히 일렁이는 물결과 엇비슷하고, 기하학적인 황금빛 무늬는 라벤나에서 본 비잔티움 모자이크, 그리고 아버지의 금세공 작업을 연상시킨다. 결국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화가로서 클림트의 인생은 <키스> 한 점에서 모두 표현된 셈이다. 가득한 사람들, 그리고 갖가지 언어로 들리는 해설에도 불구하고 전시실은 고요했다. <키스>는 모든 것을 압도하는 거대한 침묵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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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의 그림 중에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이란 그림이 있단다.
이 그림은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남편인 블로흐-바우어 남작이 의뢰하였단다.
그림 속 모델은 당연히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부인이겠지.
부인이 죽으면서 이 그림을 오스트리아 정부에 기증하라고 유언을 남겼대.
그런데 그 와중에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서
이 그림을 나치가 가져갔다가
전쟁이 끝난 후 남편 블로흐-바우어가 가지고 있다가
블로흐-바우어가 죽으면서 그림을 조카에게 주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그 조카가 미국에 망명을 해서 그 그림은 미국에 있다고 하는구나.
나중에 오스트리아 정부는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유언에 따라 그림을 오스트리아 정부에 넘겨야 한다고 소송을 했지만,
져서 그 그림은 여전히 미국 뉴욕의 한 갤러리에 있다고 하는구나.
재미있는 에피소드이구나.
그림의 주인은 모델인가? 의뢰한 사람인가?
4. 유전자의 힘
클림트는 잘 안 알려졌지만 풍경화도 많이 그렸다고 하는구나.
아터 호수에 많이 갔는데,
그곳을 그린 풍경화가 많대.
아터 호수를 갈 때 가장 많이 동행한 이는
앞서 이야기했던 클림트의 평생 연인 에밀리.
에밀리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고
커리어 우면으로 당시 빈에서 꽤나 유명한 사람이었다고 하는구나.
에밀리는 클림트가 여성 편력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대,
당시 빈에서는 배우자가 바람 피는 것에 대해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에밀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 같아.
평생 연인이고 클림트가 열네 명이나 되는 사생아가 있지만
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고 하는구나.
클림트는 아버지가 뇌출혈로 돌아가시고,
동생 에른스트가 어린 나이에 심근경색으로 죽은 것을 보고
평생 건강에 신경 쓰면서 살았다고 하는구나.
운동도 규칙적으로 했대.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와 같은 나이인 56세에
아버지와 똑 같은 뇌출혈로 죽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무서운 유전자의 힘이로구나.
그의 임종을 가족들과 에밀리가 지켜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했던 에곤 실레도
클림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왔다가 하는구나.
그래서 클림트의 죽은 모습을 그리기도 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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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이야기를 쭉 생각나는 대로 해서 한가지 빼먹은 게 있구나.
클림트가 ‘빈 분리파’를 조직했다고 했잖아.
그 ‘빈 분리파’가 해체되고 나서 ‘빈 공방’을 조직했는데,
다시 인테리어 작업을 하면서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는구나.
…
이상으로 클림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단다.
유튜브나 블로그를 통해서도 클림트의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천천히 책장을 넘기면서 클림트를 알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어떤 화가에 대한 책을 쓰고 싶으세요?”
책의 끝 문장: 제국의 광휘는 오래전 사라졌으나, 클림트의 영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책제목 : 클림트
지은이 : 전원경
펴낸곳 : 아르테
페이지 : 304 page
책무게 : 458 g
펴낸날 : 2018년 04월 17일
책정가 : 22,000원
읽은날 : 2023.05.29~2023.05.30
글쓴날 : 2023.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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